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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영업직원 활약사

영업직원 활약사 (16)

beautician 2013. 3. 26. 03:21

에도가 그렇게 도주한 후 무하마드 역시 머지 않아 도주하리라는 건 불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메이는 그가 절대 도망가지 못할 것이라 확인하고 있었어요. 그의 부모가 자카르타와 버카시 사이에 있는 자티브닝(Jati Bening)지역에 살고 있었고 어린 아내에게서 낳은 아들이 아직 첫돌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가족들을 버리고 도주해 버릴 비정한 가장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니, 메이는 최소한 그렇게 생각했지요.

 

하지만 난 그의 도주가 단지 시간문제일뿐이라 생각했습니다. 예전 이완은 사고를 치고 회사를 떠난 후 우리와 대립하던 끝에 횡령의 단서들이 드러나자 오랫동안 살던 빠더망안(Pademangan)의 꼬스를 버리고 땅거랑 어딘가로 도망가 버렸고 아흐맛(Achmat) 역시 이완과 띠따의 사이에서 어설프게 나쁜 짓을 배우다가 저질러버린 사고를 수습하지 못해 가족들과 함께 다급히 자기 동네를 떠나 야반도주를 했었죠. 인도네시아는 우리가 현실에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실제로 벌어져 버리는 놀라운 나라였습니다. 나중에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된 일이지만 그 당시에도 이미 무하마드는 내가 만나본 사람들 중 가장 파렴치한 악당이었으므로 그때까지 발생한 모든 부채를 해소하고 더욱 과중해진 책임을 떠받들어 갈 인간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의 집을 알고 있다는 것 정도가 그의 발을 옭아 맬 튼튼한 족쇄가 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에도의 거래선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발견되는 무하마드의 흔적들이 점점 쌓여 가면서 그런 확신은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무하마드를 포함한 직원들이 저지르는 사고들은 대략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어요.

처음에 그들은 거래선에서 수금한 돈을 빼돌리는 지극히 일차원적인 방법을 썼지요. 하지만 그건 너무 쉽게 눈에 띄는 일이었고 아무리 꼭꼭 숨기려 해도 다음 달 수금날짜가 돌아오기 전까지, 그러니까 아무리 늦어도 한달 안엔 드러나 버리고 말 일이었습니다. 예전에 뚜따가 천연덕스럽게 그런 짓을 하다가 덜미를 잡혔죠. 그 당시 한차례 난리를 겪고 나서 수금을 빼돌리지 못하도록 나름대로 장치를 갖추자 이번엔 재고에 손을 대기 시작했어요. 댱시 재고조사를 한달에 한번 하던 관행에 착안한 이완이나 띠따 같은 직원들이 재고 제품들을 빼돌려 몰래 팔아 먹고 자기들끼리 입을 맞춰 재고 이상없다고 허위보고를 하거나 재고조사 결과 물건이 비는 게 실제로 확인되어도 범인이 명백히 드러나지 않는 한 제품들 들고 다니는 영업직원 전체가 공동으로 책임지는 식이었으므로 실제로 물건을 빼돌린 범인은 여전히 큰 이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상황이 파악되고 난 후 우린 매우 번거롭지만 재고조사를 매일 아침 하게 되었어요. 그러자 이번엔 제품 포장상자는 그대로 놔둔채 내용물 제품 알맹이만 빼돌리는 장난을 쳤지요. 그것도 못하도록 재고조사과정을 더욱 엄격히 관리하자 이번엔 거래선에서 수리하겠다고 받아온 중고제품들을 창고의 신품재고와 내용물을 바꿔치기 해놓고 신품을 다른 곳에 팔아 먹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수리를 맡긴 거래선에서 당연히 수리상황을 물어오며 독촉했으므로 적 직원들이 작당하여 서로 보완해 주지 않는 한 이 방법은 장기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이 즈음에 무하마드는 보다 새로운 형태의 장난을 치기 시작했는데 그건 수금결재가 늦어지는 거래선으로부터 고가의 핸드폰을 담보로 빼앗아 왔다가 그 핸드폰을 팔아먹는 방식이었어요. 그래서 그는 일주일에도 몇번씩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앞에 가던 사람이 흘린 걸 주워왔다며 삐까번쩍한 핸드폰을 들고와 다른 동료들에게 자랑하곤 했던 거에요. 그러나 이 방법 역시 회사에서는 늦어지는 수금을 독촉하고, 줘야 할 돈보다 훨씬 비싼 핸드폰을 뺏긴 거래선 쪽에선 돈 줄 테니 핸드폰 돌려 달라 성화였을 게 분명했으므로 난 무하마드가 이런 상황을 어떻게 장기적으로 끌고 갈 수 있었는지 의아해 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상황이 그를 더욱 창의적으로 만들었던 것인지 모릅니다. 물건을 구매했다는 버까시(Bekasi)나 땅거랑(Tangerang) 어느 구석의 미용실이 한 달 넘게 결재를 미루다가 어느 날 무하마드가 다시 방문해서 제품 회수하고 당일 바로 다른 미용실에 판매했다고 보고하는 식으로 판매 제품에 대한 첫 할부수금을 몇 개월씩 늦추는 수법도 이 때 무하마드가 창시한 것이었죠.

