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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영업직원 활약사

영업직원 활약사 (13)

beautician 2013. 2. 3. 22:26

 

 

에도가 야간버스 차장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난 그리 놀라지 않았습니다.

말이 야간버스지만, 실제로는 새벽에 끝나는 가라오케나 디스코텍에서 손님이나 종업원들을 귀가, 퇴근시켜주는 차량은 대형버스보다는 앙꼿이라고 불리는 8인승밴을 개조한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에도는 12인승 소형버스인 캐리(Carry)를 개조한 것을 타고서 하모니 (Harmony) 지역의 가자마다 플라자(Gajahmada Plaza)에 소재한 유명한 무도회장인 밀레니엄(Millenium) 앞에서 새벽을 달렸다고 하더군요.

 

그게 그 해 4월이었어요.

에도는 1월에 첫 사고를 친 후 자수해 왔었고 3월엔 그보다 훨씬 큰 금전사고를 내고 어설프게 숨기려다가 무하마드와 함께 걸려 나에게 된통 혼난 바 있었습니다. 그렇게 심심찮게 회사 돈에 손을 대던 에도가 이번엔 개인적으로 잠을 줄여가며 야간에도 돈을 벌려 애쓰는 모습에 난 이제 에도가 딴 생각 않고 성실히 살아보려 제대로 맘잡은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 일이라는 게 서너명이 한 팀이 되어 한 명을 차를 몰고 나머지는 말하자면 호객삐끼가 되어 손님들을 몰아와 차에 태우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해서 일인당 떨어지는 돈은 하루밤에 한화 1만원 남짓이었으니 같은 시간대에 한국에서 일하는 대리기사들보다 훨씬 박한 수입인 셈이었죠. 하지만 그렇게라도 열심히 일해 얼마간 차곡차곡 돈을 모은다면 당시 에도가 처해 있던 경제적 곤경에서 어떻게든 빠져나올 실마리가 되어 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에도는 그때까지도 종종 메이의 꼬스에서 밤을 지내곤 했습니다. 물론 메이의 두 아이들은 물론 엔티까지 얹혀 살고 있던 메이의 꼬스 안에서 함께 잠자리를 폈던 것은 아닙니다. 에도는 그 문간 신발 놓는 곳에 담요를 대충 깔고 잠을 잤다는 거에요. 그 장면을 머리 속에 그려보면서 난 마음이 좀 짠해 지기도 했습니다. 그건 거의 노숙자 수준의 생활이었기 때문이었어요.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메이도 그런 에도를 한편으론 측은히 여겨 에도가 문간에서 잘 때면 방문 자물쇠를 잠그지 않았고 그래서 폭우가 몰려와 빗물이 세차게 들이치는 밤에는 그가 문간 안으로 슬며시 들어오는 것도 묵인했다고 하더군요.

 

