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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영업직원 활약사

영업직원 활약사 (10)

beautician 2012. 10. 17. 01:16

열번 째 라운드.....

 

메이가 반둥에서 두 여직원을 데려 온 것은 나로서도 나쁘지 않은 생각으로 보였습니다. 뚜따가 처음 금전사고를 낸 후 회사에서는 그런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에도와 무하마드는 물론 다른 모든 직원들이 다소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분명 그 악영향을 받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전혀 다른 환경에서 온 때묻지 않은 새 직원들을 낙하산으로 중간 중간에 심어 놓는 것은 그런 좋지 않은 분위기의 맥을 끊는 방법이라 생각했던 것이죠. 두 여직원들은 우리가 반둥에 직거래를 트면서 1년 넘게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었어요.

 

마침 당시 메이에게 얻어준 꼬스는 꽤 큰 평수여서 두 반둥 여직원들이 당분간 어렵지 않게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서로에게 이점이 되었습니다. 반둥 아가씨들은 따로 숙소를 얻어야 하는 적잖은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고 메이는 출산 후 두 아이를 돌보는데 휴일이나 퇴근 후 이 아가씨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게 된 것이었죠. 더욱이 메이는 출산휴가 기간 중에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이 아가씨들을 통해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전해 듣고 필요한 지시를 하면서 에도와 무하마드 등 영업직원들을 간접적으로 통제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좀 많은 헤르니(Herni)를 무하마드에게 붙이고 엔티(Enti)는 에도에게 붙였죠. 그리고 헤르니에겐 아침마다 수금처에 전화 확인하는 업무를 함께 부여했습니다. 수금일이 도래한 수금처들의 준비상태를 확인해 각 영업팀들의 당일 외근 일정을 확정하는 업무였지요.

 

그래서 메이가 출산휴가를 가더라도 어느 정도 안전장치가 마련되었다고 생각하던 시점이었어요. 메이가 운전사 에꼬와 함께 반둥에 수금을 갔다 오는 길에 찌까랑(Cikarang) 톨게이트를 막 지나면서 극심한 교통정체에 갇히게 되는데 거기서 메이의 하혈이 시작되었습니다. 메이는 만삭이 다 된 상태였으므로 상황은 매우 위급했고 메이는 패닉상태에 빠졌습니다. 난 에코에게 당장 찌비뚱(Cibitung) 톨게이트로 나가 가까운 병원으로 들어갈 것을 지시했지만 그들이 톨을 빠져나가는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 이상 걸렸습니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응급실에서도 손을 쓰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메이의 마지막 근무일이 되었습니다. 밤늦게 자카르타로 돌아온 메이는 다음 날 아침 일찍 다급히 단골병원을 찾아 갔고 그 날로부터 메이의 출산휴가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가장 우려하던 시간이 기어코 찾아온 것이죠. 난 걱정에 휩싸였고 직원들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그 동안 우리가 최선을 다해 마련한 안전장치들이 이상 없이 작동해 줄 것을 기원했습니다. 그리고 연달아 사고를 처대던 에도와 무하마드가 마치 영화에서처럼 대오각성, 개과천선하여 그간의 과오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메이가 없는 동안 위기에 처한 회사를 위해 오히려 더욱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한편 출산일이 다가오면서 메이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었습니다. 그건 임신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줄곧 제기된 초음파검사 결과가 주된 이유였습니다.

 

쌍둥이인 것 같아요.”

