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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직원 활약사

영업직원 활약사 (19)

beautician 2013. 5. 3. 03:40

 

 

2009년 초 BSD에서 일어났던 사건으로 위키가 교도소 신세를 지는 사이 그의 누나와 경찰 경위쯤 되는 그의 삼촌이 경찰서에 증거품으로 잡혀 있던 우리 제품들을 뺴돌려 팔아 먹는 등 파렴치한 행동을 저질렀었죠. 당시 위키 자신도 피해망상에 젖어 SMS와 전화로 메이를 공격해 왔던 전력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위키의 결백을 철썩같이 믿었던 이유는 그가 담당했던 거래선의 수금과 판매현황이, 사고 직전 그가 보고한 내용과 한 치의 차이도 없이 일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건 메이도 잘 못하는 일이었고 대개의 경우 직원들은 단 며칠을 일하더라도 반드시 어딘가에 사고를 쳐놓곤 했거든요. 또한 그는 능력있는 영업직원이기도 했어요. 그가 BSD에서 체포될 때까지 내 회사에서 일한 것은 불과 6개월 정도였지만 그의 판매액은 에도의 평균 연간 판매액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거든요.

 

그런 배경이 있었으므로 위키가 우리 직원들의 사건사고에 연루되어 있으리란 생각은 아예 해보지도 않았던 거죠. 수감생활을 통해 사람이 더욱 망가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게다가 위키가 교도소에 갈 당시엔 이완이나 띠따같이 오래된 멤버들이 아직 우리와 함께 일하던 시절이었고 복역을 마치고 우리 회사에 나타난 건 달랑 이틀이었는데 메이와 에도를 제외하곤 직원들이 모두 다른 사람들로 바뀐 상태였어요, 그나마 하루 종일도 아니라 하루는 환영회를 겸한 저녁식사 자리, 또 다른 하루는 그로부터 며칠 후 출소 후 첫출근을 한 몇 시간만에 조퇴한 것이 다였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위키가 우리 문제에 연루될 만한 개연성이나 시간적 여유도 없어 보였습니다.

 

위키의 환영회가 2009 9월의 일이었으니 다안모곳에서 메이가 위키와 마주친 것은 그로부터 1년 반쯤 지난 후의 일이었어요. 우리 기억 속에서 거의 지워지고 있던 상황에서 메이와 마주쳐 황망해 하며 두서없이 꺼냈던 얘기들 속에서 그는 에도와 무하마드가 저지른 사고들과 도주사실을 소상히 알고 있었고 내가 학군 선후배들에게조차 얘기하지 않았던 내 아반자차량 도난사건까지도 언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풍문으로 들어 아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마치 자신이 직접 목격이라도 한 것 같은 묘사였다는데 그건 그가 최근까지도 내 회사 안에 자신의 눈과 귀를 가지고 있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고 보면 에코가 그만 두고 나간 게 마침 바로 한 달 전의 일이었죠.

 

그때 그렇게 우리에게서 떠난 후 바로 로레알에 입사해서 매트릭스에서 일 하기 시작했다는 거에요. 땅거랑이나 다안모곳이면 우리가 거의 매일 다니던 곳인데 1년 반이 다 되도록 한번도 마주치지 않았다는 게 신기해요.”

 

우연히 마주치지 않았던 게 아니라 우리 일정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던 위키가 철저히 피해 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의 마지막 눈과 귀였던 에코를 해고하고 나자 더 이상 우리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던 위키가 급기야 무방비상태로 거래선에서 우리와 마주치는 상황이 벌어졌던 거죠.

 

그날 메이가 전한 위키의 횡설수설을 정리하자면 이런 얘기였어요.

 

우선 위키는 당시 매트릭스의 수퍼바이져였습니다. 수퍼바이저란 광역 영업권을 주관하는 매니저 밑에서 소구역들 여러 개를 담당하는 사람이었으니 말하자면 영업본부의 일개 팀장격이라 할 수 있었어요.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큰 미용관련 다국적기업에 입사한지 2년차였는데 놀라운 승승장구였습니다.

 

그런데 내 회사와 위키와의 인연은 그 날 그렇게 그가 조퇴한 후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 후에도 무하마드와 반둥에서 온 여직원들을 몇 번 더 만났다는 얘기를 자기 입으로 메이에게 했던 거에요. 그건 무하다드가 도망간 것을 어떻게 알았냐는 메이의 질문에 대답하면서였는데 오랜 만에 돌아온 위키에게 현장을 안내하도록 붙여 주었던 무하다드가 위키의 손가방에 있던 돈에 몰래 손을 댔던 것이 그가 중간에 조퇴한다며 회사를 떠났던 이유라는 거였어요.

 

물론, 거기서 난 고개를 갸우뚱 했습니다. 물론 무하마드가 위키에 돈에 손을 댔다는 것은 그게 사실이든 거짓이든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어요. 무하마드는 원래 그런 놈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문제가 있었다면 위키는 나에게 보고하는 게 정상이었고 내가 판단하고 조치하거나 보상해 주도록 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위키는 조퇴를 택했습니다. 보고는 그렇게 되었지만 실제로는 위키가 무하마드를 어디론가 끌고 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경찰이 교통위반으로 차를 멈춰 세워도 내가 아는 위키는 자기가 미트라 뽈리시(Mitra Polisi)라며 경찰에게 무대포로 엉겨붙던 놈이었어요. 무하마드가 자기 돈에 손을 댔는데 그렇게 얌전히 조퇴나 할 인간은 아니었죠.

 

