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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직원 활약사

영업직원 활약사 (6)

beautician 2012. 6. 11. 22:37

 

계속 골때리기 - 여섯번째 라운드

 

그렇게 배가 불렀는데 오토바이 타고 나갈 수 있겠어?”

아직 충분해요. 걱정 마세요.”

 

내가 걱정하는 투로 말하면 띠따는 반색을 하며 그렇게 대답하곤 했습니다. 처음엔 대견스러웠지만 나중에 진실을 알고 난 후엔 가증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사무실에서 이완과 함께 외근 출발을 하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퇴근해 버리고 하루 종일 혼자 돌아다닌 이완을 저녁 때 사무실 콤플렉스 뒷편 와룽에서 다시 만나 마치 내내 함께 다닌 척 했던 띠따가 가식을 떠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 띠따의 그런 가식은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고문이었어요.

 

"웬만하면 무리하지 말고 쭈띠 하밀(Cuti Hamil – 출산휴가) 받아. 회사 일 하다가 애기한테 문제 생기면 곤란하잖아?”

애기 낳을 때 다 되면요. 아직은 견딜 만 해요.”

 

저렇게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띠따의 얼굴에 내 손에 들려 있던 커피잔을 부어 버리려는 충동을 참아야만 했습니다. 그런 감정을 애써 표내지 않은 이유는 섣불리 해고해서 띠따가 우리 영업기밀을 들고 경쟁업체에 쪼르륵 달려가도록 만드느니 막판에 사고가 커지지 않도록 물밑에서 잘 관리하다가 띠따가 출산휴가를 낼 시점쯤에 퇴직금도 챙겨주면서 조용히 내보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임산부에게 험한 소리를 해대고 싶지 않았던 것도 이유라면 이유였어요. 하지만 띠따는 질기게도 막판까지 출산휴가를 내지 않고 버텼고 나도 더 이상 강요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이완의 영업 내역에 대한 내사를 진행했습니다. 직원들의 비리 문제에 대한 내사는 은밀히,그러나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져야 하고, 그래야 결정적인 순간에 피 묻은 손을 확! 낚아채 비틀 수 있는 것인데 관리인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그나마 보안을 위해 메이가 지휘하는 달랑 한 팀만으로 당시 자카르타에만 수백개에 달하던 거래선을 일일이 조사하는 것은 물리적 시간적 한계가 있었습니다. 뚜따의 경우엔 근무기간이 얼마 되지 않아 그가 담당하던 거래선이 당시 많지 않았고 몇몇 횡령 건들이 운 좋게도 내사 초기에 분명히 드러났기 때문에 단시간 내에 꼼짝 못하게 엮을 수 있었지만 내사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거래선에게 직접 판매내역을 확인하는 것이었으므로 근무기간이 1년을 훌쩍 넘는 이완의 경우 내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 거래선들을 통해 본인에게 유출되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했어요.

 

그의 보고 내용이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미 여러 부분에서 확인되고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10% 정도를 조사한 상태에서 A에게 판매했다는 물건이 사실은 B에게 가 있고 A에게는 C에게 판매한 물량의 반이 가 있는 등 이리저리 복잡하게 돌려막기를 한 흔적들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상당한 금액이 비는 것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상태였어요. 하지만 거의 엉망진창이라고 할만한 보고서와 실상의 차이를 보면 이완이 아무런 개인적 이익도 없이 그토록 복잡하게 보고서를 조작했을 리 없다는 것이 내 추론이었습니다. 1-2개월씩 수금이 늦어지고 있는 건들은 어쩌면 그 실체가 없을 수도 있다는 개연성이 컸습니다.

 

그 즈음 이완도 내사의 화살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요.그때 이완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대략 몇 가지 정도뿐이리라 생각했습니다.사실대로 털어놓고 용서를 구하거나, 갑자기 도주해 버리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사실이 드러나더라도 철저히 부인하는 것 등등 말입니다. 그러나 이완은 그렇게 엉성하지 않았고 오히려 전혀 다른 각도에서 상황의 진행을 꺾어 버립니다.

 

고의인지 실수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할부금을 내고 있는 것으로 보고된 그의 거래선들 중 일부가 사실은 도주한 지 오래라는 사실을 그는 직원들을 통해 흘렸습니다. 그건 당연히 정식으로 문제삼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이었으므로 난 이완을 내 방으로 불러들였어요.