 

이게 메이가 크라맛 128 병원에서 들었던 얘기였거든요. 아기를 낳겠다는 뜻을 몇 번씩이나 분명히 했지만 이미 딸을 하나 가진 미혼모의 몸으로 또 다시 출산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 메이에겐 큰 부담이었을 것이 틀림없는 상황에서 그 또 한 번의 출산이 두 명의 아기를 의미한다는 건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메이의 인격적, 경제적 파멸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우선 메이가 쌍둥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습니다. 아니, 아이들에게 치어서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기 쉬웠어요. 메이의 상황에서 아이들 셋을 부양한다는 건, 당장은 어떻게 여기저기서 도움을 받는다 치더라도 장기적 관점에서는 물리적으로 곤란한 일이었고 이미 심정적으로 휘말려버린 내가 최선을 다해 돕는다 해도 그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이 될 게 뻔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그 초음파검사 결과가 매번 오락가락 한다는 것이었어요. 3D 초음파검사의 결과사진에서도 메이의 아기는 뭔가에 가려져 있는 듯 잘 보이지 않았고 나중엔 쌍둥이인지조차도 확실치 않다고 하더군요.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쌍둥이라는 얘기는 쏙 들어가 버렸어요. 늘 그렇듯 의사가 또 오진을 한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게 메이를 위해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이게 뭔 거 같아요…?”

 

어느 날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한 메이가 보여준 초음파 사진엔 아기의 몸으로 보이는 뒤편으로 팔 같은 것이 뻗어 나와 있는 게 비쳤습니다. 팔이 세 개…? 난 미간을 찌푸리며 메이의 표정을 살폈지만 아마도 몇 시간은 울었던 듯 표정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메이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임신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던 시기에 메이의 입덧을 위궤양이라고 생각한 돌팔이 의사들이 온갖 독한 약들을 처방해 주었는데 메이가 아기를 낳겠다고 결심을 하던 순간에 아기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곤란한 상태가 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걱정 마. 이런 분명하지도 않은 사진 가지고 이상한 생각 하지마. 다 괜찮을 거야.”

 

나는 그런 감당하지도 못할 소리를 하며 메이를 위로해야 했어요. 하지만 한편으론 이 젊고 부지런한 아가씨의 인생이 왜 이렇게까지 꼬여가야 하는지 마음 아팠습니다. 메이는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어요. 며칠 후 다시 마음을 가다듬으며 태어날 아기를 잘 키우겠다는 포부를 다지기 시작했습니다. 난 부디 메이가 무사히 건강한 아기를 출산할 수 있기를 기원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 초음파 사진을 본 이후 불길한 상상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게 만약 메이가 임신초기에 복용했던 온갖 독한 약들 때문이었다면 그때 싫다는 메이를 억지로 병원으로 끌고 갔던 나 역시 모른 척 책임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찌까랑 톨에서의 출혈사태가 벌어지면서 메이의 출산휴가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재고 상황 이상 없습니다.”

정말?”

…., 정말로요.”

 

메이의 출산휴가가 시작되면서 그녀가 맡고 있던 업무들이 다른 직원들에게 넘겨졌는데 재고를 파악하는 책임은 에도에게 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확실하냐고 물을 때마다 에도의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갔습니다.

 

정말?”

“…….…….”

무슨 놈의 재고가 이래도 맞고 저래도 맞아?”

 

