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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불괴술의 소유자 시삐뚱(Si Pitung)

beautician 2019. 6. 30. 10:00

금강불괴술의 소유자 시삐뚱(Si Pitung)

 

 

금강불괴술의 소유자로 알려진 이들은 마자빠힛 왕국의 재상 가자마다를 비롯해 수도없이 많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마도 근대 자카르타 역사에 등장하는 시삐뚱(Si Pitung)이라는 사람입니다. 인도네시아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름그러나 현지문화가 생소한 한국인들로서는 들어본 적 없는 이름입니다. 하지만 그는 인도네시아인들에겐 영화 브레이브하트로 유명한 스코틀랜드의 월리스같은 독립영웅이자 로빈후드 같은 의적으로, 그러나 네덜란드 총독부 측 기록에는 무정부주의 악당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그는 총독부와 결탁한 부자들, 기득권층으로부터 약탈한 것을 바타비아의 빈민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시삐뚱은 브따위 토박이 출신의 무술고수로 서부 자카르타의 라와벨롱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지금은 고급 아파트들이 잔뜩 들어선 심뿌룩인다뻐르마타 히조 근처 말입니다시삐뚱의 부모는 이슬람선생 하지 나이삔이라는 사람에게 아들의 이슬람 교육과 아랍어 교습을 부탁했다고 합니다어른이 된 시삐뚱은 가난한 사람들을 가엾게 여겨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네덜란드 정복자들과 결탁한 부자들을 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 재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시삐뚱의 활동이 시민들의 호응을 얻자 네덜란드 총독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그를 잡으러 나서게 됩니다네덜란드 경찰총감이 여러 차례 부대를 움직였지만 그는 매번 솜씨 좋게 빠져나갔습니다더욱이 시삐뚱은 금강불괴의 술법을 가지고 있어 총이나 칼로는 그를 해할 수 없었습니다이를 갈던 총독부는 시삐뚱의 스승 하지 나이삔을 붙잡았고 위협에 굴복한 나이삔이 결국 시삐뚱의 약점을 네덜란드 측에 알려주게 됩니다급습을 당한 시삐뚱은 결국 네덜란드 측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시삐뚱에 대한 영화나 책이 여럿 나와 있는데 그의 일대기와 물론 장렬한 최후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버전이 존재하고 하지 나이삔이 네덜란드 측에 알려준 시삐뚱의 약점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하지만 당시 상황을 보도했던 총독부 기관지인 힌디아 올란다지(Hindia Orlanda)의 기사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상황은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총독부 히네경감은 삐뚱을 깜뿡밤부에서 보았다는 정보원의 보고를 받는다깜뿡밤부는 딴중쁘리옥과 메에스터 코르넬리스(지금의 자띠느가라사이에 위치한 곳이다하지만 히네경감은 중간에 삐둥이 따나아방의 묘지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는 보고를 받고 급히 인근에 매복한 끝에 나타난 삐뚱에게 총격을 가해 그의 한쪽 손을 맞췄다히네는 응사하는 삐뚱에게 두 발을 더 쏘았지만 빗나가 버렸고 세 번째 총알이 가슴에 박히자 삐뚱은 마침내 고꾸라졌다그날 오후 5시경 삐뚱의 시신은 깜뿡바루 묘지로 옮겨졌다삐뚱을 잡은 공로로 히네경감은 따나아방 지역 경찰청장이 되어 바타비아 전체 치안을 책임지게 되었고 총독부는 삐뚱 같은 이가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예방책을 펼쳤다.

 

1893 10 18일자 힌디아 올란다지 기사에 따르면 시삐뚱은 죽기 직전 머리를 짧게 자른 상태였고 사람들은 그의 몸을 지켜주던 부적을 누군가에게 탈취당했기 때문에 그런 죽음을 맞게 되었다고도 말합니다총독부는 군사를 파견해 삐뚱의 무덤을 지키도록 하여 성묘객들의 접근을 금지했는데 실제로는 시삐뚱이 되살아나 무덤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바타비아 민중의 염원을 잠재우려던 목적이었습니다. 갑자기 예수가 생각나네요.

 

시삐뚱은 결국 아킬레우스와 지크프리트, 임꺽정과 김통정, 베오울프가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죽음으로써 브따위 사람들과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영원한 영웅으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시삐뚱의 일화로 인해 금강불괴 신체술 일무끄발은 인도네시아인들에게 더욱 깊이 각인되었고 심지어 인도네시아 현대사 초창기 건달들의 롤모델이 되기도 했습니다

 

