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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의 신들(1)-힌두와 무속 사이

beautician 2021. 1. 31. 17:52

 

발리의 신들 힌두와 무속 사이

 

 

레약 가면

발리의 대표적 귀신이라면 역시 레약(Leak)을 꼽는다.

 

LEAK이라고 쓰고 레약(Layak)이라고 읽는다. 레약(Leak)이 링가닝 악사라(Lingganing Aksara)를 줄인 말이라고도 하는데 대략 링가닝 주문정도로 번역되겠다. 주문을 외워 소환하는 귀신 또는 주문을 통해 주술사가 변신한 존재임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원래는 Lia Ak에서 온 단어라고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자바어, 발리어 등 언어학까지 가기엔 지면도, 구력도 부족하다.

 

발리 민속에서 레약은 내장을 줄줄 매달고 날아다니는 머리통으로 표현된다. 레악은 그렇게 날아다니며 임산부를 덮쳐 태아나 갓난아기의 피를 빨아 먹으려 한다. 여자 레악 둘과 남자 레약 하나, 그렇게 세 마리의 레약이 전설에 등장한다. (사진:)

 

그런데 그렇게 내장을 주렁주렁 달고 날아다니는 머리통 귀신은 수마트라의 빨라식(Palasik), 깔리만탄의 꾸양(Kuyang), 말레이시아의 뻐낭깔(Penangkal) 등 모두 명칭만 다를 뿐 거의 모든 부분에서 인상착의가 동일한 것으로 보아 동남아 지역의 대표적 귀신형태 중 하나인 것이라 생각된다.

레약 석상

 

그래서 레약은 동류의 머리통 귀신들과 마찬가지로 흑마술을 시전하는 인간으로 식인습성을 가지고 있다. 레약들의 여왕으로 알려진 랑다(Rangda)는 민간의 무속의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녀의 가면이 마을 죽음의 사원에 모셔져 있고 축제가 있을 때면 랑다가 퍼레이드의 중심에 선다. 랑다를 따르는 것들은 레약들 말고도 여러 다른 악령들이 있다.

 

레약들은 묘지에 출몰해 시체를 파먹으며 돼지 같은 동물, 파리 같은 곤충으로도 변신할 수 있다. 레약은 발리 전통무용 가면으로 표현된 것처럼 대개 긴 혀와 커다란 송곳니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낮에는 보통사람의 모습으로 인간사회에 스며들어 있지만 밤에는 머리와 장기들이 몸에서 분리되어 날아다닌다. 그런 무시무시한 (때로는 분명 불길한) 레약의 머리모형이 집안 벽에 장식품으로 걸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실생활에서 발리 사람들은 질병이나 죽음의 원인을 레약에게 돌리기도 한다.

 

레약은 흑마술을 연마한 사람이 변한 마물인데 더욱 강력한 힘을 얻기 위해 제물을 필요로 한다. 흑마술의 위력을 더하기 위한 약재의 재료로 사람의 내장을 즐겨 쓰기 때문에 레약은 시체에서 그 재료를 얻으려고 묘지에 자주 출몰한다. 물론 산 사람의 내장을 노리기도 한다. 레약으로 변하는 주술사가 아직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 끄리스 칼을 턱 밑 목에서 머리를 향해 올려 찌르면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면서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죽게 된다고 한다.

 

랑다

 

 한편 앞서 언급한 랑(Rangda)는 발리 전통무속의 대표 귀신 레약들의 우두머리 여왕이다. 랑다는 고대 자바어로 과부를 뜻하는 말이다. 어린아이들을 먹어치우는 악신으로 마물들과 악한 주술사들의 군대를 이끌어 선한 군대의 수장 바롱(Barong)을 대항한다. 바롱, 또는 아이르랑가(Airlangga)를 상대로 한 랑다의 전투는 바롱 댄스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는 영겁을 통해 계속되는 선과 악의 싸움을 상징하며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과 귀신들은 발리 문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랑다는 길고 헝클어진 머리칼, 축 처진 유방, 무시무시한 손톱에 나체가 다 드러난 노파로 표현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날카로운 어금니와 툭 튀어나온 눈, 그리고 길게 삐져나온 혀 등 무시무시한 형상을 하고 있다.

 

발리가 힌두교 섬인 만큼 랑다는 두르가(Durga)전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두르가(Durga)는 전쟁에 능한 여신으로 선한 이들의 평화와 번영, 규범을 위협하는 악령들과 사악한 세력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며 모성애와 보호본능으로 불의에 대한 노여움, 자유를 위한 폭력, 새로운 창조를 위한 파괴를 관장한다. 그녀는 파괴, 변신, 보호를 그 속성으로 하는 전쟁의 여신 칼리(Kali)의 어머니이다. 요컨대 꼭 선한 여신은 아닌 셈이다.