이미 며칠 째 에도는 앵무새처럼 재고조사 결과가 이상없다는 보고를 해 왔습니다. 우린 그 당시 매일 재고조사를 했고 그렇게 해 온 것이 거의 1년이 넘었습니다. 그 동안 직원들이 워낙 재고제품들을 빼돌리기도 했거니와 한 달에 한번, 일주일에 한번 재고조사를 하는 것으론 재고부족이 발생한 정확한 날짜를 확정할 수 없어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의 윤곽이 모호해지곤 했으므로 직원들은 하나같이 발뺌하며 누구 하나 책임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비는 재고의 금액을 전 직원의 급여에서 똑같이 까는 것이 유일한 해결방법이었는데 메이처럼 절대로 재고에 손댈 리 없는 직원의 월급도 같이 까야 한다는 것이 내 딜레마였고 실제로 재고를 빼돌리는 범인의 입장에서는 몰래 팔아먹은 돈은 자기가 100% 혼자 먹는데 그 책임은 모든 직원들이 나누어 지니 여전히 노나는 장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정말 비효율적이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재고조사를 매일 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에도가 재고조사 책임을 맡은 이후 그 결과보고가 완전히 신빙성을 잃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에도가 재고 이상없다고 보고해 왔던 어느 날, 창고에 있었어야 할 몇몇 제품들이 실제로는 내 차 뒤에 실려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에도가 전혀 알 리 없는데도 그는 재고가 이상없다는 보고를 해 왔어요. 어느 날은 거래선에서 회수되어 온 제품들이 있었는데 재고 자료 업데이트에 누락되었습니다. 당연히 다음 날 재고 조사를 위해 출력한 자료엔 그 회수된 제품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어요. 결과적으로 재고가 출력 자료상의 숫자보다 많아야 했지요. 그러나 에도는 그 날도 재고에 이상이 없다며 보고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남는 재고는 누군가의 손을 타서 사라져 버렸죠. 이런 일들을 며칠 후에나 불현듯 깨닫고 다시 확인하면 에도와 다른 직원들은 언제나처럼 오리발을 내밀었습니다. 재고가 남아도, 또는 모자라도 에도는 절대로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는다는 심증이 굳었습니다. 그래서 그 날은 몇 개의 재고를 빼서 내 방에 숨겨 두었습니다. 그런데 에도는 그 날도 재고가 이상없다며 보고해 왔던 것입니다.

 

내가 물건을 이만큼 빼 놨으면 그 만큼 모자라다고 보고해야 할 거 아냐?”

 

숨겨둔 물건들을 꺼내 보이며 그렇게 말하자 에도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합니다. 이젠 좀 싫증이 나려 합니다. 이 친구 또 뭔가 단단히 사고친 겁니다. 난 언성을 높였어요.

 

재고 다 꺼내서 책상 위에 올려 놔!! 내가 직접 조사하고 세어 보겠다!!”

 

사무실에 난리가 났습니다. 직원들을 우왕좌왕하면서 북새통을 떨지만 보통 10분 정도면 책상 위에 모든 제품들을 정렬할 수 있을 텐데 한 시간이 다 되도록 그 북새통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뭐가 이렇게 오래 걸려? 동작 그만!!!”

 

내가 직접 홀에 나가 제품들을 정리하며 검수를 시작하자 사무실을 삽시간에 쥐죽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직원들은 내 눈치를 살피며 자기들끼리 수근거렸어요.  그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반둥에서 데려온 그 두 명의 여직원들도 에도와 무하마드 사이에서 소곤거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거슬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재고는 에도의 보고대로 이상없이 딱 맞았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어요. 내가 오늘 물건을 숨긴 건 사실이지만 메이가 출산 휴가를 시작한 이후 한 달 가까이 되도록 적잖은 편차가 났을 것이라 난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고가 딱 맞으니 아주 멋적은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죠. 일이 이렇게 되면 좀 나쁜 짓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작은 트집이라도 잡아 내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난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언성을 높인 신경질적인 상사가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포장이 이렇게 더러워지도록 너희들은 뭐한 거야? 포장을 바꿔줘야 할 거 아냐?”

 

그렇게 얘기하면서 제품 하나를 들고 흔들어 대는데…., 어라?

제품이 너무 가벼웠습니다. 난 슬라이딩 방식으로 여닫는 하드보드지 포장 겉지를 밀어 열었습니다. 내용물이 없었어요. 또 다른 것을 열어 보았습니다. 또 다른 것….  직원들의 얼굴이 모두 흙빛으로 변했습니다. 100여개의 제품들을 모두 개봉했는데 10여개는 그 포장 안에 내용물이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된 거야, 설명해 봐! 에도? 무하마드? 헤르니?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예전에도 재고가 비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품들을 여닫이 문이 달리 캐비닛 안에 보관하던 시절이었는데 당장 밖에서 한눈에 볼 수 없으니 직원들을 제품을 포장째로 빼돌렸었죠. 그래서 그 여닫이 문들을 모두 뜯어 내 캐비닛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도록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이젠 매일 검수하도록 하고 있었던 것인데 이제 직원들은 포장 안의 제품 내용물을 몰래 빼내 팔아 먹고서 마치 포장 안에 아직 제품이 들어있는 듯 눈속임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메이! 중부서에 신고해서 경찰들 좀 보내달라고 해! 도난이든 횡령이든 아무튼 잡아 갈 도둑놈이 있다고 얘기하란 말야!”