 

게다가 그는 주어진 상황을 더욱 창의적으로 조작했는데 나름대로 세밀하게 관찰하는 노력의 결과였고 그것도 나름대로 재능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평소에 외근을 다니면서 최근에 문닫은 미용실들을 눈여겨 보았던 거에요. 비록 영업을 중지했지만 간판은 한동안 여전히 달려 있었고 때로는 창문을 통해 미용실 안에 집기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보이기도 했지요. 여기에 착안한 무하마드는 가짜 판매전표를 끊으며 그런 문닫은 미용실들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무단으로 기재했어요. 일정에 따라 우리가 보낸 수금직원은 미용실 주인이 문을 닫고 잠시 고향에 내려갔다는 보고를 하곤 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그 수금직원도 무하마드와 연루되어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수금시한은 한도 없이 늘어져 버리고 나중에 메이가 직접 달라 붙어 조사해 봐야 사실은 그 미용실이 문을 닫은 후라는 것을 알게 되곤 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상황이 오락가락 하는 몇 개월이 지나는 동안 마치 그 미용실이 계획적으로 무하마드에게 제품을 구매한 후 문을 닫고 잠적해 버린 식으로 몰고 가 실제로는 무하마드가 제품과 돈을 빼돌렸는데도 오히려 무하마드가 미용실 쪽에 사기를 당한 것 같은 모양새가 되었던 것입니다. 변경된 연락처나 주소를 알수 없었던 우리로서는 그들이 사기를 치고 도주했다는 증거는 물론, 사실은 도주한 게 아니라는 증거 역시 찾을 수 없었던 것이죠.

 

문제는 메이를 비롯한 다른 직원들은 몇 년 동안 한 번 겪을까 말까한 그런 상황이 무하마드에게는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대여섯 건씩 벌어졌다는 것이었어요. 말하자면 무하마드에게만 계속 벼락이 떨어진다는 얘긴데 고성능 피뢰침을 짊어지고 다니는 자살테러범이 아닌 한 현실세계에서 그런 확률이란 애당초 존재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한 주에도 몇번씩 길에서 고급 핸드폰을 주워 온다는 얼토당토 하지 않은 우연의 확률과 마찬가지 얘기였던 것이죠. 결국 이런저런 석연치 않은 영업활동과 몇 차례의 결정적인 사고로 인해 무하마드의 판매영업 활동 자체를 금지시킨 후엔 그런 상황이 에도의 거래선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 에도의 사고 거래선들을 조사하며 밝혀지고 있었습니다. 그건 무하마드가 여전히 똑 같은 장난을 치며 회사 돈과 물건을 빼돌리면서 에도의 명의를 빌려 걸어 놓은 것이라는 심증이 강했습니다. 무하마드를 꼼짝 못하게 엮어 이번에야말로 유치장에 쳐넣으려면 뭔가 더욱 적나라한 확증이 필요했는데 그 확증은 이제 팔만 뻗으면 되는 저 모퉁이 너머에 있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무하마드도 바보가 아닌 만큼 그런 낌새를 눈치채고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무하마드의 꼭둑각시처럼 움직였던 에도가 이미 도주해 버린 마당에 에도를 통해 미리 만들어 두었던 비밀계정에서 빼먹을 돈이 아직 좀 남아 있더라도 새로운 계정을 만들 수 없게 되었으므로 무하마드로서는 볼 짱 다 본 것이나 마찬가지였지요.

