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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다시 길바닥에서

beautician 2020. 2. 5. 10:00



아침 미팅을 까페에서 했다.

예상대로 직원은 조금 늦게 도착했지만 우기철 장대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10분 지각이란 오히려 상당히 선방한 셈이었다. 


사무실이 없어서 밖에서 직원들과 아침 미팅을 한 것은 2007년쯤 이후로 처음이다. 당시 사무실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않았으니 창피하거나 자괴감 느낄 일도 없었지만 새 사무실로 옮겨갈 짐을 차에 잔뜩 채워놓고서 아직 사주 측 임대료 결제가 되지 않아 어정쩡한 상황이 된 지금은 입장이 좀 다르다. 더욱이 옮겨갈 예정지는 Serviced office라고도 부르는 공유사무실. 보통 지사설립을 준비하는 지사원들, 창업 중인 젊은 사업가들의 공간인 그 곳에 내 나이쯤 되는 사람이 전 사무실에서 쓰던 산더미같은 서류더미를 들고 들어가는 건 여러 모로 매우 쪽팔리는 모양새다. 망해서 들어왔다는 필을 팍팍 풍기는 셈이니 말이다.



공용 사무실



난 지난 해부터 이 직장에서의 근무가 길어야 올해 2월말까지일 거라 생각했다.  그건 회사의 사업적 재정적 상황, 사주의 성향, 임박한 내 비자갱신일정 등 여러 요소들을 감안해 예상했던 것이다. 당시 예측했던 그대로의 상황이 벌어지는 중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당연히 나가 줘야 할 것이라 생각했으므로 사주에겐 언제든 내 도움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면 그렇게 말해달라 얘기해 두었다. 그 시기가 대략 2월말 쯤 될 것 같다.


하지만 정작 내가 이직 또는 사직해야 한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런 거다. 

지금 릴리가 엉망진창으로 운영하고 있는 니켈광산에 들어가 행정 부분을 내가 틀어쥐고 일을 돕겠다 생각하는 것은 릴리가 올해 중 협업을 시작하기 쉬운 LG에게 사고치는 꼴을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절대 고의는 아니라해도 지금까지 하던대로 하면 LG로서는 도저히 용납하지 못할 상황이 생길 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한 대기업은 상식을 벗어난 관행, 주먹구구식 진행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고 릴리가 돈을 벌려면, 그리고 나도 구원받으려면 릴리가 절대 LG와의 거래에서 사고를 쳐서는 안된다. 최소간 그렇게 릴리와 그녀의 사업을 이끌어 가는 게 가능하다고 여기기에 니켈광산에 합류하려는 것이다.


이 직장을 떠나려는 것도 같은 이유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부분에서 뭔가 사고를 치고서 거짓말일 것이 분명한 이유를 둘러대며 눈을 가린다면 내가 상황을 관리하고 운영할 여지가 없는 셈인데 책임만 함께 떠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입밖에 내는 말 중 20%정도가 허위라면 같이 일하기 힘들다 생각하는 게 인지상정인 상황에 거꾸로 진실이 불과 20% 정도라면 어떤 결정을 해야할 지는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내게도 입을 맞춰달라 하면 요구한데로 입을 맞춰 나와 다른 모든 이들을 동시에 곤란하게 만들거나 그 요구를 거스려 면전에서 곧이곧대로 말해 그를 곤란하게 할 바에 직을 던지고 나오는 것이 맞다. 사고를 막을 수 없다면 최소한 함께 사고를 함께 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판단을 하며 산다. 


그러니 사무실이 없어 카페에서 직원미팅을 하거나 한 평도 안되는 사무실로 산더미 짐을 들고 들어가는 것 정도는 사실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정작 문제는 거기서 무엇을 하느냐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있는데 이제 와서 누군가의 악의와 위선을 도와 선의를 가진 이들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월급받겠다고 구질구질하게 살진 않겠다.



2020.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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