회사엔 온수가 나오는 샤워시설과 탈의실 공간도 대충 갖춰 놓아서 직원들이 자기 사물함에 여분의 옷가지와 수건 등을 가져다 놓기만 하면 외박하고서 세수도 못한 채 허겁지겁 출근했거나 스콜에 비맞은 생쥐꼴이 되어 외근에서 돌아와서도 회사에서 말끔하게 꽃단장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도는 그렇게 준비된 환경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에도는 그 당시 점점 꾀죄죄한 몰골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건 경제적 여유는 물론 다른 것을 둘러 볼 마음의 여유도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상황을 난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에도는 원래 꽤 멋을 부리던 친구였어요. 여러가지 모양의 모자들이나 선글라스를 매일 바꿔쓰고 나왔고 오토바이용 자켓이나 구두, 심지어 장갑마저도 당대의 유행에 민감하게 여러 벌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멋부림이 도를 넘었다 싶던 무렵 그는 한창 회사돈을 횡령하며 그 돈으로 멋을 부렸던 것이기도 했죠. 그리고 재혼하신 후 돌아가신 아버지 덕택에 에도는 친어머니와 새어머니 두 분을 데뽁(Depok)과 찔레둑(Ciledug)에 각각 모시고 있었고 양쪽 모두에 분가한 누나와 어린 여동생이 있었으므로 사실 언제라도 돌아갈 곳이 있었던 것인데 그는 메이와 사귀던 시절을 포함해서 내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한동안 뜨븟(Tebet)이나 빠사르 밍구(Pasar Minggu) 쪽에 굳이 자기 꼬스를 별도로 얻어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노숙자처럼 꾀죄죄한 모습이 되어 메이의 꼬스 문간에서 자곤 한다는 사실에 난, 그렇다면 그가 그동안 살던 꼬스에선 방을 빼야 할 정도로 돈문제가 꼬였던 것인지(그래서인지 내가 메이와 에도, 무하마드 등을 위해 조하르 바루에 한 주택을 회사 기숙사로 임대했을 때 그는 쌍수를 들며 환영했었죠), 그렇다 하더라도 데뽁이나 찔레둑의 두 어머니 누구에게든 돌아가면 밥도 얻어 먹고 옷도 갈아입을 수 있을텐데 그러지도 못할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은 아닌가 의아해 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데뽁에 사는 엄마가 집 산 돈 할부금을 에도가 내는 게 맞아?”

 

전에 그런 얘기가 나온 적이 있었죠. 난 메이에게 다시 물었지만 메이도 이번엔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집값이라는 게 한국에 비해 대충 10분의 1정도인 경우가 많고 그것도 자카르타가 아닌 데뽁 변두리의 집이라면 가격은 훨씬 더 내려가겠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 할부금이라는 게 야간버스 차장 아르바이트 따위를 해서 충당할 수 금액일 리는 절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메이의 출산휴가가 시작되면서 수천만 루피아 상당의 제품재고를 무하마드와 함께 빼돌린 정황도 잡히고 급기야 메이가 회사로 되돌아오지 못하도록 파렴치한 횡령범의 프레임을 뒤집어 씌우려던 음모에 가담했다는 분명한 정황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메이와 3년 넘게 결혼을 전제로 교제해 온 애인사이였다는 사실, 핸드폰 카운터를 여럿 가지고 있던 시절, 에도 자신은 물론 시댁이 될 지도 모르는 데뽁의 에도 어머니 댁에 메이가 경제적으로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그를 소개해 준 최사장의 말링핑 납원석 사업장에서 현지 불법채굴업자들에게 속아 손해를 낸 적잖은 구매대금을 내가 책임지고 대신 갚아주며 그와 메이를 곤경에서 건져 주었다는 점 등을 생각하면 에도는 절대 그래서는 안되는 친구였습니다. 그 즈음에 그는 야간버스 차장 아르바이트도 이미 그만 둔 눈치였어요.

 