 

누가 보고서에 허위보고 하라고 했어? 도망간 놈들 있으면 제 때 보고를 해야 잡아 올 거 아냐? 6개월 전에 도망간 놈들은 지금쯤 이리얀 자야까지도 충분히 갔겠다. 어떻게 책임질 거야?”

 

 

이완은 판매내역을 돌려막기로 해 놓은 이유가 도주한 거래선관 관련된 판매물량들을 덮으려다 보니 불가피하게 벌어진 것이고 그나마 그간 일부라도 수금보고하고 입금한 할부금은 실제로는 자기가 월급 받고 커미션 받아 메꾼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었어요. 회사가 손해 보는 일이 있더라도 직원들 주머니를 쥐어짜지 않겠다는 생각이었으므로 그런 설명에 마음이 좀 약해지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솔직히 그 설명이 잘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게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나를 현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귀머거리 봉사로 만드는 허위보고를 용인할 수도 없는 일이고 발생한 손해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제 커미션에서 할부로 제하면 안될까요?”

 

그건 안될 일이었습니다.

 

우리 회사는 판매 커미션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어요. 인도네시아에서 직원들을 적극적으로 일하게 만드는 것은 획기적인 임금인상도 아니고 전격적인 후생복지 시스템의 도입도 아닙니다.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바로 커미션이지요. 특히 우리 같은 마케팅 전문회사에서는 말입니다. 자동차 판매회사나 보험회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월급을 안주는 것도 아닌데 커미션 제도가 없으면 영업부분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건 사실 좀 깝깝한 얘기지만 현실을 현실입니다.

 

너희들이 열심히 매출을 올리고 사고만 내지 않으면 커미션이 너희 월급의 몇 배도 될 수 있어. 그래서 이게 너희들 판돈인 거야. 판매하는 만큼 커미션은 올라가고 사고가 나더라도 커미션에서 까는 거지. 결국 최악의 경우 다 까지고 커미션이 마이너스 나더라도 월급만은 고스란히 집에 가져갈 수 있게 되는 거야.”

 

판매커미션 제도를 시작하면서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실제로 메이는 커미션으로 자기 월급의 7-8배까지 가져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커미션을 많이 주는 건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직원들에게 이번 달 1천만 루피아의 커미션을 줘야 한다면 그건 직원들이 내게 이번 달 수억 루피아를 벌어 주었다는 의미였으니까요. 직원들의 최소 수입을 보장해 준다는 측면도 있었고 보너스 성격인 커미션을 통해 매출 증대를 기대했던 것이지만 사실 좀 켕기는 바도 없지 않았습니다. 몇 세대에 걸쳐 인도네시아를 살아가는 화교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박봉과 철두철미한 통제로 직원들 숨이 끊어질동 말동 틀어쥐고서 더욱 각박하게 쥐어짜며 관리하는 건 다 그럴만한 경험을 토대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일 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커미션을 정해 직원들에게 추가적 수입증대의 기회를 열어주지 않으면 그들은 얼마가 되었던 정해진 급여에 안주하며 빈둥거리게 되거나 스스로 추가수입을 얻기 위해 회사 안팎에서 몰래 기회를 엿보게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뭔가 좀 중요한 일을 시켜주려 해도 월급을 쥐꼬리만큼 주면서 별 걸 다 시킨다며 오히려 툴툴거리거나 케이블 TV 회사 외근직원들이 본사 몰래 개인 집에 케이블을 연결해 주고 해당 대금을 가로채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커미션이란 게 양날의 검이어서 커미션제도를 도입하는 순간부터 운영의 묘를 지혜롭게 살리지 못하면 회사가 어느 정도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게 된다는 것 역시 모르는 바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판매 당월 말에 커미션을 주기로 하자 당월 매출이 뛰어 올랐지만 다음 달에 적지 않은 수가 반품되어 들어왔습니다. 실제로 구매할 마음도 없는 거래선에게 한번 써보라고 안겨 놓고서 일단 매출로 보고했던 것을 다음 달 당연히 수금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회수하게 된 것인데 이미 지급해 버린 커미션이 문제가 되어 회사와 영업직원 사이에 주고받을 돈 관계가 복잡해졌어요. 실제로는 판매하지도 않는 제품을 집에 숨겨 놓고 판매보고를 했다가 커미션을 챙긴 후 슬그머니 반품보고를 하며 돌려 놓는 눈치도 보였습니다. 그래서 판매 후 매월 수금하는 부분만 월말에 커미션을 지급했더니 이번엔 제품이 반품되거나 거래선이 도주한 경우에 보고를 하지 않는 일이 빈번했어요. 이완이 반품된 제품을 보고하지 않고 끄마요란 메디테라니아 아파트의 부인에게 안겨 놓은 것도 매번 수금할 때마다 발생하는 커미션을 챙기겠다는 생각에서였지요. 아무리 제도를 보완해도 돈이 걸려 있는 일이라면 잔머리와 꼼수가 가능한 모든 틈새를 파고 드는 겁니다.

