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일반 칼럼

뺏고 뺏기는 동물의 세계

beautician 2020. 1. 14. 10:00





우연히 알게 된 어떤 사람이 평생 걸림돌이 되는 경험은 보편적인 것일까요? 한 번 인연이 엮었던 모든 사람들과 결과적으로는 악연을 맺고 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누구나 갖는 일반적인 경험일까요? 


K란 사람이 그렇습니다. 한 문화단체의 동료 회원으로서 처음 만나 그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었으니 어떤 선입견이 있을 리 없었고 그 역시 마찬가지였겠지만 그는 뜻밖의 공격을 해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를 썼을 때의 일입니다. 내 책을 굳이 사 읽어 보았다는 그가 뭔가 덕담을 해줄것이라 기대했지만 그는 예상치 않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옛날 사관들은 입에 칼이 들어와도 사실만을 기록했는데 정권 눈치를 보고 톤다운 했다면 그건 비열한 짓입니다."


서파푸아 합병에서 보인 당시 수카르노 정권의 접근방법이 비인도적, 일방적인 것이라 보지만 대놓고 비판적 논조를 취하기엔 인도네시아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는 이후 비자발급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으니 최대한 자제했다는 설명에 대한 반응이었죠. 그가 매우 정의로운 원칙을 가졌다는 건 알겠지만 왜 굳이 그 정의를 내게 이 구현시키려는 의아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그냥 넘겼습니다. 교민사회 전면에 나서 뭔가 하려고 했을 때 일말의 반대와 비난도 감수한다는 각오도 어느정도 가졌으니까요.


하지만 그가 나와 만화가의 콜라보와 그라메디아 만화출간에 끼어들이 내 역할을 채가려고 한 것은 어떤 식으로도 정상적이라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그는 나름 무게있는 책자를 번역하던 중이었는데 왜 남의 손에 쥔 작은 떡을 넘보았던 것일까요? 그건 매우 감정적인 행동인데 왜 그가 나한테 감정을 가지려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한국 출판사와 제휴해 인니 근대소설을 번역하기로 한 일에도 그가 끼어들어 훼방하려는 것을 알고는 분명 그가 지나치다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끼어들고 있었으니까요. 그가 평생 인연을 맺었던 모든 사람들과 악연으로 끝나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그런 스토킹을 당한 게 나만은 아니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분명 긍정적인 영향도 있습니다.

평생 양보하며 살았던 내가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기로 결심하고 말았으니까요.



2020. 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