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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때림과 최면술, 빙의현상과 라따한(Latahan)의 상관관계 본문
멍때림과 최면술, 빙의현상과 라따한(Latahan)의 상관관계
인도네시아인들의 멍때림은 벙옹(bengong)이라 표현합니다.
많은 현지인들, 특히 여성들이 쉽게 벙옹상태에 빠지는 것에 대해 다른 견해들이나 높은 수준의 학술적 연구결과도 있을지도 모르나 난 개인적으로 현지 도시빈민들 상당수가 유아시절부터 몸에 밴 후천적 만성 두뇌피로 때문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젖을 떼고 말을 시작하고 걸음마를 떼게 될 즈음 빈민촌 뒷골목 아이들은 다른 미취학아동들과 휩쓸려 놀면서 그 이전엔 하루의 반 이상이던 취침시간이 획기적으로 감소합니다. 사실상 낮잠을 전혀 자지 않게 되는 것이죠.
더욱이 엄마에 대한 강력한 의존관계가 구축되면서, 집이나 길거리에서 빈둥거리거나 도박이나 하러 다니는 아버지 대신 소고백화점이나 패밀리가라오케 같은 직장이나 남의 집살이 허드렛일로 돈 벌러 나간 엄마를 아이들은 밤 늦게까지, 때로는 새벽까지 애타게 기다리곤 합니다. 성인들도 하루 8시간은 자야 할 터에 도시빈민층 유아들은 그 이하의 시간을 자곤 하는데 절대적 수면부족에 시달린 유아들의 두뇌는 그 나이에 맞는 정상적 발달을 하지 못하기 쉽습니다. 아이들은 자는 동안 키도 크고 두뇌도 성장하는 것인데 말입니다.
물론 도심 고층빌딩에서 일하는 영어 유창한 고학력 직원들이나 중요한 미팅에서 만나게 되는 고위관료나 상류층 거래선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 한줌도 되지 않는 그들의 육아지식이나 영양상태는 한국 평균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생산현장이나 학교에서 집단 빙의현상으로 쓰러져 스와힐리어나 티벳어를 중얼거리는 일도 절대 없습니다.
수면부족의 유아시절을 보낸 빈민층의 자녀들은 중고교시절, 더 나아가 직장생활을 시작할 즈음엔 이미 꽤 심각한 벙옹상태, 멍때림 상태를 보이곤 합니다. 그래서 한국에선 거의 발견하기 힘든 ‘최면술 사기’라는 것이 기승을 부리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멍때리는 상대에게 접근한 어떤 사람이 갑작스러운 손짓, 소리, 행동 또는 접촉만으로 간단히 최면상태에 빠뜨린 후 금품을 갈취하는 범죄입니다. 물론 자기가 횡령하거나 분실하고서 최면술강도 핑계를 대는 사례도 없지 않지만 그건 그만큼 최면술사기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최면술사 범인, 문자와 전화 통해 효율적인 사기행각
Ilustrasi Penipuan Gendam. ©2014 Merdeka.com
(전략) 최면술이란 인간의 각성단계를 변화시켜 뇌파의 베타파를 알파파와 테타파로 끌어내릴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예술 수준의 소통방식이라 할 수 있다. UIN대학 사회학자 무스니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최면술을 행하는 것이 그만한 수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중략)
무스니는 최면술을 사용한 사기행각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였다. 최면술사 범인은 피해자의 눈을 응시하거나 신체적 접촉을 통해 뭔가를 암시하는 방식으로 최면술을 시전한다. 피해자가 최면술에 걸리면 그 다음은 모든 게 만사형통이다. 그래서 최면술에 걸리지 않으려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 금방 친해지지 말고 신체접촉이나 눈을 마주치는 것을 되도록 피해야 한다. (후략)
(출처 – 머르데카닷컴 2015년 3월 15일자)
이런 최면술 사기는 주로 50-60대의 여성을 대상으로 하지만 젊은 여성이나 현지에서 흔히 ‘반찌’(banci)라고 부르는 여성성향 남성동성애자들의 피해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월급봉투나 금반지, 차량 열쇠 같은 것을 자발적으로 최면술사에게 넘겨주는가 하면 심지어 현금출납기에서 스스로 돈을 빼서 갖다 준 후 나중에 제정신을 차리고 울고불며 자책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인도네시아인들은 특별히 최면술에 잘 걸리는 민족일까요?