 

결국 확증이 먼저냐, 도주가 먼저냐 하는 상황이었던 것인데 당시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가 휘말려 있던 다른 문제가 먼저 터지면서 우린 타이밍을 뺏기고 맙니다.

 

사실 무하마드 정도 되는 녀석이 오직 우리에게만 사고를 쳤을 리 없는 일이었죠. 그는 파란만장한 사건사고의 중심에서도 근 1년 반 가까이 내 회사에서 일하면서 거래선들과 안면을 텄는데 인상도 썩 좋지 않고 허술한 구석도 한둘이 아니었음에도 상당수 거래선들의 신임을 얻었던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런 사고를 치는 걸 내 성격에 그동안 내쫒아 버리지 않은 것도 스스로 불가사의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메이를 비롯한 다른 직원들은 무하마드가 흑마술을 시전했기 때문이라 믿었습니다.

 

얘기가 흑마술로 빠지면 이 에피소드는 정말 언제 끝날지 모르게 되는데 일단 조금만 나가 봅니다. 흑마술은 인도네시아의 거의 전역에서 서민들 사이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요. 표면적으로는 최대 이슬람 인구를 가진 경건한 나라인 것처럼 얘기되지만 실제로는 흑마술의 지배를 받는 나라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1998년 자카르타에 폭동이 일어나 독재자 수하르토가 실각한 후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벌어진 메가톤급 혼란은 사회 전반을 뒤흔들며 인종간, 종교간, 계층간의 유혈충돌로 치달았는데 그 거대한 장면의 한 구석엔 흑마술사들에 대한 마녀사냥도 있었지요. 특히 수라바야 일대에서는 흑마술사라고 의심되는 수백명이 몇 개월 사이 주민들이나 심지어 상대편 흑마술사의 공격을 받아 학살을 당하는 사건들도 벌어졌어요. 흑마술사들이 공격을 받았던 것은 표면적으로 내세웠던 종교적 신념의 차이보다는 자카르타 폭동 당시 수많은 화교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던 원인과 마찬가지로 흑마술사에 대한 공포와 경외심, 때로는 복수심이 크게 작용했던 것이지요.  

 

지역마다 보다 강력한 흑마술의 진원지들이 거론되지만 자카르타에서 가장 가까운 흑마술의 고장은 수카부미(Sukabumi)와 찌레본(Cirebon)입니다. 찌레본에는 아쩨(Aceh), 족자(Jogja)와 함께 이슬람 통치자 술탄의 궁전인 끄라톤(Kraton)이 있는 곳인데 그곳이 흑마술의 본고장이기도 하다는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만 벌어지면 찌레본의 흑마술사들에게 쪼르륵 달려가 괴상한 부적이나 처방을 받아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메이의 매제인 우따이(Utay) 역시 그런 인간이었어요. 메이의 바로 아랫 동생 리스띠(Listy)가 전문학교에서 제빵사 자격증을 막 땄을 때 그 주변을 맴돌던 오토바이 택시 오젝 기사였던 우따이가 리스띠를 찌레본으로 납치해 갔다가 임신 몇 개월인가 된 상태로 센티옹의 집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동안 우따이를 소가 닭 보듯 하던 리스띠는 180도 변해 우따이에게 넋이 빠진 상태였다고 하고요. 이미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울며 겨자먹기로 결혼 시키지 않을 수 없었죠. 나중에 리스띠는 계약직을 거쳐 피자헛의 정직원이 되었지만 우따이는 여전히 별볼일 없는 오젝 기사로 전전했고 나중엔 그렇지 않아도 터무니 없이 작은 집에 건어물 시장 생선들처럼 많은 식구들이 겹겹이 얹혀 살던 센티옹 처가에 본격적인 더부살이를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리스띠와 대판 싸우고 처가 식구들에게 쫒겨날 상황에 처할 때마다 똥줄이 탄 우따이는 쪼르륵 찌레본으로 달려가 모종의 굿판을 벌이고 부적을 받아 왔던 모양인데 그가 돌아오면 마치 금방이라도 이혼할 것처럼 기염을 토하던 리스띠가 갓 사랑에 빠진 십대처럼 달뜬 표정으로 우따이에게 아양을 떨곤 했답니다. 그걸 메이를 비롯한 센티옹 식구들은 흑마술의 위력이라 생각했고 역시 같은 생각을 했던 동네 아낙네들은, 그래서 남편과 문제가 있을 때마다 우따이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찌레본으로 달려가 그에게 소개받은 용하다는 흑마술사에게 이런 저런 처방을 받아오곤 했으므로 그 소개료가 오늘까지도 우따이의 주된 수입원이 되었지요.

