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세월호 엄마들 자카르타 간담회 뒷 얘기 본문
한인회엔 한국인이 없다.
"그 사람들 남한사람 맞아?"
"네?"
"북한사람 아니고 한국사람 맞냔 말이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인도네시아까지 와서 교민사회 들쑤시고 현지 정부와의 관계를 위태롭게 하는 게 어디 애국심 있는 사람이 할 짓이란 말이요?"
이 얘기를 하고 있는 사람은 국정원 요원이나 대사관 경찰영사가 아닙니다. 전화를 하고 있는 상대표는 이제 인도네시아 동포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위치에 올라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지식인이자 사업가이지만 첫 직장이었던 K그룹 창업자가 별세하고 기업의 주인이 바뀌던 과정에서 정의롭다고 여겼던 편에 섰다가 혹독하게 고생했던 것을 시작으로 평생을 교민사회의 비주류에서 있었던 분입니다. 그러니 완전히 우측으로 돌아가 있는 극우인사들과는 결을 달리 하는 분이죠. 그런데 그가 북한이 파견한 파괴선동분자, 즉 간첩으로 몰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지난 12월 초 자카르타를 방문했던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입니다. 당시 그들은 사흘간의 간담회를 위해 인도네시아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당신 지금 그 사람들이랑 같이 있죠? 지금 어디 있소?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소?"
"어, 그분들은 간담회 마치고 어제 밤 귀국하셨어요."
"어디서 거짓말을 해요? 하루 더 체류한다고 공지 낸 걸 내가 모를 줄 아오?"
헉! 하고 연간사가 다급히 숨을 삼킨 이유는 그 공지는 416 자카르타 촛불행동(이하 촛불행동) 52명이 들어와 있는 카카오톡 단체방에서만 알렸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간담회 마지막 날 밤에 귀국할 예정이었지만 너무 빠듯한 일정을 강행했기 때문에 체류를 하루 늘려 세월호 엄마들에게 여유를 주려 배려한 것인데 전화기 건너편에서 고성을 지르며 기염을 토하는 상대표는 상대편의 그 정도 정보는 간단히 알아낼 수 있는 인맥과 정보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딘지 알면 뭘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 사람들 관광비자로 들어와 간담회 한 것 아니오? 그건 명백한 비자법 위반이에요. 그 사람들 범법행위를 했단 말이오. 그리고 당신들 발족식 할 때 현지 시민단체가 참석했었죠? 당신들 반정부 단체들 끼고서 외국인들이 금지된 정치활동을 한 거 아니오? 당신들이 그러고도 무사할 것 같소? 그리고 굳이 지난 12월 2일에도 간담회 행사를 한 이유는 뭐요? 그날 이슬람 쪽에서 대대적으로 반정부 시위하던 날인데 거기 동조한 거 아니오?"
"아니, 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당신들 하는 일은 그렇게밖에 해석되지 않는 일이오. 현지법을 어겼으니 내가 보내는 경찰이든 이민국 직원들을 만나 보란 말이오. 그러니 당신들 어디 있는지 당장 말해요."
젊은 주부인 연간사는 긴장하고 겁 먹어 목도 뻣뻣해지고 두 손도 덜덜 떨리고 있었지만 NGO활동에 오래 참여해온 만큼 그런 말에 간단히 울먹이며 항복할 만큼 말랑말랑한 사람은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함께 오신다면 이민국을 데려오든 경찰을 데려오든 꼭 만나겠어요. 하지만 선생님께서 안오신다면 우리가 그 사람들을 만날 이유가 없잖아요?”
“내가 당신들 만날 이유가 뭐 있소? 내가 경찰도 아닌데 이 나라 법을 어겼다고 내가 체포하러 갈 수 없는 일이오. 경찰들하고 결판을 보세요.”
“선생님, 그건 선생님 화났다고 화풀이하겠다는 것밖에 안되잖아요. 내가 단체 대표도 아닌데 내가 어리고 고작 주부라서 약한 고리라 생각하고 공격하는 거잖아요? 선생님께서 기분 나빠하시는 부분하고 비자법, 간첩죄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잖아요?”
