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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오십견은 무죄

beautician 2020. 1. 13. 10:00







국정농단으로 감옥에 간 박근혜 전대통령이 외부 병원에서 수술받고 몇 개월 머물도록 했던 오십견이란 게 내게도 찾아왔다. 


물론 따로 진단을 받은 게 아니니 비슷한 증상의 다른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팔을 제대로 들지 못한 지 두 달쯤 되었다. 생각해 보면  처음 증세가 나타난 건 2~3년 쯤 되었던 것 같고 이런 상황으로 발전할 것이란 건 1년쯤 전에 대충 짐작했던 것 같다. 운전 중 뒷 좌석에 놓은 가방을 찾아 앞 좌석에 옮겨놓을 때 어깨를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반복되었던 걸 기억한다. 아마, 시작은 그것이었던 것 같다. 관념적으로 그저 팔을 들어올리기 힘든 증세라고 알던 그 증후군이 이토록 날카롭고도 지속적인 통증을 동반한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그래서 메이의 할머니를 찾은 게 올초의 일이다. 메이의 손에 뭔가를 심어 메이와 싸움을 벌인 상대가 코피든 뭐든 엄청난 출혈을 일으키도록 한 백마술사, 몸도 제대로 못가눌 정도 교통사고로 다리근육을 심하게 다친 사람들을 당일 바로 걸어다닐 수 있게 만드는 손끝의 능력을 가진 사람.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평판을 오래 들은 끝에 양방병원에 가기 전 마지막으로 그분의 '영적치료'를 받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메이의 할머니의 연세는 80을 넘겼고 내가 방문한 날은 하필 2019년 마지막날 밤 자카르타와 인근 수도권을 강타한 폭우가 일으킨 역대급 홍수의 물이 빠진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였다.


메이 할머니의 손놀림이 그리 신통치 않았던 것은 그의 높은 나이때문에, 또는 홍수로 집이 허리깊이까지 침수된 며칠동안 그 많은 자손들 중 누구도 찿아와 들여다보지 않아 실망하고 낙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약 2~3분 어깨를 만져본 그는 다 되었다면 어깨를 툭툭 쳤다. 난 실망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사실 할머니의 '치료'라는 게 그러하리란 걸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다. 아무리 백마술이라 해도 기본적으로 귀신의 힘을 빌어 병을 고친다는 게 두꾼의사들 활동의 기본 컨셉이었으니 뼈를 맞추고 틀어진 힘줄을 비로잡는 정형외과나 카이로프랙티스트의 시술과 비교해서는 안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할머니는 다 되었다, 곧 나을 것이라 말하며 미소지었는데 그 굳건한 믿음을 굳이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네, 덕분에 곧 나을 거에요." 난 큰 미소를 지으면 그렇게 대답했을 뿐이다.


홍수로 엉망이 된 집안엔 먹을 게 아무 것도 남지 않았고 할머니는 아직 충분히 마르지 않은 간이 침대에서 홍수 와중엔 피난온 쥐들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난 지갑에 남은 돈을 모두 털어 드리고 돌아왔는데 어깨의 날카로운 통증은 여전하지만 그때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할머니의 신은 나를 고쳐주지 못했지만 나를 인도하는 신은 그날 나를 그 집으로 이끌어 그 할머니를 들여다보게 하고 절실히 필요한 것을 일부나마 채워주도록 한 것이라 생각했다. 홍수동안 먹을 것도 떨어진 그 집에 아무도 음식을 가져다 주지 않았으니 그 할머니는 며칠을 제대로 먹지 못한 상태였다. 모든 게 신의 뜻이라 생각한다면 내 어깨가 낫지 않은 것도 어쩌면 그의 뜻이다. 기왕이면 맘 좀 크게 쓰시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서 멀리 주차해 놓은 차를 향해 걸어가면서도 상쾌한 마음을 갖게 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상한 유머감각을 가진 나의 신은 째째하긴 하지만 대체로 악의없음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이젠 글로독에 한약을 사러 가든, 전에 치과에서 받은 약을 먹고 치통 대신 어깨통증이 잠시 완화된 적 있으니 치과를 다시 가든 해야 할 판이다. 오십견의 쑤시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그토록 혐오했던 박근혜가 마구 이해되기 시작했다.



2020. 1. 12.










P.S. 그러고보니 또 막 이해가 가는 장면이 있다. 2년 전쯤 서회장이 어깨 통증을 호소한 적이 있었다. 동인지를 혼자 편집하느라 목과 어깨 통증이 심해져 병원신세를 졌다는 것이다. 마치 동인지 편집을 하지 않았다면 어깨가 아프지 않았을 것처럼. 하지만 오십견이란 책 한 두 권 편집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어느정도 나이가 들고 운동이 부족하면 찾아오는 것이란 걸 그녀는 다른 이들이 절대 모를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아무튼 그 통증만은 마구 이해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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