 

커미션을 판돈이라고 얘기했던 것은 직원들에게도 월급 이외에 도매상 마진 정도의 커미션을 보장해 직원들이 그 커미션을 쿠션 삼아 판매현장에서 가격도 그 한도 내에서 탄력적으로 운용하며 나름대로 수완을 발휘할 토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었고 거래선이 도주하는 사고가 나더라도 완충 범퍼의 용도이기도 한 커미션 계정 내에서만 정리하도록 하여 최소한 매월 가져가는 기본 월급만은 보장해 주는 것이었으므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안정성도 보장되는 셈이었지요. 그러나 문제는 절대로 고정적일 수 없는 그 커미션을 직원들은 고정수입으로 생각하고 싶어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넌 이미 커미션까지 몽땅 다 가불해 갔어. 네 커미션 계정이 마이너스가 나 있는 건 사건사고가 난 걸 커미션에서 정산했기 때문이 아니라 네가 커미션을 가불해 갔기 때문이라구. 이제 정작 사고가 난 상황에 그걸 정산해야 할 네 커미션 계정은 이미 빵꾸가 난 상태야. 이젠 더 이상 정산하고 제하고 할 커미션 자체가 남아 있지도 않다고!게다가 넌 상식적으로 그동안 허위보고한 것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할 마당에 지금 나한테 네고를 거는 거야?”

 

내색하지 않으려 해도 그간 쌓인 게 있어 나도 반응이 까칠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동안 몰래 띠따를 퇴근시키고 혼자 뭔가 사고를 치고 돌아다니면서 내내 거짓말을 한 것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집안 노인들을 모두 몰살시키고 집에 불까지 내면서 결근, 조퇴허가, 휴가만 얻어 낸 것이 아니라 매번 가불도 해갔던 것입니다. 사정이 그리 딱하다는데 인정상 가불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월급은 물론 원래 업무용 범퍼로 사용했어야 할 커미션마저 마이너스가 나도록 가불해 갔던 것이죠. 그리고선 이제 깡통이 되어 버린 커미션 계정을 더욱 마이너스 내자는 것인데,그것도 할부로 말이죠. 그건 책임지겠다는 태도도 아니었고 사고고 가불이고 간에 아무튼 월급만은 꼭 받아가겠다는 심하게 야무진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이번만은 월급에서 까야겠다. 일시불로.”

 

그 월급마저도 그는 이미 다 가불해 간 상태였어요. 결국 다음 달 월급에서 까야 했는데 그러기로 한 것이 이완에게는 좋은 빌미를 준 셈이었습니다.

 

이완은 다음날부터 출근하지 않았고 사직서를 SMS로 보내왔던 것입니다. 요즘 한국에서도 그런지 모르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그렇게 SMS로 사직서 보내는 게 트랜드인 모양이에요. 깔 게 있다면 자기 퇴직금에서 까라는 싸가지 없는 문장이 그 SMS 뒷부분에 붙어 있었습니다.

 

상황의 전개방향이 무척 좋지 않았습니다. 내사가 아직 충분히 진행되지 않은 상태였고 뚜따의 경우에서 경험했던 바 사고를 친 직원이 도주하거나 퇴직하고 나면 몇 개월이 지난 후에도 그가 저지른 은밀한 사고들이 계속 수면 위로 드러났는데 이완에 대해서는 급여도, 커미션도, 그가 친 사고의 증거도, 내가 쥐고 흔들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아무런 소명도, 정산도 없이 저렇게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도록 손도 못쓰고 놔두는 것이 속 쓰린 일이었습니다.

 

이완이 하는 말도 일리는 있었어요.”

 

그 상황에서 메이가 한 마디 거드는 얘기에 더욱 열불이 납니다.

 

직원들이 다들 하는 얘긴데 도망간 거래선들 관련한 매출을 커미션에서 한꺼번에 까는 건 너무 부담스럽다는 거에요.그 동안 몇 번 말씀드렸지만 미스터르가 들으려고 하지 않았잖아요? 원래 그 판매 건이 3개월 할부로 가는 거였다면 사고가 났더라도 커미션도 3개월 동안 할부로 까달라는 거거든요.”

