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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TC 동문회 인도네시아 회장직 고사에 붙여

beautician 2019. 11. 28. 10:00



ROTC 동문회 인도네시아 지회장직을 고사하며






한국에서 거의 참석하지 않았던 ROTC 동문회에 처음 나간 것은 인도네시아에 들어와 여러 사건들을 겪고서 독립해 어렵사리 개인사업을 시작하던 1998년의 일입니다. ROTC 인니 지회가 동문회 '로서 처음 발족한 것이 내가 인도네시아를 처음 밟던 1995년이었으니 나름 초창기부터 참여한 셈입니다. 


물론 그리 자발적인 참석은 아니었어요. 몇해 전 작고하신 4기 조홍 선배가 동문회장에 취임하면서 당시 좀 복잡하게 얽혀있던 인간관계로 인해  나에게 동문회 총무직을 강권하면서였죠. 신입회원이 동문회 중요 직책을 맡는 것에 대해 동문들의 이견과 반대가 많았다는 것을 훗날 들어 알게 되었지만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붙박이 총무로 동문회 일을 보면서 난 나름대로 진심을 보여 주었다. 골프를 치지도 않는 사람이 자카르타와 인근 골프장을 무던히도 예약하고 롱기스트, 메달리스트 등 트로피도 수없이 만들었습니다. 당시 서울고등학교 동문회, 한국외대 동문회도 나가지 않는 나에게 ROTC만이 유일하게 적극적으로 참석하는 동문회였습니다.


올해 2019년은 그렇게 동문회에  나온기 시작한 지 어느덧 21년차가 되었습니다.  

23기 선배가 회장을 맡고 있어 24기인 나는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회칙상 15명 이내로 둘 수 있는 부회장들 중 내가 수석부회장이 되었다는 것은 대체로 차기 회장을 맡을 것임을 의미하죠. 


그런데 올해 10월 중순에 우리 지회가 주최한 동남아총회에서 월차 이틀을 내고 주말을 끼어 4일 내내 중앙회 팀을 이끌고 보고르 식물원과 뿐짝 사파리, 그리고 따만미니를 선탑해 안내하고 다니며 노력동원을 마다하지 않은 것은 내년 회장을 맡을 입장이 되지 않으니 올해 이거라도 열심히 나가 노력동원을 뛰어 주어야 덜 미안힐 거란 생각때문이었습니다. ROTC 동문회장을 하려면 시간적, 경제적 여건이 어느 정도 허락해야 하는데 난 인도네시아에서 25년 살면서도 아직 그런 여건을 아직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던 사업이 쪼그라들어 한 이름없는 회사의 별 희망 없는 일을 도와주는 중이고 대세는 절대 돈 될리 없는 문학의 세계로 내 등을 떠미는데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해 먹고 산다는 건 요원하기 그지 없는 일입니다. 글 쓰는 일은 거의 돈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회장을 도와 동문회 실무를 진행할 사무국 후배들에게 밥 한끼 제대로 사 줄 능력이 안되면 화장 안하는게 맞습니다. 더 능력있는 사람이 맡아 회를 이끌어야 하는 거죠.


고사 이유에 사족을 하나 더 붙이자면 난 1987년 증위시절 이후 기득권(상관들)으로부터 평생 빨갱이란 소리를 들어 왔던 것도 한 축을 차지합니다.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던 그 해의 대선을 군에서 부재자 투표로 거치면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 때문이었죠. 물론 그 호칭에 절대 동의하지 않습니다. 내가 빨갱이여서 김영삼을 찍은 게 아니니 말이다. 물론 보안사에선 내가 김대중을 찍은 빨갱이 장교라고 몰아붙였죠. 최근엔 기득권들의 이익에 거스르는 사람들은  국정원장이나 검찰총장조차도 빨갱이 소리를 듣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즉 요즘 사람들이 입에 올리는 빨갱이란 말은 그가 공산주의자란 뜻이 아니라 내 말 듣지 않는 사람, 내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을 칭하는 추상적 집단명사인 셈입니다. 하지만 어쨋든 최소한 ROTC 동문회를 좌파 빨갱이가 장악했다는 소리를 듣게 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러니 회장을 맡는다는 건 어느 정도 시간적, 경제적, 사회적 여건을 갖추고 일정 정도의 희생정신을 가져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누군가 회장을 맡아 준다면 백번 고맙게 여기며 응원해야 하는 일이지 공연히 '정관 '이라 이름붙인 동문회 회칙에 회장의 자격을 논하고 연임과 중임을 제한하는 것은 뻘짓에 불과한 일입니다.  ROTC 인니지회장은 중앙회장이나 정부기관 지원을 받는 단체장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래서 나 대신 내년 회장을 맡게 될 (아마도)후배에겐 미안한 마음을 금치 못합니다. 내게 좋은 파트너나 다른 회사를 만나 경제적 안정이 확보되거나 내가 쓴 책이 대박나 더 이상 다른 여건들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된다면 기꺼이 내가 먼저 손들고 회장자리에 지원할 겁니다.


하지만 분명 지금은 아닙니다.

그래서 미안하기 그지 없습니다.



2019. 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