 

그런 찌레본과 흑마술로 쌍벽을 이루는 곳이 수카부미(Sukabumi)였고 무하마드가 그 수카부미 출신이었어요. 그 해 초 조하르 바루에 직원에게 기숙사를 얻어주었던 당시 무하마드가 자기 방에 즐비하게 진열해 놓았던 온갖 괴상망측한 물품들 중 새끼손가락 만한 크기에서 어른 팔뚝 정도 되는 크기까지의 다양한 끄리스 단검들은 흉기라기보다는 무당들의 요령이나 총채처럼 주술적 의미를 담고 있었고 그가 나름대로 흑마술을 시전하려 한다는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정말 그래서였을까요? 나는 이 모든 상황이 절단날 때까지 그를 회사에서 쫒아내지 않았고 거래선의 일부 미용실 주인들과 미용사들은 무하마드가 미래를 볼 줄 안다며 그에게 상담을 받고 주술적 부적을 건네 받으며 적잖은 돈을 지불하기도 하고 때로는 빌려주기도 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가 어떤 방식의 흑마술을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저급한 차원의 흑마술은 대개의 경우 뭔가를 바르거나 먹이거나 묻히거나 파묻는 방식을 취하는 게 일반적이라는 점에서 무하마드는 자신의 인상이나 음침한 눈빛의 약점을 극복하고 사람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수숙(SUSUK)이나 그런 유사한 방식을 사용한 게 아닌가 합니다. 수숙은 주술을 담은 물체를 몸 안 어딘가에 밀봉하는 방식이죠. 주로 코 안, 입 안, 입술 밑, 머리털과 이마의 경계선, 눈썹 밑 등등에 다양한 물건들을 외과수술방식 또는 주술적 방식으로 넣는 것인데 때로는 보다 은밀한 부분에 시전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자신의 운을 고치고 인상을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말이죠.

 

가장 일반적인 경우는 가라오케 아가씨들에게서 많이 발견됩니다. 다른 동료들과 경쟁하며 컨테스트를 통해 손님에게 선택되어야 하고 나아가서는 괜찮은 남자를 하나 물어 인생을 고치려는 생각을 가진 아가씨들도 흑마술사의 주된 고객이 되곤 하는데 장기적인 효험을 발휘하는 비싼 수숙보다는 좀 더 싸고 단기적이지만 나름대로 비슷한 효과를 내는, 주술을 건 화장품, 목욕세제, 머리핀 등등을 사용하는 거지요. 말하자면 그런 주술의 힘을 빌어 남자들을, 손님들을 홀리겠다는 것인데 그런 화장품이나 악세서리를 사용하면 평범한 여자도 남자들 눈에 천하일색으로 보이고 연인의 귀에 어떤 터무니없는 얘기를 속삭여도 아무 의심없이 믿어버리게 된다고 그들은 믿습니다.