 

 

랑다는 악의 진수가 인격화된 두려운 존재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서운 칼리여신이 인도의 서부 벵갈, 아삼(Assam), 트리푸라(Tripura), 케랄라 (Kerala)에서 자애로운 어머니로 추앙하는 것처럼 랑다도 발리 일부 지역에서 수호신으로 숭상받고 있다. 랑다를 표현하는 색상인 흑색과 적색은 칼리의 색상과도 일치한다. 그녀의 초상들도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진 칼리와 차문다(Chamunda)와 매우 유사하다

 

랑다는 짤론 아랑(Calon Arang)의 전설, 그리고 이혼당해 유배를 떠난 자바의 여왕 마헨드라다타(Mahendradatta)의 전설과도 연관되어 있다. 랑다로 환생하게 되는 짤론 아랑은 10세기경 끄디리 왕국 아이르랑가 왕의 치세 시절 자바에 큰 혼란을 몰고 온 전설적 인물이다. 짤론 아랑은 기라(Girah) 지역에 사는 과부이자 고위 흑마술을 익혀 농부들의 수확을 망치고 질병을 퍼뜨리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랏나 망갈리(Ratna Manggali)라는 아름다운 딸을 가지고 있었는데 남자들은 장모가 될 이가 무서워 누구도 청혼을 해오지 않았다. 딸이 혼사에 어려움을 겪자 이에 격분한 짤론 아랑은 그 복수로 한 어린 소녀를 납치해 묘지로 끌고가 두르가 여신에게 희생제물로 바치며 마을을 저주했다. 그러자 다음날 엄청난 홍수가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괴질이 창궐해 마을을 덮쳤다. 어떤 약도 듣지 않았다.

 

새롭게 해석된 ‘랑다 기라’에서 짤론 아랑과 랏나 망갈리

 

이 사건을 보고받은 아이르랑가 왕은 저주를 걷기 위해 우선 기라(Girah)에 군대를 보내 짤론 아랑을 치도록 했으나 오히려 강력한 흑마술에 군대는 패퇴했고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제 아이르랑가 왕은 이 문제에 대처할 방법을 고문 음뿌 바라다(Empu Bharada)에게 물었다. 이에 음뿌 바라다는 자신의 제자 음뿌 바훌라(Empu Bahula)를 랏나와 결혼시키며 시간을 벌기로 했다. 양측은 결혼을 축하하며 7일 밤낮으로 잔치를 벌였고 마을에 찾아들었던 재난은 마침내 멈췄다. 짤론 아랑은 딸의 성대한 결혼식에 흡족했고 당사자인 바훌라와 랏나 역시 행복해 했다. 그러나 바훌라는 자기 임무를 잊지 않았다. 그는 아내 랏나에게서 장모인 짤론 아랑이 매일 밤 묘지에 나가 주술서를 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짤론 아랑은 마법의 비법이 담긴 책을 한 권 가지고 있었는데 음뿌 바훌라가 이를 보고 음뿌 바라다에게 뺴돌렸다. 책을 도둑맞았음을 알게 된 짤론 아랑은 격분하여 음뿌 바라다와 전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주술서를 잃은 짤론 아랑은 두르가 여신의 비호를 받지 못해 결국 전쟁에서 패했고 그녀가 죽은 후 왕국은 짤론 아랑의 흑마술 위협을 마침내 떨쳐낼 수 있었다. 그 짤론 아랑이 랑다로 환생해 이제 레약을 비롯한 발리 마물들의 여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후세에서는 생전의 짤론 아랑을 기라에 살던 랑다라 하여 랑다 기라(Rangda Girah)라고도 부른다.

 