그리고 그는 그 후에도 몇 번인가 무하마드가 띠아와 함께 밤늦게 자기 숙소로 찾아오곤 했다고 말했답니다. 그건 무하마드가 그의 돈을 훔친 사건이 어떤 식으로든 매듭이 지어졌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두 사람의 관계가 그 후 오랫동안 원만히 지속될 리 없는 일이었죠. 최소한 무하마드는 자신이 훔친 돈을 할부로 갚으러 위키를 정기적으로 찾아가곤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 대목에서 띠아라는 이름이 언급되었다는 사실이 신빙성을 뒷받침 했어요. 인터넷 논객들이나 소설가들이 필명을 쓰고 연예인들이 흔히 예명을 쓰는 것처럼 당시 우리 직원들 사이에서는 자기 본명 대신 특별한 별명을 명함에 찍어 다니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 있었어요.  겉멋부터 든 것이죠. 사실 메이도 그게 자기 본명이 아닙니다. 고등학교를 막 마친 십대 후반, 아리온(Arion) 몰의 한 핸드폰 가게에 처음 취직했던 당시 거기서도 판매에 두각을 나타내자 화교인 가게 주인이 풍수하는 사람에게 물어 운이 좋다는 이름을 지어와 붙여 준 것이 메이였고 그 후 줄곧 사용해 왔던 거에요. 에도 역시 이스칸다르 줄카르나인 (Iskandar Zulkarnaine) 이라는 꽤 복잡한 이슬람식 본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하마드는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신분 자체가 모두 거짓이었고요. 띠아(Tya)는 반둥에서 온 두 명의 아가씨 중 엔티(Enti)가 사용하던 별명이었어요. 헤르니는 하니(Hanni)라는 이름을 명함에 찍어 다녔고요. 위키가 엔티를 그 후 만나지 않았다면 띠아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리 없었습니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 했던 또 다른 이유는 그 팀의 구성이었어요. 난 처음부터 어린 엔티가 최고 위험인물인 무하마드를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므로 엔티와 무하마드를 절대 한 팀으로 엮지 않았어요. 무하마드는 언제나 헤르니의 담당이었고 엔티는 늘 에도와 함께 나갔죠. 그래서 위키의 그 말은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 무하마드와 엔티가 위키의 숙소에 나타났다는 얘기는 우선 이 친구들이 보고하지도 않은 행선지를 몰래 다녀오곤 했다는 의미였어요. 또한 사무실을 출발한 영업팀들이 회사 시야를 벗어나면 자기들 편한대로 팀 편성을 멋대로 다시 바꾸어 다녔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에도와 무하마드가 회사에서 온갖 금전사고를 다 치고 있던 당시 무하마드가 위키를 자주 만나고 있었다면 에도 역시 위키를 방문하고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했으므로 에도와 한 팀이 되어 따라 오던 엔티를 위키가 헤르니와 착각했던 것일 수도 있었죠. 난 그 마지막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그 놈들은 왜 나 몰래 위키를 방문하면서 그와 모종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돈 버는 일에만 집중해도 시원찮을 시간에 직원들이 사고를 치기 시작하면서 지난 1년여간 난 셜록홈즈나 명탐정 코난 계통으로 엄청나게 머리를 돌려야 했었는데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하던 시점에서 예기치 않게 얻게 된 정보들을 열쇠삼아 다시 머리에 쥐가 나도록 생각을 정리하고 사건들을 재배열하며 수많은 경우의 수들을 가정하여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고 사건들의 앞뒤를 맟춰야 했습니다.

 

위키에게서 얻은 정보는 고작 그게 다였어요. 그나마 메이와 갑자기 마주친 당황스런 상황에 황망히 얘기하다 보니 하지 않아도 될 얘기까지 꺼냈던 것인데 그런 상황이 또 다시 벌어질 것을 기대하기는 힘든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날 이후 위키는 또 다시 어떤 방법으로 우리 동선을 파악했는지 다시는 마주치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므로 난 위키와 메이의 그날 대화에서 얻은 한 줌도 안되는 정보만을 가공, 처리해서 숨은 그림찿기의 빠진 퍼즐들을 끼워 맞춰야만 했습니다. 그건 절대 간단한 일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않았어요. 꽤 상당한 시간을 소비한 끝에 나는 사건의 대략을 그럭저럭 재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위키는 출소 환영회 후 하루 회사에 출근했다가 반나절만에 조퇴해 버립니다. 내가 기억하는 당시의 조퇴사유는 검찰에 증거품으로 붙잡혀 있던 오토바이를 찾으러 간다는 거였어요. 실제로 그는 나중에 자기 명의로 오토바이를 사 주면 회사에 다시 출근하겠다는, 내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불리한 조건을 메이를 통해 들이 밀면서 나와의 인연을 끝내고 맙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조퇴사유가 무하마드의 나쁜 손버릇 때문이었다는 것이죠. 돈을 도난당해 조퇴를 했다? 이건 말이 되는 문장이 아닙니다.  돈을 도난당하자 열을 받아 회사도 때려치우고 무하마드에게 응분의 보복을 했다는 게 맞는 문장이죠. 그날 위키가 그 돈을 되돌려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무하마드에게 모종의 방법으로 확실히 보복했거나 충분히 겁먹을 정도로 위협한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무슨 수로요? 내가 경찰에게 신고하겠다며 위협해도 아슬아슬하게마나 임기응변으로 그때그때를 모면하며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던 무하마드를요? 작은 키에 몸무게 100kgs이 넘던 비둔한 위키가 키가 180cm도 넘고 인도네시아 사회 밑바닥에서 닳을대로 닳은 무하마드를 무슨 수로 위협했던 걸까요?

 

위협했다고 단정짓는 이유는 그동안 회사에서 벌어졌던 사건 전반의 배경에 늘 위협이란 단어가 상주하고 있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에도가 누군가에게 위협받지 않았다면 그토록 절박함 에 시달리다 못해 회사 돈을 빼돌리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벤쫑들에게 몸을 팔고 자애로왔던 찔레둑 엄마의 집문서까지 막무가내로 빼돌리려 하지 않았겠죠. 내가 아는 한 그가 실제로 최소한 세 차례 이상 심한 구타를 당했다는 사실도 위협이 상존했음을 증명하고 있었어요. 반둥에서 온 두 아가씨들이 그토록 간단히 나를 배신하고 에도와 무하마드 편에 붙어서 말도 안되는 거짓말로 메이를 모함하며 에도와 무하마드의 사건들을 은폐하려 했던 배후에도 그녀들을 겁먹게 했던 모종의 위협이 있을 터였습니다. 그 모든 것을 목도했을 에코가 끝내 입을 닫고서 회사에서 해고당하던 날까지 나와 메이의 행적과 행선지를 위키에게 몰래 보고했던 것도 흔한 당근과 채찍의 원칙처럼 금전적 보상 말고도 수틀리면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감도 형성되어 있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그 위협은 도대체 어떤 형태였고 그 위협의 수단을 위키는 어디서 어떻게 손에 넣었던 것일까요?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던 사람이 갑자기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 나타났으니 그 대목에서 그의 수감생활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BSD 경찰서 유치장에 있을 당시에도 위키는 비대한 몸 때문에 엄청난 땀을 흘렸고 남들보다 몇 배의 물을 섭취해야만 했어요. 그러나 우리가 물을 1리터짜리로 열 병을 가져다 줘도 유치장 안의 위키 손엔 그 중 한 병도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인도네시아의 경찰, 사법부, 교정당국에 짙게 드리워져 있는 부패의 블랙홀이 그 대부분을 삼켜 버리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런 상황은 교도소에서 더욱 심했겠죠. 교도소 안에서 위키가 최소한의 권익을 누리기 위해 교도관의 은행계좌에 매월 넣어달라는 돈은 사회에서 일반적 생활비의 몇 배를 쉽게 뛰어 넘었습니다. 더욱이 그는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당뇨가 악화되지 않도록 약도 정기적으로 복용해야만 했어요.

