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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영업직원 활약사

영업직원 활약사 (20)

beautician 2013. 5. 9. 00:21

마지막 라운드....

 

 

난 스티아부디에서의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단순한 퍽치기 시도도 볼 수도 있겠지만 늘 강조하듯 우연이란 건 대개의 경우 그런 식으로 벌어지는 게 아닙니다. 게다가 그 오토바이 괴한들은 저녁시간 붐비는 스티아부디 플라자 앞에서 날치기 하기도 어려운 백팩을 맨 메이를 굳이 골라 공격했고 실제로 도난당한 물건도 없었으므로 더욱 의심스러워 보였어요. 게다가 하필이면 위키가 자카르타에 와 있는 시점에 메이가 그의 미팅요구를 애써 피하던 중이었죠. 어쩌면 에도와 무하마드, 그리고 반둥에서 온 두 여직원 등 우리 영업직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위키가 메이를 위협하려고 자기 실력을 한 번 보여준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또 해보라죠. 죽기 밖에 더하겠어요? 그리고 나도 얌전히 당하고만 있진 않을거라구요.”

 

이마에 커다란 반창고를 붙인 메이가 그렇게 기염을 토했지만 뭔가 효과적인 반격 방법을 생각해 내기 어려웠습니다. 만약 정말 한번 붙어 보겠다 치면 나도 사람을 사서 위키를 공격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었어요. 그러나 겨우 입에 풀칠할 만한 작은 사업을 하면서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회의적이었고 더욱이 그런 식으로 위키가 만드는 대결 프레임에 갇혀 버리는 것도 내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현지인과 불법적인 방법으로 맞붙는다면 난 외국인으로서 어떤 경우에도 무조건 불리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 상황에서 내게 중요했던 것은 어떻게 위키에게 치명타를 가하느냐 하는 것보다 내 사업과 내 가족, 그리고 메이와 그 아이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호하느냐 하는 것이었어요.

 

문제는 메이였어요. 그녀의 숙소는 노출된 상태였고 꼬스의 문은 한번 발로 걷어차면 박살이 나버릴만큼 허술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위키가 정말 악한 마음을 먹고 자정을 넘긴 시간 메이가 아이들과 자고 있을 때 깡패들을 시켜 꼬스에 난입해 들어온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난 위키가 메이에게 악의를 품고 있다고 믿을 수 밖에 없었어요.

 

이 대목에서 난 심각하게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메이와 그 아이들의 안전을 확보해 준다는 건 만만찮은 비용이 드는 문제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사업가로서 비용가치를 두고 따진다면 위키가 메이를 공격하는 중이고 모든 가능한 위험들이 대부분 메이를 조준하고 있었으므로 메이를 잘라 내고 다른 직원들을 뽑아 업무를 돌린다면 회사는 마치 날아드는 미사일을 허방으로 유도하려고 디코이를 흩뿌리며 잽싸게 방향을 바꿔 빠져나가는 전투기처럼 위기에서 간단히 벗어날 수도 있을 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비열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어요. 메이가 위기에 처한 건 그녀가 최선을 다해 회사를 방어했기 때문이었죠. 메이가 그런 역할을 해 주지 않았다면 나와 회사는 더욱 참담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을 게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간 겪어야 했던 개인적 손실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올곧은 진심으로 헌신했던 메이를 토사구팽 해버린다면 내 인생의 가치 역시 그만큼 진흙탕 속에 처박히는 것이었어요. 나를 믿고 벼랑길을 끝까지 따라와준 메이를 저런 파렴치한 위키에게, 에도에게, 무하마드 같은 인간들에게 떠밀려 내 손으로 절벽 밑으로 밀어 버리는 짓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나 역시 여러 번 토사구팽 당해 본 경험이 있었어요. 물론 가해자와 피해자의 시점은 절대 같을 수 없으니 토사구팽을 한 사람 입장에서는 그게 어쩔 수 없는 최선의 방법이었다거나 정상적 업무수행의 일환이었다는 식으로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폭풍이 몰아치는 거리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내팽개쳐진 셈이 되어 있곤 합니다. 현지법인 공장장의 비자금 문제로 치명적 충돌까지 갔던 전 직장에서는 내가 사표를 낼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밀려갔고 그래서 함께 나와 동업한 회사동료들은 슬그머니 중국으로 생산지역을 옮기면서 다시 인도네시아에 돌아와 당시 호의롭지 않던 상황에서 여러 공장들을 연계해 OEM 생산관리를 하다가 98년 자카르타 폭동과 전세계를 강타한 경제위기의 한파를 온몸으로 맞고 있던 나를 아무런 대안도 없이 아웃시켜 버렸고 내 랩톱 컴퓨터마저 빼앗아 가 버렸죠. 그런 일들을 당하고도 아직 살아 남아 있는 걸 보면 사람이 쉽게 죽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지만 그렇다고 이번엔 내가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한 메이의 등에 칼을 꼽는 짓은 절대 할 수 없었어요.