 

출산휴가 중인 메이에게 이렇게 전화로 지시한 것은 직원들을 겁주기 위한 쇼였습니다. 이젠 직원들 월급 몇 달치를 통째로 까도 복구가 안되는 규모로 재고가 비는 상태였어요. 에도에게 보고 책임이 있다고 하지만 재고파악은 아침마다 전 직원들이 함께 하는 일이었으므로 에도만의 잘못이라고 보긴 어려웠습니다. 결국 재고가 비는 것을 전 직원들이 알고 있었다는 얘기였고 에도가 그걸 내게 감춘 것이 자발적인 행동이었는지 누군가에게 등떠밀렸던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왜 재고가 비게 되었느냐 하는 것이죠. 범인을 잡는 것 말입니다. 모든 표면적인 증거들을 에도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욕지기가 치밀어 오르는 부분은 다른 직원들조차도 슬며시 에도를 가리키며 자기들은 뒤로 물러나려 하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그들도 재고문제를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말입니다. 헤르니와 엔티까지도요.

 

경찰이 오면 다시 얘기하자. 그 전에 사무실을 떠나는 놈이 있다면 그 놈이 범인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제품들은 손대지 말고 이대로 놔 둬!”

 

이렇게 얘기하며 사무실로 들어오는데 살짝 곁눈질을 할 때 이상한 광경이 눈에 비쳤습니다. 내 등 뒤에서 무하마드가 에도에게 날 따라 가라고 윽박지르는 듯한 동작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 새끼가 또…!

 

입사 시기가 3년쯤 차이 나는 무하마드가 오히려 자기가 마치 상관이라도 되는 듯 에도에게 뭔가 요구하고 명령하고 심지어 윽박지르는 모습을 그 사이에도 여러 번 먼 발치에서, 또는 문틈으로 본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숫기가 없어도 남자라면 저런 무례한 행동을 가만 두지 않을 터인데 에도는 뭔가 단단히 약점이라도 잡힌 듯 꼼짝 못한 채 체념한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곤 했습니다. 내 머리가 좀 더 팽팽 돌아야 저런 행동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을 텐데 그게 내 한계였어요. 분명 이 재고분실 사태에 적잖은 책임이 있을 무하마드가 경찰이 온다는 말에 미쳐 이성을 잃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 고작이었죠. 그리고 내가 방에 들어온 지 5분쯤 후에 에도가 내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미스터르…..”

 

난 그를 지긋이 노려 보았습니다. 자기 과오를 몇 번씩이나 덮어주었던 나와 회사를 위해, 메이를 대신 해 더욱 노력해 주어야 할 에도는 메이가 출산휴가를 낸지 얼마나 되었다고 횡령사건으로 보이는 이 재고분실 사태에 또다시 정통으로 연루되어 버린 것입니다. 내 실망감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다 매꿔 넣겠습니다. 월급에서 다 채워 넣을게요. 제발 이번 한번만 용서를….”

용서라고???”

미스터르…. 제발….”

이 자식아! 네 월급은 지난 사고 때문에 이미 반씩 깎여 나가는 중이야. 뭘 더 까? 어떻게 채워 넣겠다는 거야? 너 월급 안 받고 살 수 있어? 이게 도대체 몇 번 째야? 네 아랫직원들 보기 창피하지도 않아? 임마??”