반둥 수금액을 둘러싸고 헤르니와 에도가 합작하고 나머지 직원들이 침묵함으로써 암묵적으로 지원하여 출산휴가중이던 메이를 회사 횡령사건의 결정적 배후로 몰아가려던 시도는 나와 메이가 그 의도를 간파하면서 오히려 메이가 출산휴가기간을 다 채우기도 전에 회사로 복귀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내가 만류해도 소용이 없었어요.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복마전같은 회사로 복귀하는 것은 앞으로 산모에게 적잖은 후유증을 가져올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메이의 의지는 단호했고 또 어리석을 만큼 자신의 건강과 젊음에 자신만만했습니다. 메이는 2년전 끼스타 절제수술을 하고서 그 절개선 밴디지에 아직도 피가 스며 나오는 수술 후 사흘째 되던 날에 자기 밥값을 하겠다며 나 몰래 기차를 타고 보고르 거래선에 수금하러 간 적도 있었어요. 물론 그 거래선의 나이많은 엘리 아주머니가 메이를 체포해 엄청난 잔소리 폭탄을 퍼부으며 다른 한편으론 내게 연락해 하면서 메이의 그날 모험은 종지부를 찎었죠. 그런 전력도 있었으니 제왕절개분만한 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아 업무에 완전복귀하는 것을 메이는 자기 체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메이가 복귀하자 사무실 분위기는 술렁거렸고 직원들은 분주해졌습니다. 그들은 메이 주변에 모여들어 이런저런 얘기들을 끝도없이 쏟아내기 시작했는데 내가 보기엔 그들이 이미 저질러 버린, 그래서 머지않아 피치못하게 발각될 사고들에 대해, 업계 전문용어로 미리 뼁끼를 치는것 같았습니다. 사실 나도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주시했죠. 특히 에도와 무하마드가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것은 그 뒷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메이는 에도에게 찬바람이 쌩쌩 불도록 매우 냉정하게 대했는데 그게 좀 도를 넘는 듯 보인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메이가 출산을 하고 산후조리를 하던 그 몇 주 동안 회사에서 발생했던 문제들 말고도 내가 모르는 어떤 중대한 사건들이 메이와 에도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게 아닌가 내심 궁금해 했었죠.

 

그러다 벌어진 일이 로벳 사건이었어요.

로벳은 우리가 흔히 로버트라고 읽는 Robert의 인도네시아식 발음이지요. 현지인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는 것인지 몰라도 이 친구들이 마이클, 저스틴, 이본느, 찰스, , 켈리, 크리스, 아놀드, 제니퍼 등등의 지극히 서구틱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왠지 아직도 손발이 오그라듭니다. 예전 인도네시아 초창기 시절 내가 일하던 공장의 암본 출신 아리스라는 인사과장의 이름이 아리스트텔레스라는 본명을 줄여 부른 거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처럼요. 그 아들 이름이 소크라테스라는 걸 알았을 때엔 거의 숨이 막힐 듯 터져나오는 웃음을 아리스 앞에서 간신히 참아야만 했습니다.

 

로벳은 원래 카라와치의 수퍼몰에서 근무할 때 우리 제품을 할부로 구매한 후 첫 할부금을 내기도 전에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 친구였고 그 당시 우린 그런 도망자 10여명을 여러가지 경로로 추적중이었어요. 그러다가 카라와치에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간 지역의 한 미용실에서 로벳이 일주일 전부터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이걸 보고한 헤르니는 자기가 판매한 것이니 자기가 책임져야 할 마당에 이런 정보를 접하면 당장 날아가 해결해야 마땅한데도 왠지 좀 미적거리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 주 일요일날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 날 로벳을 잡으러 가겠다고 나서며 에도를 붙여 달라고 요청해 왔지요. 원래 평소의 조합은 헤르니가 무하마드와 한 조가 되고 에도는 엔티와 한 조를 이루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헤르니를 무하마드에게 붙인 이유는 음험한 무하마드를 아직 어린 엔티가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은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남의 파트너의 동행을 요청하는 것이 좀 석연치 않긴 했지만 어차피 무하마드도 비번인 휴일이었으므로 별 의심없이 수락하고 유류비 등 활동비를 미리 지급해 주었습니다.

 

일요일 오후 1시경 헤르니는 로벳으로부터 제품을 회수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사실몇 개월간 무상으로 제품을 사용한 셈이니 그간의 사용료를 요구해야 하는 것이 마땅했지만 온갖 트집을 잡으며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려는 상대방에겐 괜히 시간과 노력만 허비하는 일이 되기 쉬웠고 심지어 예상치않은 사건으로 비화될 빌미를 주는 일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제품을 회수한 것만으로 로벳의 도주사건을 일단락이 된 것이라 생각했지요.

 

그런데 두시간쯤 후에 헤르니로부터 다시 문자메시지가 왔습니다. 로벳 일당의 습격을 받아, 방금 전 회수한 제품은 물론 자기 핸드백까지 뺏겼다는 얘기였습니다. 붙잡힌 도망자가 회수된 제품을 되찾으려고 반격을 해왔다는 얘기는 그 전까지 한번도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난 에도에게 전화를 했고 에도의 설명은 이랬습니다.