 

일단…, 이사부터 하자.”

 

사무실이 있던 끌라빠가딩 인근의 한 아파트에 방 두 개짜리 유닛을 임대해 메이와 아이들을 급히 이사시켰습니다. 인력부족으로 매출이 급격한 하향곡선을 긋고 있던 당시, 해외에서 동시에 대학을 다니는 있던 내 두 아이들의 학비와 생활비로 쩔쩔 매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메이에게 아파트를 얻어 준다는 건 분명 무리가 되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자카르타 폭동 이후 일반 주택에 살던 대부분의 교민들이 안전을 이유로 대거 아파트로 입주해 들어간 것처럼 메이의 안전을 담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겹겹이 보안장치가 되어 있는 셈인 아파트로 이사시키는 것 이상의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측면에서 최선의 투자이기도 했습니다. 예전 직원들이 금전사고로 모두 빠져나가 버리고 신입사원들은 자리를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메이마저 자신이나 아이들 신변에 발생하는 문제로 빠져 버리게 된다면 내 회사의 소매부분은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셈이었어요. 메이를 지켜야만 내 회사가 살고 내 아이들이 싱가폴과 호주에서 대학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보람도 있었습니다. 그 좁디좁은 방 2칸짜리 아파트에서 메이와 아이들은 폴짝폴짝 뛰며 너무 좋아했던 거에요. 꼬스에서 가져온 메이의 짐은 그 아파트의 방 한 칸의 한쪽 구석도 제대로 채우지 못할 만큼 빈약하기 짝이 없었으니 센티옹의 10평도 안되는 부모 집에서 10명도 넘는 가족들이 서로 얹혀져 살기도 했던 메이와 아이들에겐 처음으로 가져보는 축구장 같은 넓은 공간이었던 겁니다.

 

이게 말이죠. 기분이 꼭…, 전에 끼스타 수술받기 직전 같아요.”

 

메이가 한 이 말의 뜻을 알고 난 허허 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몇 년 전 메이가 자궁에서 자라난 큰 물혹 때문에 나와 내 오랜 파트너 릴리가 수술비용을 대 절제수술을 해주었는데 한번도 받아 본 적 없는 큰 수술을 앞두고 생사의 기로에 섰다는 극도의 긴장감도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TV의 시네트론에서만 봐왔던 여주인공이 큰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받던 장면들을 직접 경험해 보게 되었다는 생각에 이거 너무 멋있잖아? 아싸~~!’ 하며 쾌재를 불렀다는 거였어요. 물론 그 후 그 수술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고 또 수술한 자리가 오랫동안 장난 아니게 아프다는 사실을 몸소 철저히 경험하고서는 평생 다시는 수술받는 일 없이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말이죠.

 

그 축구장 같은 아파트도 메이가 알뜰히 저축한 돈으로 가구를 하나 둘 사들이고 내 아내도 가구를 바꿀 때마다 우리가 쓰던 아직도 쓸만한 중고가구들을 메이에게 보내 줘 나중엔 꽉 차게 되었지만 메이는 자신이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실감하지 못하는 듯 들떠 있었고 메이의 부모가 사는 센티옹 동네에서는 메이가 드디어 크게 성공했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렇게 좋아해 주니 나로선 비용에 쪼달렸지만 한편으론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었어요.

 

그 다음에 취한 조치는 당분간 메이가 오토바이 타고 나가는 것을 금지한 것이었습니다. 에코까지 해고한 상황에서 위키는 더 이상 내 회사에 눈과 귀를 가지고 있지 못했어요. 따라서 그날 스티아부디에서의 공격이 정말 위키가 사주한 짓이라면 그들이 거기서 잠복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부터 메이의 뒤를 미행했다고 봐야 했어요. 회사의 위치는 메이의 꼬스와 마찬가지로 모두에게 공개된 장소였으니까요.