 

감정의 컨트롤이 필요합니다. 난 잠시 호흡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어요. 예전 전방 소대장 시절에도 그랬습니다. 과오를 사과하려는 부하를 감정적으로 닦달해 너무 궁지로 몰아 붙였다가 그 부하가 더 이상 참지 못해 감정을 터뜨리며 서로의 감정이 충돌하면 그 다음엔 파국이 있을 뿐이었어요. 상사가 부하와 주먹질 싸움하게 되는 상황만큼 민망스러운 사태는 없지요.

 

그래…, 도대체 왜 그런 거야? 재고를 누가 빼 돌린 거야? 어디로?”

그게…. 제가 다른 곳에 다 팔았어요….”

 

나쁜 자식….! 이게 그 동안 몇 번씩이나 내가 그를 용서해 주고 그의 상황을 이해해 주었던 것에 대한 대가입니다.

 

어디에 팔았는데? 누가 사갔어?”

 

에도는 이 대목에서 또 다시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었습니다. 난 복창이 터졌어요. 이 사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어떻게 책임지도록 해야 할지도 마음을 정할 수 없었습니다. 한 해가 아직 절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적잖은 돈이 걸린 사고가 이미 여러 차례 벌어졌고 그때마다 에도는 어김없이 연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에도가 남들의 잘못까지 모두 떠넘겨 받아 혼자 십자가를 지려 한다는 낌새마저 엿보였습니다. 그게 또 석연치 않은 부분이었어요.

 

그 순간 문을 박차고 들어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메이였어요.

직원들도 기겁을 하고 놀랐지만 누구보다도 놀란 건 나였습니다.  메이는 이미 출산휴가를 낸 상태였고 이 사건을 어떻게 되든 내가 알아서 해결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전 찌비뚱에서 출혈을 하는 위험한 상황까지 맞았던 메이가 남산만큼 부풀어 오른 만삭의 배를 안고 수퍼맨처럼 폭우가 내리는 밤길을 오토바이에 매달려 회사까지 달려온 것입니다.

 

이 인간아!!”

 

이번엔 에도를 마구 구타하려는 메이를 뜯어 말려야 했습니다. 메이는 이전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직원들을 끝방으로 모두 불려 들였습니다. 그리고는 한 명씩 밖으로 내보내더니 그 방에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이번에도 에도와 무하마드였어요. 메이의 고성이 쨍쨍 메아리쳤습니다.

 

다 필요없어! 니들 월급을 까라고?? 지난 번에 너희들 이런 일 한 번 더 생기면 경찰서 끌려가도 좋다고 각서 썼던 것 기억 안나? 없어진 물건들 당장 찾아서 내놓지 않으면 경찰서 가는 거야!! 내 몸 걱정하지 마! 니들이 왜 걱정해? 경찰서에서 애기 낳으면 될 거 아냐? 오늘 밤 물건 갖다 놓지 않으면 이제 다 끝장이야!! 내 말이 장난 같지? 그래 장난인지 한 번 봐!!”

 

메이는 기염을 토했어요. 난 그게 다 소용없는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소리를 질러 댄다고 해서 빼돌린 물건들이 어디선가 마술처럼 뿅! 하고 나타날 리 없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무하마드가 분주해지기 시작합니다. 끝방에서 나온 그는 아까 재고가 비는 것이 확인되었을 때 모든 직원들이 함께 뒤져 보았던 홀의 책상들을 다시 뒤지기 시작했어요. 그건 나나 메이에게 자기도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찾는 중임을 보여 주려는 쇼인 게 틀림없었습니다.  에도는 여전히 방안에서 메이 앞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앉아 있었고요. 그러더니 무하마드는 층계참 쪽방 창고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은 수백개의 카톤박스와 포장재들이 엉망진창으로 쌓여 있는 곳이었어요. 거기서 한참을 있던 무하마드는 뭔가가 담긴 카톤박스를 들고와 메이가 앉은 테이블 위에 내용물들을 부렸습니다. 없어졌던 그 제품들이었습니다.