 

보다 효과를 높이기 위해 주술이 깃든 물건을 목적지에 몰래 파묻는 경우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동통신 기지국 안테나를 세우는 것과 비교하는 게 가장 근사하지 않을까요? 시전자의 흑마술이 그 목적지에 보다 위력적으로 내리꽂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니 말이죠. 그게 영화에서 흔히 보는 것처럼 꼭 뭔가 특별히 음산하고 기괴한 물건일 필요는 없습니다. 흔히 구할 수 있는 분말커피, 설탕, 소금, 간장, 머리칼, 동물 피 등등을 섞고 주술을 걸어 광목천에 둘둘 싸거나 작은 상자나 캔에 넣어 목적지의 문간에 파묻거나 손 안닿는 높은 선반 같은 곳에 몰래 놓아 두는 거에요. 무하마드도 어쩌면 우리 사무실 문간이나 계단참 창고 깊숙이에 뭔가를 묻어 놓았던 것인지도 모르죠. 만약 집에서 일하던 운전사나 가정부가 해고당하면서 저주를 퍼붓고 나간 후 한동안 꿈자리가 사납고 기분이 썩 좋지 않다면 주변을 찬찬히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문간이나 옷장 뒤, 선반 위 또는 자동차 좌석 밑에서 뭔가 대수롭지 않아 보이면서도 굳이 거기 있을 이유가 없는 수상한 물건들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거에요. 어쩌면 그것이 주술을 걸기 위한 수신용 안테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흑마술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들어간다면 그런 행위가 인과율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하겠죠. 귀신의 힘을 빌려 미래를 맞추고 저주를 내리거나 저주를 막기도 하는 대신 그 대가로 자신의 운을 갉아 먹는다는 것이죠. 무가에서 흔히 천기를 누설하면 천수를 다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상통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의 모든 무당들과 흑마술사 두꾼(Dukun)들은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어 있었겠죠. 하지만 사실 흑마술사는 세상에서 가장 재수없는 사람입니다. 흑마술을 시전하면 필연적으로 액을 당하고 살을 맞게 된다고 하는데 용한 흑마술사는 귀신을 속여 그 액과 살이 염소 같은 가축에게 튀어 가게 한다고 하며 보다 강력한 주술의 위력을 탐하는 흑마술사는 자기 가족들 중 탯속의 아이를 귀신에게 내어준다고 합니다. 세상엔 공짜란 없는 것이니 귀신과의 거래에서도 무료 사은대잔치를 기대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예시할 만한 그동안 보고 들은 사례들은 얼마든지 많지만 여기서 모두 지면에 옮기기엔 이미 이 에피소드가 너무 길어져 있네요.

 

물론 인도네시아에선 어린 아이들도 다 믿는 꾼띨아낙(kuntilanak)이나 뽀쫑(pocong), 뚜율(tuyul) 등의 귀신들처럼 이런 흑마술 얘기들을 우리도 한번 다 함께 손잡고 믿어 보자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게 코란의 가르침을 따르며 아잔이 울려 퍼질 때마다 하루에 다섯번씩 메카를 향해 절하며 기도하는 인도네시아 사람들 의식 한 구석에 음산한 그림자처럼 예로부터 전승되어 단단히 자리잡고 있는 토속적 사상이며 신념이기도 하다는 것이죠.

 

흑마술을 제대로 배웠을 리 없는 무하마드도 이런 흑마술의 기본적 상식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이고 나름대로 연구하고 조심하기도 했겠지만 그가 시전하는 흑마술이 완벽할 리 없었습니다. 그는 뭔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흑마술을 시전하고 또 그 위력을 더하기 위해 끄리스 단검들 같은 주술용품들을 사모았겠지만 그의 흑마술에서 튀어 나오는 액과 살은 대부분 그 자신을 향해 날았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상대와 싸우기 위해 열심히 휘두르는 쌍절곤에 자기가 더 많이 맞아 머리가 터지고 있는 형국이었던 건지도 모르죠. 아무튼 그는 그렇게 회사돈을 뺴돌리면서도 자신의 운을 개선하지 못했고 사람들의 신임을 쉽게 얻으면서도 그것을 오래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가 시전하는 흑마술과 그가 부리는 귀신들이 더 이상 자신을 보호해 주지 못하는 상황이 종종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파국을 몰고 온 것은 빠사르 밍구(Ps. Minggu)의 한 미용실에서 빌린 오토바이를 그가 몰래 팔아 먹은 사건이었어요.

