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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직원 활약사

영업직원 활약사 (15)

beautician 2013. 2. 25. 05:27

 

거래선을 찾아가 사실확인 하는 것은 꼭 해야할 일이었지만 점점 더 거북하고 곤혹스러운 일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에도의 판매보고나 수금보고는 거의 대부분 사실과 달랐습니다. 당연히 해당 거래선들과의 얘기가 길어졌지요.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잡아떼기도 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책상을 땅땅 두드리며 큰소리로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그들이 에도의 요청에 따라 우리 본사 전화확인에 거짓말로 답했다는 것이었어요. 그들은 에도가 돈과 제품을 빼돌리는데 분명 협조를 한 것이죠. 그들의 논조는 어찌되었든 에도가 당시 우리 직원이었으니 모든 문제는 우리가 직원관리를 제대로 못한 탓이라는 것이었고 그래서 그들이 에도와 공조하여 내 회사에 입힌 피해를 한푼도 책임질 수 없다는 입장이었어요.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들이 에도에게 협조했던 이유는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수년동안 에도와 잘 알고 지냈기 때문이라든가, 회사보다 에도 개인을 더 믿었다거나 하는 이유때문이 아니었어요. 에도는 정상가격 200만 루피아 짜리를 현금판매하는 조건으로 30-50만 루피아의 헐값에 던졌으므로 그런 상황에서 에도가 장난을 치고 있다거나 그 대금을 에도가 꿀꺽 하리라는 낌새를 이미 눈치챘을 것이 분명했음에도 헐값에 제품을 인수하면서 에도가 요청하는데로 입을 맞춰 주는 것이 거래선들 자기들에게도 적잖은 이익이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와는 좀 다른 경우들도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그건 대부분 내가 초창기에 개발했거나 출산휴가 직전까지 메이가 직접 관리하고 있던 거래선들에게서 들은 얘기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집단이었고 나나 메이와 친분이 깊은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에도의 사고를 수습하면서도 설마 에도가 그들에게마저 장난을 쳤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몇몇 거래선들에게서 들은 얘기들은 실로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어요.

 

에도는 그들 거래선에서 미용사들 발을 잡고 늘어지며 펑펑 울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에도가 너무나 통사정을 했기 때문에 차마 나나 메이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는 얘기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죠.

 

회사에 큰 사고를 쳐서 오늘 돈을 만들어 가지 않으면 미스터르가 날 해고할 거라고요.

제 여자친구가 제왕절개수술을 해야 하는데 미스터르가 가불해 줄 리가 없으니 이걸 팔아서라도 우선 수술비를 돌려 막아야 해요. 제발 도와주세요.

미스터르 아들이 호주에서 사고가 나서 급히 돈을 보내야 한데요. 오늘 내가 2천만 루피아를 만들어 가지 못하면 미스터르가 자살이라도 할지 몰라요.

 

이따위 소리를 해댔다는 것입니다.

그의 얘기에서 등장하는 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이거나 엄청난 사고수습을 위해 감당치도 못할 큰 돈을 영업직원들에게 만들어오라고 강요하는 막무가내 사장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통하지 않는 곳에서는 자신이 사실은 메이를 임신시킨 남자친구인데 같은 회사에 애인이나 부부가 함께 일할 수 없다는 게 사장인 내가 정한 룰이라 나 몰래 메이의 출산비용을 대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하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난 기가 막혔습니다.

 

그러나 또 몇몇 거래선에서는 별다를 설명도 없이 무조건 펑펑 울면서 물건을 현금으로 사달라고 보채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적잖은 거래선들이 하다못해 ATM에서 돈을 뽑아와서라도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제품을 구매해 주었고 우리 제품에 대한 충성도가 정말 높았던 몇몇 거래선들은 결국 제품을 구매하지는 않았지만 따로 상당한 금액의 돈을 에도에게 빌려주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에도가 자지러질 듯 울면서 구걸하듯 판매하던 곳에선 공통적으로 이런 얘기가 들렸습니다.

 

당신들도 좀 작작 하셨어야지! 에도가 아무리 무슨 잘못을 했다해도 그렇지, 그 난리를 치면서 물건 강매를 하도록 해결사들 붙여서 가게 앞까지 쫒아와 감시하고 위협하게 만들어요? 에도가 그러던데, 여기서 물건 못팔고 나가면 저 밖에 기다리는 회사에서 보낸 사람들한테 자기 반 죽는다고? 당신들 일을 무슨 그런 식으로 해요?”