나도 몇 번을 설명했는데 너도 이해를 못하면 다른 직원들이 어떻게 이해하겠니?”

 

단번에 까든 할부로 까든 사고금액의 절대 액수가 변하는 것도 아니고 월급을 까는 것도 아니었어요.또한 대개의 경우 사고금액은 커미션 계정에서 숫자로만 정산이 되는 것이어서 커미션 총액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해도 그걸 해당 직원이 당장 돈으로 뱉어 내야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마이너스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고 그게 플러스로 돌아서면 직원들이 현금을 쥘 수 있는 게 우리가 시행하던 판매커미션 제도였고 난 그게 직원들에게 무척 유리한 조건이라고 생각했어요. 사고가 생겨 마이너스가 났더라도 다음 달에 더 잘해서 다 복구하고 다시 플러스를 내면 또 커미션을 받아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니 사고금액을 커미션에서 단번에 깐다고 해도 직원들에게 당장 손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책임져야 할 내역만 정해지고 실제로는 회사가 우선 감수하는 것이었어요.

 

메이처럼 월급의 7-8배씩 커미션을 가져가는 것은 좀 특별한 경우였지만 다른 직원들도 별다른 사고가 없으면 월급의 2-3배를 커미션으로 가져가는 것이 보통이었어요. 그러나 사고가 나면 커미션 계정의 플러스 금액이 크게 줄어들거고 그 사고가 빈번하면 급기야 마이너스로 돌아서게 되죠. 그러면 비록 손해를 보전하기 위해 커미션이 마이너스 난 만큼의 금액을 담당 직원이 뱉어 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달엔 가져갈 수 있는 커미션이 대폭 줄거나 아예 가져가지 못하게 는 거죠. 그러니 사고금액을 커미션에서 할부로 까달라는 직원들의 요구는 사고금액을 회사가 우선 부담할 뿐 아니라 커미션 차감도 대부분 유보시켜 자기들은 여전히 월급의 몇배씩 커미션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의미와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건 회사가 불리하다 못해 봉이 되어버리는 조건이었으므로 그래서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거 이해해요. 그래도 직원들한텐 커미션이 큰 돈이고, 꼭 받고 싶고…, 그러니까 거래선이 도망가 버려도 회사에 보고하지 않고 쉬쉬하는 거라구요.”

 

사실 메이 자신도 그런 적이 있었고 모르긴 몰라도 다른 영업직원들도 그런 건을 몇 개씩 숨기고 있을 게 뻔했습니다. 메이의 경우는 대개의 경우 도망친 거래선들을 붙잡아 왔지만 그나마 그러지 못한 경우엔 그 거래선이 내야 할 할부금을 자신이 몰래 대납했고 완불이 된 후에야 내게 사실대로 얘기하고서 꿀밤을 한 대씩 먹었습니다. 나로서는 절대 동의할 수 없는 방식이었지만 어쨌든 메이는 그렇게 나름대로 책임을 진 셈이었죠.

 

문제는 그런 사고 거래선들이 메이의 거래선 중에선 100명 중 1-2명 정도였지만 다른 직원들은 사고의 빈도가 훨씬 높다는 점이었습니다. 띠따의 경우엔 10군데 중 2-3군데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물론 이건 더 큰 문제들로 연결됩니다. 감당할 수 없는 숫자의 거래선이 도망가 버린 것이 사실이고 그것을 회사에 숨기고 있었다면 어디서 어떻게 몰래 재원을 만들어 매월 해당 할부금을 대납했던 것일까요? 그게 정말 월급 받아 메꾼 것일까요? 이젠 그게 꼭 도망친 거래선들의 문제만은 아닌 게 되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이완이나 띠따가 회사에서 커미션을 가져간 것은 거의 사기나 다름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죄없이 옥살이를 한 적이 있지만 맘만 먹는다면 정말 악당보다 더 악한 짓도 해치울 수 있다는 걸 기억하세요.]

 

이완이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내온 것은 그가 그만 두고 나간 지 2주쯤 후의 일이었고 당시 지방거래선 확대에 주력하던 나는 마침 메이와 반둥 출장 중이었습니다. 이완이 옥살이를 한 것은 메이를 통해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완이 자기 입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전체적인 어조나 맥락은 내게 겁을 주려는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얘가 미쳤나 싶었습니다.

 

[나는 회사에 손해를 끼친 일이 결코 없습니다. 진짜 독사는 내가 아니라 내가 독사라고 미스터르 귀에 속삭이고 있는 그 여자라고요.]