 

사실 에도가 형편없이 구타당해 어딘가 뼈가 부러진 듯한 모습으로 회사를 떠났던 날부터 난 메이에게 사무실을 출입할 때마다 주차장 주변을 주의깊게 살펴 보도록 주의를 주곤 했어요. 그날 에도가 우리를 떠나면서 어쩌면 차제에 자기를 따라붙던 해결사들, 또는 위키로부터도 도주를 시도했을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당시 그는 바로 전날 내가 주었던 월급과 가불한 돈을 어쩌면 아직 뺏기지 않고 가지고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고 난 차라리 그가 그 돈으로 파푸아든 플로레스든 어딘가 멀리 도망가 그를 따라붙던 악당들로부터도 해방되었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정말 에도가 도주에 성공했다면 에도의 행방을 수배할 곳이라곤 데뽁과 찔레둑의 두 엄마, 그리고 내 사무실 뿐이었어요. 난 그들이 메이나 다른 직원들을 회사 앞에서부터 미행하거나 중간에 따라잡아 윽박지르며 에도의 행방을 캐묻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거에요.

 

그런데 근 반년이 지난 후에 그런 비슷한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차량으로 출발해 우선 톨을 타고 시내로 나간다면 십중팔구 오토바이로 따라붙을 해결사들은 톨로 진입할 수 없을 터였어요. 간단히 미행을 떼어 낼 수도 있고 각 목적지마다 제대로 차를 주차시킨 후 주차장에서 거래선까지 메이와 동행하며 빈틈없이 호위하는 것도 가능했죠. 단지 문제는 에코 이후 따로 운전사를 채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개의 경우 내가 메이의 운전사와 경호원이 되어 주어야 했다는 점이었어요. 입장과 역할이 좀 뒤바뀐 셈이었지만 어느 정도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그런 상황이 꽤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꼬리에 꼬리를 잇던 사건들로 인해 크게 위축되어 끝없이 추락하고 있던 우리 사업상황은 그 과정에서 조금씩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어요. 어렵게나마 모든 비용들을 지불할 수 있었고 내 아이들이 마침내 대학 졸업식장에 들어서고 또 직장을 찾게 될 때까지 그럭저럭 학비와 생활비를 송금할 수 있었던 거에요.

 

그동안 너무 우리 일 자체에 치어 보이지 않다가 그렇게 와신상담하며 노력하던 와중에 하나 둘 눈에 보이게 되는 것들이 있었어요.

 

내 사무실 앞 10시 방향엔 중고 오토바이를 할부로 팔던 회사가 있었어요. 내가 입주한 후에 문을 열었던 그 회사는 한 때 천막으로 오토바이 임시 전시장을 그 앞 주차장에 만들어 놓을 정도로 적극적인 영업을 했고 영업사원들의 오토바이 수십대가 그 앞에 주차되어 있곤 했었죠. 그러다가 어느 날 그 전시장이 없어지고, 영업사원들의 오토바이도 눈에 띄게 줄어 들더니 내가 에도와 무하마드가 치고 다니던 사고에 시달리던 즈음엔 그 회사도 결국 문을 닫아 걸고 말았어요. 두 말할 나위도 없이 할부로 판 오토바이의 수금을 영업사원들이 제대로 해오지 못했거나 수금은 어느 정도 제대로 되었더라도 회사에 제대로 입금되지 않았던 거였겠죠.

 

