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일반 칼럼

그 상태에서 어서 이탈하세요

beautician 2019. 12. 23. 08:17

 

 

 

언젠가 한국에서 온 문인들과 근황을 나누는 과정에서 최근 그라메디아 출판사와 진행하고 있는 인니 호러만화 다섯 권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된 일이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의 반응이 대박이었습니다.

 

"어서 그 상태에서 이탈하세요."

"네?"

 

내가 그렇에 반문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그건 한국만화가의 콜라보를 그만두라는 말이 아니라 인니 무속과 귀신에 대한 연구, 집필을 멈추라는 것으로 들렸습니다. 초면에 남에게 뭘 하라 뭘 하지 말라 하는 사람은 전출간 부대의 상급자이거나 인간관계에 익숙치 않은 자기중심적 무뢰한이라 생각해 왔었는데 초면의 한국문인이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귀신들을 가까이 하다보면 좋은 일 없어요. 어서 중단하고 돌아오세요."

"내가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사탄은 인간에게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합니다. 배선생님껜 그렇게 접근한 거에요."

 

얘기가 그렇게 가다보니 평생 느껴왔던 기독교인들의 편협함을 또 한 번 새삼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엔 문화를 문화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각국의 건국신화와 그리스-로마 신화를 재미있게 듣고 공부하면서 동남아 민족들의 토착신앙과 무속전승 만은 듣기도 읽기도 싫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들 대부분 스스로 기독교인이라 자임하는 이들이죠. 그렇게 동남아문화를 하등하게 바하보는 그들은 어쩌면 마음 속에 태극기보다 이스라엘기를 더욱 소중히 품고 있을지 모르나 그런 마음가짐은 유태인 600만명을 강제수용소와 가스실에서 학살하던 1940년대 독일의 기독교인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딱히 이해못할 것도 없습니다. 청와대 앞에서 성조기와 이스라엘기를 높이 세우고 문재인을 죽이자는 전광훈 목사 패거리들도 자신들이 하고 있는 짓거리가 2천년 전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를 죽이라고 와치던 유태인들의 마음가짐과 다를 바 없다는 걸 모르는데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조차 역사는 그렇게 되풀이되고 있는 겁니다.

 

모든 가능성들을 상상력과 감성으로 아우르고 가장 폭넓은 이해력과 감수성을 가지고 최선의 아름다운 단어와 힘있는 플롯으로 글을 써나가야 할 "작가"가 중세 마녀사냥 하던 시절의 정서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건 매우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네, 신앙생활 열심히 하세요."

 

이 정도가 내 최선의 대꾸였습니다.

 

중세란 대략 주후 4세기에서 14세기 사이의 약1천년을 말합니다. 당시 인간의 천박한 이성이 아직 신앙의 수면에 이르지 못해 저 밑바닥을 맴돌던 시절. 사람들은 중세시대를 암흑시대라 말하기도 하는데 그 중세의 시작이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으면서부터 시작되었고, 그 천년이 기독교의 교권이 왕권보다 더 높던 시절이었음은 아이러니합니다. 중세가 기독교의 전파와 함께 시작되었고 그 중세를 누구나 암흑시대라 부른다면 기독교가 그 암흑시대를 가져왔다는 추론은 매우 논리적입니다.

 

그 암흑시대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의 문화를 재단하려는 사람들은 분명 또다시 마녀사냥과 면죄부판매와 십자군 전쟁을 시도할 것이고, 그리하여 시대의 파국을 초래하거나, 스스로 암흑에 빠징 인식의 종말을 불러오고야 말 것입니다. 내 생각이 중요한만큼 남의 생각도 중요함을 모르는 이들은 아직 그 중세에 살고 있는 것이니까요.

 

"어서 그 상태에서 이탈하세요."

 

내가 그 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끝)

'일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심으로 돌아가는 길  (0) 2019.12.29
성찬식의 참 뜻  (0) 2019.12.25
예술의 가치, 기술의 등급  (0) 2019.11.19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0) 2019.11.11
2019년 인도네시아 키워드  (0) 2019.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