 

물론 힘있고 돈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옥살이 하는 경우도 드물고 설령 감방에 떨어지더라도 보통의 사법제도가 바로 선 나라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편의와 혜택을 돈으로 사곤 합니다. 그래서 교도소 내에서도 마약이 손쉽게 거래되고 돈을 받은 교도관들은 밤 늦은 시각에 창녀들을 감방 안에 들여 보내 주는가 하면 나름대로 사회에서 목에 힘주던 사람들은 징역형이 확정된 후에도 놀라울 정도로 자유롭게 외출 외박을 나갑니다. 몇 년 전 인도네시아를 떠들썩하게 했던 거대한 탈세사건의 중심에 서있던 가유스 탐부난이란 세무공무원은 데뽁(Depok)의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할 시각에 멀리 발리에서 벌어진 테니스대회 관중석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것이 기자에게 사진찍히는 해프닝까지 벌어졌어요. 그러니 힘있고 돈있으면 몸 아픈 것도 교도소를 빠져 나갈 수 있는 또다른 핑계거리가 될 뿐이지요.

 

그러나 돈없는 사람들의 경우라면 몸이 아프다는 사실이 돈을 뜯기는 또 다른 이유가 되는데 때로는 치명적인 파국으로 치닫기도 합니다. 마약복용 혐의로 교도소에 떨어졌던 메이의 남동생도 금단증상의 후유증으로 급성 간경화가 진행되었을 때 메이의 가족들은 교도관들이 치료를 조건으로 요구하는 거액의 돈을 마련할 길이 없었고 결국 남동생은 얼마 지나지 않아 17살의 어리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어요. 그런 비슷한 경우를 나도 그 후에 여러 번 보고 들었습니다.

 

위키 역시 그런 상황으로 몰릴 충분한 여지가 있었어요. 매번 요구하는 터무니 없는 금액을 우리가 다 지불해 줄 수 없었던 상황에서 그의 누나나 경찰관인 삼촌은 당시 증거품으로 압수되었던 우리 제품들을 빼돌려 팔아 먹고 있었던 중이었으므로 비록 그 중 일부가 위키의 영치금으로 사용되었다 하더라도 금전적으로 괄목할 만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위키는 교도소에서 성공적으로 살아 남았고 나중엔 교도소 안에서 죄수들을 상대로 핸드폰 요금 충전사업을 하기까지 했어요. 그 생존력엔 절로 감탄할 수 밖에 없었지만 미트라 뽈리시를 부르짖던 다혈질에 당뇨까지 있는 비둔한 화교 청년이 현지 쁘레만들로 가득찬 교도소 안에서 스스로의 생존을 방어하고 자신의 위치를 나름대로 확보하기 위해선 나름대로 모종의 결단과 노력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 일이었죠. 그러나 위키는 상납할 돈이 없었으므로 그에 상응할 만한 어떤 약속이나 담보를 걸고 누군가와 딜을 했을 텐데 난 그때 그가 교도관이나 영향력 있는 거물죄수에게 줄을 선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교도관이었을 확률이 더 높죠. 핸드폰을 죄수들에게 빌려주거나 요금을 충전해 주며 그 가치 수십 배 이상의 이익을 챙기는 것은 교도관들의 이권사업 중 하나였고 위키가 요금충전사업을 했다는 것은 교도관으로부터 그 일을 불하받아 권리금을 치르며 하고있었던 것이라 이해할 수 있었어요. 게다가 그는 당뇨치료를 위한 약도 필요했고 그것 역시 교도관이 관할하는 부분이었을테니 위키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그의 천부적인 영업능력을 발휘해 교도관들과 딜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리한 위키가 교도소 안의 거물들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줄을 섰을 것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삼촌이 경찰이라는 사실을 과시하고 자신은 미트라 뽈리시라며 교통경찰들에게조차 딱딱거리며 대들었지만 또 한편으론 자신의 부모가 저질렀다는 대형 사기사건에 대해서 넌지시 흘리며 자신조차 채권자들에게 쫒겨다닌다는 사실을 하소연하면서도 만만찮은 가문출신임을 은연중 노출시켰고 또 한편으론 자신을 투철한 자립심으로 역경을 헤쳐 나가는 모습으로 직원들에게 보여주려 했던 그였어요. 그런 그의 처지와 교도관과의 관계 같은 것들이 교도소 내에서 어느 정도 통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는 교도관들 등 뒤에서 죄수들과도 모종의 거래를 했던 것이 틀림없고 그래서 그가 출소할 당시, 아니 출소한 후까지도 그 거래가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교도소 안팎에서 범죄자들의 도움을 받았던 것이고 물론 분명 어떤 형태로든 대가가 지불되었겠죠. 위키가 우리 직원들을 위협했던 수단이 교도관들에게 나왔을 리 없고 에도를 따라붙은 두 명의 깡패가 교도관들의 부하일 리 없으니 말이죠. 그 구체적인 거래의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위키는 교도소 안에서 스스로를 방어하고, 나아가 과시하려는 시도를 하던 중 범죄자들 또는 범죄조직의 어떤 거물과 일정한 관계를 맺게 된 것이라고 감히 추측합니다.

 

출소 후 내 회사에서 반나절간의 근무 도중 벌어졌다는 무하마드의 절도사건이 위키가 완전히 지어낸 얘기가 아니라 어느 정도 사실이라면 그건 애당초 위키가 그렇게 계획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가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영민한 머리를 가졌던 위키가 무하마드를 통해 내 회사에서 자신의 음성적 수익모델을 그려내는 계기가 되었을 수는 있었겠죠. 무하마드에게 겁을 주려 교도소에서 얻은 줄을 한번 당겨 본 결과에 기겁을 한 무하마드가 술술 뱉어내던 내 회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위키는 쉽게 돈을 해 먹을 방법을 착안했던 모양이고 위키는 아마도 일종의 조폭이라고 추정되는, 그가 잡은 줄의 후원을 받아 보다 조직적으로 우리 직원들을 위협하고 포섭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위키와 내가 다시 만난 것은 2010년이지만 위의 2007년 주민증에서부터 뭔가 사기성이 엿보입니다.

