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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도시괴담 속의 여귀들

beautician 2021. 2. 3. 11:55

 

 

즘바딴 안쫄과 카사블랑카 터널의 여귀 

 

 

 

 

자카르타 도시괴담 중엔 꾼띨아낙의 종래 개념을 벗어난 다른 버전의 여자귀신들이 등장합니다그들은 헝클어진 긴 머리와 흰색 복장 등 꾼띨아낙의 기본 드레스코드를 정면으로 깨뜨립니다그 중 하나가 그 유명한 시마니스 즘바딴 안쫄(Si Manis Jembatan Ancol) 이라 불리는 안쫄의 여자귀신입니다두니아판다시(Dunia Fantasi)있는 안쫄거기 맞습니다.

 

 

 

안쫄 여자귀신의 유래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버전들이 존재하는데 그 중엔 자카르타 북부 안쫄 실개천의 다리 위에서 치한들에게 쫒기다 결국 물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미녀가 귀신이 되어 당시 치한들을 저승길로 끌여 들였고 지금도 그 차갑도록 아름다운 자태로 그 개천가를 오가면서 밤늦게 차를 몰고 지나다 흑심을 품는 남자들을 제물로 삼는다는 식의 얘기가 보편적이지만 이 여자귀신의 기원에 대한 좀 더 신빙성 있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1971년작 영화포스터                                                  안쫄 여자귀신 초상

 

    

 

19세기 네덜란드 강점기에 지금의 자카르타인 바타비아에 살던 씨티 아리아는 어머니 엠뻐르그리고 언니 뽁과 함께 한 부자 소유의 주택가에 살고 있었습니다. 아리아가 16살이 되었을 때 부자는 아리아와 결혼하려 했고 죽어도 그의 첩이 되고 싶지 않았던 아리아는 언니 뽁이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대며 자꾸 피했지만 종국엔집에서 도망쳐 나와야만 했습니다. 

아리아는 도망치던 중 우이 탐바샤(Oey Tambahsia)라는 또 다른 갑부를 알게 되는데 지금의 안쫄인 빈땅마스(Bintang Mas) 지역에 저택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아리아는 늑대를 피해 범의 소굴로 들어온 셈이었어요우이 역시 지독한 바람둥이였기 때문이었죠. 우이는 젊은 여인들을 수집하는 것으로도 악명을 떨치고 있었습니다아리아의 미모와 매력에 푹 빠진 외이는 두 명의 건달을 불러 아리아를 납치해 오도록 시켰습니다.

 

 

 

아리아는 삐운수리아라는 이름의 두 건달에게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도망쳤지만 지금의 순떠르 호수 인근인 번둥안 덤뻣(Dendungan Dempet)이라는 음산하기 이를 데 없는 장소에 이르러 참혹하게 살해당하고 맙니다. 아리아의 시체는 안쫄다리에서 400미터 정도 떨어진 논바닥에 버려졌습니다리드완 사이디(Ridwan Saidi)라는 브따위 출신 작가가 아리아의 전설에 대해1955-1960년 사이 이 지역 사람들을 탐문해 증언을 종합했는데 사건자체는 1817년에 벌어졌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모태로 순떠르와 안쫄 지역에서는 씨티 아리아의 떠도는 원혼이라 여겨지는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목격담이 지금도 줄을 잇고 있습니다

1960년대에 안쫄지역이 아직 늪지대였을 때 한 뱃사공이 이 안쫄다리의 미인이라 불리는 여인을 만났는데 그녀가 한 밤 중에 배에 올라타며 낸 뱃삯이 나중에 보니 나뭇잎으로 변해 있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안쫄공원 출구 근처에서 담배를 파는 안쇼리는 씨티 아리아를 가까이서 본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그는 1990년에 처음으로 담배판매대를 열었는데 그게 안쫄의 흔들다리 바로 옆이었어요. 어느 목요일밤 한 시 경약간 찌푸린 날씨였는데 손님을 기다리던 안쇼리 앞으로 한 여인이 지나쳐 갔습니다어느 정도 멀어졌던 그 여인은 다시 돌아서 미소를 지으며 안쇼리의 매대 앞으로 다가왔어요담배를 사러 온 손님이라 생각한 안쇼리는 먼저 인사를 건넸는데 그때 안쇼리와 그 여인과의 거리는 불과 50센티 정도였습니다. 안쇼리는 그 여인이 귀여운 얼굴에 노란색 셔츠와 회색치마를 입고 있었음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그런데 뭘 사겠냐고 묻는 순간 그 여인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1995년에는 안쫄의 한 화가에게도 한 여인이 찾아와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해 왔습니다날은 이미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고 가는 빗줄기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습니다화가는 여인이 요구한 대로 캔바스 위에 붓을 놀리기 시작했는데 그 여인의 모습을 반쯤 그렸을 때 여인이 감쪽같이 증발해 버렸다고 합니다. (위의 오른쪽 그림현지주민들은 그 여인이 안쫄다리의 처녀귀신일 거라고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출처 : 메트로뉴스_비바co.id.) 

 

 

 

다른 자료를 살펴 보면 이 여인의 이름이 마리암(Mariyam) 또는 할리마(Halimah)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하지만 모든 전승에서 꽃처럼 아름다운 처녀로 피어나던 이 소녀는 잔혹하게 겁탈당한 후 살해되어 안쫄다리 인근에 버려졌다고 합니다이 지역엔 예전에 호리존 호텔(Hotel Horizon Ancol)이 있었는데 이 호텔에서도 눈 앞을 지나가던 아름다운 여인이 갑자기 사라지는 광경이 여러 번 목격되었다고 합니다지금 머큐어호텔(Mercure Hotel)이 있는 자리입니다.