 

로벳이 근무하는 미용실에 도착해서 제품회수할 때까지는 순조로왔는데 그 미용실이 있는 주택가컴플렉스를 빠져나올 즈음 주택가 입구에 로벳 일당이 기다리고 있다가 에도의 오토바이를 습격해 뒤에 타고 있던 헤르니의 핸드백을 채뜨렸다는 겁니다. 회수한 제품은 그 핸드백 안에 들어 있었고요. 그러더니 로벳 일당들은 근처의 상가로 도망쳐 들어갔고 에도가 그 뒤를 쫒았지만 상가 뒷문으로 빠져나간 로벳 일당들은 거기 대기하고 있던 일련의 오토바이들 뒤에 올라타고 도주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에도와 헤르니는 아까의 그 미용실로 돌아가 로벳의 주소 등 신상명세를 물었지만 그런 자료는 보관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로벳은 그 미용실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니, 최소한 그렇게 보고를 받았죠.

 

다음 날 사무실에서 다시 구두로 보고를 받으며 난 이런 어처구니없는 초유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어요. 기본적으로 이 친구들의 보고를 믿을 수 없었지요. 그들이 보고한 상황은 현지 TV의 스토리가 허술한 통속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였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 상황에 처하지 않았으니 내가 상상하고 추론하는 것은 오로지 보고된 내용만을 기초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에도와 헤르니가 제품을 회수해서 나오는 동안 미용실에 있던 로벳이 어느새 자기 일당들을 동원해 주택가 입구에 진을 치고 있었다는 것부터가 매우 부자연스러운 전개였어요. 로벳은 주택가 입구로 순간이동을 한 것일까요? 보고받은 대로라면 로벳 일당은 최소 6명 정도였다는 얘긴데 로벳은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일당 5명을 어딘가에 비상대기시켜 놓고 있었다는 얘기일까요? 게다가 그들이 뛰어 들어갔다는 상가는 한국식 상가가 아니라 이 나라 루꼬(Ruko) 형태의 상가일텐데 루꼬에 뒷문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물론 루꼬 여러 동을 튼 큰 식당 같은 곳엔 별도의 통로가 더 있을 수도 있었지만 대개의 경우 좌우의 루꼬를 터서 넓히지 앞뒤의 루꼬를 트는 경우는 거의 없지요. 그래서 그 별도의 통로라는 것은 뒷문이 아니라 정면을 향하고 있는 또 다른 문일 경우가 100%이고 그래서 이 스토리에 등장하는 로벳 일당의 오토바이들은 그들이 뛰어 들어간 그 문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되지요. 오른쪽 문으로 뛰어 들어갔다가 왼쪽문으로 도망쳐 나왔다는 얘긴데 뭐, 코메딘가요?  앞문으로 들어가 뒷문으로 빠져나가면서 추격을 따돌리는 것은 우리가 헐리웃 영화에서도 많이 보았던 장면입니다. 대개의 경우 우리의 상상력이란 우리가 어디에선가 이미 보고 들은 것들을 뛰어 넘지 못하죠.  더욱이 그 제품의 판매가는 고작 85만 루피아, 한화 10만원이 채 되지 않는 것이었는데 그건 이 얘기에 등장하는 양아치들 한 팀이 주택가 추격전을 벌일 만한 가치가 되지 않는 금액이었습니다.

 

게다가 나중에 메이가 해준 얘기는 그런 의심을 더하게 했어요. 일요일 당일 내가 에도에게 전화해서 들었던 것 외에도 메이 역시 헤르니에게 자초지종을 물었었죠. 그런데 전반적으로 비슷한 맥락인 두 사람의 얘기가 디테일에서는 조금씩 차이가 났던 거에요. 사소한 것들을 모두 차치하고 나름 좀 굵직한 차이는 이런 거였어요.