직업란에 위키는 자기 직업이 Guru/Dosen 즉 교사/교수라고 표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무하마드가 위키 돈에 손을 댔다는 얘기를 내가 믿는 이유는 그게 사실인지의 여부를 떠나 시기적으로 무하마드가 먼저 위키에게 포섭된 것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에도가 포섭된 것은 그 후의 일이고요. 그래야만 무하마드가 에도를 부하 대하듯 했던 일들이 설명됩니다. 내 회사에서는 에도가 무하마드의 상관이었지만 위키가 우리 직원들을 엮어 만든 그림자 조직에서는 무하마드가 에도의 상관이었던 거에요. 그 조직엔 위키와 우리 직원들뿐 아니라 에도를 쫒아다니던 그 무서운 아저씨들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에도는 무하마드가 어떤 안하무인 격의 행동을 해와도 찍소리 못하고 당하기만 했고 여직원들 역시 입도 열지 못했던 거죠. 위키는 그렇게 비밀리에 내 회사 안에 자기 조직을 감쪽같이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예전 인니 생활 3년차 아직 코린도 건물 5층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던 당시 벌어졌던 일도 기억났습니다. 한국에서 오는 손님들이 많아 나와 내 파트너 릴리가 아침 일찍 사무실에 나와 서류결재와 필요한 전화, 메일 통신을 한 후 직원들이 출근하기도 전 업무지시만 메모로 남겨 놓고 외근 나가 손님들을 수행하다가 밤늦게 곧장 퇴근하는 나날이 한달 넘게 계속되던 어느 날, 아침에 출근했다가 직원 책상 위에서 커피 판매 제의서를 발견한 적이 있었어요. 내 회사는 당시 현지 공장들에서 의류 오더를 돌렸고 또 한편으론 한국산 원부자재를 현지 바잉오피스들을 통해 공급하고 있었는데 이상한 일이었죠. 알고 보니 관리가 느슨해진 틈을 타고 내가 가장 믿던 한 직원을 중심으로 전직원이 똘똘 뭉쳐 나 몰래 내 회사 안에 자기들 회사를 차려 놓고 명함까지 파서 직원들 중 또 다른 한 명의 고향인 벙꿀루(Bengkulu)산 커피를 팔고 있었던 거에요. 내 사무실에서 내가 주는 월급 받고 내가 주는 운영비, 내 차량들과 내 전화기, 팩스를 써가면서 말입니다. 급한 은행일때문에 다시 외출하면서 직원들에게 엄포를 놓고 사무실에서 대기하라 해놓자 전전긍긍하던 직원들은 모종의 합의에 도달했는지 사무실을 잠가놓고 전원이 도주해 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었죠. 위키가 출소한 후 내 회사에서 그런 비슷한 일이 다시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고가 벌어진 시기도 위키가 연루되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었습니다. 출소 후의 위키를 처음 만난 것이 2009 9 28일이었어요. 그가 반나절 출근한 것은 10월 초였고요. 에도가 처음 사고쳤다며 내게 자수해 왔던 것이 이듬해 1월이었습니다. 에도가 자수한 그 사건들은 10월에서 12월 사이에 벌어졌던 것들이었죠. 거기에 이미 위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던 거에요. 시기뿐 아니라 사고를 치는 방식 역시 갑자기 더욱 세련되고 그럴싸해지기 시작했던 것도 대략 그 즈음이었어요. 그 전엔 직원들이 사고를 치고 나면 다음 달 수금일이 돌아올 때까지, 그러니까 1개월 이내에 사고사실이 확인되는 게 보통이었죠. 그러나 그때부턴 2-3개월이 지나도 사고사실이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되었어요. 영리한 위키가 뒤에서 머리를 굴리며 코치를 해주고 있었던 거지요. 1월 이후 에도와 무하마드가 횡령문제로 내게 다시 걸린 건 그해 3월과 5월이었어요. 5월엔 이미 메이의 출산휴가가 시작된 상태였죠. 메이가 출산을 한 6월엔 전직원들이 메이를 모함하며 메이의 복직불발을 기도했죠. 그러나 메이가 6월말인가 7월초에 복직하자 에도가 7월말에, 8월말엔 무하마드가, 르바란이 시작되던 9월초엔 헤르니가 도주했던 거에요. 내가 에코를 해고한 것은 또 다시 해를 넘긴 후였어요. 직원들이 각각 도주한 시기에서도 모종의 기획력이 엿보였습니다. 단번에 모두 도주해 버린 게 아니라 한명 한명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며 돈을 빼돌리거나 정보를 빼돌렸던 거에요. 에코가 온갖 불평불만을 메모에 써갈기면서도 끝까지 회사에 머물렀던 이유도 위키로부터 그런 지시를 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설마….?”

어디까지나 추측이고 가설이야. 하지만 더 그럴듯한 가설이 있다면 얘기해 봐.”

 

한동안은 메이와도 서로의 추리와 생각을 교환하며 맞춰보곤 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당시에는 별다른 의미도 없어보여 마음에 담아 두지도 않았거나 다른 사람의 소행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위키의 등장과 함께, 흑백화면이 갑자기 총천연색으로 바뀌는 것처럼 그 배경과 저의가 한 눈에 드러나 보이는 것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사고 초창기에 도매거래선들에게 걸려온 전화였어요.

 

지난 달 구매한 대금 송금하려는데 그 전에 하나 확인하려고요. 거기 에도라는 직원 있죠?”

.”

그쪽 직원이 어제 우리 직원한테 전화했던 모양인데 이번 달부터 송금구좌가 바뀌었다고요? 의심스러우면 에도라는 친구한테 확인하라던데…, 내가 당신을 직접 아는데 뭐하러 직원한테 확인하겠어요? 어제 불러준 구좌번호가….”

, 잠깐만요.”

 

반둥거래선에게 이런 전화가 걸려왔던 게 그 해 2월쯤이었어요. 시기적으로 직원들이 본격적으로 사고치기 바로 직전이었죠. 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줄곧 사용해 오던 결재구좌를 바꿀 이유도 없었고 그것도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어떤 현지인 여자의 개인구좌로 바꿀 리는 더더욱 없었으니 말이죠. 그 전화를 받으며 빼끔 사무실 홀을 내다 보았을 때 에도는 자기 자리에 앉아 코를 후비고 있었어요.

 

어떻게 생각해?”

 

메이를 내 방에 불러 그렇게 물어 본 건 반둥 거래선에게 그런 일 없으니 종전 구좌로 송금해 달라 요청한 것은 물론 정식공문을 내기 전에 요 며칠 사이 그런 비슷한 전화를 받았다면 그건 보이스피싱이니 속아 넘어가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급한 대로 모든 지방 거래선들에게 부리나케 전화를 돌려 댄 후였어요. 우린 미용잡지에 매말 광고를 싣고 있었는데 전국으로 유통되는 잡지였으므로 지방 도매상들의 전화번호들도 우리 광고지면에 모두 실려 있었습니다. 누군가 그걸 보고 전화를 돌려 대금송금을 가로채는 사기극을 벌이려 했던 거에요. 대부분의 거래선들이 바뀐 구좌번호에 송금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했거든요.

