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일반 칼럼

빨갱이라 불리는 사람들

beautician 2021. 12. 11. 03:20

 

제 눈의 들보

 

 

 

 

"당신이 남들에게 범한 작은 잘못은 큰 것으로 보고 남들이 당신에게 한 큰 잘못은 작은 것으로 보라"

 

유태인의 인생지혜라며 나열된 여러 항목들 중 이 내용이 눈에 띄었습니다. 사실 난 제2차 세계대전의 최대 피해자였다가 이제 중동의 깡패가 되어버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제 와서 뭘 배울게 있을까 생각하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유태인들의 가치관이 기독교 세계관의 한 축을 이루는 것이 사실이고 탈무드가 지혜의 보고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아직 많습니다.

 

최근 서울에서 벌어지던 극우집회에서도 가끔 국기가 등장하는 다윗의 별의 나라 이스라엘에 대해 내가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저 위의 문장은 마땅히 따라야 할 보편적 우주적 진리입니다. 요컨대 내 잘못에 더욱 엄격하고 남의 잘못엔 관대하도록 노력하라는 말이죠. 이런 말이 지혜로운 격언으로 다가오는 것은 우리가 대체로 무의식 중에 타인에게 엄격한 만큼 자신에겐 그러지 못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런 현상을 나타내는 '내로남불' 이라는 사자성어도 등장했죠.

 

그러니 정말 자신의 잘못에 엄격한 사람들은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스스로에게 엄격하다는 범주 안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그 잘못에 해당하는 응분의 처벌을 기꺼이 받아들이거나 모두가 납득할 만큼 스스로를 벌해야 비로소 '엄격하다' 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 대통령들과 전 대법원장은 모든 것이 자신의 부덕의 소치라 말했지만 실제로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고 처벌을 피하려 했습니다. 그건 스스로에게 엄격한 게 아니라 '엄격한 척' 하려다 실패하고 만 것이죠.

 

스스로에게 엄격하다는 건 이런 겁니다. 절도를 저지른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상과 교정을 요구하면서도 자신이 같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절도를 저지른 자기 팔을 자르고 그런 욕구를 일으킨 자기 눈을 파내는 것일 터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물론 이 대목에서 "너 이 새끼 빨갱이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적지 않으리라 봅니다. 군시절 "멸공관" 에서 근무했지만 평생을 빨갱이라 불렸으니 딱히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금은 미안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그동안 내가 한 말, 내가 쓴 글 때문에 "빨갱이"란 말이 목구멍에 치밀어 오를 만큼 불편해 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얘기이고 그래서 내게 쏟아진 비난과 불이익을 여태껏 견디고 버텨온 내가 스스로 대견스럽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빨갱이란 더 이상 공산주의자를 의미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자신과 다른 신념을 강고하게 가진 사람들에게 고루하고 편협한 인간들이 자신의 불쾌함을 드러내는 가장 꼴통스러운 단어가 된 지 오랩니다. 그래서  몇 해 전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원 이사장이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대놓고 비난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실제로 공산당이나 북한 추종자란 의미가 아니라 '문재인 개새끼'라고 하고 욕하고 싶은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 것 뿐입니다. 그만큼 자신이 그를 싫어한다는 선언인 것이죠.

 

맥락은 좀 다를 지 몰라도 그래서 스스로에게 엄격한 사람들도 곧잘 빨갱이란 소리를 들었습니다. 노무현이 그랬고 자신에게 덧씌워진 허물에 대해 죽음으로 스스로를 벌하며 주변사람들과 소속단체를 지키려 했던 노회찬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국민들의 가장 반짝이던 미래의 가능성이었던 그는 자결이란 선택을 하며 우리 곁을 떠났지만 역설적으로 그간 그에게 손가락질하던 일단의 사람들을 수치스러움의 극단으로 밀어붙였습니다. 물론 그가 죽음이 너무나도 기뻐 샴페인을 터트리며 축배를 든 이들도 있었지만 그건 단지 그들이 후안무치, 적반하장으로 대변되는 쓰레기 증후군에 걸려 있기 때문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노회찬은 자신을 죽임으로써 사실은 국회의원 300명 중 대부분에게 도덕적 양심적 사망선고를 했습니다. 그가 죽어야 했다면 오히려 수백 번 죽었어야 마땅할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우린 잘 알고 있습니다. 그에게 덧씌워졌던 허물은 고작 3천만원이었고 그나마 나중엔 그 혐의조차 근거 없는 것이 되었지만 그보다 수십, 수백 배 큰 허물을 가진 자들이 오늘도 다른 사람에게 잘못을 전가하여 호의 호식하고 있고 사법정의를 팔아먹고 국민을 팔아먹고 나라를 팔아먹고 있는데 말입니다.

 

"당신이 남들에게 범한 작은 잘못은 큰 것으로 보고 남들이 당신에게 한 큰 잘못은 작은 것으로 보라"

 

이런 격언은 정말 그들이 들어야 하는 것이죠.

자신이 저질러 놓은 말도 못할 큰 잘못을 아무도 용서하지 않았으나 스스로 용서하고 합리화시키며  정신승리하는 사람들, 50억 클럽의 그 사람들말입니다.

 

 

2021. 12. 5.

(2019. 2.2 원본이 수정)

'일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의 경제공격 당시 일부 우리 지성인들의 자화상  (0) 2021.12.14
세상의 모든 관문  (0) 2021.12.12
권위와 옹졸함 사이  (0) 2021.12.10
잡탕찌게  (0) 2021.12.09
교민사회에선 입조심  (0) 2021.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