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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직원 활약사

영업직원 활약사 (3)

beautician 2012. 3. 31. 18:41

 

 

 

 

소매부문의 영업력이라는 측면에서는 매회 에피소드에서 주,조연으로 출연하고 있는 메이를 능가하는 사람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메이의 영업력이 빛을 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창출하는 매출의 성격이나 규모보다도 나조차 가끔 부담스러워지곤 하는 결벽증에 가까운 금전적 청결함과, 가끔은 도를 넘어 자기비하라고 받아들여지기 쉬울 정도의 겸손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직장의 상관, 사장들이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메이와 스스럼없이 연락하고 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도움을 주고받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당연한 일이었지요.

 

그런 메이만큼은 못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위키에 비해 영업력 면에서만큼은 절대 꿀리지 않는 직원이 또 한 명 있었습니다. 그는 뚜따 (Tuta)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뚜따 닉 안드리에스 (Tuta Nick Andries) 라는 풀네임이 언뜻 내비치는 서구적인 느낌과 걸맞는 매우 이국적인 마스크를 가지고 있었죠. 그가 혼혈이라고 나는 확신했습니다. 그는 이 이름으로 페이스북 계정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 게재된 애인 마리아와 찍은 최근 사진을 보면 불과 몇 년 사이 십년도 넘게 늙어버린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가 쁘리부미(Pribumi = 토착민)가 아니라는 것은 여전히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아버지가 포르투갈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마나도(Manado) 출신인 그의 가족들은 당시 딴중 쁘리옥 항구가 가까운 마룬다(Marunda) 지역 빈민촌으로 이주해와 살고 있었는데 수세기 전부터 외항선들의 출입이 빈번하던 술라웨시 북부 마나도에서 그의 어머니가 포르투갈 선원을 사귀었다가 뚜따를 낳은 후 현재의 남편과 결혼한 것이라고 나는 추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메이가 어떤 일로 그의 집을 방문한 후 해준 얘기에 따르면 그의 부모 형제 자매들은 모두 오리지날 인도네시아인 얼굴을 하고 있고 그는 형제들 중 중간이라고 했습니다. 계산이 좀 복잡해지기 시작했어요. 포르투갈 선원을 만났을 시기가 애매해졌기 때문이었죠. 어쩌면 외국과의 교류가 빈번한 마나도에서 450년의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의 어느 시점에서인가 생겼을지도 모를 혼혈 유전자가 우연히 뚜따에게만 발현된 것인지도 모르죠.

 

아무튼 그는 동서양 어느 쪽의 기준으로도 미남으로 분류되기에 부족하지 않았고 입만 열지 않는다면, 그리고 좀 더 옷을 그럴 듯하게 입었다면 서양에서 온 귀공자라고 누구나 생각했을 것입니다. 고졸 출신인 그는, 그러나 스스로 많이 노력하고 연습한 듯 자칫 천박하게 들리기 쉬운 인도네시아어를 꽤 품위있게 구사했고 비록 문장까지 만들 능력은 없었지만 적재적소에 한껏 아크로바틱하게 혀를 꺾은 발음으로 영어 단어를 끼워 넣곤 했습니다.

 

(you), 그게 좀 꼼쁠리켓(complicated에서 차용)해도 꾸물거리지 말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봐. 돈 워리, 스삐리라웃! (Don’ worry, Spit it out!)

 

지나치게 짜맞춘 예문이지만 인도네시아 젊은이들은 이런 표현방식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인도네시아 말로도 꽤 어려운 단어들을 쓰면서 그 사이사이 영어를 막 섞어 넣는 거죠. 그리고 문장 맨 뒷부분에서는 영어로 완전히 한 문장을 얘기해 버리는 겁니다. 영어에 익숙지 않은 상대방이 알아 듣느냐 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멋있어 보이는 게 중요한 거죠. 현지 TV 예능 프로그램의 MC 들이나 드라마의 재벌 2세들이 이런 식으로 얘기하고 실제로도 미국 등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사람들은 친구들끼리 정말 이런 식으로 얘기합니다.

 

고졸인 뚜따도 곧잘 이런 식으로 말하곤 했는데 여자들은 단번에 뻑 갔습니다. 우월한 외모까지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우리 거래선의 태반인 벤쫑들에겐 두 말 할 나위도 없었죠.