 

대충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알 것 같은데 도무지 무슨 맥락인지 알 수 없었어요. 독사라고 지목된 메이에게 이완의 메시지를 보여 주었더니 메이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당시 우린 이완 거래선에 대한 조사를 거의 끝낸 상태였습니다. 이번엔 띠따도 농땡이를 피울 수 없었죠. 이상한 것은, 결정적인 게 아직 나오진 않았지만 메이가 조사한 거래선에서는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많이 발견된 반면 띠따가 조사한 이완 거래선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보고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건 나도 잘 믿어지지 않는 부분이었는데 메이 역시 그렇게 느꼈던 모양이었고 그래서 자신의 정규 일정을 진행하는 중간 중간에 틈나는 대로 띠따가 조사한 이완 거래선들의 일부를 메이가 한 번 더 방문해 보았던 것입니다. 띠따가 문제 없다던 거래선들에서 보고된 것과는 다른 사실들이 하나 둘 밝혀졌습니다. 대부분 돌려막기의 흔적들이었는데 그 중 그 돌려막기의 마지막 고리 정도라고 생각되는 거래선도 발견했어요. 이완의 거래선들은 대부분 이완이 팔았다고 보고한 제품을 실제로는 가지고 있지 않거나 다른 사람에게 판 것으로 보고된 제품을 가지고 있었는데 뗀데안 플라자(Tendean Plaza)의 알린(Alin)이란 여자는 보고된 제품 외에도 보고되지 않은 고가의 다른 제품을 구매해 아직도 할부금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던 것입니다.

 

그건…. 이완 개인 물건이야.거기서 수금한 건 보고된 것만 회사에 입금시키고 나머진 이완에게 전해 줘야 해. 아무튼회사에 문제 없도록 해 주면 되는 거잖아?”

 

띠따는 메이에게 그렇게 설명하며 버벅댔다는 겁니다. 회사 소유의 제품이 도대체 어떤 경로와 이유로 갑자기 이완의 개인 물건이 될 수 있었던 걸까요? 그걸 조사해서 보고하라고 지시를 받았던 띠따는 왜 그렇게 이완의 편에 찰싹 붙어 여전히 회사를 속이면서 이완의 이익을 대변하려 했던 것일까요? 그렇게 함으로써 띠따가 얻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메이는 그것도 아직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내게 당장 보고하는 대신 좀더 캐 들어가던 중이었어요. 이완이 나를 문자메시지로 위협하려 시도했던 것은 대충 그쯤이었습니다. 메이의 조사가 점점 좁혀 들어오는 것을 알고서 이완은 좌불안석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완이 그렇게 메이를 비난하는 것을 보면 메이가 정곡을 찌르고 있는 게 분명했어요.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끌라빠가딩의 한 거래선에 대한 띠따와 아흐맛(Achmat)의 보고가 서로 상충하는 사건이 생겼어요.

 

아흐맛!너 어제 레오스테판(Leo Stephan) 다녀오긴 다녀 온 거야?"

…”

근데 왜 보고서에 아무 말도 없어? 거기 손당(Sondang)이 할부금 못 내겠데? 밀린 게 벌써 두 달이 다 되어 가잖아?”

어제…,쮸띠(Cuti)었답니다.만나지 못했어요…”

 

내가 몰아붙이는 아흐맛은 이완이 그만 두기 2달쯤 전에 입사한 친구였는데 이완이 그만두고 나서는 줄곧 띠따와 조를 이루고 있었어요. 바로 전날 띠따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임신 7개월인가 되면 갖는 특별한 의식때문에 쭈띠, 즉 휴가를 냈고, 그래서 몇몇 거래선에 아흐맛을 혼자 보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메이는 다음 날 아침 손당과 전화통화를 했고 전날 손당이 휴무가 아니었음은 물론 그간 그의 구매한 것으로 되어 있던 판매 건이 사실 마트라만(Matraman) 소재의 한 미용학원에 다니던 자기 지인이 구매한 것인데 이완의 요청에 따라 자기 이름만 빌려주었음을 이미 확인했던 것입니다. 아흐맛이 어제 손당을 방문하지도, 연락하지도 않았다는 사실 역시 확인했고요.그걸 모르는 아흐맛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거지요.

 

그럼 손당이 왜 나한테 컴플레인 하지? 자긴 어제 널 못 봤다는데?”

 

아흐맛 얼굴이 흙빛으로 변합니다.