또 다른 버젼에서 랑다는 11세기의 역사적 실존인물인 마헨드라다타(Mahendradatta) 여왕 또는 동부자바 메당 왕국(Kerajaan Medang) 말기 이샤나 왕조(Isyana Dynasty) 다르마왕사 왕의 여동생이었던 구나쁘리야다르마파트니(Gunapriyadharmapatni) 공주에게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발리의 왕 우다야나(Udayana)의 왕비이자 아이르랑가 왕의 친모가 된다. 마헨드라다타가 두르가여신을 숭배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아이르랑가의 어머니인 마헨드라다타는 마법과 흑마술을 시전했다는 혐의로 우다야나 왕의 미움을 사 유배를 당하면서 서사가 시작된다. 상처받고 모욕당한 그녀는 과부가 된 후 전남편의 왕궁과 왕국 전체에 복수를 하려 했다. 그녀는 정글로부터 레약들과 각종 악령들을 소환해 왕국에 질병과 죽음이 창궐케 했다. 이제 아이르랑가는 친모에게 맞서 왕국을 구원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전투가 시작되자 랑다(마헨드라다타)와 그녀가 흑마술로 불러낸 악령들의 군대는 너무나 막강해 아이르랑가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 영계의 왕 바롱(Barong)에게 도움을 청했다. 바롱이 아이르랑가의 군대에 힘을 더하자 랑다는 주문으로 흑마술을 시전해 아이르랑가의 모든 병사들이 독 뭍은 끄리스칼로 스스로의 배와 가슴을 찔러 죽게 만들려했다. 그러나 바롱 역시 주문을 날려 병사들의 몸을 도검불침 금강불괴로 만들어 위기를 피했다. 결국 바롱에게 패한 랑다는 도주했다.

 

바롱

 

여기 등장한 바롱(Barong)은 발리 신화에 등장하는 사자형상의 존재를 말한다. 그는 영적세계의 왕이자 선한 자들의 지도자로서 발리 모든 악령들의 어머니이자 여왕인 랑다를 대적한다. 

 

바롱 동물가면 춤은 상향(sanghyang)춤과 함께 발리의 대표적인 토속무용으로 알려져 있다. 힌두교의 영향이 미치기 전부터 존재한 것이다. 오스트로네시안 전통을 이어받은 토착 인도네시아인들은 이와 유사한 조상신 또는 자연신들을 상징하는 가면춤 전통을 가지고 있다. 다약족의 후독(Hudog)춤 같은 것이 그렇다. 바롱(Barong)이란 말은 바흐루앙(bahruang)이라는 고어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겨지는데 이 단어는 현대 인도네시아어에서 곰을 뜻하는 버루앙(beruang)이 되었다. 바롱은 선한 영으로 동물의 형상을 한 숲의 수호자다.

 

발리의 전승에서 넷째 형제라고도 불리는 바나스 빠띠 라자(Banas Pati Raja)라는 선한 영은 아이들의 수호령이다. 서양 수호천사 개념과 비슷하며 바롱을 움직이게 하는 영이다. 바나스 빠띠 라자는 종종 두 마리의 원숭이들과 동행하는 사자의 모습으로 구현된다.

 

베이징 강아지

바롱은 빨간 머리통과 두터운 털로 뒤덮힌 사자의 모습을 하며 보석들과 거울조각을 엮어 만든 장식품을 뒤집어 쓰고 있는데 그 외관이 베이징 강아지와 매우 높은 싱크로율을 보인다. 바롱의 기원은 매우 오래되고 또 분명치 않지만 아마도 힌두교가 도래하기 전 동물들에게 신비한 보호능력이 있다고 믿으며 자연신들을 섬기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자 형상의 바롱은 사실 다섯 개의 전통적 바롱의 한 종류다. 발리의 각 지역은 각자의 숲과 토지를 지키는 수호령이 있어 바롱도 사자 뿐만 아니라 돼지, 표범, 코끼리 등 각각 다른 동물들을 형상화하고 있다.

 

레약과 랑다, 그리고 바롱의 가면을 보면 어딘가 닮은 듯 다르다.

 

 

처음 볼 땐 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어딘가 무시무시한 쪽이 랑다고 좀 귀여운 쪽이 바롱이다.

바롱 댄스나 연극에서는 내장을 매달고 달아다니는 레약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지만 좀 더 제대로 된 느낌을 내자면 이런 모습이다.

 

 

 

힌두교 문화를 바탕에 깔고 있는 랑다와 바롱의 전설은 깊이 들어가려면 한도 없겠지만 이 정도로 겉만 핥고 가는 게 딱 좋을 듯 하다. ()

 

바롱 댄스

 

 

 

2019. 3. 23.

 

 참고자료

https://en.wikipedia.org/wiki/Rangda
https://en.wikipedia.org/wiki/Barong_(mythology)

https://en.wikipedia.org/wiki/Leyak

http://banggajadihindu.blogspot.com/p/kisah-leak-di-bali.html

https://kumparan.com/creeps/asal-usul-leak-bali

http://masbrooo.com/ternyata-begini-pantangan-sebelum-berubah-menjadi-leak/

http://mehranschool.org/dinas-kebudayaan-sulit-temukan-balian-dan-penekun-ilmu-le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