 

속어로 반찌, 벤쫑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여성적 취향의 남자들이에요. 우먼 워너비(Woman Wannabe)라고 해야 할까요. 이 사람들은 게이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게이는 스스로의 남성성을 부담스러워 하지 않으면서도 남성성을 물씬 풍기는 다른 남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벤쫑 역시 다른 남성에게 끌립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남성의 몸에 갇힌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게이와는 큰 차이점인 것 같아요. 그래서 자신이 남자라는 사실이 부담스럽고 정말 여자처럼 멘스도 하고 생리통 한번 해 보는 것이 일생의 꿈이며 기회가 되고 돈이 된다면 성전환 수술 받기를 주저하지 않지요.

 

벤쫑은 남성역할의 레콩(Lekong)과 여성역할의 빼웡(Pewong)으로 나누는데 레콩은 게이와 분별하기 좀 더 어렵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빼웡들을 벤쫑이라 부르곤 합니다. 그런 벤쫑들은 기본적으로 매우 나긋나긋하고 부드럽지요. 물론 나긋나긋하고 부드럽다고 모두 벤쫑들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견 부드러워 보이는 그들의 매일의 삶은 그 살아가는 환경과 방법 또한 만만치만은 않습니다.

 

거지들과 뻥아멘들이 들끓는 도심 사거리 신호등마다 여장 남자들이 엉덩이를 하늘하늘 흔들며 구걸하면서 노래하는 모습을 우린 거의 매일 봅니다. 때로는 더 없이 남성적인 벤쫑이 전혀 어울릴 리도 없는 여장을 하고 거기에 선풍기 아줌마 같은 얼굴을 들이밀며 돈 달라고 손 내밀 때엔 소름이 끼치기까지 하죠. 미용실에 가면 미용사들 이름은 도나, 웬디, 다니엘라, 라트나 인데 수염터가 푸릇푸릇한 남자들이에요. 밤늦게 꾸닝안(Kuningan)에서 멘뗑(Menteng)으로 넘어가는 다리에서 맨 왼쪽 차선을 타고 좌회전하거나 뿔로마스(Pulomas) 톨게이트 뒷쪽 제약회사 앞길에 들어서면 초미니 원피스에 풀 메이크업을 한 벤쫑들이 섹시한 자태를 뽐내며 몸을 팝니다. 정확히 어떻게 파는지는 차마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들이 일으키는 강도사건들이 신문지면을 장식하기도 하지요. 매력적인 여장을 했지만 여전히 남자의 완력을 가지고 있고 인도네시아에 사는 서민들 대부분이 그렇듯 그들도 돈에 쪼들리고 있는 그들을 차에 태우고 인적이 더욱 드문 으슥한 곳으로 가기 때문이지요.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이슬람식 강력한 가부장제도 속에서 자신의 가족들로부터 시작되는 편견과 박해가 경멸적 시선을 동반하며 성적 소수자인 이들 벤쫑들의 사회적 입지와 경제적 여건을 치명적으로 짓누릅니다. 그리고 신중히 행동하지 못한 벤쫑들에게는 에이즈라는 결정적 죽음의 함정마저 곳곳에 도사리고 있지요. 내 거래선 중에서도 7-8명이 에이즈로 목숨을 잃거나 낙향하여 절망적인 요양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에서 십년 가까이 일하다 보니 외모가 점점 변해 가는 벤쫑들을 여럿 보게 되는데 처음엔 특이한 패션감각을 가진 사람이려니 생각하다가 좀 지나면 화장도 하고 속눈썹도 붙이고 손톱손질을 하더니 급기야 대담하게 여장까지 하다가 나중엔 가슴과 엉덩이가 튀어 나오기 시작하는 대목에서는 좀 당황스러워지기도 합니다. 이런 성적 취향과 방향성이 꼭 저소득층, 빈곤층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상류층의 성적 소수자들은 그것을 은밀하게 즐기거나 감출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얼마든지 있고 필요하다면 그 과정을 아직도 어린 시절에 신속하게 진행시켜 버릴 수도 있겠지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려 하거나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에도 말이죠. 하지만 저소득층의 벤쫑들은 젊은 시절 사회적 차별과 멸시를 온몸으로 받아야 하고 그것을 극복하고 각자의 분야에서 분투한 끝에 어느 정도 성공한 극히 일부만이 빠르면 30대 중반, 혹은 40대 중후반에 이르러 그간 모은 돈으로 마침내 본격적인 변신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제 더 이상 젊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은 나이에 성전환에 성공하거나 좀더 여성스러운 몸으로 가꾸어 가면서 기뻐하는 이 친구들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의 성취를 함께 기뻐해 주고 싶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들의 피나는 노력이 대견스럽고 그들이 남몰래 흘렸을 눈물이 안타깝기 때문이지요.