 

미스터르는 에도가 의심스러워요?”

내가 전화하는 소리 밖에서 다 들었을 텐데 그런 와중에도 저렇게 아침 내내 코딱지나 파고 있던 놈이 그런 지능적 사기를 칠 수 있을 리 없어. 거기다가 그 놈들이 대놓고 에도 이름을 언급했다면 내 생각으론 에도는 절대 범인일 수 없어.”

 

너무 똑똑한 척을 했어요.

 

그럼 역시…., 저 놈들일까요?”

그래. 내 생각도 그래. 저 놈들이 틀림없어.”

 

그때 우린 우리 경쟁업체를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시장진입 첫 해에 이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경쟁업체를 단번에 따라잡았고 그 후 해를 거듭할수록 그 격차를 크게 벌리고 있었으므로 경쟁업체에선 거래선들을 돌면서 우리 제품을 깎아 내리기에 급급했고 업계에서 메이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자 메이에 대한 인신공격성 발언을 무차별로 해대고 있었어요. 그런 프로답지 못한 행태를 일삼으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놈들이니 보이스피싱도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했던 거에요. 에도는 메이만큼 알려져 있던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이 업계에서 우리를 특별히 주목하고 있던 업체나 개인이 아니라면 에도의 이름을 알고 있을 리 없었습니다. 에도가 보이스피싱을 하면서 자기 이름을 언급하는 바보짓을 했을 리도 절대 없고 우리 직원들 중 그 정도까지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모든 화살이 경쟁업체를 향했던 것이죠.

 

그러나 위키가 모든 사고에 개입해 있던 정황이 드러나자 그 보이스피싱 사건 역시 다른 각도에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위키는 그런 보이스피싱을 충분히 기획할 수도 있는 머리를 가진 친구였어요. 에도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회사에서 정식으로 걸려온 전화라는 신뢰를 주려던 노력의 일환이었고요. 혹시라도 거기 걸려 실제로 에도에게 확인전화를 해오는 거래선이 있었다면 멍청한 에도가 아무리 위키의 부하나 다름없었다 해도 구좌번호 바뀐 게 맞다고 대답하는 자충수를 두었을 지는 물론 알 수 없습니다. 내 생각이 맞다면 비록 도매거래선들의 조심성 덕택에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위키는 내 직원들을 통해 본격적으로 회사 제품과 소매수금대금을 빼돌리기 전 먼저 훨씬 덩치가 큰 도매판매대금들을 단번에 털어 먹으려는 시도를 그때 했던 거였어요.

 

 

따지고 보면 위키는 그런 짓을 할 만한 충분한 이유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BSD 사고 당시 나는 비록 내 능력범위 내에서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최대한 했다고 생각했지만 위키의 입장에서는 회사 일을 하다가 벌어진 사건에 내가 보다 적극적으로 그를 뺴내 주려 하지 않아 결국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위키 스스로 직접 메이에게 전화를 걸거나 누나인 수산을 통해 요청해 온 금액을 우린 액면 그대로 다 주진 않았던 거에요. 어떤 때는 터무니없는 이유와 용도를 대며 너무 자주 돈을 요구해 와 결국 주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았어요. 그런 이유로 그는 나에게 원한을 가질 수 있었고 그와 나 사이에서 통신창구 겸 필터 역할을 하면서 나와 회사의 이익을 보호하려 했던 메이를 증오하고 있을 수도 있었죠.

 

그가 무하마드를 포섭한 것은 너무 쉬운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무하마드는 입사 당시부터도 언제든 금전사고를 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던 인물이었어요. 단지, 그간 겪어 봐서 알게 된 일이지만 그는 심각한 겁쟁이기도 했으므로 누군가 등떠밀어 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건데 마침 위키가 나타났던 거였죠. 위키 입장에서도 자기가 등떠밀 사람이 내 회사 안에 있었으면 했는데 출근 첫날 무하마드가 위키 지갑에 손을 대면서 저요, 저요하며 앞으로 나선 셈이 되었던 겁니다.

 

그러나 에도의 경우엔 위키가 더 많은 공을 들였으리라 생각됩니다. 처음 위키가 파고들었던 틈새는 메이에게 버림받아 상처난 에도의 마음이었겠죠. 아니, 에도의 손실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에도가 과연 메이를 사랑한 적은 있는 것인지는 내가 뭐라 말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내가 본 웃기고 자빠진 자카르타의 세태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 중 하나는 아직도 메이에게 청혼해 오는 남자들의 마음가짐이었어요. 물론 메이가 좋은 남자를 만나 제대로 된 가정을 꾸미는 것은 나도 기원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부모까지 모시고 센티옹 집으로 찾아와 두 아이를 거느린 미혼모인 메이에게 청혼해 오는 남자들은 그간 안면은 있었지만 하나같이 별볼일 없는 동네 백수들이나 찌질했던 학교 동창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미혼모와 그 자녀들을 비교적 차별하고 억압하는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자신이 한 몸 희생해 남편이 되어 주고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주는 게 메이에겐 평생 갚을 수 없는 커다란 은혜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은 그 대가를 기대합니다. 그 대가란, 이미 검증된 뛰어난 생활력을 가진 메이가 그들을 평생 먹여 살리는 것이죠. 눔빵 히둡(numpang hidup)이라는 것인데 말하자면 메이의 남편이란 티켓을 쥐고 메이의 인생에 무임승차하겠다는 겁니다. 메이가 첫 아이를 임신하고 있던 당시부터 메이의 주변을 맴돌았던 에도도 어쩌면 처음부터 그런 식의 접근을 했던 것인지도 모르죠.