 

그런 얘기를 들었던 곳에선 늘 그 거래선 밖에 심상찮은 인상을 한 덩치 두 명이 에도가 나올 때까지 어슬렁거리곤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에도가 거래선에서 나올 때 특별히 아는 척을 한 것은 아니지만 에도가 거래선 안에 있는 동안은 몇 시간이고 그 앞을 서성이다가 에도가 나오면 짐짓 모른 척 하면서도 에도 뒤를 따라 함께 사라졌다고 합니다.

 

해결사 두 놈??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에도가 된통 얻어맞고서 메이와 함께 사무실에 돌아왔던 그 라와망운 사건 말입니다. 그때 시비가 붙었던 상대편들도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두 명이었죠. 난 그들이 동일인물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반값이 아니라 반의 반값이라도 좋으니 꼭 사달라고 통사정 하더라고요! 벌벌 떨면서!!”

 

에도를 뒤쫓던 놈들이 정말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대충 그림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에도는 분명 뭔가 사고를 치고서 빚독촉을 받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어요. 그의 데뽁 엄마가 집산 돈을 에도가 할부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당시 이미 그는 빚에 쫒기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계속 금전사고를 내고 또 덜미를 잡혀 호되게 혼나고서도 계속 돈에 손을 댔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기 꼬스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어 메이 꼬스 문간에서 자야하는 상황까지 몰려 갔었는데 메이가 출산휴가에서 돌아오자 상황은 에도에게 더욱 불리하게 변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은 엔티와 함께 외근 출발을 했지만 아마도 출발과 동시에 어딘가에 내려놓고서 회사에 보고한 일정과는 전혀 다른 일정을 그 두명의 해결사에게 등떠밀려 다녔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메이가 돌아오자 그나마 불가능하게 되었죠. 거의 매일 메이와 함께 외근출발을 해야 했으니까요. 결국 에도가 더 이상 돈을 빼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되자 해결사들이 기회를 엿보다가 라와망운에서 에도를 손봤던 것입니다. 물론 메이가 눈치채지 못할 방법으로 말이죠. 하지만 메이는 여전히 대부분 에도와 함께 외출했으므로 어쩌다가 에도가 혼자, 또는 엔티와 출발하는 날이 오면 그 날은 무리해서라도 적극적으로 돈을 빼돌려야만 했던 겁니다. 그 와중에 해결사들이 따라 붙어 위협하며 에도의 등을 떠밀고 그러니 에도는 거래선에 들어가 나이많은 미용사들에게 애걸복걸하며 구걸하듯 우리 물건들을 덤핑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메이의 귀환과 함께 에도가 사고를 칠 수 있는 절대시간이 줄었다는 것은 에도에게 있어 치명적인 일이었고 그래서 엔티와 함께 나갔다고 주장하던 그 날 새벽 1시에 피투성이가 되도록 얻어 맞고 사무실에 들어오는 사건까지 벌어졌던 것이죠. 예정보다 빨리 업무에 복귀한 메이가 에도는 얼마나 미웠을까요? 메이가 돌아와 버린 상황에서 직원들은, 아니 특히 에도는 현장에서 사고 칠 기회를 좀처럼 얻지 못했으므로 결국 파국이 오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말도 안되는 금액을 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가불을 요구했던 것이고 도주하던 전날 밤 감언이설로 찔레둑 새엄마의 집문서를 손에 넣으려 했던 것이었죠. 퍼즐의 조각들이 맞아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분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우선 에도가 과연 어떤 경위로 그런 빚을 지게 되었느냐 하는 점은 아직까지도 의문으로 남았습니다. 남자가 그런 감당치 어려운 빚을 지는 경우라면 도박이나 마약, 또는 여자문제인데 그런 것들을 내가 알고 있던 에도와 엮어서 생각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에도가 교통사고를 내거나 어떤 다른 사건사고에 말려 들어 무서운 아저씨들에게 거액의 합의금을 줘야 하는 상황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에도는 끝까지 입을 다물었으므로 우린 단지 예상만 해볼 뿐이었어요.