 

사실 그렇게 남의 오토바이를 팔아 먹어 버리고도 몇 주씩이나 미루며 버텼다는 것 자체가 이미 놀라운 생존력입니다. 그러나 흑마술의 약빨이 다했는지 결국 일단의 사람들이 빠사르 밍구에서 자티브닝의 무하마드 집으로 몰려와 보상을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그날 무하마드는 그 사람들에게 반 죽도록 늘씬하게 두들겨 맞았습니다. 그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며 아내와 돌이 갓 지난 아기를 데리고 수카부미로 간다며 허겁지겁 집을 떠난 건 다음 날 새벽이었어요.

 

마침 우리가 무하마드가 친 사고들의 몇몇 확증을 잡아 낸 것도 바로 그 날이었어요. 무하마드가 출근하면 족치려 했는데 그가 연락도 없이 나타나지 않아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그 길로 메이를 자티브닝의 무하마드 집으로 보냈죠. 무하마드의 식구들로부터 무하마드 어머니의 사망 소식은 전해 들었지만 전날 있었던 빠사르 밍구 오토바이 사건을 메이에게 얘기하지 않았던 것은 가족들 입장에선 누워서 침뱉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겠죠.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수카부미에 안가고 자티브닝에 그냥 있데? 무하마드 엄마면 그 사람들한테도 큰 엄마나 작은 엄마가 되는 거 아냐? 아버지가 묻힌 곳이 거긴데 어머니도 자티브닝으로 모셔 오는 건가?”

 

지난 1년 반 동안 그 자티브닝 집이 무하마드 부모님의 집이고 처가도 몇 집 건너에 있어 거기 사람들이 모두 친인척들이라고 우린 철썩같이 믿고 있었어요. 반년쯤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우리가 문상까지 갔었는데 우린 돌아가신 분이 무하마드의 말대로 친아버지라고 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요. 그러니 내가 그런 질문을 메이에게 했던 거에요.

 

그러게요…..?”

 

얘가 뒷북을 칩니다.

하지만 메이가 거기 가서 그런 부분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충분히 이해가는 일이었어요. 사실 고대하던 증거를 손에 넣고 무하마드를 잡으로 간 셈인데 미꾸라지처럼 간발의 차이로 살짝 빠져나가 버린 것에 메이는 열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상을 당한 집에서 무하마드가 저지른 사건을 전하며 언성을 높였고 그러다가 무하마드의 처형과 날선 설전을 벌였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가족관계를 따져 물을 상황이 아니었던 거죠. 나 역시 좀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간 굵직한 사고를 두 번씩이나 치는 동안 매번 재발방지의 보증인으로 나섰던 처형이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메이에게 함부로 굴었다는 부분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상황은 사흘 후 다시 뒤집어집니다. 이번엔 그 처형이 직접 우리에게 와달라는 부탁전화를 해왔고 자티브닝을 다녀온 메이의 보고를 들으면 난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무하마드는 그 무하마드가 아니었던 거였어요.

 

자티브닝을 떠나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탄 끝에 수카부미에 도착한 무하마드 일행은 터미날에서 어떤 남자를 만났고 그와 잠시 얘기하던 무하마드는 자긴 다른 급한 일을 봐야 한다며 아내와 아기를 그 남자의 집에 데려다 놓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급히 출발해 수카부미에 온 건데 말입니다. 저녁 때쯤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던 무하마드는 다음날 아침까지도 돌아오지 않았고 집주인의 눈치도 어딘가 이상했습니다.

 

, 혹시 저희 남편 어디 갔는지 아세요?”

 

전화가 닿지 않아 집주인에게 그렇게 물었던 무하마드의 부인은 상상치도 못했던 대답을 듣습니다.