 

벤쫑들을 특정 짓는 여러가지 특징들이 있는데 진짜 벤쫑들은 여성보다 더욱 여성스럽고 일반적인 남자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깊은 여성적 감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다른 여성들과 마치 여자친구들처럼 스스럼없이 수다를 떠는가 하면 무시무시한 질투를 하기도 하고 한번 적이 된 여자를 철천지 원수처럼 증오하기도 합니다. 그리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 여자들처럼 남자에게 순정을 바치기도 하고 배신당해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하지요.

 

뚜따는 벤쫑들의 이런 순정을 훔치는 데에 발군의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한번 한 남자를 마음에 품은 벤쫑들은 사랑에 눈먼 여자들처럼 아낌없이 모든 것을 바치곤 하는데 뚜따는 그런 성향을 십분 이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물론 그건 우리 영업방침도 아니었고 채용면접 당시 그런 걸 기대하면서 뚜따를 채용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를 채용했던 이유는 첫인상이 상당부분을 결정짓는 마케팅이라는 업무에 서구적이고 훤칠한 뚜따의 외모와 그 달변이 적합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었어요.

 

좀 이상한 것 모르겠어요?”

뭐가?”

뚜따요. 요즘 하고 다니는 짓,”

…., 글쎄….?”

 

직원들이 많아지면서 생기는 문제들 중 하나는 직원충원의 목적이 분명 사업확장에 있는 건데 정작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사장인 나에게는 점점 오리무중이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건 우리가 마케팅 전문 회사이고 아침 미팅이 끝나면 전 직원이 영업 나가서 밤늦게 돌아오는데 내가 각 팀들 뒤꽁무니를 매일 줄기차게 따라다니지 않는 한 그들이 실제로 어디 가서 누굴 만나 뭘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들이 팀별로 제출하는 보고서를 통해 그들의 활동을 대충 가늠해 볼 뿐이지요. 물론 꾸준히 좋은 실적을 올리는 중이라면 그들이 중간에 좀 땡땡이를 치고 있더라도 큰 문제될 건 없는 일이었습니다. 입사 초기부터 뚜따의 영업실적은 가파른 상승곡선을 긋고 있었어요. 그런데 반년이 채 안된 시점에서 메이가 뚜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습니다.

 

 

요즘은 돈 발려달라고 하질 않아요.”

월급 잘 모아서 쓰는 모양이지.”

며칠 전에 자기 오토바이 머플러를 번쩍번쩍한 최고급으로 바꿨어요. 헬멧도 제일 비싼 걸로 샀고요.”

어디서 돈이 좀 생겼나?”

그 돈이 어디서 났겠어요?”

 

메이를 포함해 이 나라 사람들은 동료직원들에 대한 문제를 상관에게 잘 얘기하지 않습니다. 특히 그 상관이 외국인이라면 말이죠. 전 직장에서도 그런 경우를 숱하게 봐왔습니다. 서로 반목하면서 한없는 뒷담화를 까발리고 있었으면서도 내게는 시치미 떼고 있다가 그 사람이 퇴직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사람의 온갖 문제점들을 34일동안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던 장면들을 말입니다. 예를 들어 그 퇴직자가 그동안 온갖 비리를 저질르는 것을 자기들은 익히 알고 있었다는 얘기를 그렇게 뒤늦게 듣는 것은 사장이나 책임자로서는 참 열받는 일이 아닐 수 없는데 이 나라 사람들은 백이면 백, 그렇게 당사자가 회사를 떠나야만 비로소 입을 열고, 그래서 진위를 가리기 위한 대질신문을 할 수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 뒤늦은 고발이 진실인지 여부를 검증하기도 어렵지요. 그래서 메이가 제기하는 현직 뚜따에 대한 의혹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습니다.