그 옆에서 자긴 아무 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던 띠따도 크게 당황하는 기색입니다. 뭔가 켕기는 게 있는 거죠. 내가 아흐맛을 부르기 전에 메이는 내게 좀 더 세게 몰아 붙이라고 주문을 넣어 둔 상태였습니다. 내가 직접 확인했다고 생각한 아흐맛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머뭇거렸어요.

 

다시 묻는다. 너 어제 정말 레오스테판 다녀 온 거야?”

“….아니요…”

뭐라구?

“….사실은 직접 가진 않고….”

도대체 뭐라는 거야? 안 들리잖아!!”

 

아흐맛은 띠따를 잠깐 돌아보더니 마음을 굳힌 듯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사실 난 띠따가 하라는 데로 한 것뿐이에요. 레오스테판의 손당 문제는 띠따가 다 알아요. 전 모르는 일이라구요.”

 

언제나 그렇든 현지 남자들은 끝까지 책임지는 놈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게 쉽게 여자들에게 떠넘기지요. 이번엔 띠따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습니다.

 

일어설 필요 없어! 앉아서 설명해.”

키가 작아 불러온 배가 이미 엄청나 보이는 띠따가 중간에 쓰러지기라고 할까봐 좀 겁이 났습니다. 하지만 몰아 붙일 땐 몰아 붙여야 합니다.

 

죄송해요. 제가 가서 손당에게 수금해 올게요."

정말로 손당한테서 수금하는 거야?”

그건…., ….”

수금할 돈이 정말 있긴 한 거야? 마트라만 미용학원에?”

 

띠따는 숨이 헉! 하고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이젠 띠따도 손당이 네게 모든 걸 다 말했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메이에게 보고받은 대로라면 마트라만에도 수금할 돈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판매 당시 손당의 마트라만 친구가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전액 결재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 돈은 이미 이완이 챙겼고요. 내가 궁금한 것은 그렇다면 지난 달 손당에게서 4개월 할부 중 첫 수금을 했다며 입금한 돈은 어디서 난 것일까요? 이완이 해먹은 돈을 친절히 대납해 줄 띠따가 아닌데 말입니다.

 

난 어쩌면 이 일 때문에 이완을 잡으려 경찰들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난 뗀데안의 알린 얘기도 알고 있어. 근데 넌 이완이 그만 두고 나간 후에도 줄곧 걔랑 한통속으로 움직이는 걸로 보여. …, 좀 있으면 애기도 낳아야 하고…, 내가 보기에도 네가 의심스러운데 경찰들이 널 의심하지 않을 것 같아?”

 

경찰을 들먹이며 겁을 주는 건 참 않좋은 관행이지만 대개의 경우 이게 먹힙니다. 띠따는 곧 순순히 입을 열었습니다.

 

그게 사실은….”

 

예상대로 돌려막기는 이완의 거의 전체 거래선들에게서 벌어지던 일이었는데 그 중 일부는 실제로 도망간 놈도 있었고 또 일부는 마트라만의 경우와 같이 현금결재를 받아 횡령한 것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발생한 문제들의 대부분을 이완은 내게 보고하지 않았고 알린처럼 보고되지 않은 판매분에서 수금하는 돈으로 비는 돈도 돌려 막았던 것입니다. 띠따는 알린의 보고되지 않은 판매제품에 대해서 횡설수설 설명했지만 이완이 우리 창고의 재고를 몰래 빼돌려 판 것이라고 난 확신했습니다. 당시 재고검사를 담당하던 직원이 띠따였거든요. 지금 돌려막기 한 세트가 발견된 것이지만 그런 게 여러 세트 있으리라는 것도 난 확신했고 띠따 역시 자신의 계정에서 그런 비슷한 짓을 몰래 저지르고 있으리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초창기엔 그토록 서로 반목하던 띠따와 이완이 부정부패를 통해 마침내 진정한 한 팀으로 거듭났던 것입니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다 치자….,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는 건 용서하기 힘든 일이다. 이완 거래선들…., 일주일 내에 전부 다 다시 정리해서 보고해. 난 네가 임신한 몸으로 경찰서에 출두하는 걸 원하지 않지만 네가 다시 제출할 보고서에서 돌려막기나 횡령한 내용들을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은 게 또 발견되면 그 다음엔 안됐지만 나한테가 아니라 경찰한테 보고서 내용을 설명해야 할 거야.”

