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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웨안(Bawean)섬의 귀신들

beautician 2021. 1. 30. 11:49

 

바웨안(Bawean)섬의 귀신들

 

 

 

 

 

 


 

 

 

자바해 한 가운데에 있는 바웨안섬(Pulau Bawean)은 동부자바 그레식(Gresik) 북방 120킬로미터 해상에 위치하는데 작지만 많은 인구와 부족들을 담고 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1743년 이 섬에 점령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인도네시아를 침공하면서 이 섬을 전략적 요충지로 간주하고 대대적인 공습을 감행했고 2003년엔 이곳 남쪽 해상을 지나 호주를 향하던 미항모 칼빈슨(USS Carl Vinson)에서 출격해 인도네시아 영공을 침범한 F-18 호넷 전투기 편대에 맞서 마디운에서 발진한 인도네시아 공군 F-16 전투기들이 바웨안섬 상공에서 대치한 사건도 있었다.

 

 

 

이 섬은 상까뿌라(Sangkapura) 지역과 땀박(Tambak) 지역으로 나뉜다.  최근 인구는 107,000명으로 파악되는데 대부분 바웨안족이고 자바, 마두라, 깔리만탄, 술라웨시, 심지어 수마트라 출신의 족속들이 함께 살면서 전래의 문화와 언어에 일정부분 영향을 끼쳤다. 바웨안은 어업과 농업 중심 사회로 말레이시아와 싱가폴에 일하러 나간 이들도 수백 명에 이르며 이 지역 방언인 바웨안어는 마두라어와 유사점을 갖는다.

 

 

 

 

 

이 지역 출신 유명인들로 하룬 토히르(Harun Tohir), 야야 자이니(Yahya Zaini), 자이누딘 바웨안 알마키(Zainuddin Bawean al-Makki), 쉑 무하마드 하산 아사리 알바웨아니 알바수루아니(Syekh Muhammad Hasan Asyari al-Baweani al-Basuruani), 아시즈 사타르(Asiz Sattar) 등을 꼽는데 명단 맨 앞에 있는 하룬 토히르는 해병대원으로 깔리만탄에서 말레이시아와의 대결이 한창이던 1965310일 동료 우스만과 함께 싱가포르 시내까지 침투해 당시 샹하이 뱅크가 입주해 있던 맥도널드하우스를 폭파했다. 이 사건은 사망자 3, 부상자 33명을 냈고 하룬과 우스만은 도주하다가 말레이시아군에 붙잡혔다. 전쟁이 끝나고 그를 보낸 수카르노 대통령도 하야하여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사이에 평화가 찾아온 196810월 그는 현지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말레이시아 입장에선 테러범 내지 공비에 불과했지만 인도네시아에선 국가영웅으로 지정되었고 그의 유해는 인도네시아로 돌아와 자카르타 소재 깔리바타 영웅묘지에 묻혔다. 바웨안섬의 유일한 공항은 그를 기념해 하룬 토히르 공항(Harun Thohir Airport)이라 명명되었다. (사진: 하룬 토히르 전기 표지)

 

 

 

이 섬은 현재 관광객 유치를 위해 홍보에 열을 올리는 중이고 실제로 이곳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마음을 뺏긴 이들도 적지 않은 듯 하다. 하지만 자바해 한가운데에 떠 있는 이 섬을 약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 이유는 이 곳이 불길한 곳, 귀신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라는 일부 편견때문이다. 뽀쫑, 꾼띨아낙 같은 인도네시아 어디에나 있는 전국구 귀신들 말고도 이 지역만의 특산 귀신인 오렝뽀떼(oreng pote), 일룽란장(Ilung lanjang)같은 놈들도 나온다는 것이다.

 

 

 

그중 오렝뽀떼는 귀신 이야기를 즐기는 이들 사이에서 그 괴이한 모습으로 유명하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마치 시체처럼 창백하고 새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렝뽀떼(oreng pote)하얀 사람이란 의미의  인도네시아 표준어 오랑뿌띠(orang putih)의 바웨안식 발음이다.

 

 

 

오렝뽀떼...일까?