 

도박이나 마약, 무서운 아저씨들의 합의금 등을 생각하게 된 것은 에도를 따라붙었다는 해결사 두 명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에도에게 집요하게 해결사를 따라 붙일 제 3자나 깡패조직을 생각해 내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어요. 가장 혐의가 짙던 무하마드를 생각해 볼 수도 있었지만 그는 자기 혼자 돈을 뺴돌리기에 급급한 일개 양아치에 불과했으므로 에도를 통제하려고 해결사들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그에게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만약 이 모든 사건사고들이 에도의 빚때문에 비롯된 것이라면 에도는 어떤 식으로 다른 영업직원들에게 협조를 얻었던 것일까요? 상황으로 봐서는 매일 수금하는 족족 그 해결사들에게 몽땅 털리고 있었을 에도가 내게 얼마간이라도 수금보고를 하려면 다른 영업직원들이 수금한 돈을 에도에게 나누어 주어야만 했겠죠. 하지만 만약 에도가 수개월 동안 그런 협조를 받았다면 분명 그들에게도 에도가 뭔가 반대급부를 주었어야만 합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거니까요. 그러나 메이의 꼬스 문간에서 자고 해결사들에게 쫒기며 심심찮게 피투성이가 되도록 두들려 맞곤 하는 에도가 다른 영업직원 동료들에게 커미션을 챙겨 주었으리라고 생각하긴 무리였어요. 그리고 에도는 왜 무하마드에게 그토록 철저히 좌지우지 당하고 있었을까요? 그 퍼즐 조각들을 여전히 맞춰지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거래선드로부터 이런 소리를 듣게 되는 상황이 창피하지 않을 리 없었습니다. 결국 난 거래선에 잘 들어가지 않게 되었고 내가 차에서 기다리는 동안 메이가 거래선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다가 사리나 (Sarinah) 백화점 건너편 스카이라인 빌딩 옆에 붙은 쇼핑센터 안에 있는 한 거래선을 만나고 나온 메이가 말도 없이 금방이라도 죽을 듯 굳은 표정을 하고 있더니 멘똉 쪽으로 10분쯤 차를 몰아 나가자 그제서야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난 영문도 모른 채 울음이 그치길 기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도네시아 미용사들의 성비는 64 정도로 남자들이 많습니다. 그 남자들 중 80% 정도는 벤쫑들입니다. 생물학적으론 남성이지만 성정체성이 대체로 여성인 사람들이죠. 그래서 지극히 남성답지만 다른 남성을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게이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벤쫑들도 남성역할의 레꽁(Lekong)과 여성역할의 뻬웡(Pewong)으로 나뉘어지죠. 문제는 벤쫑도 게이도 아닌 에도가 밤마다 이들의 꼬스를 찾아 다니며 하룻밤 20만 루피아라는 헐값으로 자기 몸을 팔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동글동글하고 예쁘장한 인상으로 벤쫑들 사이에 인기가 있었지만 75년생인 에도는 당시 이미 30대 후반으로 들어서 있었고 성적 매력을 물씬 풍기는 그런 타입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에도가 20대 초중반의 어린 벤쫑들에게 몸을 팔겠다고 자정이 넘은 시간에 무작정 꼬스로 찾아들곤 했다는 거였어요. 에도는 그렇게까지라도 해서 돈을 만들어야만 했을 만큼 절박했던 거죠.

 

사리나 쪽에서 메이가 들었던 얘기도 에도의 매춘에서 시작했지만 좀 더 심한 방향으로 흘러 갔습니다. 에도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성을 강매했는데, 당연히 절대 원치 않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겠죠. 매춘이 성사되지 않으면 에도는 비굴할 정도로 온갖 불쌍하고 비참한 얘기들을 지어내면서 돈을 빌리려 했답니다. 그런데 벤쫑들이 사는 꼬스의 다른 방엔 어린 매춘부들이나 새끼 마담들이 살기도 했고 그중 한명이 에도에게 이런 제안을 했답니다. 물론 그 벤쫑 미용사도 함께 있던 자리에서요.

 

쉬운 방법도 있어. 찾아 보면 주변에 돈벌고 싶어하는 젊은 여자 한 둘은 꼭 있어. 요즘 인터넷 시대야. 사진하고 프로필, 연락처, 이런 거 받아서 넘겨줘 봐. 회원제 매춘 사이트에 올려 놓으면 운좋으면 하루에 몇 명씩도 입질하는 경우 있어. 회원들은 다 쟁쟁한 사람들이야. 시의원, 변호사, 공무원들.  회원들한테 돈부터 미리 받는 거라고. 회원이 여자를 차로 픽업하고 호텔비 식대 전부 다 내 줘. 여자는 서비스만 잘 해주면 되는 거고 팁 주면 따로 챙기면 되는 거야. 화대는 나중에 회사에서 따로 받고. 에도, 너도 커미션 받게 해 줄게. 연락처에 네 전화번호 올려 놓으라고. 괜찮은 여자애 한 명만 올려놔도 한달에 커미션 다 모으면 꽤 돼. 그러니 한 열 명쯤 올려 놔 봐. 돈 버는 거 한 순간이라니까?”