난 이 역시 유아시기 절대적 수면부족으로 인한 모종의 두뇌기능장애때문이라 생각하는 편입니다. 최면술의 ‘암시’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 ‘벙옹’ 상태가 현지 인력집약적 공장들과 각급학교에서 겪고 있는 집단 빙의현상 원인의 한 축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빙의현상과 관련해 앞서 멍때리는 ‘벙옹’상태에서 파생되는 라따한(Latahan) 이라는 버릇을 한 번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한국엔 거의 없지만 인도네시아에는 이런 버릇 가진 사람들 참 많습니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닌데 ‘라따’(Latah)란 벙옹상태에서 갑자기 질문을 받거나 예기치 않은 상황에 놀라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말이나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헤버리는 버릇을 말합니다. 심한 경우엔 일단 라따 상태에 돌입하면 다음 상황을 충분히 예측 가능함에도 응당 취해야 할 반응 대신 계속 엉뚱한 반응만 반복하기도 합니다. 가장 눈에 띄는 공통점은 놀라서 갑자기 튀어나온 대답을 한 번 더 되뇌이는 식으로 같은 대답을 두 번 한다는 것입니다.
정도가 심하지 않은 경우엔 깜짝 놀라 펄쩍 뛰면서 “쪼뽓” (copot)!, 이띨, 꼰똘 등등의 말을 내뱉는 정도인데 한국사람이라면 ‘어머나!’, ‘엄마야!’, ‘맙소사!’ 정도, 양식있는 무슬림이라면 ‘아스타필루라짐’ (Astagfirullahaladzim) 정도면 될 상황에서 거의 번역이 곤란한 욕설 비슷한 것을 무의식적으로 입에 담으며 오버하곤 합니다. 그들의 반응이 때로는 재미있기도 하고 때로는 짜증스럽기도 하죠.
놀라서 말이 헛나오는 정도라면 다행이지만 때로는 행동을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라따’한 친구에게 어떤 행동을 갑자기 보여주면 사전에 아무런 약속이 되어 있지 않음에도 내가 한 행동을 급히 따라하거나 그 행동에 반응하는 어떤 특정 행동을 취해 보이거나 말을 내뱉는 겁니다. 무의식적으로요. 언젠가 아이스크림 파는 자전거가 길모퉁이를 가까이 지나쳐 거기 멍하니 서 있던 한 할머니가 갑자기 ‘아이, 이런, 이런...’하면서 자전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반사적으로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춤을 추던 것을 본 적도 있습니다. ‘라따’한 상태가 매우 심한 것인데 보는 사람은 배꼽을 잡고 웃을 지도 모르지만 막상 당사자는 몹시 힘들어 하더군요. ‘라따’ 상태가 심한 사람들의 동영상이 유튜브에도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외부 영향에 대해 유달리 더욱 민감하고도 구체적으로 엉뚱하게 반응하므로 사람들 놀림의 대상이 됩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대비해도 절대로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일견 최면술에도 쉽게 걸릴 것 같은데 인도네시아 경찰청의 발표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Polisi Beri Tips Hindari Kejahatan Hipnotis
경찰이 알려주는 최면술범죄 피하는 방법들 CNN Indonesia 2014. 12. 13
(전략) 6. 최면술사기를 피하려면 주변에 라따(Latah)한 사람과 함께 다니세요. 라따(Latah)란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버릇 같은 것인데 오히려 이로 인해 최면술 암시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후략)
(출처 - CNN 인도네시아 2014년 12월 12일자)
‘라따’한 사람들은 최면술에 절대 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들 스스로의 독특한 반응방식 때문에 최면술사가 기대하는 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고 엉뚱한 대답을 두 번씩 몰아서 하는 버릇 때문에 최면술사의 암시가 깨지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라따’한 사람들은 ‘벙옹’상태에서 가장 방어하기 어려운 최면술의 영향력을 그렇게 간단히 벗어나 버립니다.
‘라따’한 사람들은 끄수루빤에도 잘 걸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집단 빙의의 속성 중 하나가 공포를 매개로 한 집단적 암시인데 최면술과 마찬가지로 그 암시가 ‘라따’한 사람에게는 먹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생산공장의 2층 현장 사무실에서 내려다보는 집단 빙의현상이 벌어지는 작업장 광경은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사람들을 마구 쓸어버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 라인에 100명쯤 되는 사람들이 통째로 비명을 지르며 넘어가거나 검품조에서 비명을 지르는 여종업원을 중심으로 반경 7-8미터 안에 있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쓰러져 미친 듯 경련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 중엔 정말 ‘라따’가 심한 사람도 있어 잔뜩 겁먹은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비명이나 소동에 자기도 일단 화들짝 놀라 남들과 같이 반응하긴 했는데 다들 쓰러져 거품을 물고 헛소리를 중얼거리는 와중에 혼자 멀쩡한 게 뻘쭘해 반 박자 늦게 쓰러지면서 애써 귀신 들린 척 연기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거라 믿습니다.^^
(이상)
라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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