 

메이의 얘기를 내 나름대로 정리하자면 뚜따는 입사 후 거의 매일 메이나 에도 등 기존 직원들에게 월급날 갚겠다면서 5천에서 1만 루피아, 한화로는 600~1200원 정도 되는 소액을 점심값이나 자기 오토바이 기름값 용도로 빌렸는데 2주쯤 전부터는 더 이상 돈을 빌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토바이에 이런 저런 고가의 액세서리를 달기 시작했고 지갑에도 항상 상당한 현금이 들어 있어 늘 얻어 먹기만 하던 이 친구가 가끔은 포장마차 사촌쯤 되는 길가 와룽(Warung)에서 한턱씩 저녁을 쏘기도 했다는 겁니다.

 

비록 그가 월급을 받기 시작했지만 입사 초창기에 몹시 쪼들렸던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사항입니다. 장기간 무직상태로 있을 경우 조금씩 누적된 빚이 턱에 차올라 월급을 받아도 한동안은 그런 빚들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허덕거리는 게 보통이지요. 그래서 대개는 취직한 지 한 달도 채 못되어 가불해 달라며 손을 벌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게다가 뚜따는 그 와중에 마따람(Mataram) 거리에 위치한 그라메디아(Gramedia) 서점 본점에서 일하는 마리아라는 아가씨와 사귀는 중이었는데 철없는 인도네시아 아가씨들이 대개 그렇듯 마리아는 뚜따에게 이것저것 사달라는 온갖 요구를 해왔고 명색이 애인으로서 그런 요구들을 거절할 수 없었던 뚜따의 지갑은 월급날이 하루만 지나도 텅텅 비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인도네시아에서 대부분의 남자친구라는 인간들은 애인이 복잡한 일에 연루되거나 돈이 필요할 경우, 특히 결정적으로 애인이 임신을 하면 그 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해결될 때까지 어디론가 잠수해 버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뚜따는 그 정도로 애인에게 무책임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메이의 보고와 그간의 정황을 보면 뚜따가 회사에게는 뭔가 대단히 무책임한 일을 저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심증이 강했지요.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메이가 영수증 하나를 내게 들고 왔습니다. 우리 제품을 판매한 영수증인데 뚜따의 서명이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가격은 정상 판매가격의 60% 선이었고 우린 현금결재를 받는 경우에도 그 정도까지 D/C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가격이었죠. 확실한 물증이 없어 내게는 변죽만 울리고서 은밀히 내사를 하던 메이가 그간 수집한 첩보들을 토대로 좁혀 들어간 한 거래선으로부터 발견한 그 영수증은 뚜따가 끊어준 것이었는데 그 판매 내역은 내게 보고되어 있지 않았어요. 그 영수증은 뚜따가 우리 물건을 몰래 빼돌려 팔았다는 증거였습니다. 우린 급히 재고검수를 했습니다. 원래 메이가 주관하던 재고검수책임은 메이가 일에 치이기 시작하면서 에도에게 넘어가 있었어요. 에도는 늘 재고 수량 이상없다는 보고를 해왔지만 갑자기 그게 믿어지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에도는 애당초 숫자에 철두철미한 사람도 아니었으므로 착각하거나 함께 검수한 다른 직원들에게 속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재고는 적잖게 비고 있었어요. 이제 뚜따가 무슨 돈으로 자신과 차에 멋을 부리기 시작했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그는 에도를 돕는 척 매번 함께 재고 검수를 하면서 에도 몰래 제품들을 빼돌려 팔아 먹었던 것이지요.

 

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뚜따가 지난 수개월 동안 회사가 거래선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데에 기여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가 제품을 빼돌려 팔아 먹고 그 대금을 횡령했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었어요. 그에게 변상을 요구하고 내쫓아야 할지 아니면 쿨하게 용서해 주고 계속 데리고 있을 것인지를 결정해야만 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른 직원들에게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그의 능력이 아깝지만 뚜따를 잘라 내는 것이 옳았어요. 그러나 그 뒷처리가 걱정이었습니다. 