 

 

 

오렝뽀떼의 출현은 재앙이 임박했다는 징조라 하여 누구든 오랑뽀떼를 보았다면 곧바로 이장에게 알려 재앙이 마을을 비껴가도록 안전을 비는 대대적인 의식을 치러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평소에도 이 귀신이 나타나지 않기를 항상 기도한다.

 

 

 

과거 식민지시대에 이 섬에 들어온 네덜란드인이 현지 주민들에게 잔혹한 고문을 당하던 중 사망한 일이 있었는데 그 원혼이 바웨안 주민들에게 원한을 품고 오렝뽀떼가 되어 재앙을 몰고 오는 것이라고 주민들은 믿고 있다.

 

 

 

오렝뽀떼 말고도 바웨안 섬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유명한 귀신은 이룽란장(Ilung Lanjang)이라는 놈인다. 코가 길다는 뜻인 히둥빤장(Hidung Panjang)에서 온 이름인 만큼 이 귀신은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길다. 이룽란장은 등이 굽은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길을 갈 때 지팡이 대신 그 긴 코로 땅을 짚으며 걷는다. 하지만 그 땅 짚는 소리가 일반 지팡이들보다 더욱 크고 딱딱한 소리를 낸다. 이 귀신은 한 밤중에 밤늦게 잠들지 않은 아이들에 나타나는데 잡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일찍 자도록 겁을 준다는 것이다. (이런 훌륭한 귀신이 있나!) 기본적으로 개구장이 아이를 돌보는 부모들을 돕는 귀신이다. 실제로 많은 아이들이 이 귀신을 이미 만났다고 한다.

 

 

 

하지만 이 귀신의 괴기함은 다섯 살이 채 안되어 죽은 아이들의 무덤에 코를 꽂아 에너지를 얻는다는 부분이다. 그 코로 뭔가를 빨아들인다는 얘긴데 그게 뭔지는 굳이 상상하고 싶지 않다. 이룽빤장의 유래는 분명치 않은데 아마도 코가 큰 아랍인이나 네덜란드인들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만 나돌 뿐이다.

 

 

 

이룽란장

 

 

 

 

 

바웨안에 유명한 또 다른 귀신은 마띠아낙이라는 처녀귀신이다. 일단 인상착의는 자바의 꾼띨아낙과 별반 다를 바 없지만 해질 녘까지 노는 어린아이를 유괴하는 꾼띨아낙에 비해 바웨안의 마띠아낙은 주로 남자들을 홀린다. 하지만 자바의 꾼띨아낙만큼 미인도 아니라 하며 사람을 죽이거나 유괴하지도 않는다고 하므로 어딘가 긴장감과 박진감이 떨어진다. 인도네시아 귀신협회에서 바웨안 섬을 그리 좋아하지 않을 듯 하다.

 

 

 

 

 

 

번잡한 자바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라서 그럴까? 바웨안은 귀신들마저 사뭇 순박해 보인다. 그런데 이 섬에서만 발견되는 오렝뽀떼나 이룽빤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350년간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로 통치했던 네덜란드인의 흰 피부와 큰 코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1743년 이래 이 섬에 상륙한 네덜란드인들은 주민들에게 어떤 일을 했던 것일까? 어떤 계기로 그들은 재앙을 몰고 오는 하얀 악령과 참견장이 피노키오 할아버지 귀신 모습으로 극단적으로 양극화되어 바웨안 섬 문화 속에 남아있는 것일까? 필자는 결국 찾아내지 못했지만 그 단서가 될 만한 사건이 자바와 바웨안 역사 어딘가에 묻혀 있을지도 모른다. ()

 

 

2019. 4. 18

 

 

 

참고자료

 

https://www.tanahnusantara.com/oreng-pote-muncul-malapetakapun-datang/

 

https://id.wikipedia.org/wiki/Pulau_Bawean

 

http://boyanzz.blogspot.com/2018/01/cerita-tentang-pulau-bawean-dan-asal.html

 

https://www.parapsikologi.co.id/fenomena-oreng-pote-benarkah-pertanda-bencana-dan-bahaya-dunia/

 

https://sandekala.com/asal-usul-orang-p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