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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어느새 다가온 또 한 번의 연말

beautician 2019. 12. 21. 23:54


어느새 다가온 또 한 번의 연말





난 도대체 올해 뭘 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행정운영에 간여하고 있는 회사는 한 해 내내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스스로 뭔가 할 수 있는 역량을 잃고 누군가 길을 열어주지 않는 한, 한 치도 전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있기 때문이죠. 작년에 선발한 우수한 직원들이 회사의 미래를 보지 못하거나 더 좋은 근무조건을 찾아 속속 퇴직하면서 내가 관리할 조직이 거의 와해되었으니 나 역시 이 조직을 떠나는 건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겠죠. 더욱이 후임도 이미 와있어 등떠밀리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한편 글쓰는 일, 강연하는 일은 점점 늘어납니다. 


지난 3월엔 대사관과 한국문화원이 주최한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세미나" 에 기획과 사회자로 참여했고 8월엔 현지역사협회 Yayasan Historika Indonesia가 주최하여 UI대학교에서 있었던 양철성 세미나(정식 명칭: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 등장한 한국인 투사들의 역할)에서 일본과 일제 강점기를 바라보는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온도차에 대해 발표하는 등 두 개의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2017년 5개월간 초벌번역을 해서 양승윤 교수님에 넘겨 드렸던 네덜란드 고전소설  <막스 히벨라르>는 도서출판 시와 진실에서 7월 책이 되어 나왔고 8월엔 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회와 한인니문화연구원(원장 사공경)의 도움으로 자카르타 한국문화원에서 성대한 출판기념회를 가졌습니다. 오래 끌었던 일이 매듭지어지면서 한 시대가 마무리된 것같은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10월에는 이태수작가 (만화가)와 그라메디아 출판사와의 계약에 스토리작가로서 참여했습니다. 인도네시아 토속 호러스토리 5권 (100개 에피소드)와 인도네시아 역사상 위인 5권(수카르노, 하타, 수디르만, 디포네고로 왕자, 까르티니)입니다. 이제 호러 두 권 분정도의 원고가 완성되었는데 첫 출판은 2020년 2월경, 호러가 다 끝나는 건 3 ~ 4월경, 위인전까지 다 끝나는 건 8월 전후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인도네시아 무속과 역사를 한국인 작가가 쓰고 한국인 만화가가 그려 인도네시아 학생들에게 읽도록 하는 첫 번째 시도가 될 것입니다.


한세문화재단 예스24에서 요청한 1920년 인도네시아 근대소설 <시티 누르바야>(Siti Nurbaya)와 <반더베익호의 침몰>(Tengglemmlnya Kapan Van Der Weijk)은 번역계약을 앞두고 있는데 만약 성사되면 2020년 초에 시작해 7~8개월 작업이 될 것입니다. 이미 몇 개월간 얘기가 오가다가 두 번쯤 뒤집어진 상태지만 어떻게든 진행될 것이라 보입니다.


글 쓰는 일이 근무시간 후, 주말, 휴일에만 하기엔 점점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실감하게 됩니다. 



어쩌면 전업작가로 가야할지 결정해야 할 시점인 듯 하지만 돈이 안되는 전업작가라는 위상으로는 비자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작가의 길로 등떠미는 이 상황이 그래서 그리 썩 내키지 않습니다. 당장은 글쓰는 일을 일부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3년간 해왔던 영화진흥위원회 인도네시아 통신원은 더 이상 연장신청하지 않는 것으로 이미 연락을 냈습니다. 이미 한 달 이상 기사를 보내지못하고 있는 일간지 아시아투데이 통신원 역시 계속 할 것인지 좀 더 고민해 봐야 합니다. 그러니 교민지에 싣는 각종 칼럼들, 한국 신생일간지에서 요청하는 정기기고도 시간적 상황을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마감시간에 쫓기며 원고료를 받으며 글을 쓰는 것은 작가지망생들의 로망이지만 현실에서 닥치면 모든 걸 감당할 수 없다는 시간적, 능력 상 한계를 실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감이 걸린 글을 날림으로 써갈길 수도, 마감을 어길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건 프로이길 거부하는 행동이 될 테니까요.


한인 100 년사편찬문제도 있습니다. 2020년은 인도네시아의 한인사회역사가 100년차를 맞는 해입니다. 내가 기획서를 쓴 만큼 공동총괄위원으로서 역할을 말고 있는데 빠르면 내년 3월, 늦으면 9월에 해방됩니다. 인니 한인사회의 다양한 분야와 스펙트럼의 그간 역사를 총망라하는 한인 100년사는 450 ~ 50 페이지 짜리 책으로 나올 텐데 의외로 교민사회 내의 반대세력, 적대세력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인사 편찬위원회는 당초 기획대로 인작팀 기반의 집필팀 아니라 거기에 다양한 교민사회 인사들을 참여시키면서 비대해진 조직은 그 효율성의 상당부분을처음부터 상실하고서 출범한 상태입니다.





올해 대충 이런 일들을 했습니다. 맨 앞에 짧게 언급했지만 사실 경제적으로는 생업이 가장 중요한데 그게 흔들리면 이 모든것들이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욱이 내년엔 딸을 시집보낼 예정도 잡혀 있습니다. 비자 유지가 안되면 글로 쓸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내년계획을 짜려면 생계가 우선 해결되어야 하죠. 그걸 글을 써서 해결하기엔 아직 수입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정기적이지도 못합니다.


결국 지금 일봐주는 곳과 인연이 다하고 나면 선택지는 대략 두 곳 정도입니다. 그 두 가지 모두 우선 내년 상반기를 글쓰는 데에 집중한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한인사 편찬과 그라메디아와의 호러/인니 역사인물 책자 출간을 우선 마무리지어야 할 테고 인니고전 번역도 어느 정도 성과를 내야 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걸 다 한 다음 생계를 돌아보는 건 너무 늦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반기엔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 첫 번째는 술라웨시의 니켈광산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마침 한국 대기업이 북부 꼬나웨의 릴리 광산에 관심을 갖고 있고, 꼭 그 회사가 아니더라도 전에 함께 현장 방문했던 영국의 비나이나 미쯔미시 상해지점의 잭을 통하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단지 릴리가 그간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해 온 방식으로는 향후 통제불가능한 문제들이 발생할 테니 내가 현장에 들어가 행정업무와 바이어관련 업무를 바닥부터 틀어쥐고 정리하고 관리해 주려는 것이죠. 몇 년 전부터 생각해왔던 것이고 릴리도 줄곧 요청하고 있었는데 아마 내년엔 정말 시작하게 될 것 같습니다.


백업플랜은 팀을 꾸려 연구용역을 받는 것입니다. 함께 연구할 팀의 구성이나 연구과제는 대략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미래는 매우 불확실하게 전개되어 가는데 역시 가장 최선의 방법은 맨몸으로 부딪혀가며 매 순간 가장 지혜롭다고 여겨지는 판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는 게 문제이긴 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