 

거기서 갑자기 로벳이 나타나 바로 대금지불 할 테니 물건 돌려달라고 했데요. 그래서 물건 돌려주고 ATM에서 기다리는데 ATM에 뒷문이 있었다는 거에요. 로벳은 그 뒷문으로 도주하고…”

 

메이에게서 들은 헤르니의 버전에서는 제품을 뺏긴 과정이 좀 틀리고 등장인물들도 로벳과 오토바이 대기하던 한 명, 그렇게 2명으로 대폭 줄어들어 있었습니다. 핸드백은 돌아오는 길에 소매치기 당했다는 거였고요.

 

[얘들이 같이 간 건 맞아?]

 

난 이 일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잠시 생각해야만 했습니다. 어차피 결론은 회수한 물건을 로벳이 다시 빼앗아 도주했다는 것이었어요. 마치 조서를 꾸미는 형사처럼 디테일의 차이점을 따져 묻는 것은 휴일에 복잡한 일을 처리하려 했던 두 사람의 노력과 얼마 전 받은 월급 잔액이 50만 루피아 가량 들어있던 핸드백까지 도난당했다는 헤르니의 손해를 감안하면 좀 미안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85만 루피아라는 금액이 6명의 양아치가 추격전을 벌일 금액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나름대로 고생하고 돌아온 직원 두 명에게 제대로 설명하라고 윽박지를만한 금액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지요.

 

하지만 그때 조금만 더 냉정했다면 그 제품을 로벳에게 다시 뻇겼다는 증거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회수한 그 물건을 실제로는 에도와 헤르니가 회수한 즉시 다른 곳에 팔아 먹고 돈을 나누어 가졌을 수도 있는 일이었지요. 그러니 그 6명의 양아치들과 그 추격전 자체가 애당초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헤르니가 도난당했다는 그 핸드백 역시 그녀가 그걸 애당초 가지고 나가기나 했었는지, 아니면 자기 꼬스에 고이 모셔놓고서 우리에겐 도난당했다고 능청을 떠는 건지도 우리가 헤르니의 꼬스를 압수수색해 보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잃어버렸다는 그 50만 루피아를 내가 대신 보전해 주면서도 회사 일을 하는 과정에서 도난당했다는 그 핸드백을 새로 사주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할 정도로, 그 당시 이미 수많은 내부 사고들이 난 후에도 난 미련할 정도로 직원들의 말을 전반적으로 믿어주려 애쓰는 편이었어요.

 

물론 시간이 좀 더 흐른 후에는 그날 두 사람이 실제로 로벳을 잡으러 가기나 했었던 것인지부터 의심하게 되었죠. 그들은 로벳에게 팔았다는 그 제품을 애당초 다른 곳에 팔아 대금을 이미 공중분해 해 버린지 오래고 그날 로벳을 잡고 제품을 회수한다는 명목으로 회사 오토바이를 타고 회사에서 주는 활동비를 받아 내게 보고하지 않은 다른 거래선들을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돌며 또 다른 사고를 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가 너무 깊숙이까지 의심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이 말한 스토리가 담고 있는 디테일의 힘도 있었던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미 여러 번 언급했지만 난 에도가 어떤 개연성 있는 스토리를 그럴 듯하게 그려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헤르니는 그 보다 좀 나은 편이었지만 인도네시아 여자들이 지어내는 얘기들은 일반적으로 TV 시네트론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어요. 자신은 부당하게 고통받고 있는 미모의 여주인공들이고 언젠가 재벌 2세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는 통속적인 스토리 말입니다. 그러니 카라와치 주택가에서의 추격전 얘기는 분명 그걸 써준 작가가 있어야만 했었죠. 특히 헤르니의 핸드백까지 강탈당했다는 대목은, 그런 상황에서 내가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게 될 것임을 계산한 작가가 의도적으로 추가하고 연출한 부분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에도와 헤르니의 배후를 의심해야만 했는데 가장 심증이 가는 무하마드는 자기가 친 사고에 대해서도 얘기의 앞뒤를 맞추지 못하는 녀석이었어요. 그러니 도대체 누가 그런 치밀한 계산을 하면서 각본을 썼던 것일까요? 아니면 이게 모두 순전히 우연의 일치였을 뿐일까요?