 

당신 남편? 그게, 그 남자는 어제 터미널에서 처음 본 사람이에요. 당신들 잠깐 맡아 달라 하고 간 건데 어딜 갔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최소한 친척이나 친한 친구 정도는 될 거라 생각했던 무하마드의 아내는 기절초풍 하지 않을 수 없었죠.  사실은 생면부지의 남자 집에서 천연덕스럽게 방을 하나 차지하고 밤을 지내고 아침밥까지 얻어 먹은 셈이었던 거에요. 무하마드는 도대체 그 남자에게 무슨 말을 했던 것일까요? 감언이설로 사기를 친 걸까요? 아니면 최면술?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 흑마술로 그 남자를 홀렸던 것일까요?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 그녀는 그 때부터 남편에게 수백통의 전화를 걸었고 저녁 늦게서야 마침내 연결된 무하마드는 다음 날 아침 데리러 가겠다며 그 집에서 하룻밤을 더 지내라고 했답니다. 하지만 상황을 알고난 무하마드의 아내로서는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일이었죠. 게다가 아무리 생각이 모자란 사람이라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둘러댔던 게 완전히 뻥이라는 사실도 어렴풋이 깨달았겠죠. 자살하겠다는 험한 말까지 불사하며 울고 불고 한 끝에 자정 가까이 그 집에 나타난 무하마드를 윽박질러 수카부미를 출발한 일행은 밤을 달려 다음날 새벽 동 틀 즈음에서야 자카르타의 스넨(Senen) 시장에 도착했답니다.

 

자티브닝으로 가야 할 사람들이 왜 스넨에 도착했데? 거리가 얼만데?”

그러게요.”

 

대충 30km 전후쯤 될까요? 톨을 타고 차로 달려도 40분 정도는 족히 걸리고 오토바이로도 1시간은 훨씬 넘게 걸릴, 집에서 멀리 떨어진 스넨 시장은 비록 인적이 드문 새벽이었지만 쁘레만이 들끓는 우범지대였는데 거기 젊은 아내와 아기를 돈 한 푼 챙겨주지 않은 채 내려 놓은 무하마드는 나중에 집으로 찾아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급히 사라져 버렸다는 겁니다. 망연자실해 하던 아내는 전화 밧데리도 꺼져 지나는 사람 핸드폰을 간신히 빌려 전화해 자티브닝의 오빠가 오토바이로 데리러 왔다고 합니다.

 

상황이 그랬으니 메이가 도착했을 때 그 오빠가 머리 끝까지 화를 내며 무하마드에게 이를 갈고 있는 건 당연했는데 그의 입에선 더욱 기가 막힌 얘기들이 흘러 나왔습니다.

 

우선 우리가 그의 집이라고 믿고 있던 자티브닝의 집은 사실 그의 처가였고 몇 달 전 우리가 문상을 갔던 돌아가신 아버지란 분은 아내의 아버지였던 거에요. 그는 처가살이를 하면서 우리에겐 자기 본가인 양 철저히 속연던 거였죠. 아마도 우리에게 그렇게 얘기해 달라고 처가 식구들에게 부탁을 해두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그가 사고를 칠 때마다 함께 회사에 나와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며 보증각서를 써 주던 그의 아내나 그 오빠가 집이나 가족에 대해선 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무하마드의 아내가 무하마드를 처음 만난 건 아버지가 지병으로 입원해 있던 버카시의 어떤 병원에서였다고 하는데 당시 무하마드는 병원 뒤 쓰레기장에서 노숙하면서 폐지를 팔아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얘한텐 자기가 잠복중인 형사라고 했다더군. 누굴 잡으러 왔다나? 그 미친 자식이 말이야!!”

 

그 오빠는 그렇게 분개하고 있었답니다. 약간 지적능력이 떨어지는 게 분명한 무하마드의 아내는 그 말에 홀라당 넘어가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동안 무하마드에게 매일 도시락을 싸다 주며 연애를 시작했는데 그가 형사는커녕 정말 집도 절도 없는 노숙자라는 사실을 가족들이 알게 될 즈음에 무하마드는 아내를 납치해 수카부미로 떠납니다. 입원비를 지불하려고 아내가 병원에 들고 온 돈을 가지고 말이죠. 그 다음의 프로세스는 메이의 동생 리스티를 찌레본으로 납치해 간 우따이의 경우와 같았어요. 8 개월 후 만삭이 되어 자티브닝으로 돌아온 여동생의 부풀어 오른 배를 본 오빠는 이제 빼도박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더욱 분개했지요. 무하마드는 다분히 의도적이었고 그 짧지 않은 기간을 모르긴 몰라도 노숙에 가까운 생활을 하며 수카부미와 보고르 일대를 떠돌던 그의 아내도 대단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노발대발하던 그 오빠도 무하마드가 그때 하던 말에 또 다시 홀라당 넘어가 버리고 맙니다.