 

그러나 그런 실연의 아픔이나 손실이 있었다 하더라도 에도가 그렇게 간단히 위키에게 넘어갔다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게다가 위키와 에도의 관계는 좀 이상한 모양이었어요. 대개의 경우 합작, 동업의 관계는 서로가 이익을 나눠갖는 형태를 하는 게 보통이지요. 주종관계라 하더라도 주군은 부리는 사람들에게 채찍은 물론 당근도 제공해야 그 마음도 얻고 효율도 오릅니다. 그런데 위키는 처음 한 두 달을 제외하고는 채찍 일변도로 에도를 다루었습니다. 노예처럼요. 그래서 초창기의 에도는 온갖 선글라스와 가죽장갑, 자켓 등등을 사대며 한껏 멋을 부린 시절도 있었지만 약 10개월 후 파렴치한 횡령범이 되어 도주하게 될 때까지 줄곧 채찍을 맞으며 회사돈을 빼 돌리도록 강요당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걸로도 충분치 않으니 야간버스 차장 아르바이트까지 해서 돈을 바쳤던 것이고 그것도 여의치 않자 한동안은 밤마다 미용사들의 꼬스를 찾아다니며 몸을 파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고 그게 안되면 갚지도 못할 돈을 빌리려 했어요. 심지어 찔레둑 엄마가 사는 집 집문서까지 빼돌리려 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엄밀히 말하자면 무하마드나 엔티, 헤르니, 거기에 에코까지 포함한 대부분의 직원들은 사고를 치는 대신 그 대가를 나누어 갖는 형태였지만 에도의 경우는 철저히 쥐어 짜지는 상황이었던 거에요. 바꿔 말하자면 위키는 에도를 통해 내 회사 돈을 빼돌리려 한 것이라기 보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만큼 쥐어 짜면서 어떤 식으로든 돈을 만들어 바치도록 에도를 겁박해 들어갔던 거였어요. 왜 그랬을까요? 어째서 그렇게 된 걸까요?

 

그건 아직도 모르겠어요. 언젠가 알게 된 날이 올지도 모르죠.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위키가 마약이나 도박 같은 모종의 함정을 쳐놓고 에도를 거기 빠뜨린 후 협박해 들어간 건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꽃뱀을 동원했거나 에도의 오토바이 앞에 뛰어드는 자해공갈단을 이용했던 건지도 모르고요. 아무튼 에도는 10개월 가까운 기간 동안 무서운 폭력에 노출되어 시달리던 중이었고 그 배후에서 위키가 잔인한 미소를 짓고 숨어 있었던 거에요.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어느 순간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가능성이 머리를 때렸습니다.

 

혹시….., 무하마드 등이 희희락락하는 동안 에도가 그토록 처절하게 물리적 폭력에 노출되었던 건…., 에도가 위키에게 저항했기 때문인지도 몰라!!

 

그러니 에도만 혼자 맞고 다녔던 게 아니었을까요? 내가 그토록 신임했던 에도가 한편으로는 위키가 하려는 짓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무하마드의 감시를 받고 외근 중엔 위키가 보낸 두 명의 해결사에게 휘둘렸던 것이고 나와 내 회사에 대해 최소한의 의리를 지키려 했기 때문에 심심찮게 모진 구타를 당한 모습으로 회사에 나타났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난 그런 식으로라도 에도가 일말의 선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난 위키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았어요. 위키가 우리와 조우한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아 뽄티아낙(Pontianak)으로 근무지를 옮겼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입니다.

 

우연히 거래선에서 만난 매트릭스 마케팅 여직원이 오히려 나한테 따져 묻더라고요. 그 여자, 좀 이상했어요.”

 

당시에도 우린 계속 새 직원들을 채용하고 있었는데 새로 들어온 직원과 외근을 다녀온 메이가 보고해온 내용을 듣고 난 박장대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위키가 밝혔다는 전근 이유가 웃겼어요.

 

그 미친 자식이 나 때문에 더 이상 자카르타에서 일할 수 없게 되었다고 떠벌였다는 거에요.”

 

깔리만탄의 뽄티아낙은 위키의 고향입니다. 마침 뽄티아낙 지역 메니저 자리가 공석이 되자 위키는 현지 매출증진을 적극적으로 약속하며 그 자리를 지원했고 그동안 땅거랑와 다안모곳 지역에서 꽤 좋은 실적을 올렸던 그는 손쉽게 뽄띠아낙으로의 영전이 결정되었죠. 그러나 그가 필드의 동료들에게 했던 얘기는 좀 틀렸습니다. 메이가 아기를 들고 나타나 위키에게 책임지라며 쫒아다녀 너무 시달렸다는 거였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숨넘어가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엔 우리가 그의 연루사실을 이미 다 파악하고 있을 것이라 위키는 믿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 다안모곳에서 갑자기 마주첬을 때 자기도 모르게 도망치려 했던 거였죠. 그러나 거기서 메이와 얘기하다가 우리가 그를 의심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자신감과 황망함이 뒤섞인 상태에서 하지 않아도 될 얘기들을 마구 꺼내게 되었던 것이 패착이었음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 후 필드에서 나와 메이를 극도로 피하던 끝에 아예 자카르타를 떠나 뽄띠아낙으로 도주할 마음을 먹었던 것이죠.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은 정말 진리입니다. 난 내가 추론하고 추리했던 것들이 대부분 사실이었음을 위키가 그렇게 도주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더욱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몇 가지 사실들이 그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해 주었습니다.

 

윙키 삼촌이 장군이야!! 너 같은 여자를 절대 가만 둘 리 없어!! 게다가 그 애는 윙키 애도 아니라면서???”

 

그 여자는 나중엔 막 흥분하면서 이렇게 언성을 높였다고 하는데 이 대목이 여러가지를 함축하여 시사하고 있었어요.

 

그 첫번째는 위키가 다른 이름을 쓰고 있었다는 거에요. 그는 원래의 이름(Wikynoto)을 버리고 윙키(Wingky)라는 앙증맞은 이름으로 바꿔 쓰고 있었던 모양인데 그건 업계에서 우리를 회피하기 위한 위장의 일환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가 매트릭스에 입사할 때 내 회사에서의 근무경력이 큰 플러스 역할을 했을 것이고 우리 브랜드에 익숙한 거래선들에겐 그런 이력이 일종의 자산이었을텐데 그는 그것을 과감히 버리고 윙키라는 전혀 다른 인간으로 행세하려 했습니다. 그가 매트릭스에 입사한 것은 무하마드가 그의 지갑을 건드린 사건이 있은 후의 일이었으므로 이미 무하마드를 통해 내 회사 돈을 빼돌리기 시작하던 시절이었을 거에요. 그는 우리 회사 출신 위키가 매트릭스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나 메이가 알지 못하기를 바랬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위키는 자기 삼촌이 장군이라고 얘기하고 다녔던 모양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로레알같은 회사에서 거물 사기꾼 집안 사람을 직원으로 들일 리는 없습니다. 그는 아마도 이력서를 내는 시점에서부터 자신의 신분을 완전히 조작했던 것 같아요. 여기서 등장하는 장군이라는 삼촌은 증거품으로 잡혀 있던 우리 제품을 빼돌려 먹던 그 경찰관을 말하는 거였어요. 앞으로 그가 정말 장군까지 진급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위키는 매트릭스의 동료들에게 자신이 장군 집안의 사람이라고 뻥을 쳐 놓았던 거에요.

