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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점이 온 재인도네시아 한인사회

beautician 2020. 1. 27. 10:00


특이점이 온 재인도네시아 한인사회



중국, 일본, 미국 같은 나라는 한인교민사가 100년을 훌쩍 넘은지 오래고 2019년엔 프랑스와 대만이 교민 100년사를 편찬했다. 이번엔 인도네시아 차례다. 자신이 일하던 경성은행에서 돈을 빼돌려 독립군자금을 지원했다가 발각되어 일제에 쫒기게 된 장윤원 선생이 중국을 거쳐 1920년 9월 2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전신인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바타비아에 첫 발을 딛은 것을 기념해 한인회에서 작년부터 100년사 편찬위원회를 구성해 자료수집과 집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해 9월 출간예정이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동포사회는 영미 대륙 선진국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100년이라면 현지에서 여러 세대가 태어나고 자라나 현지사회에 융화되고 편입되어 국가의 일부분을 이루게 되는 게 보통이지만 인도네시아의 한인사회에 붙은 이방인이란 꼬리표를 여전히 너무나 선명하다. 왜 그럴까?


학병들과 일제 징용자 1,400여명과 위안부들이 깔리만탄과 말루꾸, 자바에 들어오기 시작한 1942년부터 쳐도 약 80년, 인도네시아와 수교가 이루어진 1973년부터 치면 약 50년 동안 인도네시아에 제대로 뿌리내린 한인들이 한줌도 되지 않는 이유는 교민 대부분이 임기를 마치면 귀국하게 되는 공관원들과 지사원들이었기 때문이다.  임기 중 또는 임기를 마친 후 현지에서 독립해 성공적으로 독자적 사업을 일군 이들도 있지만 태반은 별다른 결과를 내지 얻지 못했거나 쓰디쓴 사업실패 후 패자부활전의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절치부심 가슴을 끌어안고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재인도네시아 한국교민들의 평균 체류기간이 구한말, 또는 일제 강점기 간도와 중국, 일본, 미주로 나간 해외 이주자들에 비해 턱없이 짧았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인도네시아에 100 년이 지나도록 깊이 내리지 못한 뿌리로 인해 이방인이란 꼬리표를 떼지 못한 것이다.


교민들의 문화활동이 그전에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하러 온 나라' '돈 벌러 온 나라' 였던 인도네시아에서 본격적인 문화에 대한 공부와 교류가 시작된 것은 1990년대에 당시 한국국제학교 사회과 교사였던 사공경 선생 (현 한인니문화연구원장)이 문화탐방을 시작하면서다. 인도네시아 문화를 한인사회에 소개하는 문화탐방은 최근 330회를 훌쩍 넘겼고 학자와 유명인사를 초빙하여 인도네시아 사회, 문화, 역사에 대한 식견을 배우는 열린강좌도 70회에 육박한다. 지금은 많은 한인 문화단체들이 교민사회 안팎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지 대학에 유학하거나 교환학생으로 온 학생들, 현지에서 연구하고 학위를 받은 교수, 박사들도 지난 수십 년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한국인으로서 한국문화와 학문을 인도네시아에  소개하고 인도네시아 문화를 배우는 것은 대체로 교민사회의 초보 단계를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자기 것을 주고 남의 것을 받는 단계 말이다.


50년~100년의 기간이라면  다른 나라 한인사회에선 그 나라의 문화와 지식을 현지인들에게 가르치는 한국인들이 얼마든지 자리잡을 만한 시간이다. 하지만 100년 된 인도네시아 한인사회는 아직 그 단계에 온전히 들어서지 못했다. 한국외대 양승윤 명예교수가 가자마다 대학에서 한국과 인도네시아 정치를 비교 강의하고 안선근 교수가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이슬람을 가르치는 것 정도가 다음 단계로 깊이 진입하고 있는 것이라 보인다.  영어를 미국인에게 가르치는 한국인, 예술과 음악을 유럽인들에게 가르치는 한국인들처럼 인도네시아 것을 인도네시아인들에게 가르치는 한국인 전문가의 출현,  그것이 연조깊은 현지 한인사회라면 언젠가 반드시 거치게 되는 특이점이다.


올해 2월 인도네시아 최대 출판사 그라메디아는 'Setan Lokal' 이란 제목의 만화시리즈를 내놓는다. '토착귀신이야기'정도의 제목이다. 채색 등 일부 과정에 현지인들도 참여하지만 기본적으로 스토리보드와 작화를 한국인들이 맡아 올 상반기 중 인도네시아 귀신과 무속에 대한 100개의 에피소드를 창작해 다섯 권의 만화책에 담아 현지 독자들을 위해 인도네시아어로 출판하는 것이다. 이슬람 기치를 휘날리는 인도네시아적의 수면 밑 무속문화를 한국인들이 들여다보고 그려내는 이 작업은 그 특이점을 통과하는 또 하나의 매우 드문 사례로 기록될 것같다. 하지만 한 두 개의 사례만으로 한인사회 전체가 특이점을 통과했다고 말하긴 힘들다. 한인들이 그 정체성을 잃지 않은 채 인도네시아에 적응하고 동화되고 편입되기 위해서는 이런 사례가 좀 더 많아져야 할 것이다.



헤로니모 영화 포스터와 전후석 감독



얼마전 뉴욕에 사는 한국계 미국인이 만든 다큐멘터리 '헤로니모'를 통해 쿠바의 한인사회를 알게 되었다. 바티스타 정권을 전복시킨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혁명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체 게바라와 함께 쿠바 공산정권 초창기에 신명을 다해 일했던 임은조씨 즉 헤로니모 임은 누구보다도 더욱 적극적인 방식으로 특이점을 찍었다. 그후 그가 현지에 동화해버린 쿠바 한인사회에서 한국인의 정체성과 한인회 재건을 위해 말년을 모두 바친 이야기는 무척이나 감동적이다. 해외에서 정체성을 지키는 것도, 특이점을 넘는 것도, 많은 노력과 희생없이는 도달할 수 없는 것임을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새삼 깨달았다. 


작년 대사관저 오찬에서 만난 최초 교민 장윤원 선생 후손들은 3대, 4대에 이르러 그들 혈관에 흐르는 한국인의 피는 25%, 12.5%로 점점 비율이 줄고 있고 국가가 그들에게 무관심한 동안 한국인 정체성이 희석되어 현지사회, 화교사회에 완전히 편입된 모습을 보면서 한인사회가 그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특이점을 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이제 외모는 더 이상 한국인이라 하기 어려운 서구적 모습의 쿠바 한인들, 헤로니모의 후손들이 한국인 정체성을 지키려 애쓰는 모습에 마음이 뜨거워졌다.


진출 100년을 맞아 인도네시아 한인사회는 예의 특이점을 넘어 어떤 사회로 발전해 나가게 될 것이지, 우리 2세들에게 어떤 정체성을 물려주게 될지, 경자년 새해를 맞으며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2020.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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