 

없어진 게 아니고 저 층계참 창고 안에 있었어. 누가 실수로 저 안에 넣어 뒀었나 봐.”

 

그럴 리 없는 일이었습니다. 더욱 그럴싸한 추론은 범인이 재고를 빼돌리려 한 날이 바로 오늘이라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아직 회사 밖으로 제품을 빼돌릴 시간이 없었던 범인은 아침 재고 조사 시간에 포장에서 빼낸 제품들을 나중에 가져갈 목적으로 층계참 창고 안에 넣어 두었던 것이죠. 그곳은 제품들을 보관하는 창고가 아니니 내가 들여다 볼 리 없는 안전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생난리가 나자 급기야 경찰들이 오면 상황이 몹시 복잡해질 것으로 우려해 마치 우연히 찾아낸 것처럼 그렇게 내놓았던 것이죠. 그렇게 시치미를 때며 서투른 연기를 하는 무하마드는 이 사건의 주모자이거나 최소한 공범임이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그게 말이 돼??”

 

그렇게 소리질러 봤자 어떻게든 말을 지어내 빠져나가려는 놈들이 말이 되고 안되고를 따질 리 없습니다. 하지만 이놈들을 단번에 엮을 기회인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더욱이 조금 전 에도는 내 앞에서 그 없어진 물건들을 자기가 이미 팔아 먹었다고 불었었죠. 그 팔아먹었다는 제품들이 층계참 창고에서 나타난 것은, 만약 이 친구들이 싸인이 안맞아 서로의 거짓말들이 어긋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실로 놀라운 기적이 벌어진 셈이 되는 것입니다.

 

, 그게…., 무하마드 말이 맞아요. 제가 잘못 놔둔 걸 깜빡 잊었어요.”

에라~! 이 자식아!!”

 

난 에도의 뒤통수를 갈겼습니다. 지가 예수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혼자 십자가를 지려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어요. 하지만 없어진 제품들도 나타나고 직원들이 서로 입을 맞추는데 상황은 점점 이들을 더 이상 엮을 수 없는 쪽으로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이젠 진짜로 경찰을 부르는 것도 좀 멋적은 상황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 내가 백번 양보해서 너희들 말이 맞다 치자. 오늘 재고는 이상 없다 치잔 말이다! 그럼 그 동안 재고가 이래도 맞고 저래도 맞았던 이유는 도대체 뭐야? 재고가 이 난리인데 어떻게 매일 이상 없는 거냐구??”

 

예상했던 대로 직원들을 모두 묵묵부답이었고 에도는 예전 사고를 쳤을 때와 마찬가지로 또 입을 굳게 다물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들이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을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고 누군가 변명을 하려 했다면 그날 난 정말로 대폭발을 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 난리를 대충 수습한 다음 직원들을 모두 외근 보낸 후 난 메이와 마주앉았습니다. 그게 자기 잘못도 아닌데 메이는 나와 눈을 맞추지 못하고 있었어요.

 

너 출산휴가 시작한지 한 달도 안되었는데 이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사고친 직원들을 모두 잘라 버렸어야 하는데 대체할 인력이 당장 없는 상태에서 직원들을 내보내 버리면 그들은 수 백 개의 거래선에 깔려 있는 수금할 돈에 보다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할 것입니다. 경찰에 다 때려 넣자니 그 과정과 비용도 문제이거니와 경찰은 궁극적으로 외국인인 나를 치려 들 것 또한 뻔한 일이었어요.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 반둥 여자애들 데려온 건 택도 없는 짓이었다. 이 난리가 벌어지는데 꼬스에서 쟤들이 이런 거 보고 안하지? 우리랑 한 편 하자고 데려온 애들인데 저 놈들하고 벌써 짝짜꿍이 맞아 버렸어.”

 

메이는 머리를 더욱 조아렸어요.

 

그리고 무하마드 저 놈은 이미 상습범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에도, 저 놈은…..”