시삐뚱이 사용했다는 금강불괴술은 특별히 일무 라웨론떽(Ilmu Rawe Rontek)이라 불리는 것이었는데 비단 총칼뿐이 아니라 독이나 산뗏저주 같은 흑마술로부터도 몸을 보호하는 술법으로 기본적으로 악마의 힘을 빌린 흑마술로 알려져 있습니다그래서 이 술법을 오래 사용하면 이성을 잃고 자기도 모르게 악행과 참람한 짓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물론 시삐뚱이 독실한 무슬림이었다고 믿는 사람들은 절대 동의하지 않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라웨론떽이란 어원은 디캐피테이션(decapitation), 즉 참수를 뜻합니다. 그래서 이 술법을 사용하는 자는 몸과 머리를 분리하지 않는 한 그에게 깃든 주술의 힘으로 반드시 되살아난다고 믿었습니다거의 뱀파이어 수준의 생명력인 거죠그래서 당시 바타비아 주민들은 시삐뚱이 부활할 것이라 믿었던 것입니다그러나 당시 신문기사와는 달리 시삐뚱은 일반 총알로는 상처를 입힐 수 없어 히네경감이 특별히 금으로 만든 탄환으로 시삐뚱을 쏘았다 하며 그가 쓰러진 후 즉시 목을 베어 몸과 목을 따로 따로 매장했고 사람들이 그 목을 다시 붙일 것을 우려해 매장한 곳도 비밀로 해 그가 실제로 어디에 묻혔는지 아무도 모르게 했다고 합니다.

 

물론바타비아 사람들은 모두 그가 고향인 라와벨롱 가까이에 묻혔다고 생각합니다실제로 탐문해 보면 텔꼼(인도네시아 전신전화국)의 서부 자카르타 꺼분저룩(Kebun Jeruk)지점 사무실 앞 공터에 누런색 대나무들이 솟아 있고 빨간벽돌이 사각형을 이루어 쌓인 곳을 그의 무덤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런 표시가 없어 과연 그게 사실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사족이지만 시삐뚱은 성인이 된 후 주로 딴중쁘리옥 인근 마룬다(Marunda)에 살았고 지금은 거대한 공단과 컨테이너 야적장들이 들어선 그곳엔 그가 살던 집이 아직도 남아 때때로 방문객들이 찾아 듭니다최근 자카르타 민간항공기 교통량이 수까르노-하타 공항 수용능력을 넘어서자 당국에서는 마룬다 지역에 ‘시삐뚱 공항’이란 신공항 건설계획을 밝힌 데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이 신공항은 나중에 까라왕 지역에 만드는 것으로 변경되었다가 반뜬 쯩까렝 지역의 기존 수카르노-하타 공항에 대규모 세 번째 터미널이 최근 완공되면서 흐지부지되어 버렸습니다.

 

 

 

금강불괴술을 쓴 역사 속또는 설화 속의 위인들은 시삐뚱만이 아닙니다.

 

스승에게서 익힌 금강불괴술로 데막(Demak)왕국 술탄을 위해 거대한 미친 소를 때려잡았다는 조코 띵끼르(Joko Tingkir dari Lamongan), 빠장왕국의 술탄 아디위자야의 폭정에 항거해 단신으로 왕의 대군과 맞서 한 손에 마법의 창또 다른 한 손엔 갈라진 배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내장들을 둘둘 말아 묶은 끄리스단검을 들고 싸웠다는 아리야 뻐낭상(Arya penangsang), 길에서 만난 두꾼의 도움으로 마자빠힛 왕국 브라위자야 대왕의 궁궐에서 자신의 몸을 태워 얻은 납으로 거대한 철문을 하루 만에 맞춰 완성했다는 자까똘레(Jaka Tole), 그리고 도로명 또는 족자의 대학이름으로 더욱 유명한 가자마다(Gajah Mada)의 전승 등 인도네시아의 역사와 설화 속에는 금강불괴술이나 그와 유사한 술법을 사용한 인물들이 넘쳐 납니다.

 

일무끄발(Ilmu Kebal), 일무끄삭띠안(ilmu Kesaktian) 또는 일무까우라간(Ilmu Kauragan)이라고도 하는 이 금강불괴술은 그렇게 인도네시아의 역사 속에 녹아들어 아직도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그리고 금강불괴술을 지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부적이나 성물을 전해준 두꾼의 경고에 따라 특정 음식을 먹지 않거나 평생 여자를 품지 않거나 특정한 장소에 가지 않거나 특정한 물건을 손대지 않는 등 일정한 금기를 지킵니다그 금기는 삼손처럼 머리를 자르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끄리스단검이나 반지 같은 성물을 몸에서 떼어놓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시삐뚱의 경우 고도의 금강불괴술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금기를 지켜 평생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하며 그의 마지막 날 짧은 머리를 했던 것은 그가 원래 머리를 자르지 않아야 한다는 금기를 깬 것으로 그래서 총에 맞아 죽게 된 것이라고도 합니다.

 

지금도 대놓고 과시하진 않지만 어떤 두꾼으로부터 그럴듯한 부적을 하나 받아 들고서 자신이 이제 일무끄발, 금강불괴의 신체를 가지게 되었다고 믿으며 전장에 나서는 전사들이나 시장통에서 돈을 뜯는 건달들, 적들이 우글거리는 오지 광산에 들어가는 사업가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죠.

아킬레우스와 지크프리트와 시삐뚱이 어떻게 최후를 맞았는지를요. ()

 

 

** 일무끄발의 소유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