내 사무실 왼쪽 옆으로는 해피 밥퍼센터가 있고 그 옆으로 기네스 맥주를 유흥업소에 공급하는 현지회사가 있었어요. 그곳도 사무실 안에 맥주 박스들을 그득그득 쌓아 놓고 여러 영업사원들이 활발하게 배달과 수금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얼마 후 루꼬 현관 문 안으로 보이던 맥주 재고들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분주하게 오가던 영업사원들도 거의 다 사라져 버렸어요. 고정 판로를 가진 특정 유명 브랜드의 대리점이 쉽게 망할 리 없는데 그곳도 영업사원들이 필드에서 심한 장난을 쳤을 것이란 심증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같은 문제가 보이스피싱의 주범으로 오해했던 우리 경쟁업체에서도 벌어졌어요. 우리와 필드에서 자주 마주치던 그쪽 영업사원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모두 금전사고를 내고 도망첬다는 얘기를 나중에 거래선들에게서 듣게 되었죠. 우리가 겪던 같은 문제를 같은 업종에서 동일한 방법으로 하고 있던 경쟁사에서도 똑같이 겪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나중에 직원들을 모두 내보낸 후 동서가 조직한 팀과 일을 하더니 사별한 동서가 새장가를 가며 낙향하자 소매부분을 완전히 축소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기본적으로 할부판매방식에 문제가 있었고 그 결재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거에요. 그래서 그런 위험성 때문에 그 업계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적고 그나마 소극적이니 후발주자인 우리가 그런 리스크를 안고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것만으로 불과 몇 개월만에 10년도 더된 경쟁업체를 제치고 단번에 업계 선두로 짓쳐 나갈 수 있었던 것이죠. 아직도 음성적인 부분들이 곳곳에 산재하고 송금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필드에서 영업직원들은 본사의 감독이 미치지 못하는 틈을 타고 제품과 현금을 손에 쥐고서 온갖 장난을 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셈이고 웬만한 관리능력을 가지고서는 그 관리시스템의 틈을 파고 드는 영업직원들의 장난을 방지하거나 예방할 수 없는 거였어요.

 

이건 대기업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지금이야 ATM을 통해 간단히 결재할 수 있지만 그런 시스템이 구동되기 전엔 전력공사에 해당하는 PLN, 한국의 KT&T에 해당하는 뗄꼼(Telkom) 직원들이나 이를 사칭하는 놈들이 각 가정과 회사를 방문해 가짜 영수증을 끊어주고 월간사용료를 받아가 도망가 버리거나 입을 씻어버리는 경우를 인도네시아에 15년쯤 넘게 사신 분들은 누구나 한 두 번 경험했을 것입니다. 우린 우리 직원들이 친 사고를 스스로 감수해야 했지만 PLN이나 Telkom 에서는 오히려 전기를 끊겠다, 전화를 끊게다고 위협하면서 사기를 당한 가정이나 회사가 울며 겨자먹기로 다시 결재를 하도록 강요했지요. 인터넷 서비스 회사나 케이블 TV 회사에서는 요즘도 이런 장난을 치고 다니는 영업직원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우리 업계의 마카리조(Makarizo)나 로레알(L’Oreal)에서도 이런 사고들이 벌어졌던 것은 앞서도 이미 기술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사고치고 아예 도망갈 게 아니라면 사고를 수습하려 애쓰는 직원들도 있기 마련이죠.  우리가 공급한 제품들의 창고 재고가 맞지 않아 마카리조 본사직원이 쁠로가둥(Pulo Gadung) 창고실사를 시작하려 하자 창고 매니저가 급히 우리에게 적잖은 물량을 몰래 주문해 오기도 했어요. 현금결재조건이었으니 우리로서는 예상치 않았던 과외의 매출을 올린 게 되었지만 직원이 200명 가까이 되는 마카리조 같은 회사에서 어떻게 그 정도 물량이 빌 때까지 창고관리가 방치되었는지 의아해 했던 적이 있습니다. 십중팔구 영업직원들이 요구하는 데로 물건 내주고 해당 증빙을 제대로 챙기지 않았거나 문제가 생길 걸 알면서도 당장 쥐어주는 커미션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었겠지만요.

 

하지만 가장 큰 사고는 로레알에서 벌어졌습니다. 회사가 큰 만큼 사고규모도 컸던 거죠. 그리고 그 사고의 중심에 위키가 있었습니다.

 

사실 로레알은 이미 크고 작은 사고들이 숱하게도 벌어지고 있었지만 브랜드의 지명도나 회사의 규모, 그리고 활발한 세미나와 각종 미디어를 통한 공격적인 광고에 뭍혀 대충 뭉개고 가는 분위기였어요. 우리로서도 우리가 로레알에 공급한 제품들이 반둥이나 족자 등에서 대량으로 유출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미 큰 부담이었는데 새로 바뀐 20대 초반의 구매담당자가 일을 힘들게 해서 민원인들의 돈을 뜯어내는 현지 공무원들의 행태를 닮아 자꾸 거래조건을 비틀면서 이미 발주되어 공급준비가 된 적잖은 제품의 구매를 자꾸 미룬 것이 현실적인 손실로 이어졌어요. 공급선으로부터 커미션을 챙기려는 담당직원들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 부담이 점점 커지면서 우린 거래를 중단할 수 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로레알은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큰 기업이었고 대부분의 우리 거래선들도 로레알로부터 매트릭스(Metrix)나 바이오라지(Biolarge) 등의 제품을 구매하고 있었으므로 거래를 끊은 후에도 로레알 얘기는 항상 들려왔습니다.