그 말에 상대표도 비로서 약간 누그러드는 기색이었습니다. 연간사의 말이 충분히 일리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단이 벌어진 것은 얼마 전 자카르타 동포사회의 교민 TV 채널에서 11월 20일 방송된 인도네시아 뉴스브리핑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상대표는 이 브리핑을 준비하고 전하는 PD겸 아나운서 역할을 하는 것이라 이해되는데 이날 전한 뉴스들 중 한 꼭지에서 11월 11일(토) 한국문화원을 빌어 정식 발족식을 가진 촛불행동에 대해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불분명한 단체’라며 단번에 폄하해 버렸던 것입니다. 동포뉴스를 통해 전해 들었고 창립선언문을 읽어보았다고 하지만 정작 해당 단체에는 전화 한 통화, 인터뷰 한 번도 한 일이 없었습니다. 촛불행동 측에서 발끈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해당 유튜브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WNwMMQjvE14 15분 50초 경부터)
하지만 난 촛불행동이 그 일로 굳이 해당 방송사에 항의서한을 보낸 것은 조금 지나쳤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인격적 피해를 입었으니 얼마든지 항의할 수 있는 일이지만 사사건건 모두 문제를 삼고 정식으로 항의하고 심지어 고소하는 건 참 피곤한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코딱지만한 교민 TV 방송국에 한국 공영방송 수준의 중립성을 기대하긴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행동이 방송국에 항의서한을 보낸 것은 비난 받을 행동이 아닙니다. 그 내용 역시 감정을 최대한 자제한 공손한 태도로 종전 방송내용에 대한 재고와 반대편에게 공정한 반박의 기회를 달라는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상대표가 잔뜩 화가 난 채 연간사에게 아침 일찍 전화를 걸어와 몇 시간 동안 화를 내며 위협하고 닦달을 했던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참 이상한 모습이 엿보입니다.
항의서한을 받은 곳은 방송국이고 방송내용에 대한 책임은 방송국에 있다고 자막이 있었는데 정작 방송국은 아무 반응도 없고 해당 프로그램 아나운서인, 그것도 굳이 자신은 해당 방송국 직원은 아니라고 강조하는 상대표가 직접 반박 전화를 해왔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방송국이 상대표 등 뒤로 숨어버린 것이죠. 그 반대의 경우가 일반적인데 말입니다.
또 다른 이상한 일은 해당 항의서한을 촛불행동 공동대표 3인이 보냈는데 거기 이름도 적지 않은 연간사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는 점입니다. 그건 명백한 측면공격인데 아무래도 정정당당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사람을 피해 가장 만만한 상대를 고른 것처럼 보였으니 말입니다.
물론 가장 이상한 점은 방송에서 했던 발언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그에 대한 반응이 촛불행동과 세월호 엄마들을 범법자로 몰아 체포하겠다는 것인데 그 원인과 결과가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해명이나 항변을 해야 할 상황에서 상대표는 화풀이를 위한 보복을 얘기했던 것입니다
물론 아주 당연한 부분들도 엿보입니다.
이민국과 경찰을 보내겠다는 부분 말입니다.
이건 교민들끼리 분쟁이 생기면 가장 먼저 벌어지는 가장 전형적인 공격패턴입니다. 자신과 안면을 트고 있는 가까운 경찰이나 군인, 공무원들을 통해 공권력을 동원해 상대방의 즉각적인 인신구속을 시도하는 것이죠. 일단 잡혀 들어가면 그가 옳고 그름을 떠나 매우 불리한 입장에서 싸움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런 일이 워낙 흔히, 그리고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으니 그런 위협을 받는 것만으로 상대방이 충분히 그런 조치를 취하고도 남을 거라 생각한 쪽은 겁을 먹기 마련입니다. 더욱이 상대표와 같이 교민사회 지도층과 상대하게 될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교민사회 지도층들이 만만찮은 이유는 얼마든지 있지만 그 중 특기할 만한 것은 그들의 국적부분입니다. 한인회나 상공회의소, 봉제협회, 신발협회 같은 각종 산업별 협회단체 같은 곳에 회장이나 임원으로 들어가 있는 사업가들이나 교민세계에서 힘 좀 쓰는 어른들은 대개 인도네시아 현지국적을 취득한 상태입니다. 물론 처음 인도네시아에 올 때부터 빨리 귀화해 현지인이 되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업에 성공한 후 일하기에 매우 불리한 ‘외국인’이란 딱지를 떼어내고 현지 국적을 얻는 것은 자기 사업체와 자산을 지키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니 나이 많고 성공한 동포사업가들이 현지국적을 취득하는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고 한인회가 사실은 한국인들이 아니라 태반이 인도네시아인으로 구성된 조직이 되어 그들이 한국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단기체류 법인장들, 일반교민들 주부와 학생들 위에서 군림한다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그들이 인도네시아 국적을 취득했다 해서 한국에 대한 애국심을 버렸다는 뜻이 아니니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대표와의 문제 같은 경우엔 매우 나쁜 모양새가 됩니다. 앞서 대화에서 본 것과 같이 그는 아무도 묻지 않은, 이 문제에서는 논외일 수밖에 없는 ‘인도네시아인으로서의’ 애국심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도네시아 비자법과 현지법을 거론하며 연간사를 겁박하는데 그것은 현지법 위반을 인니 정부에 고발할 테니 죄값을 받으라는 겁니다. 그건 자신이 인도네시아인으로서 현지법에 의해 철저히, 또는 외국인인 한국인에 비해 엄청나게 호의적으로, 보호받고 있다는 위치를 과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늘 대사관 행사에 초청되고 평통자문회의 위원으로 초빙되고 이런저런 한인 강연회를 다니는 존경받는 한인회의 지체 높은 어르신들이 젊은 한국국적의 동포와 현지에서 싸울 때 갑자기 인도네시아인으로 돌변해 현지 공권력을 동원해 공격하는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연한 일은 또 있습니다.