 

그동안 믿지 않을 것 같아 숨겨왔지만 사실은 엄청난 부자인 자기 할아버지가 파푸아에 금광을 가지고 있다는 거야! 자기가 유일한 상속자인데 광산 일 물려 받는 게 싫어서 수카부미까지 도망쳐 와 숨어 살았다면서 말이지!! 자기가 지금이라도 돌아가 할어버지 일을 물려 받는다고만 하면 돈 문제는 당장 풀릴 거고 이 애도 자기가 끝까지 책임질 테니 성대한 결혼식을 준비해 달라고까지 했단 말이야!!”

 

그 말을 메이를 통해 전해 듣던 난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출생의 비밀을 가진 재벌 후계자의 얘기는 시네트론의 단골 소재이거든요. 게다가 그가 파푸아의 부자 할아버지 얘기로 우리 직원들을 홀렸던 것을 나도 메이에게 들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얘기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큰 소리를 치는 것을 믿고 날짜를 잡아 청첩장을 돌렸는데 수천만 루피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결혼식 당일에 무하마드는 만 루피아짜리 지폐 단 한 장도 없이 남루한 옷차림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속았다는 걸 알았을 땐 이미 늦어버린 거였죠. 가문의 명예와 만삭인 딸, 의 명예, 그리고 곧 태어날 아기를 사생아로 만들지 않기 위해 여자의 부모는 그대로 결혼식을 강행했습니다. 무하마드는 결국 돈 한 푼 없이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며 처가를 빛더미 위에 올려 놓은 것이죠.

 

난 그 얘기를 들으며 그가 고아이거나 절대 부모에게 돌아갈 수 없는 중대한 사고를 치고 도망쳐 나온 부랑자일 것이라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결혼을 통해 신분세탁도 시도했어요. ‘무하마드란 이름은 한국의 철수, 영철이처럼 회교국가에서는 흔하디 흔한 이름인데 처가 쪽에도 무하마드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어 무하마드는 모종의 경로를 통해 그의 신분증 사본을 입수해 자기 것인양 사용했습니다. 그가 우리 회사 입사지원서에 첨부했던 사진 부분이 불명확한 신분증도 그 무하마드의 것이었어요.

 

그의 사기결혼은 어찌되었든 그가 마침내 한 가족의 일원으로 편입되는 사건이었는데 그런 얼마 후 우리 회사에 취직까지 하고 아기도 낳은 시점에 마음만 제대로 먹었다면 그는 정상적인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지금쯤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사기를 치고 다니는 사고뭉치였으므로 처가에서는 골치를 썩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회사에서 저지른 횡령사건으로 가족들이 보증각서를 쓴 것은 물론 빠사르 밍구 오토바이 사건은 처가에서 그 돈을 갚아 주기로 해서 그 정도로 끝났던 모양이었어요. 이미 상황은 폭발 직전이었는데 그 와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거짓말로 아내와 아기를 빼내 도주했다가 수카부미에 유기하려 했다는 정황에 오빠와 가족들은 통렬히 격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이 놈을 잡아 죽이든 경찰에 넘기든 합시다. 회사에서도 무하마드 이 놈한테 받아야 할 돈이 있죠? 이 놈 잡게 도와주세요.”

 

얘기가 이렇게 된 겁니다.

 

무하마드도 사람이니 아내와 아기를 이용해 유인해 낼 수 있을 터였고 그래서 분명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무하마드 같은 인간을 포획하려면 사실 전문 사냥군이 필요했습니다. 메이는 도주한 파렴치한 거래선들을 잡는 데엔 도가 텃지만 무하마드는 여우 같은 사기꾼이었으므로 좀더 튼튼한 덫과 단단한 팀웍이 필요했던 거에요. 하지만 분개하고 있는 그의 처가 식구들은 철저히 아마추어들이었고 아무리 그래도 무하마드는 자기 가족인 셈인데 결정적인 순간에 그의 세치 혀에 또 넘어가 잡은 덜미를 놓아주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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