 

그 말이 쐐기를 박았던 것일까요? 일주일의 말미를 주었지만 띠따의 매일 보고하는 성의를 보였고 그녀가 보고하는 이완이 횡령한 총액은 매일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띠따가 이완과 전화로 고성의 말다툼을 하는 것도 거의 매일같이 들을 수 있었고요. 띠따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완을 팔기로 그때 마음 먹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나나 메이가 전혀 짐작도 못했던 이완의 사고와 비리들도 띠따가 캐내어 보고해 왔던 것이죠. 나중엔 띠따는 직원들 앞에서 이완이 사기꾼이라며 원색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띠따에 대한 내 철저한 불신을 씻어낼 수 없었습니다.

 

비리혐의가 완전히 드러나던 즈음에 이완은 오래 살고 있던 빠더망안(Pademangan) 지역을 뜨고 잠적해 버렸습니다. 도주해 버린 것이죠. 나중에 들리는 소문으로 이완은 땅거랑 어딘가에서 운전사로 일한다고 하더군요. 그가 잠적해 버린 이유는 어쩌면 내가 경찰을 보내겠다는 말을 띠따를 통해 듣고 정말로 믿어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완의 사고는 그렇게 막을 내렸지만 적잖은 후유증을 남겼습니다.

 

띠따는 전향한 좌파들처럼 단짝이던 이완을 배신하고 그의 비리를 들춰내는 데에 막판 총력을 쏟았지만 이완에 대한 일차 조사가 막 끝났던 당시만 해도 여전히 회사의 눈을 속이고 있었어요. 출발할 때는 아흐맛과 함께 나가지만 끌라빠가딩 지역을 빠져나가기 전에 약혼자인 로만이 자길 데리러 오기로 했다며 아흐맛과 헤어졌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아흐맛에게 그날의 행선지를 맡긴 것도 아니고 띠따가 실제로 로만의 오토바이에 매달려 수금처를 돌아다녔던 것도 아닙니다.

 

띠따는 아흐맛과 헤어진 후 로만을 만난 것이 아니라 이완을 만났던 겁니다.회사를 이미 그만 둔 이완에게 수금처들이 적힌 자료들을 맡기고 자긴 퇴근해 버렸던 거에요. 그리고는 저녁 때 이완을 다시 만나 수금내역을 넘겨 받고 그런 다음 아흐맛을 만나 마치 내내 함께 다닌 것처럼 하며 사무실로 돌아왔던 것이죠.

 

이완과 띠따 사이엔 어떤 딜이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두 사람이 공유하는 어떤 이익이 분명히 있었고 그래서 서로서로 돕고 감추고 덮어 줬던 것이죠. 이완은 그 시기에 띠따 대신 몰래 수금을 진행하면서 회사에 보고되지 않은 판매부분에 대한 수금, 자기 돈을 챙겼던 것입니다. 띠따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하루 종일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다니길 원치 않았고 이완은 자기 돈을 띠따 등 다른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직접 챙기길 원했던 것이죠. 모르긴 몰라도 이완은 자기가 퇴직한 후에도 자기 돈을 챙기는 데에 협조하는 띠따에게 별도의 커미션을 지급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궁합이 맞는데 임신만 하지 않았다면 띠따는 로만이 아니라 이완과 결혼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난 그 후 종종 했습니다.

 

 

 

문제는 아흐맛에게서도 벌어졌습니다.

레오스테판의 손당 건에 대해 본의 아닌 양심선언을 했던 아흐맛은 회사 오토바이를 끌고 띠따와 함께 사무실을 출발했다가 띠따가 이완을 만나기 위해 자신을 길바닥에 풀어 놓고 가던 날마다 무슨 일을 했을까요? 아흐맛이 몇 건 되지 않는 매출을 올린 건 매번 그렇게 혼자 다니게 되던 날이었습니다.

 

그 거래선이 잘란 코자(Jl. Koja)에 있다면서? 벌써 그 길을 위 아래로 몇 번씩을 왔다 갔다 했는데 찾을 수가 없어. 그 위치가 정확히 어디라고?”

 

우린 일요일도 근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각각 주중 원하는 날에 대신 쉴 수 있도록 해주곤 했습니다. 그날은 아흐맛이 쉬는 날이었고 메이가 또 다른 남자직원인 에꼬(Eko)라는 친구가 모는 오토바이를 타고 그가 한달 전에 판매했다는 한 거래선에 수금하러 가던 길이었어요. 메이가 전화로 문의할 때마다 아흐맛은 횡설수설하며 설명했지만 결국 그 장소를 찾을 수 없어 메이 일행은 잘란 코자에서만 위아래를 오가며 두 시간 가까이 허비해야 했습니다.