 

그런데 위키는 왜 굳이 그 매트릭스 여직원 앞에서 메이를 애기까지 들고와 협박하는 이상한 여자로 만들고 그걸 자신이 뽄띠아낙으로 전근하는 이유로 내세웠던 것일까요?

 

나도 여자라서 그 느낌이 뭔지 알아요. 그 여잔 위키한테 한참 빠져 있던 거라구요.”

 

위키는 그 때 여자들도 후리고 다녔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그 매트릭스 여직원이 바락바락 메이에게 달려 들었던 것인데 메이가 그 여자를 불러앉혀 놓고 차근차근 자초지종과 전후좌우의 얘기를 해주자 급기야 펑펑 울기 시작하더라는 거였어요.

 

예니 얘기까지 해준 거야?”

 

메이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위키는 예니(Yeni)를 오랜 애인이라고 우리에게 소개해 주었지만 위키가 재판을 받던 당시 메이와 여러 차례 전화통화하던 예니는 사실 위키가 자기 남편이라고 고백한 바 있었어요. 난 이 친구들이 왜 이런 거짓말을 밥먹듯 하는지 모릅니다. 아무튼 예니는 위키가 BSD 사건으로 수감되기 직전에 먼저 뽄띠아낙으로 날아 간 상태였고 위키가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줄곧 옥바라지의 한 부분을 감당하고 있었지요. 위키가 뽄띠아낙으로 갔다는 얘기는 예니의 품으로 돌아갔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십중팔구 그 매트릭스 여직원은 당시 매트릭스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던 위키가 미혼이라 믿고 몸도 마음도 돈도 다 주었던 모양인데 메이의 얘기를 다 듣고 나서 망연자실 펑펑 우는 것이 당연했어요.

 

그 여자도 우리 직원들을 알더라고요.”

 

메이를 공격하던 그 여직원이 이번엔 베일 속에 가려져 우리가 모르고 있던 사실들을 꺼내놓기 시작했습니다.

 

거래선 주차장에서 그쪽 직원들을 만나 이런저런 제품들을 위키가 건내 받는 걸 종종 봤지만 그게 그쪽 회사에서 뺴돌린 물건인 줄은 몰랐어요. 그것 말고도 우린 골드웰(Goldwell)이나 게월(Gehwol) 제품들도 함께 팔고 있었거든요.”

 

영업사원들이 필드에서 다른 영업사원들을 만나 개인적으로 물건을 교환하거나 납품받아 판매하는 건 종종 있는 일이었어요. 물론 본사에서는 절대 용인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요. 실제로 업계에 소문이 자자한 영업력을 발휘하던 메이는 그런 제의를 숱하게도 받았죠. 그러니 위키가 자기에게 월급주는 회사 제품인 매트릭스 제품들 외에도 필드에서 다른 제품들을 수배해 팔고 다니며 과외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물건들이었어요. 우리 제품들이 위키에게 넘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은 당시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거든요. 나는 그런 보고를 받은 적이 단 한번도 없으니 우리 직원들은 그렇게 뭉텅이로 우리 물건을 위키에게 넘겨주고는 터무니없는 곳에 팔았다는 허위보고를 하고 있었던 것이죠. 난 위키가 그 대금을 일부라도 우리 직원들에게 지불하긴 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거래선들을 돌다 보면 우리 제품을 헐값에 파는 사람이 있다는 얘길 종종 듣긴 했어요. 그러나 우린 그게 마카리조나 로레알 측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영업직원들이 회사 문만 나서면 독립사업자가 되어 회사 일이 아니라 자기 이익만 추구한다는 사실은 비단 우리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업계에서 나름대로 대기업으로 통하던 마카리조와 로레알도 마찬가지였어요. 우린 당시 우리 제품을 대량으로 두 회사에 공급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두 회사는 포인트를 적립한 거래선들에게 해당 포인트의 선물을 선택하도록 하고 있었어요. 그게 때로는 해외여행상품이기도 했고 정말 큰 거래선에게는 메르세데스 벤츠가 포인트 선물로 주어지기도 했죠. 우리 제품들도 그런 식으로 두 회사의 거래선들을 위한 선물용품으로 공급되었던 것인데 그게 필드에서 영업사원들이 장난을 쳐 대량으로 뺴돌려졌어요. 거래선에서 요청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회사에서 제품을 받아 들고선 정작 해당 거래선에는 어차피 공짜로 나오는 이런저런 쌤플들을 생색을 내며 대신 주고 왔던 거지요. 그렇게 빼돌린 제품들을 두 회사의 영업직원들이 주로 자카르타 외곽이나 지방도시에서 정상가의 반값 정도로 팔아 치우는 바람에 우린 한동안 우리가 공급한 우리 제품과 가격경쟁을 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두 회사는 조직력을 자부하면서도 그런 영업사원들의 장난을 끝내 방지하지 못했고 그것은 결국 우리가 어쩔 수 없이 그들과의 해당거래를 중단하는 이유가 되었죠.

 

하지만 그건 이미 몇 년 전의 일이었어요. 그 제품이 시간적으로 아직 그 두 회사의 영업사원들 손에 남아 있을 리 없었습니다. 지방 도매상들이 몰래 자카르타로 우리 물건을 거꾸로 다시 들여와 판매하는 경우가 가끔 있긴 했지만 몇 대에 걸쳐 장사를 해온 노련하고 지독한 그 친구들이 우리가 공급한 가격에 훨씬 못미치는 헐값에 팔아 치울 리도 절대 없었습니다. 그러니 결국 로레알과 마카리조 영업사원들이 가지고 있는 우리 제품들이 아직 얼마간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던 거지요.

 

그런데 이제 알고 보니 그 범인은 다름 아닌 위키였던 거에요.

그는 매트릭스 제품들을 팔면서 골드웰 등 타사 제품은 물론 우리 제품들을 거의 반값 미만으로 끼워팔기를 시도했고 당시 업계에서 우리 제품은 빠사르 바루 도매시장에는 풀어 놓지 않아 지명도는 높으면서도 구하기 힘든 제품으로 유명했으므로 그가 매트릭스에서 판매왕으로 등극하는데 톡톡히 한 몫을 했겠죠. 우리가 직원들의 횡령사건으로 엄청난 손실을 감수하고 있던 그 때에 교도소를 출소한지 얼마 안된 위키는 천부적인 영업능력과 내가 감지하지 못했던 그 치명적인 뒷거래를 통해 매트릭스에서 단기간 내에 수퍼바이저까지 승진을 거듭했던 것입니다.