 

돈 한푼에 절박하던 에도가 그 말에 혹 했음은 분명한 일입니다. 그 벤쫑 미용사도 에도가 그 새끼마담에게 어떤 사진을 넘기는 걸 봤다고 했고요. 메이는 그게 자기 사진이었음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메이는 출산휴가를 가 있는 동안에도 이상한 전화에 시달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돈을 이미 다 냈는데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 돈을 다 물어내라고 악쓰는 뜬금없는 전화들 말입니다. 사실 우리 일 때문에 온천지에 명함을 뿌리고 다니던 메이가 색정광들의 신음소리 가득한 이상한 전화를 밤늦게 받던 일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죠. 인도네시아에도 성도착자, 성추행범들은 한국만큼이나 많습니다. 그래서, 그렇고 그런 전화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그 몇몇 특정 전화들을 사리나에서 그 얘기를 들으며 메이가 기억해 냈던 거죠. 자기 연락처를 올려 놓았던 에도가 커미션을 받으며 메이의 연락처를 넘겨 준 것이 분명했어요. 메이는 에도가 자신에게 그런 짓까지 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센티옹의 자기 집까지 누군가 몇번 찾아 왔다는 얘기도 메이는 기억해 냈습니다. 에도는 메이의 프로필에 거주지 주소가 적힌 주민등록증 사본까지 올려 놓았던 모양이죠. 메이를 픽업하러 온 차가 센티옹의 집까지 찾아 왔던 거였어요. 그건 메이의 사진과 신상명세가 매춘 사이트 어딘가에 버젓이 올라가 있다는 얘기였고 메이가 피눈물을 흘리며 분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내가 에도에게 말할 수 없을만큼 크게 실망한 것 역시 당연한 일이었고요.

 

에도가…, 정말 그런 놈이었어? 정말 그놈이 그런 짓을 한 거야?”

 

나중에 그렇게 물었던 것이 에도가 도주한 후 몇 주 지났을 때였는데 에도가 도주하기 전 깔아놓은 지뢰들과 부비트랩들이 메이의 주변에서 여전히 맹렬하게 폭발하고 있었습니다.

 

메이의 첫 딸은 당시 메이의 어머니가 매일 아침 싸구려 프리스쿨에 등하교 시키고 있었는데 종종 학교에 데리러 오던 에도가 어느 날 자기가 메이 딸의 친삼촌이라고 속이고서 학교 매점 주인에게서 200만 루피아인가를 빌리고 갚지 않은 채 도주해서 메이가 그걸 고스란히 떠안고 만 상태였습니다.  메이는 열받을 데로 받은 상태였고 그제서야 그동안 하지 않았던 얘기들을 해주기 시작했어요. 그 얘기들은 몇 년 전부터 바로 얼마전까지의 얘기들을 망라하고 있었는데 특히 최근 벌어진 일들을 들으며 난 벌어진 입을 닫을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얘기는 병원비와 관련한 것이었어요.  메이는 뿔로마스(Pulo Mas)에 위치한 까르티카 병원(R/S Kartika)에서 제왕절개수술로 둘째 아기를 출산했지요. 당시 메이는 그동안 찾아가지 않았던 판매커미션 상당부분의 지출을 요구해 왔는데 그게 메이의 본봉 기준으로 대충 1년반치 연봉에 달하는 금액이었습니다. 원래 내가 병원비를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불과 2년전 끼스타 절제수술도 100% 회사 비용으로 했던 터라 또다시 회사가 책임지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내가 보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이던 그 돈으로 병원에서의 출산비용을 커버하고 가능하다면 초창기 육아비용도 상당부분 커버하려 했었던 것 같아요.

