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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들의 합종연횡

beautician 2019. 7. 2. 10:00


귀신들의 합종연횡

 

무엇이든 차고 넘치면 자연적으로 비교 분류작업이 시작되고 그 중 힘차게 가지가 뻗어나간 부분들이 홀로서기를 시작하여 스스로 일가를 이루거나 때로는 시들어 무너지고 잊혀지기를 반복합니다그러면서 '체계'라는 게 잡혀 상황이 대충 정리됩니다물론 그 정리된 상황 역시 정반합의 과정 속에 있으므로 또 다시 다른 모양과 성격으로 발전하고 갈려 나가고 전이되고 부식부패되어 붕괴되면서 또 다음 단계를 향해 진화해 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귀신들의 체계는 그와는 좀 다른 방향으로 정리되어 가는 듯 합니다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가진 만큼 그들의 토착신앙에 기인한 신과 악마의 이야기들이 지역적으로 유구하게 전승되어 내려오다가 고대왕국들이 통합과 분열을 반복한 끝에 오늘 날의 인도네시아가 성립된 후 그 지역적 전승들이 서로에게 노출되면서 상이한 부분들은 때로 더욱 상반된 방향으로 발전해 명확한 차이점들을 부각시키기도 하고 또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언젠가부터 상당한 유사점들을 보이며 융합되는 모습도 발견됩니다.

 

그 일례로 수마트라 미낭까바우 지역의 귀신 빨라식(Palasik)과 깔리만탄의 꾸양(Kuyang), 발리의 레약(Leak)은 매우 유사한 형태로 나타납니다내장을 주렁주렁 매단 머리가 허공을 둥둥 떠다니며 사람이나 짐승들을 공격해 피를 빨아먹는 귀신이에요태아나 갓난아기를 잡아 먹기도 하는데 특히 빨라식은 사산한 아기의 무덤을 파고 들어가 포식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머리만 떠다니는 귀신은 비슷한 형태가 한국의 달걀귀신이나 일본의 누케구비 등을 비롯다른 나라에도 있는 것 같지만 꾸양이나 빨라식처럼 목 밑으로 폐나 창자를 치렁치렁 늘어뜨리진 않습니다그런데 이런 형태의 귀신은 비단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동남아 각국에서 발견되는데 이 귀신을 말레이시아에서는 뻐낭갈(Penanggal)이라 부르고태국에서는 크라슈에 (Krasue), 캄보이다에서는 압(Ap)이라 부릅니다.

 


 

서부자바에서는 독특하게도 내장을 매달고 다니지도 않고, 날아다니는 대신 굴러다니는 쥬릭 굴루뚱 승이르라는 놈도 있습니다. 저 빨라식, 꾸양 류에서 분파되어 나온 놈인지 자체적인 발생체계를 가진 놈인지는 좀 연구해 봐야 할 대상입니다.

 

자바지역의 바나스빠띠, 끄마망, 구눙끼둘 지역의 뿔룽간뚱 같은 귀신들도 각각의 고유한 특징들이 존재하지만 흔히 공중을 돌아다니는 불덩어리 같은 도깨비불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공통점을 가집니다이들도 몇 세기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간의 상관관계가 성립되고 에피소드가 교류되면서 어떤 식으로든 나름의 체계가 갖추어지겠죠.

 




이런 귀신들의 분포와 특징, 양상, 변모, 관련 에피소드들을 조사하면서 인도네시아의 토속문화 흐름을 조금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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