 

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습니다. 에도 저 놈이 절대 저럴 놈, 아니 저래서는 안될 놈인데라고 생각해 왔었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든든한 성벽이 되어 주었어야 마땅할 에도는 오히려 무하마드의 든든한 성벽이 되어 주고 있었어요. 메이의 임신은, 그래서 자동적으로 쐐기가 박혀버린 메이와 에도의 결별은 그렇게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입히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애기 낳고…, 빨리 돌아오거라.”

 

오직 그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빨리 하고 싶다고 빨리 되는 것도 아니었고 애기를 낳기 때문에 메이가 오히려 회사에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쉬웠습니다. 누군가에게 두 명의 아이들을 맡긴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요. 자카르타의 많은 젊은 엄마들이 일을 하며 돈을 벌기 위해 아이들을 시골 친정집에 맡기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지만 메이의 부모님들은 자카르타 한 복판인 센티옹(Sentiong)에 살았고 애들을 안심하고 맡길 환경이 될 만한 시골집이라는 게 메이에게는 애당초 없었던 것입니다. 메이의 젊음이 이제 앞으로 아이들에게 치이며 시들어갈 것임은 잔인하도록 당연한 현실적인 추론이었어요.

 

 

 

미스터르! 정상분만이 안된데요.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병원으로 실려갔어요!!”

 

메이의 막내동생 예니(Yenny)의 전화를 받고 난 불길한 상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메이는 전날 밤부터 진통이 시작되어 조산소 격인 동네 비단(Bidan)에서 아침까지 10시간이 넘도록 산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을 먼저 받았었죠. 만약 시간이 더 걸리게 되면 산모와 아이 모두 위험해질 지도 모르는 상황이어서 내가 비용을 댈 테니 정 안되면 제왕절개 수술을 받도록 병원에 연락해 두라고 얘기한 것도 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메이가 비단에서 병원으로 실려갔다는 얘기를 들으니 뭔가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휩싸였던 것입니다. 메이가 보여주었던 초음파 사진이 계속 마음에 걸렸던 것도 사실이고요.

 

별일 없을 거라며 담당 의사가 직접 메이를 안심시켰다고는 하지만 난 아기의 등 뒤로 뻗어 나온 팔 같은 모양이 계속 떠올랐어요. 메이의 입장으로서는 아기를 한 명 더 낳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치명적인 결정타를 맞는 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한 명이 아니라 쌍둥이라면 메이는 아마도 결국은 버텨내지 못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한 명이든 쌍둥이든 정상이 아닌 아이가 나온다면 그 아이의 인생도 불쌍해지지만 메이의 인생도 사형선고를 받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었어요. 메이가 결국 정상분만을 하지 못하고 제왕절개수술을 받게 된 것도 그 문제와 관련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메이의 집엔 산모를 싣고 갈만한 차량도 없었고 아마도 센티옹이 수고비를 치르지도 못할 달동네라고 생각한 병원측 앰블란스가 온갖 이유를 대며 픽업을 거절하여 우왕좌왕 하던 와중에 정의감이 폭발한 담당의사 미스 파리다(Ms. Farida)가 직접 자기 차를 몰고 센티옹으로 달려와 메이를 픽업해 갔다는 점이었어요. 미스 파리다는 예전에 메이의 키스타 절제수술을 했던 분이었어요, 최소한 메이는 정의롭고 실력 있는 의사의 손에 맡겨졌던 것입니다.

 

메이가 아기를 낳은 날은 토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수술은 아침에 있었고 메이가 입원한 뿔로마스(Pulo Mas)의 까르티카 병원(RS Kartika)에 내가 도착한 것은 저녁이 되기 직전이었어요. 메이의 엄마와 여동생들이 와 있었고 한쪽 구석에 에도의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장시간의 산고와 수술 마취에 취한 메이는 다시 잠들어 있었고 난 신생아실 창문 밖에서 메이의 아기를 한 눈에 알아 보았습니다. 그날 그 병원에서 태어난 열 명의 아기들 중 유일한 남자 아기였어요.