 

이런 상황에서 메이가 출산휴가에서 복귀한 후 거의 매일 에도와 함께 영업외출을 나간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지시한 것은 아니지면 메이 스스로도 에도를 집중 감시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헤르니는 운전사 에코의 오토바이를 탔고요. 에도는 메이와 함께 나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아무 말 없이 메이를 따라나서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다른 사정이 있어 메이가 외출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과 나가게 될 때마다 뭔가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살렘바(Salemba)의 나쓰 살롱(Nath Salon)이라는 곳에서 에도가 제품을 판매한 일이었습니다. 그곳은 원래 무하마드가 판매보고를 하려 했던 곳인데 우린 무하마드가 지난 3월 횡령사고를 낸 이후 그에게 제품을 가지고 나가거나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을 박탈해 버린 상황이었습니다. 당연히 무하마드의 요청은 거절되었는데 일주일쯤 후 바로 그 곳에 에도가 판매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세 개씩이나요. 그건 더 이상 판매를 할 수 없게 된 무하마드의 판매커미션 계정을 에도가 관리해 주고 있다는 냄새를 물씬 풍겼습니다. 언젠가부터 느껴왔던 것처럼 입사가 훨씬 빠른 에도가 회사 후배인 무하마드의 꼬붕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일일보고를 받은 시간이 밤 8시반을 넘어가고 있었는데 난 에도와 무하마드를 불러 해당 건의판매를 취소하도록 강력히 지시했습니다. 수량도 있고 금액도 장난이 아니어서 그걸 취소하라는 것이 속쓰린 일이긴 했지만 그게 모두 불량채권이 되어버리는 것보다는 백배 나았습니다. 그런데 에도와 무하마드는 자꾸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난 메이를 불러 당장 나쓰살롱에 전화를 하도록 했지요. 그러나 일반전화는 물론 두 개의 핸드폰 번호 역시 신호만 갈 뿐 상대방은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일과 후라 해도 전화를 모두 꺼놓은 것이 아니라면 에도의 판매보고서에 적힌 연락처가 모두 사실과 다르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어요.

 

사실은 물건을 산 사람은 나쓰살롱 사람이 아니고 거기서 소개해 준 다른 사람인데…”

 

상황을 수습해 보려는 에도의 설명은 전혀 방향을 잘못 잡았습니다.

 

거기 사람도 아니면 연락처는 왜 거기 걸 적어 놓은 거야?”

그게…, 그곳 미용사 아구스가 책임진다고 해서….”

여기 구매자 이름도 아구스로 되어 있는데? 그럼 정말 구매한 사람 이름은 뭐야?”

그건….”

 

에도의 대답은 점점 꼬여갔습니다.

 

다 시끄럽고,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 제품들 회수해서 내일 아침 나 출근하기 전까지 내 책상 위에 올려 놔. 그렇지 않으면 너희 둘, 내일 나랑 나쓰살롱 가서 아구스를 함께 만나 보자. 이름도 모르고 연락처도 모르는 사람한테 물건 던져 놓고 나중에 어떻게 수금할 거야?”

 

물건은 나갔는데 물건을 샀다는 사람의 명세는 쏙 빠져 있는 상황이었어요. 누가 봐도 위험한 판매보고였고 비록 그 보고를 에도가 했지만 전후사정을 따져보면 무하마드가 물건을 빼돌린 것이라고 난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9시가 되어 가는 상황에서 이미 판매한 물건을 내일 아침 8시까지 내 책상 위에 되돌려 놓으라는 것은 시간적으로 절대 불가능한 지시였지만 그렇게라도 밀어붙여 놓지 않으면 며칠 후 구매자가 도주했다는 보고를 받을 판이었어요.