 

 

 

 

 

안쫄 여자귀신에 이어 또 다른 꾼띨아낙의 드레스코드 파괴자로서 카사블랑카 터널의 여인이 있습니다이 친구는 늘 빨간 옷을 즐겨입어 카사블랑카의 빨간귀신’(Hantu Merah Casablanca)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습니다.

 

 

 

 

 


 

 

 

카사블랑카 터널은 롯데쇼핑건물이 있는 사트리오(Jl. Satrio) 거리에서 대단위 공동묘지들이 좌우로 펼쳐진 카사블랑카거리로 건너가는 지하도로 꾸닝안/라수나사이드(Jl. Rasuna Said) 거리 밑을 횡단합니다.

 

 

 

이 터널은 자카르타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붐비는 지역에 위치해 있지만 도심 대부분이 그렇듯 밤의 적막이 찾아오면 카사블랑카 터널도 스산한 어스름에 잠깁니다더욱이 붉은 빛이 감도는 터널 안의 조명은 음산한 분위기를 더하는데 자카르타에 소재한 다른 터널들에 비해 매우 높은 사고빈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밤에 이 터널을 지나는 운전수들이 세 번 경적을 울리는 것은 터널 안 귀신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인사와도 같은 것입니다그런 관례를 지치지 않은 사람들은 필시 천장에 목이 매달려 흔들리고 있는 꾼띨아낙을 목격하거나 차량 옆을 스쳐지나가는 오토바이 뒷좌석에 다소곳이 앉은 귀신과 시선을 마주치기 쉽습니다. 실제 피해자들은 어디선가 나타난 노파와 어린 아이또는 빨간 옷을 입은 여인이 차량 앞을 빠르게 지나는 모습에 놀란 급히 핸들을 꺾었다고 합니다그런 상황이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지곤 했던 것입니다.

 

 

 

이 터널과 카사블랑카지역의 괴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잘 정리된 글을 찾았습니다.

 

 

 

 

Teror Hantu di Terowongan Casablanca (카사블랑카 터널의 귀신들)

 

(전략) 무덤터를 갈아엎고 건설된 이 터널에서는 도깨비장난 같은 신기한 현상들이 자주 발생한다인근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터널에 살고 있는 신비한 존재들이 가끔 그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때로는 할머니의 모습을 띄기도 하고 때로는 꾼띨아낙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여자귀신으로또는 근두루어나 어린 아이의 모습을 띄기도 한다

 

 

 

할머니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귀신은 겁탈당한 끝에 살해당한 여인의 원혼이라고 사람들은 믿고 있다이야기는 4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전승에 의하면 언급된 할머니는 옛날 매우 아름다운 처녀였다고 전해진다이 처녀는 일단의 남자들에게 추행을 당했는데 남자들은 그 정도로 만족하지 못했다처녀가 너무나 아름답고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었다그들 중 몇몇 남자들은 급기야 이 처녀를 다른 한적한 곳으로 끌고 들어가 숨을 거둘 때까지 윤간하며 욕보였다이 돼먹지 못한 젊은이들이 처녀의 시체를 버린 곳이 오늘날 카사블랑카 터널이 들어선 곳이다할머니의 모습으로 현신한 이 처녀의 원혼은 모든 남자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터널의 음산함은 더더욱 짙어져 몇 년 전에는 한 남성이 이 터널 입구에서 목을 매고 죽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 터널 귀신들에 대한 공포 역시 나날이 깊어져 적잖은 자카르타 시민들이 이 터널에서 겪는 이상한 사건을이 상당수 교통사고로 귀결되곤 했다따라서 남성 운전자들이 이 터널을 지나려면 먼저 경적을 울려 귀신들 양해를 구하지 않으면 치명적 사고를 당하거나 귀신들에 의해 소름끼치는 모종의 공포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후략)

 

 

 

밤이면 이 터널 안쪽이나 그 인근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온다고도 하며 그 울음소리의 근원지가 계속 이동한다고도 합니다.

 

 

 

안쫄다리의 아름다운 여인이나 카사블랑카터널의 여자귀신을 포함해 인도네시아의 꾼띨아낙들은 모두 남자들에 의해 겁간당해 살해당한 여인들의 원혼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그만큼 여인은 전통적으로 인도네시아 사회의 약자였고 앞서 언급하지 못한 순델볼롱까지 포함해 대부분의 여자귀신들이 출산과 임신에 관련된 것은 그것이 여성의 인생에 있어 가장 위험한 모험이자 가장 위태로운 도전이며 그런 상황에서 도움을 받기는커녕 남성들에게 홀대받고 학대당하는 것은 깊고 깊은 원한을 남긴다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물론 많은 나라에서 비슷한 처녀귀신의 전승을 찾아 볼 수 있는 것은 그런 정서를 전세계의 사람들이 다소간 공감하고 있다는 반증이겠죠.

 

 

 

하지만 현실의 꾼띨아낙들은 자신을 그런 처지로 몰아넣은 남자들에게 복수하는 것보다는 임산부를 괴롭히고 갓난아이에게 위해를 끼치는 쪽으로 어딘가 삐딱하게 방향을 잡은 듯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그것은 그만큼 인도네시아 여인들이 소극적이라는 의미일까요아니면 인도네시아의 전통과 이슬람 교리에 뿌리박힌 남성우월사상때문일까요?

 

 

 

그리고 세계곳곳에서 발견되는 미스테리가 여기 꾼띨아낙에게서도 발견됩니다.

 

도대체 왜 여자귀신들은 다들 미인일까요?

 

 

 

 

 

 

 

 

 


 

2019. 6.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