 

나중에 경험이 좀 더 쌓인 후에 깨닫게 된 것이지만 이런 문제점을 발견하는 것은 내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날아 오르는 모기를 한 마리 발견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경우입니다. 그 모기가 신경 쓰여 저것만 잡아 버리면 속 시원할 것 같아 혼잡한 도로에서 사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수십 번 박수 치듯 난리를 죽여 그 한 마리를 잡고 나면 어디에선가 다른 모기들이 한 마리 두 마리 또 날아 오르지요. 그런 것처럼 당시 1,000군데에 육박하는 미용실들과 직거래를 하고 있던 우리로서 이런 소액 횡령문제가 한 개 발견된 것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수많은 문제들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고 그 사실은 재고조사를 통해 확인된 수량차이가 증명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 적지 않은 수량 가운데 단 한 개의 영수증, 그러니까 단 한 건의 횡령 증거만을 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 이건 뭐야?”

 

내가 그 영수증을 뚜따 앞에 내민 것은 그가 너무도 대수롭지 않은 듯, 그러면서도 강경하게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난 후였습니다. 그러나 자기 서명이 된 그 영수증을 보더니 얼굴이 굳어졌어요.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곧 순순히 인정했습니다.

 

깜빡 잊고 보고하지 않았던 거네요. 그건 좀 실수 했네요.”

 

난 속으로 섬찟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놈은 이게 처음이 아니다.)

 

태연자약한 그의 반응을 보면서 직관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이 사업을 하면서 뚜따는 처음 사고를 친 직원이었지만 이후 줄기차게 발생한 시건사고에서도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뚜따만큼 태연한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네 담당 거래선을 모두 다 확인해 보진 못했지만 오늘 전화해 본 곳 중 여기 이 두 군데는 이런 제품들을 너한테 외상으로 구매한 사실이 없다는구나. 이것도 실수겠지?”

 

그가 외근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전화번호가 파악된 뚜따의 거래선들 중 일부는 전화를 돌려, 보고된 판매내역이 맞는지 미리 확인해 보았던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통화 중이거나 부재 중인 곳도 많았고 신호가 가지 않는 전화번호들도 적지 않았으므로 조사된 것들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어요. 그는 그 자료를 유심히 바라보는 듯 했습니다. 물론 둘러댈 핑계를 찾기 위해 시간을 벌려는 것임은 뻔한 일이었죠.

 

, . 그것도…, 잘못 되었네요. 원래 다른 곳에 판 거였는데 재가 아직 보고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실수한 것 같아요.”

누구한테 팔았어? 결재조건은?”

…, 그게, 현금 받고 팔아서 연락처는 받아 놓지 않았고요. 그때 좀 일이 있어서 회사에 입금시키지 못했던 건데요. 내일 곧 입금시킬게요.”

 

울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결국 허위보고를 했다는 것인데 뚜따는 눈 하나 깜빡 거리지도 않으면서 여유로운 미소까지 지으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뚜따는 최소한 죄송하다거나 한 번 용서해 달라고 했어야 하는데 그는 끝까지 둘러대며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려 했습니다. 만약 이 정도 선까지 얘기를 하고서 아무런 담보도 없이 그에게 그가 빼돌린 돈, 아니 그의 말대로라면 깜빡 잊고 보고하지 못한 그 미입금액을 정리할 말미를 준다면 그는 그대로 도주해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네 오토바이를 내가 좀 보관하고 있어야겠다.”

 

그는 의외로 순순히 오토바이 키를 내게 넘겨주었습니다. 내 눈매에서 단호함을 읽었던 것인지도 모르죠. 그러나 그는 1분도 안되어 또 네고를 걸어왔습니다.

 

오토바이 대신 이자사(Ijasah)를 맡기면 안될까요?”

 

이자사는 졸업증명서를 뜻합니다. 전반적으로 신원보증이 쉽지 않은 인도네시아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 최소한의 담보로써 이자사 원본을 받아 놓는 회사들이 실제로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난 또 의아한 부분이 생겼습니다. 대개는 오토바이를 담보로 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면 오토바이 실물을 맡기느냐 아니면 BPKB라고 부르는 오토바이 소유증서를 맡기느냐를 결정하게 되지요. 그 상황에서 뜬금없이 이자사가 튀어나오는 경우는 별로 없거든요. 어차피 종이쪽지를 담보라고 잡아둘 마음은 없었으므로 단칼에 거절하고 이미 문제가 된 금액과 우리가 아직 확인하진 못했지만 자진 신고할 미입금 금액을 주말까지 가져올 것을 요구하고 해당 각서를 받은 후 돌려 보냈습니다. 증거를 들이밀기 전까지 무조건 오리발을 내밀던 뚜따가 아직 확인되지도 않