 

그러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 판매했다는 물건이 내 책상 위에 올라와 있었던 것입니다. 제품창고는 밤세 잠겨 있었으니 창고에서 빼내 임시변통으로 해 놓은 것이 아니고 제품을 회수해 온 것이 분명했습니다.

 

무하마드 저 놈, 그 동안 우리 물건 빼돌린 것들 모아 놓은 창고 같은 게 있는 모양이야.”

 

아침에 제품을 내 책상에 돌려놓은 것은 에도가 아니라 무하마드라는 거였어요. 그게 팔았다는 제품과 같은 종류, 같은 숫자였지만 물건 세 개를 한 사람에게 팔았다는 것 자체도 대개는 세군데에 팔아 놓은 것을 보고편의를 위해 한군데라고 보고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므로 그런 상황들을 모두 감안하면 그 밤시간에 그 거리를 달려 제품들을 모두 회수해 온다는 게 아무래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딘가 특정장소에서 그 제품들을 필요한 수량만큼 들고 온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일이었죠. 예전 스톡이 맞지 않아 난리가 났을 때 무하마드가 계단참 밑의 창고에서 차이나는 수량의 제품들을 들고 나왔던 것처럼 말입니다.

 

난 에도를 다시 불러 허심탄회한 얘기를 해야 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쓰 살롱에 팔았던 제품이 무하마드의 손을 통해 돌아온 것은 에도가 그의 꼬붕노릇을 하는 것처럼 이번엔 무하마드가 에도의 엉덩이를 가려준 셈이었는데 두 사람 사이에 모종의 긴밀한 협조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는 또 다른 증거이기도 했어요. 난 그들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 궁금했고 잘 타이른다면 에도가 마침내 입을 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처음 금전사고가 났을 때부터 그 돈의 용도에 대해 철저히 함구했던 것처럼 에도는 결코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난 그게 자신을 버린 메이에 대한 유치하기 그지없는 원한이 사무친 것이리라 짐작할 뿐이었어요.

 

이번엔 라와망운에서 사고가 터졌습니다.

밤늦게 그 지역 마지막 방문처을 출발한 에도와 메이의 오토바이가 한 한적한 골목을 돌아 나오다가 두 남자가 타고 있던 다른 오토바이와 지나치며 살짝 스쳤는데 그 두 남자가 사과하는 에도를 끌어 내려 마구 짓밟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날 사무실에 돌아온 에도는 15라운드 난타전을 벌인 복서처럼 양쪽 눈이 퉁퉁 부어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고 메이 역시 왼손 손목이 무섭게 부어 올라 있었습니다.

 

사실 별로 잘못한 것도 없었고 그냥 살짝 스친 것뿐이었어요. 그것도 오히려 그쪽에서 우리 오토바이에 위험하게 다가섰기 때문이었는데 에도가 아무리 사과를 해도 소용이 없었어요. 저 병신은 대항도 못하고 설설 기기만 했고요. 내가 말려도 보고 헬멧도 휘둘러 보고 도와달라 소리 질러대도 그 사람들 정말 미친 듯이 에도를 두들겨댔어요. 무슨 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다고요.”

 

에도는 병원에 가자는 걸 사양하고 내 방에서 가져온 구급약통으로 응급처치만 받았습니다. 학창시절 따우란(Tauran –패싸움)으로 잔뼈가 굵은 메이는 평생 아버지로부터 겪은 가정폭력으로 멧집에도 자신이 있었는지 에도가 쳐맞는 것을 온몸으로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던 게 분명합니다. 그나마 그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었고 메이도 손목만 삐는 것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어요.