 

그때 나도 거의 매일 병원을 들렀지만 병원에서 메이의 이런저런 뒷일을 봐주었던 사람은 에도였습니다. 2년전 끼스타 절제수술 당시에도 에도는 메이의 병실에서 담요를 바닥에 깔고 밤을 보냈는데 난 에도가 이번에도 그런 수고를 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에도는 당시 막 출산한 메이에게 쌀쌀맞기 그지없었다고 합니다. 메이는 밤이면 병원에 홀로 남겨졌죠. 그래도 병원에서 매일 지출해야 하는 비용들이 있었는데 그걸 판매커미션을 넣어둔 은행통장의 현금카드로 지불했고 그걸 필요할 때마다 메이의 가방에서 에도가 꺼내가 경리과에서 긁었습니다. 인도네시아 병원의 시스템이란 대체로 수술비, 입원비는 선불 또는 후불로 한꺼번에 내더라도 중간중간에 들어가는 링거주사비, 붕대값, 매일의 약값 등은 매번 그때그때 결재하는 식이거든요. 그러다가 조기 퇴원하기 위해 메이가 수술비, 입원비를 결재하려 하자 잔고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절대 그럴 리 없었는데 말이죠. 다급해진 메이가 내게 도움을 요청해 왔고 난 애당초 내가 병원비를 낼 생각이었으므로 별 생각없이 해당 결재를 마쳤는데 퇴원한 메이가 은행에 확인해 본 결과 메이가 입원해 있는 동안 매일 밤 인근 조하르 바루(Johar baru) 시장의 한 ATM 기계에서 인출한도까지 꽉꽉 채워 잔고가 바닥날 때까지 매일 밤 인출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당연히 에도의 짓이었습니다. 그걸 메이가 절대 그냥 넘어갈 리 없었으니 그날 메이는 에도를 불러 박살냈을 것이 틀림없었죠. 그러니 출산휴가에서 돌아온 메이가 에도에게 그토록 차갑게 굴었던 것입니다.

 

그런 걸 왜 미리 나한테 얘기 안했어?”

 

부끄러웠겠죠.  에도는 자기가 소개해서 회사에 들어온 사람인 셈이고 어찌 되었던 거의 결혼 직전까지 갔던 사람이었으니까요.

 

사실 데뽁에서 승승장구하던 메이의 핸드폰 카운터 사업이 서서히 기울던 당시 메이를 아끼던 한 가구공장 사장 아줌마가 장롱, 침대, 경대, 소파 등등 집 한 채를 채울 만한 고급가구를 대형 트럭에 실어 보냈을 때 꼬스에 살던 메이로서는 그것을 받아 둘 공간도 마땅치 않아 돌려 보낼 때 배가 불러오던 메이는 돌려 보내는 이유를 직접 설명해 주기 위해 자기 대신 에도를 그 트럭에 태워 가구공장에 돌려 보낸 일이 있었답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얼마 후 그 가구들은 에도의 데뽁 엄마 집에서 사용 중인 것이 발견되었고 그걸 보고 놀라는 메이에게 에도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피하더랍니다. 에도가 중간에서 가로챘던 것이죠. 아직 그것도 모르던 시절, 메이의 핸드폰 사업이 망해 만삭이 되어 오던 배를 안고 센티옹 집으로 돌아가 있는 동안 데뽁 꼬스에 그동안 모아 두었던 고가의 물건들마저 모두 공중분해 되어, 메이가 첫 딸을 출산한 후 짐을 정리하기 위해 데뽁으로 잠시 돌아갔을 때 꼬스엔 그 물건들을 넣어 두었던 장롱조차도 남아있지 않았고 에도는 시치미를 떼기만 했답니다.

 

그런 얘기를 왜 이제서야 하는 거야?”

 

나도 슬슬 열이 받기 시작했어요.

어쩌면 에도는 내가 생각하던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 몇 년 간 난 그를 그렇게 생각해 왔는데 말입니다. 그렇다고 메이를 탓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습니다. 메이로서는 에도의 모든 치부를 내게 드러내 보일 이유도 사실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메이와 거래선들로부터 모든 얘기들을 들으면서 난 내게 사람보는 눈이 정말 없다는 것을 새삼 뼈저리게 절감해야만 했습니다. 에도를 뽑은 것도 나고 그를 그토록 신뢰했던 것도 나였으니까요. 게다가 무하마드는 물론 지금까지 사고를 쳤던 모든 직원들을 선택해 뽑은 것도 결국은 다 내가 한 일이었습니다. 스스로가 한심스러웠습니다.

 

그때 제가 이 얘기도 했었나요?”

 

이 글을 쓰면서 기억을 새롭게 하려고 메이와 당시의 얘기를 종종 하곤 했습니다. 그 당시엔 그토록 열이 쳐받던 일들도 이젠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날이 마침내 오고 말았어요. 하지만 메이가 꺼낸 얘기는 좀 섬뜩했습니다.