은 금액을 자진해서 보고하고 물어낸다는 것은 물론 기대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를 돌려 보낼 때 두 대의 오토바이로 그의 집에 함께 갔던 메이와 에도 등 우리 직원들은 뚜따가 빼돌렸다가 미처 처분하지 못하고 자기 방에 놓아 두었던 우리 제품 일부를 회수해 돌아온 것은 그나마 운이 좋았던 것입니다. 뚜따가 뻘쭘하게 집 밖에 서 있고 우리 직원들이 그의 방을 뒤져 제품을 회수하는데 충격을 받기 쉬웠을 그의 부모는 오히려 대수롭지 않은 듯 보였답니다.

 

난 그런 상황이 마음에 걸렸고 이자사 얘기가 거론되었던 것이 석연치 않다며 메이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STNK(오토바이 등록증)도 없고 하다못해 오토바이 운전면허증도 없는데 BPKB가 있겠어요?”

 

여러 번 뚜따가 운전하는 오토바이 뒤에 타고 다녔던 메이는 신호위반 등으로 교통경찰에게 걸릴 때마다 뚜따가 운전면허증(SIM)이나 KTP라고 부르는 주민등록증은 물론 STNK 역시 소지하고 있지 않아 뒷골목으로까지 끌려가 호되게 지갑을 털리는 것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다는 거였어요. 난 채용 당시 그의 입사지원서를 다시 펼쳐 보았습니다.

 

당시엔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부분들, 그러나 지금 봐도 역시 이상해 보이는 부분들이 발견되고 곧 왜 그런지도 이해가 갔습니다. 뚜따는 이력서에 스캔을 떠서 컬러 인쇄한 신분증, 면허증과 STNK를 첨부해 놓고 있었습니다. 이자사는 일반 흑백 복사본이 첨부되어 있었고요. 애당초 신원과 주소, 학력, 오토바이 소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서류들이었으므로 굳이 원본을 요구하지 않았고 그래서 첨부된 스캔본, 복사본을 전혀 이상스럽게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컬러 스캔본을 보았기 때문에 당연히 있으리라 생각했던 원본 면허증. STNK 등이 사실은 없다는 메이의 증언, 오토바이 대신 이자사 원본을 맡기겠다며 갑자기 네고를 걸어왔던 뚜따의 시도, 그리고 내가 횡령문제를 추궁하는 동안 태연자약하던 뚜따의 여유로운 태도 등이 내 머리 속에서 마구 조합되고 재구성되면서 이런 추론을 하게 되었습니다.

 

컬러 스캔본 서류들은 그 서류들의 원본이 없어질 것을 미리 알고 컬러 스캔을 해둔 것들이기 쉽다. 그러니 KTP, SIM, STNK는 물론 어쩌면 BPKB 역시 분명 원본이 없을 것이다….

 

그 원본들이 없는 이유는 그가 나에게 이자사를 담보로 맡기겠다는 제의를 했던 것처럼 전 직장에서, 또는 내가 모르는 어떤 다른 개인적인 사건사고를 무마하려고 그 서류 원본을 담보로 맡겼던 것이고 그 원본을 찾아오지 못한 것은 결국 그 사고를 처리하지 않고 도주했기 때문이었겠지. 애당초 그러려고 미리 컬러 스캔을 해놓았던 것일 테니

 

그런 신분증, 면허증, 오토바이 등록증 같은 것들은 경찰서에 분실신고를 내고 그 증명서로 재발급을 신청하면 다시 받을 수 있는 것들인데 그걸 컬러 스캔본으로 어떻게든 버텨 보려 하는 것이 어쩌면 뚜따가 경찰서에 감히 분실신고를 내러 갈 수 있는 입장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 경험들이 여러 번 있었기에 내가 추궁할 때 벌벌 떨어야 당연할 그 순간에 그렇게 태연자약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부모도 아들 방이 수색당하는 것을 매일 벌어지는 대수롭지 않은 일을 보는 듯 한 것이고…?