 

뽄띠아낙까지 쫒아가서 그놈 목을 확 꺾어 버릴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 비대한 목이 제대로 꺾이기나 할지도 의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손실은 이미 발생해 버린 것이고 위키의 목덜미를 틀어쥔다 해도 실제로 횡령을 저지른 에도나 무하마드가 도주해 버린 상황에서 위키의 교사혐의를 입증할 근거는 오직 내 추론뿐이었어요. 뽄띠아낙까지 쫒아가 위키에게 자백이나 보상을 받아 내기는커녕 오히려 위키의 홈그라운드에서 내가 당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어요. 난 이번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끓어 오르는 분노를 애써 삭히는 것뿐이라고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가 뽄띠아낙에 간 것이 꼭 나를 피해 도망간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부분에도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는 당시 이미 자카르타에 벌려 놓았다가 언제 터질 지 모르는 다른 문제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가 취급한 다른 제품들 역시 우리 제품들과 같은 비정상적인 경로를 거친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죠. 하지만 그는 어쩌면 그가 교도소 안에서 맺었던 범죄자들, 범죄조직들과의 관계로부터도 도주하려 했던 것인지 모릅니다. 위키가 그 자리까지 오르는데 그들과의 관계가 큰 도움이 된 것은 틀림없는 일이겠지만 어느 정도 원하던 성취를 하고 나자 그들과 했던 딜의 결과 그들이 약속한 도움은 받았지만 자신이 약속한 대가의 지불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죠. 그래서 뽄띠아낙 전근이 그들과의 관계를 매듭짓는 좋은 이유가 되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이 얘기가 여기서라도 이렇게 끝나면 그나마 깔끔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되질 않아요.

 

마나도(Manado) 출신들이 자카르타에서 사기사고를 많이 치는 이유는 특별히 마나도에 나쁜 놈들이 몰려 살아서가 아니라 마나도의 위치가 거의 인도네시아의 최북단이나 마찬가지라서 자카르타에서 뭔가 사고를 치고 도망가면 자긴 고향으로 돌아가는 셈이 되지만 웬만한 손실 때문에 추가적인 경비를 써가며 마나도까지 추적해 올 사람도 적고, 설령 마나도까지 치고 들어온다 해도 홈구장이 잇점을 백분 살려 단번에 전세를 역전시켜 놓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라고 봐요. 그런 생각을 위키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이제 멀리 뽄띠아낙 홈그라운드에 가 있으니 내가 자카르타에서 아무리 기염을 토한다 하더라도 그 이상 안전할 수 없는 상황인데 여전히 매트릭스의 지역 매니저로서 미팅 때문에 매월 한 두 번 자카르타를 오가야 했어요. 뽄띠아낙에 도망간 후 한동안 그는 여전히 나와 메이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겠지만 나중엔 생각이 좀 변했던 것 같습니다. 위키로서는 에도와 무하마드가 회사물건을 빼돌려 자신에게 바치던 시절이 그리웠겠죠. 나는 회사의 주인이니 절대 그렇게 해 줄 리 없지만 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메이도 어쨌든 월급받는 직원이니 잘 설득하면 메이와 모종의 딜을 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자카르타에 올 때마다 온갖 이유를 들어 메이에게 미팅을 요구해 왔어요. 자신이 절대 잡힐 리 없다고 생각하는 놈들은 온갖 터무니없고 파렴치한 일들을 뻔뻔스럽게도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우곤 하는 법이죠.

 

그 집요함에 질린 메이가 내게 도움을 청했어요. 하지만 내가 무슨 도움을 주고 말고할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위키를 만나는 것은 메이나 나나 회사에 아무런 득이 될 일이 없다는 것을 말해 주었을 뿐이었어요. 문제는 그가 그 즈음엔 우리 패를 어느 정도 읽고 있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았지만 혹시 매트릭스 여직원과 했던 얘기를 위키가 전해 들었다면 에도와 무하마드의 사건에 그가 연루되어 있음을 우리가 파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겠죠.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하려는 게 아니라면 위키는 다른 직원들에게 그랬듯 어떤 예측하지 못한 방법으로 메이를 위협하려 들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럼 메이가 위험해 질 수도 있는 상황이 되는 거였어요.

 

당시 난 메이의 안전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위키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렇다면 그가 부려 에도에게 붙여 놓았던 해결사 두 명이 언제 메이에게 들이닥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어요. 그게 아니더라도 회사가 위기에 처해 있던 당시 철저히 내 편에 서 주었던 메이를 해꼬지 하려고 에도나 무하마드, 아니면 엔티나 헤르니가 누군가를 보낼 수도 있는 상황이었고 메이의 꼬스는 그들 모두가 알고 있는 공개된 장소나 나름없었거든요. 그곳에 메이 뿐 아니라 메이의 두 아이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내 입장에선 싱가폴과 호주에서 대학을 다니던 내 아이들의 유학비용도 따지고 보면 메이가 3분의 1정도는 일을 통해 부담해 주고 있던 셈인데 당시 예상되던 위험을 메이 스스로도 자각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와 내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한 메이를 그런 위험 속에 별다른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방치해 둔다는 게 좀 무책임한 일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최소한 일단 숙소를 빨리 옮겨 줘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했어요.

 

그러던 즈음에 라수나 사이드 (Jl. Rasuna Said) 거리의 스티아부디 플라자(Setiabudi Plaza) 앞에서 불의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땐 위키의 미팅 요구를 메이가 이미 몇 개월 째 거절하거나 미루고 있었는데 그 전날 밤에도 자카르타에 날아온 위키가 미팅요구 해온 것을 메이가 미적거리며 뭉개고 있던 차였어요. 오후 6시가 가까워 시내에 땅거미가 내리던 시간이었는데 신입 직원이 모는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도착한 메이는 건물 안에 주차하면 주차비가 많이 나온다며 오토바이를 길가에 붙여 놓도록 하고 혼자 제품이 든 백팩을 매고 스티아부디 플라자로 들어서려던 중이었어요.

 

그때 오토바이 한대가 갑자기 속도를 올리며 메이에게 달려 들었어요. 그걸 발견한 신입직원이 소리를 지르고 메이는 달려드는 오토바이를 보고선 피하지도 못한 채 놀라 얼어붙어 버렸습니다. 그 오토바이 뒤에 타고 있던 남자의 손엔 경찰봉처럼 보이는 짧은 곤봉 같은 것이 들려 있었어요. 메이를 스치듯 지나치면서 휘두른 그 곤봉에 정통으로 맞은 메이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깨진 이마의 상처에서 피를 흩뿌리며 도로에 쓰러져 기절해 버리고 맙니다. 메이를 공격한 오토바이는 지그재그로 도로를 역주행하여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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