 

물론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어요. 그런 사고가 난 타이밍이 말입니다. 메이가 출산휴가를 가 있던 근 3개월 동안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외출시 주도권을 쥐고 있던 에도가 이제 메이에게 꽉 묶여 다닌지 막 일주일쯤 지나던 때였죠. 말하자면 전엔 몰래 사고를 치고 다니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던 상황에서 이제 전혀 그럴 수 없는 상황으로 변해 있던 때였죠. 그때 누군가 와서 별것도 아닌 빌미를 잡고 에도를 흠씬 팼던 것입니다. 지론이지만 우연은 그렇게 벌어지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에도가 맞았다는 것 말고 다른 피해는 없었어요. 오토바이도 무사했고 제품이나 돈을 뺏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밤늦게 다니지 않도록 시간과 목적지를 조정하고 제한하는 선에서 대책을 마련하고 다음 날에도 평소와 같은 업무가 계속되었습니다. 우린 그때 에도의 상황이 점점 임계치에 다가서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때 에도는 도움을 청했어야만 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아직 동정적인 입장이었고 메이 역시 이미 애인관계는 오래 전 청산되었지만 에도의 상황을 나몰라라 하는 입장은 아니었죠. 조금만 더 솔직해지면 되었을 그 시기에 에도는 정말 도움을 줄 수 있었던 사람들에게 입을 더욱 굳게 닫기로 마음 먹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상황은 파국을 향해 급속도로 치닫기 시작했지요.

 

라와망운 사건으로부터 2주쯤 지난 어느 날, 엔티와 함께 나간 에도는 밤 11시가 넘도록 사무실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해도 에도와 엔티 둘 모두 전화기가 꺼져 있었고 어쩌다 신호가 가도 그들은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날은 수금이 가장 많은 날 중 하나였으므로 그런 상황은 그들이 뭔가 사고를 당했거나 그들 스스로가 무슨 사고를 친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만약 수금한 돈을 들고 도주한 것이라면 둘 중 누구 하나와는 연락이 되어야 했습니다. 부부도 아닌데 에도와 엔티가 손잡고 도주했을 리는 없었기 떄문입니다. 게다가 당시 엔티는 메이의 꼬스 가까이에 있는 와르뗄(Wartel) 주인 동생과 연애를 시작했다는 얘기를 메이에게 들었던 바도 있었어요. 또한 그 동안 직원들 여럿이 금전사고를 내고 도주하면서 둘이 동시에 도주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사고가 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그때 라와망운에서의 사건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도 그때 막 들었죠. 어쩌면 에도의 등에 칼을 겨누고 윽박지르는 놈들이 있었고 에도가 그놈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회사돈에 손을 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입니다. 그렇다면 엔티는 왜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일까요? 저녁 8시경부터 에도와 엔티에게 연락을 시도하다가 시간이 11시를 넘자 이 친구들이 어딘가에서 덤프트럭이나 트레일러에 깔리기라도 한 게 아닐까 하며 온갖 불길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메이에게도 이미 퇴근한 다른 직원들에게 연통을 돌려 보도록 요청을 하고 난 혹시 사고가 난 게 맞다면 병원에 전화를 걸어야 하나 아니면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봐야 하나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우린 자카르타와 인근 위성도시 전체를 주름잡는 중이었는데 이 친구들이 사고가 났다면 도대체 어디서 사고가 났을 지 역시 아예 가늠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정이 거의 다 되어 메이가 사무실로 돌아왔습니다. 뒤이어 헤르니와 에코도 돌아왔지요. 더 이상 연락이 안되면 우리 쪽에서라도 무작정 찾아 나설 생각이었어요. 바로 그때 전화가 왔습니다. 엔티였어요. 통화음질이 좋지 않아 무슨 말을 하는데 잘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곧 사무실에 도착할 거라는 말만은 분명히 알아 들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시간을 하염없이 흘렀고 엔티와는 다시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에도의 전화는 여전히 꺼져 있었고요. 난 이게 정말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 전전긍긍했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새벽 1시가 다 되어서 사무실 문이 열리고 마침내 에도와 엔티가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에도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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