연간사를 대하는 태도 말입니다.
만약 촛불행동에 누구 하나 내로라 하는 경제적으로 쟁쟁한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면 상대표는 절대 저런 막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높은 사람들, 잘나가는 사람들과 척을 지지 않으려 하는 것은 해외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죠. 하지만 촛불행동은 학생들과 주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단체입니다. 거기에 소상공인들이 일부 참여하고 있는 겁니다. 높은 분들이 볼 때엔…..그저 개 돼지의 모임일 뿐이었겠죠.
그러니 앞서 대화에서 충분히 느껴지는 바와 같이 상대표는 연간사를 한없이 얕잡아 본 것인데 그것은 비단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표로 대변되는 동포사회의 기득권 계층이 연간사로 대변되는 동포사회 대다수인 일반 교민들을 얼마나 아래로 보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내가 경찰과 이민국을 동원해 널 공격하더라도 네가 무슨 반격이라도 할 수 있겠느냐는 비웃음인 것이죠. 그런 일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벌어지는 것이 교민사회의 진면목입니다.
상대표는 그나마 전화를 끊을 때 자신이 지나쳤다며 연간사에게 사과했습니다. 사실 상대표는 내가 그간 존경해온 분이고 개인적인 도움을 받은 일도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못지 않는 양식을 지녔고 평소라면 얼마든지 말이 통하는 그는 한참 후배인 나한테조차 절대 저런 식의 말과 태도를 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 일이 더욱 충격적이고 씁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월호 엄마들이 위해를 당하기 전에 빨리 출국시켜야 한다고 마음먹은 연간사의 급한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녀는 아직 비행기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두 분의 세월호 어머니들을 급히 공항 가까이로 모시려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호 어머니들의 생각은 연간사와 조금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우린 차라리 체포되는 게 더 나아요.”
동포사회의 고발로 체포되어 사회이슈가 되는 것이 오히려 그분들이 원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럼 교민들은 물론 한국 국민들이 세월호 문제를 다시 한번 바라보고 아직도 남아 있는 우리 사회의 적폐들을 직시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실제로 상대표의 고발로 세월호 엄마들이 이민국에 구금된다면 교민사회는 발칵 뒤집어질 것이고 해당 교민방송국이나 한인회, 또는 대사관 앞에서 화염병까지는 아니겠지만 최소한 피켓시위는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초청한 촛불행동 측으로서는 그럴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월호 엄마들은 12월 4일(월) 밤비행기로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비로소 일단락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상처와 후유증은 오래 남습니다.
그리고 새삼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한국의 대통령과 청와대는 바뀌었지만 아무 것도 변한 게 없습니다.
기득권 계층은 여전히 기염을 토하고 세월호 엄마들은 여전히 겁박 받는 피해자들일 뿐입니다. 그를 도우려는 촛불행동이나 416연대는 기득권들이 보기에 여전히 종북이고 간첩이고 빨갱이들일 뿐이니 경찰과 이민국을 보내 잡아 쳐넣겠다고 마음먹고 협박하는 것에 죄책감보다는 정의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아직도 존재합니다.
만약 세월호 엄마들이 현지 공권력이 체포했다면 우리 정부와 대사관, 외교부는 어떤 조치를 취했을까요? 그리고 그들은 상대표로 대변되는 인도네시아 동포사회 기득권 계층들에게 어떤 반응을 했을까요?
공비를 잡았다고 표창장이라도 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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