 

난 지금 브리몹(Brimob)에 근무하는 형님 차를 몰아주느라 바빠. 브리몹에 높은 분이야. 나중에 전화해.”

 

아흐맛은 막판엔 이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은 후 더 이상 전화연결이 되지 않았답니다. 브리몹은 인도네시아군 기동타격대입니다. 운전 중이라 바쁘다고 하면 될 것을 브리몹 높은 지위의 형님 운운 한 것은 역시 이상한 부분입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누굴 겁주려 하거나 위세를 과시하려 할 때마다 친인척이 경찰이나 군대에 있다며 어깨를 으스대죠. 그런데 장소를 묻는 전화를 그렇게 말하며 끊는 건 매우 부자연스러운 일이었고 메이는 아흐맛의 그런 이상한 태도가 잘란 코자에서 그녀의 일행이 찾지 못한 거래선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서 그날 저녁 나에게 보고해 왔습니다.

 

거래선 위치를 묻는데 브리몹을 들먹여?”

 

예감이 좋지 않았어요. 그리고 않좋은 예감은 늘 적중합니다.

난 메이에게 다음 날 아침부터 아흐맛의 다른 거래선들을 모두 조사하라고 지시했어요. 아흐맛의 그 몇 개 되지도 않는 거래선들이 잘란 꼬자에서 찾지 못한 그 거래선과 마찬가지로 모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유령회사임을 확인한 메이는 그 길로 아흐맛의 집까지 찾아 갔습니다. 그는 딴중 쁘리옥 가까운 쁠룸빵(Plumpang) 지역 좁은 골목 안의 작은 집에서 방 하나를 1년 단위로 임대해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는 가장이었습니다. 우린 뚜따 사건 이후 새로 채용하는 직원들의 집을 꼭 알아 두는 것을 규칙으로 세워 둔 상태였어요.

 

도망갔어요. 어제 밤에 픽업트럭 불러서 짐 싣고 허겁지겁 가족들이랑 떠났다는데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이 없어요.”

 

아흐맛의 집에서 걸려온 메이의 전화에 난 기가 찼습니다.

그 몇 군데 거래선에 판매했다는 유령매출이 현지인들 입장에서는 크다면 클 수도 있는 금액이었지만 그렇다고 그 돈을 빼돌린 것이 들통날 상황이 되자 온가족을 데리고 이사까지 하면서 도주하는 것은 그 전에도 그 이후로도 본 적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때는 내가 경찰을 운운하며 띠따를 밀어 붙이고 있던 시점이었고 이미 사고를 쳐 놓은 아흐맛이 덩달아 겁을 먹었던 것입니다. 입사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아흐맛이 그렇게 어설픈 횡령을 저지른 것은 물론 당시 우리 회사의 대부분 영업직원들의 도덕적 타락을 대변하는 지표이기도 했습니다. 이완과 띠따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던 돌려막기와 횡령을 가까이서 보면서, 그리고 어쩌면 일부나마 가담하면서, 저렇게 돈을 막 해먹어도 되는구나 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침 띠따는 물론 아무도 감시하지 않는 상태에서 우리 제품을 빼돌려 팔아 먹고 가짜 매출보고를 했던 것이죠. 아무리 그래도 한 두 달 사이에 들통나기 마련인데, 그래서 아흐맛은 이미 그때 우리 회사에서 오래 일할 생각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다가 이완의 사건으로 내가 띠따를 밀어 붙이자 아흐맛은 지레 겁을 먹고 그런 어이없는 도주를 계획했던 것이었겠죠.

 

그렇게 두 달 사이에 이완과 아흐맛 두 명이 도망가고 띠따는 절대 믿을 수 없는 직원으로 전락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우리 회사 영업력의 공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은 인원을 가지고 그냥 가는 게 나았을 것 같습니다. 다수의 영업팀들을 꾸릴 때나 메이 혼자 영업할 때나 절대 매출액엔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음엔 좀 더 나은 직원들이 들어오리라는 희망을 가졌고 어차피 메이 혼자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회사의 소매영업규모가 커져버린 상황에서 메이를 도울 직원들이 절실하게 필요했었죠.

 

그래서 직원채용공고를 또 신문에 내게 됩니다.

이미 여기까지도 골떄리는 사건들이 충분히 벌어진 셈이지만 이 후에 벌어진 일들과 비교해 보면 아직 이 얘기는 시작도 하지 않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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