 

손가락 발가락 다 세어 봤어요?”

 

메이의 엄마는 피식 웃을 뿐이었어요. 다행스럽게도, 아니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아기는 정상이었습니다. 당시 산적해 있는 회사의 모든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난 이 모든 것이 모두를 위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굳건한 결의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아기를 낳은 메이는 그 의지로 자신의 아기를 구원했던 것이고 정상적으로 태어난 아기는 최악의 상황에 빠질 수도 있었던 메이를 구원한 셈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어요. 당시엔 눈에 보이는 것들만 인지했을 뿐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일을 일년쯤 후 뒤늦게 듣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메이의 쌍둥이 아기에 대한 얘기 말입니다. 제왕절개수술을 했을 때 태속에서 메이의 쌍둥이 아기들을 서로 껴안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답니다. 그 중 하나는 내가 신생아실에서 보았던 그 아기였고 또 다른 하나는 사람의 모습을 채 갖추지 못하고 있었어요. 오직 두 눈 만 선명히 제자리에 있었을 뿐 나머지 신체부분들은 모양을 갖추다 만 핏덩어리였다고 합니다. 메이의 엄마가 그것을 받아 정성스럽게 씻기고 강보에 싸서 에도와 메이의 아버지가 그날 해가 지기 전, 예전 마약 때문에 유명을 달리한 메이의 남동생이 묻힌 무덤 바로 옆에 묻었다고 하더군요.

 

그 쌍둥이 형제 때문에 초음파검사 결과는 매번 석연치 않았던 것입니다. 비록 내 눈으로 보진 못했지만 난 거기서 작은 기적이 벌어졌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메이의 임신 초기, 메이가 임신임을 자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먹었던 온갖 독한 약들의 독성을 쌍둥이 형제 중 한 명이 모조리 흡수하여 자신을 완전히 내주고 희생하면서 또 다른 한 명의 형제를 온전히 살려 낸 것이라고 말이죠. 메이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메이가 무사하기를 바라지 않았던 무하마드가 시전한 서툰 흑마술의 저주를 쌍둥이 중 한 명이 온전히 받아 내면서 엄마와 형제를 살려낸 것이라고요. 그래서 메이의 아기는 그렇게 두 사람의 운명을 짊어지고서 한 점 구김 없고 한 점 이상 없는 모습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하지만 메이의 출산휴가는 아직도 한달 반이나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이 끝난다고 해도 메이가 과연 다시 출근할 준비를 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무하마드 같이 틈만 나면 돈과 물건을 빼돌리려는 직원들을 저렇게 놔두고서 현장상황에 대해 완전히 장님이 된 내가 과연 그녀가 다시 출근하게 되는 날까지 회사를 지탱해 낼 수 있을 지의 여부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에도가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라는 것도 이젠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메이가 까르티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에도가 매일 밤 병원에서 밤을 지새워 주었지만 그건 예전 메이가 끼스타 절제수술을 하던 당시 나름대로 정성을 다하던 태도가 더 이상 아니었고 마지못해 하는 티가 역력했다는 얘기를 메이에게 듣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처럼 병실 안, 메이의 병상 밑에 자기 잠자리를 마련한 게 아니라 병실에서 멀리 떨어진 리셉션 홀의 소파나 긴 의자에서 밤을 보냈다고 하며 메이에겐 별다른 대화도 없이 냉랭한 눈빛을 보낼 뿐이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밤을 보내 주었다는 것은 분명 고마워 해야 할 일이었지만 그가 예전의 에도가 아님을 메이가 절실히 체감했다는 것 역시 팩트였던 것이죠.

 

회사 일은 걱정 말고 네 몸조리부터 신경 써,”

 

그때 병원에서 그렇게 메이에게 말하며 폼을 잡던 나의 진심은 제발 빨리 회사에 돌아와 일을 도와 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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