 

2013년에 막 들어섰을 때였어요. 바로 얼마 전까지도 위키는 여전히 온갖 이유를 갖다 대며 미팅을 요청하는 등 메이를 뒤쫒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한동안 쥐죽은 듯 잠잠해졌는데 얼마 후 그의 페이스북에서 위키는 대폭발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위키는 날 페이스북 친구로 받아줄 리 없었지만 어찌어찌 메이와는 친구가 되어 있었던 모양이었고 메이가 보여준 그의 페이스북에서 위키는 로레알에 악담을 퍼부으며 저주하고 있었어요.

 

얘가 드디어 미쳤어요.”

 

메이도 그렇게 말했지만 위키가 그렇게 폭주하는 이유를 아직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그가 악담을 퍼붓는 사람 중 피르만(Firman)이라는 친구는 루디하디수와르노 미용실(Rudy Hadiwuwardno Salon) 본점의 경험많은 미용사였는데 그는 우리 오랜 거래선이기도 했어요. 얼마 후 피르만을 방문하고 돌아온 메이의 보고를 들으며 위키가 에도와 무하마드 사건의 배후였다는 그간의 추론을 나는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생겨먹은 바에 따른 똑 같은 행동을 반복하기 마련입니다.

 

피르만은 이미 미용실을 그만 두고 매트릭스에 들어갔어요. 지금 하는 일이 뭔지 알아요? 피르만이 위키 자리에 들어간 거에요. 그러니 위키가 저 난리를 치며 로레알이랑 피르만을 욕하는 거라구요.”

 

그해 11월 로레알에서 매니저와 수퍼바이저 여러 명을 포함해 영업직원과 창고직원 등 20여명이 단칼에 해고당하는 대형사고가 났는데 위키가 그 주범이었다는 거에요. 위키는 내 회사에서 했던 것과 똑 같은 방법으로 로레알에서 영업직원들을 포섭해 돈과 제품을 빼돌렸는데 회사규모가 큰 만큼 그 사고규모도 터무니없이 컸습니다. 심지어 거래선들에는 로레알 로고가 선명한 박스트럭이 가서 제품을 배달했고 제대로 된 양식의 영수증까지 발행되었는데 본사에서는 모두 모르는 일이었어요. 대부분의 영업직원들을 비롯해 창고, 경리, 배달 부문의 핵심직원들까지 포섭되어 조직적인 횡령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다국적기업인 로레알에서 말이죠!!

 

로레알에서는 이미 낌새를 채고 오랫동안 내사를 하며 대략 사건의 윤곽을 잡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는 11월에 정기 수퍼바이져 미팅을 위해 전국의 매니저들과 수퍼바이져들을 자카르타로 불러 들였는데 당연히 위키도 본사에서 보내준 비행기표를 이용해 뽄띠아낙으로부터 날아와 본사에서 예약해 놓은 호텔에 묶습니다. 그러나 그건 본사 측에서 충분한 계산 끝에 준비해 놓은 함정이었어요. 본사에서는 로레알 조직 곳곳에 박혀 있던 위키의 부하들이 그날 밤 위키를 만나 그간 빼돌려 놓은 물건과 돈이 오가는 거래를 할 수 있도록 일부러 하룻밤 시간을 주었던 거에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 로레알 본사의 회의장에서 모든 매니저들과 수퍼바이져들이 모인 자리에서 단상 위로 불려 올려진 위키는 가지고 온 가방을 뒤집어 깔 것을 요구받습니다. 위키가 그날 아침 호텔 방에 놓고 왔던 짐가방도 어느 새 회의장에 와 있었고요. 가장 중요한 건 정복을 입은 경찰관도 한 명 그 자리에 참석해 있었다는 겁니다. 그냥 그렇게 와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압박감을 주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위키의 가방들을 털어 엎자 온갖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위키가 가지고 있을 리 없는 제품들 천지였어요. 위키는 매트릭스 담당인데 그의 가방에서는 로레알, 바이오라지는 물론 고가의 케라스타세(Kerastase) 제품들도 다수 나왔고 심지어 경쟁사 제품들까지 쏟아져 나왔어요.

