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진통제 본문
인도네시아의 의료시스템이란 어찌 보면 완벽을 추구한다는 명목 하에 환자가 모든 비효율과 고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구조다.
단순해 보이는 질병에도 의사는 모든 종류의 검사들을 다 할 것을 요구하니 말이다.
단적인 예가 메이의 경우다.
9년 전쯤 메이는 구토가 심해지고 심지어 길바닥에서 픽픽 기절해 쓰러지곤 했다. 예전에 한 번 수술해 주었던 끼스타, 즉 자궁근종(?)이 재발한 것 아닐까 걱정되었다. 미트라 끌루아르가 병원(Rumah Sakit Mitra Keluarga)에서 인자하고 지혜로워 보이던 인디아 계 의사는 정밀혈액검사, 정밀소변검사 등을 지시했고 며칠 후 검사결과를 들고 갔더니 우린 봐도 알 수 없는 검사서 수치들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그는 수면내시경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미트라 끌루아르가에서의 수면 내시경검사 비용은 절대 장난이 아니다. 한국에 영리병원이 들어서면 안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것은 인도네시아의 영리병원들이 수준낮은 의료서비스를 가지고서도 폭리를 취하는 것을 악 소리 한번 못지르고 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비용에 겁먹은 메이는 검사와 치료를 포기했는데 난 그럴 바에 다른 병원에서 한 번 더 의사를 만나보라고 권했다. 그래서 간 다른 병원에서 메이가 걸어온 전화에 난 기가 차지 않을 수 없었다.
"임신이래요."
물론 그 임신이 나랑 관계없다는 걸 우선 분명히 해두고...
문제는 검사결과를 받아든 미트라 끌루아르가의 의사가 그 결과서를 보거나 자신의 촉진, 검진을 통해 메이가 임신했음을 모를 리 없었을 텐데 그 단계에서 임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수면내시경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는 부분이다. 어수륵한 환자의 등을 쳐 과잉진료를 하고서 진료비를 뜯어내겠다는 의도가 너무나 여실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미트라 끌루아르가 병원을 혐오하는 이유는 또 있다.
한번은 내 후배 부부가 어린 딸이 배가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갔다가 곧바로 맹장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하여 우리 부부가 병원을 찾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병원에서 만난 후배의 딸은 아무 문제 없어 보였으므로 과연 다음 날 새벽 정말 급히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인지 의아스러웠다.
"수술비를 미리 납부해야 내일 수술할 수 있다고 하네요."
"여자애 배에 그렇게 쉽게 칼을 대는 것보다 내일 아침까지 경과를 보고 결정하지 그래?"
"하지만 병원에서 내일 수술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그럴 정도의 중환자라면 저렇게 병원안에서 이리저리 놀러 다니도록 병원에서 놔둘 리 없었으므로 매우 석연치 않았다. 응급실 당직인 새파란 여의사에게 추이를 보고 수술을 천천히 결정해도 되지 않냐고 했더니 그러다가 딸이 죽어도 병원 책임이 아니라는 각서를 쓰란다. 그런 반응에 한 바탕 붙고 싶었지만 어쩌면 내일 집도하게 될지도 모를 의사의 심기를 긁을 수는 없었다. 결국 수술비를 미리 지불하지 않는 대신 아이를 하루 밤 병원에 입원시키고 추이를 보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고 다음 날 전문의가 출근해 검진하고서 맹장수술은 전혀 할 필요 없음을 확인했다. 일반적인 복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만약 전날 밤 수술비를 내고 새벽에 맹장수술을 했다면 병원에선 아무 문제도 없는 맹장을 떼어내고서도 그걸 알 리 없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온갖 생색을 내며 치료비를 뜯어냈을 것이다.
내 이가 시리고 아픈 것은 치주염떄문이지만 그게 치과를 다녀온 후 더욱 심해진 것은 치과의사가 스케일링을 강권했기 때문이었다.
굳이 파노라마 액스레이를 찍어서 1주일 후에 다시 오라고 한 것까지는 이해되지만 찬 물이 닿으면 이가 시린 고통을 이루 말할 수 없던 상황에서 굳이 스케일링을 해야 한다는 말이 석연치 않았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스케일링은 언제고 할 생각이었던 만큼 의사가 하라는 것이니 문제 없겠지 싶어 오케이했다. 하지만 결과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통증을 30분 넘게 참아야 했다. 차가운 액체를 내 시린 이에 마구 뿌려댔기 때문이다. 스케일링 끝난 후 의사가 하는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난 고통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가장 센 진통제를 줘요."
나중에 영수증을 보니 진료비 10만 루피아, 스케일링비 55만 루피아....결국 치과 매출을 위해 스케일링을 하며 필연적인 고통을 내게 감수하도록 만들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과잉진료....스케일링은 분명 그 단계에서는 불필요했거나 하지 말았아야 했던 것 같다.
당장 두 세 알을 먹고 싶은 걸 참고 단 한 알 먹은 진통제는 그 효과를 발휘해 불과 30분 후 입안의 통증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도저히 정상적인 사고나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고통이 사라진 것이다. 그만큼 약이 센 것이겠지. 사람들이 마약에 빠지기 전 진통제 중독에 빠지기도 한다는데 왜 그런지 대략 이해되기까지 했다.
엑스레이를 제때 찍지 못해 진료예약을 며칠 뒤로 미루는 사이 그 진통제가 다 떨어지자 다시 예의 고통이 찾아왔다. 고통이 사라졌다고 그 고통이 근원이 사라졌던 게 아니었다. 단지 약이 내 뇌를 속여 그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했을 뿐이다. 그러니 점점 심해지던 통증이 스케일링 하던 그 날의 수준까지 갈 것이 뻔했다. 턱이 아파오고 다른 잇몸들도 아파오고 귀까지 아프기 시작했다. 스케일링 하던 날은 머리까지 쑤셔 제대로 생각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난 급히 예의 치과로 돌아가 같은 진통제를 더 구매했다. 통증은 30분 후 또 다시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진통제를 발명한 사람에게 그렇게 고마움을 느낀 것도 처음이다.
진통제는 비단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것뿐 아니라 통증을 가진 이들에게 대체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매개체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았다. 비단 치통만으로도 이런 생각을 갖게 하는데 정말 죽을 듯한 고통을 일으키는 질병을 가진 이들에게 진통제는 축복이자 필수불가결한 요소일 것이다.
그런 진통제를 쓰레기같은 병원의 이상한 의사들에게 처방받아야 한다는 건 정말 아이러니컬하다.
2020.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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