 

까르티카 병원에서 애기 낳은 지 둘째날 밤이었던 것 같아요. 그날 새벽 2시쯤에 에도가 왔었어요. 당직 간호원에겐 자기가 아기 아빠라고 했다지만 간호원이 얘기해 준 인상이나 행색이 분명 에도였어요.”

 

그 에도가 신생아실에 나타나 아기를 한번 안아보겠다며 간호원을 졸라 댔다는 거에요. 간호원은 아기 면회시간도 지난지 오래인데다 에도의 행색도 꾀제제하고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 거절했지만 에도는 집요하게 아기를 달라고 요구했다는 겁니다. 이건 나도 처음 듣는 얘기였어요. 메이도 당시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일이어서 굳이 내게 얘기해줄 만한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당시 에도는 메이에 대한 증오를 활활 불태우는 중이었고 그 시간이면 아마도 조하르 바루의 ATM에서 메이의 은행잔고를 다시 한번 훑어내고 돌아오는 길이었을 텐데 뜬금없이 아기를 안아보고 싶어 병원으로 돌아왔다고요?

 

꼬쓰에서도 이상한 행등을 했어요.”

 

메이가 퇴원하고서 일주일쯤 되었을 때 꼬스 문간 앞에서 목욕을 시키고 햇볕을 쬐도록 눞혀 놓은 아기를, 메이가 자기 엄마랑 방안에서 얘기하고 있는 동안 어디선가 나타난 에도가 안고서 살금살금 꼬스 마당을 가로질러 정문 밖으로 나가려 하던 것을 꼬스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불러 세웠다는 것입니다. 에도가 메이 꼬스의 문간에서 살았으니 모두 에도와 면식이 있는 사람들이었죠.

 

애기 옷도 안입히고 어딜 데려가는 거요? 애기 감기 걸리게!”

 

그러자 에도는 깜짝 놀란 듯 돌아서더니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고 뒤이어 따라나온 메이가 핀잔을 주며 얘기를 돌려 받았어요.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말이죠. 그러나 그 말을 하던 메이의 눈꼬리가 치겨 올라갔습니다.

 

정말….이상하죠…?”

 

정말 이상했습니다.

아기가 귀여워서 안아볼 수도 있는 일이긴 했지만 그 자리에서 안아보기만 한 게 아니라 꼬스 밖으로 나가려 했다는 것이 수상했고 특히 까르티카 병원에서 새벽 2시에 아기를 안아보겠다고 막무가내로 고집을 피웠다는 얘기 다음에 들으니 더욱 수상했습니다.

 

믈론 에도가 메이의 아기를 납치해 나중에 몸값을 요구하려 했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로부터 불과 한달도 되지 않아 찔레둑 새엄마의 집문서를 날리려 하다가 마침내 도주해 버리고 마는 절박함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에도의 상황을 감안하면 그렇게 복잡한 방법을 택하려 하진 않았겠죠. 어딘가 아기를 데려가 팔아 버리려 했다는 쪽이 더욱 앞뒤가 맞습니다. 지금도 아기를 원하는 가정들은 상류층에서든 할렘에서든 얼마든지 있고 그들 대부분은 적당한 거짓사연으로 포장하기만 한다면 아기의 불운에 눈물까지 훔치며 아기를 데려온 아빠에게 두툼한 돈봉투를 쥐어주고 아기를 받아서 키울 준비가 되어 있을 테니 말이죠. 그런 생각을 하자 나도 팔등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에도의 사고는 분명 회사에 큰 피해를 끼쳤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메이의 거래선들을 와해시키고 메이 개인과 그 생활을 파괴시키는데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남자들의 질투와 복수심은 여자들 못지 않습니다.

 

에도의 사고를 조사하는 와중에 엔티가 떨어져 나가고 무하마드가 뒤이어 눈썹을 휘날리며 도주하는가 하면 헤르니는 르바란 휴무 후 반드시 돌아온다는 약속을 하고 보너스까지 챙긴 후 잠적해 버립니다. 난 나대로 비리가 드러나는 영업팀원 대부분을 해고시켰고요. 이 모든 것들이 에도가 도주한 후 한달 반이 채 못되어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영업을 위해 뛸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메이 한명 밖에 남지 않는 상황에 이릅니다. 메이는 아직 제왕절개분만의 수술자국이 채 아물지도 않은 상태였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린 전국 10개 도시의 도매상들뿐 아니라 자카르타와 반둥 및 인근 위성도시의 1천 군데 가까운 거래선들에 할부를 깔아둔 상태였어요. 당시 남은 인력으로는 물리적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머리에 쥐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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