 

그중 위키를 꼼짝 못하게 만든 것은 여러 장의 해외여행 쿠폰들이었습니다. 78일의 홍콩여행 패키지 쿠폰은 기포함된 항공료와 호텔비만 해도 한화로 수백만원이 넘는 것이었는데 우수 고객미용실들에게 포인트상품으로 주어지는 선물이었죠. 그게 신청도 하지 않은 위키가 그것도 한 장도 아닌 여러 장을 가방 속에 쑤셔 넣어 가지고 있다는 건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위키는 마치 다안모곳에서 예기치 않게 메이를 만나 극도로 당황해 횡설수설했던 것처럼 로레알 회의장에서도 진땀을 흘리며 버벅거렸는데 로레알은 쉽게 넘어가 주지 않았습니다. 위키의 가방에서 나온 물건들의 출처를 소명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루된 20여명이 그 자리에서 퇴직금과 모든 베네핏을 포기하면서 옷을 벗고 말았어요. 위키는 아주 좋지 않은 모양으로 로레알/매트릭스에서 쫒겨 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월급도 적지 않고 회사에서 차량도 나오고 수당도 넉넉히 나왔을 텐데 위키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정말 이해가 안되요.”

 

그건 위키가 전에도 한 번 해봤던 일이라서 이번에도 쉽게 할 수 있었던 거에요. 이미 경험이 있었으니 물건과 돈을 빼돌릴 틈새가 쉽게 엿보였던 것입니다. 지론이지만 직원들이 부패하고 사고를 치는 것은 꼭 그 사람이 특별히 나쁜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단지 그럴 수 있는 위치에서 그럴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관리자의 시야가 좁아 그런 상황을 방치해 둔다면 사고는 반드시 일어납니다.

 

로레알은 보다 철저히 준비했고 보다 단호한 조치를 했지만 문제가 너무 커지는 것은 원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해고직원들로부터 회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회수했지만 그간 저지른 사고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받아 내진 못했고 그렇다고 위키와 같은 주범조차 경찰에 넘기지 않았어요. 그건 우리와 같은 이유에서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위키를 고소해 감옥에 처넣기 위해 조서를 꾸미고 소송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영업비밀과 거래선 내역, 수익구조, 제품의 조달경로 등을 경찰이나 법원에 까발린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죠. 만약 그걸 강행한다면 위키가 저지른 사건보다 더욱 심각한 파국이 조만간 예기치 않은 곳에서 더욱 치명적인 발톱을 곧추세우고 덮쳐 올지도 모를 일이었죠. 로레알은 위키 일당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대신 사기를 당한 거래선들 대부분에게 절차상 꼬투리를 잡아 다시 결재하도록 강요했어요. 인도네시아도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대기업은 항상 갑이지요.

 

일이 법정까지 가지 않고 그렇게 끝나고 만 건 위키 입장에서는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을 텐데 이 친구는 전혀 고마운 줄을 몰랐어요. 그는 페이스북에 직원모집 광고를 내면서 마치 자신이 전국적 규모의 조직을 자기고 있는 듯 기염을 토했지만 그건 보나마나 뻔한 블러핑이었어요. 그가 아직 모종의 음성적 경로로 이런저런 제품들을 수배할 수 있었다 치더라도 전엔 매트릭스 제품을 기본으로 깔고 가는 것이었는데 이제 그 기본상품들이 빠져버린 상황에서 위키의 운신의 폭은 거의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의 페이스북은 그의 친구들만 보는 것이죠. 정말 직원을 구하려 한다면 일간지나 해당 인터넷 웹사이트에 공지문을 게재했어야 할 텐데 그는 그렇게 자신이 여전히 건재하고 이미 재기한 것처럼 친구들에게 보이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난 안도의 한숨을 쉬었어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점에서 갑자기 처참하게 몰락해 버린 위키로서는 당연히 절치부심하겠지만 최소한 그 와중에서 더 이상 메이를 스토킹하며 따라 붙을 여지는 당분간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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