 

그러니 이자사 원본을 그렇게 버리듯 맡겨 놓고서 뚜따는 어쩌면 그대로 도주하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십중팔구 전 직장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그랬을까요? 자기가 사는 집을, 부모집을 우리가 아는데도?

실제로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 함부로 예단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난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린 가끔 돈 떼먹고 도망간 거래선을 잡으러 다니기도 하는데 어렵사리 그 부모를 수배해서 만나게 되면 무조건 자기 자식 편을 드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배째라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 놈 만나면 죽이든 다리를 부러뜨리든 맘대로 하시오! 이 집 기둥뿌리 빼먹은 놈도 그 놈인데 댁 맘대로 처리 하시구랴! 그런 놈은 아들도 아니요!!”

 

이렇게 나오면 구상권을 행사하기 어려워지지요. 그런데 이런 경우는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난 피해액이 해당 오토바이의 중고판매가격을 넘어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뚜따가 뱉어내야 할 돈이 오토바이 가격보다 비싸다면 그는 변재를 포기할 수도 있는데 그럴 경우 다른 사람 명의도 되어 있는 오토바이, 그것도 소유증인 BPKB도 없는 오토바이를 제 3자인 우리가 처리하여 피해액을 보전하는 것도 법률상, 절차상 여러가지 문제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메이를 비롯한 거의 전직원을 동원해 뚜따의 그간 거래선들을 접촉하고 거래내역을 확인하는 것은 심각한 시간적 손실을 가져오는 일이었고 결국 비는 재고의 상당수는 뚜따가 빼돌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었어요. 네가 이걸 뺴돌렸으니 저것도 비록 증거는 없지만 네가 빼돌린 게 분명해. 그러니 이것도, 저것도 네가 다 변상해! 이렇게 얘기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이 야기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내 관리능력이 부족해서 회사에 제대로 된 관리시스템이 서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측면에서 내 양심에 걸리기도 했고 어차피 증거를 들이밀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뚜따가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다가 만의 하나 경찰을 개입시키게 되면 일은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질 수도 있었지요. 그래서 여러 정황을 고려한 끝에 우리가 필요한 증빙을 첨부해 뚜따에게 청구할 수 있는 금액은 실제 피해액의 3분의 1도 되지 못했습니다.

 

뚜따는 의외로 더 이상의 시간연장 요구 없이 청구한 금액을 변재하고 오토바이를 가지고 총총히 돌아갔습니다. 시간을 끌수록 우리가 더 많은 증거를 수집할 것이라는 예상도 작용했겠지요. 나는 저 정도 외모에, 저 정도 달변에, 저 정도 영업력을 가진 친구가 회사를 상대로, 거래선을 상대로 기껏 사기나 치고 돈이나 횡령하고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어요.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지고 조금 더 나은 교육을 받고 조금만 더 건전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면 우리 회사를 디딤돌로 해서 지금쯤은 근사한 큰 회사에서 영업부분의 수퍼바이저나 매니저가 되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내 회사에서 처음 벌어진 이 횡령사건은 그 뒷처리에서도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어쩌면 바쁜 인력과 시간을 빼서 이 사건을 조사하도록 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물론 그러지 않았으면 피해내역을 파악할 수 없었을 테니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 사건을 조사한 직원들 중 일부는 뚜따가 사고를 친 수법을 배워 훗날 참고하게 되었고 메이와 팀을 이루지 않았던 다른 조사팀들은 뚜따가 몰래 빼돌린 외상거래선들을 파악하고도 보고하지 않은 채 오히려 자기들이 수금하여 가로챈 것 역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조용히, 폭력을 전혀 동반하지 않은 방법으로 원만히 사건을 처리했다는 것도 나쁜 선례를 남겼습니다. 일부 직원들은 돈을 빼돌리다가 걸려도 확인된 부분만 물어내면 큰 이익을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고 친지들을 통해 꼬리를 밟힐 염려만 없다면 들키기 전 멀리 도주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나름대로의 판단을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깜짝 놀랄 정도로 큰 금전적 피해를 입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뚜따의 사건을 통해 부정부패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회사의 음침한 그늘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뚜따가 떠난 후 그가 횡령한 부분들이 소소하게 더 나타나긴 했지만 더 이상의 청구를 포기했던 것도 나쁜 선례의 하나였지요.

 

1년 좀 넘게 시간이 흐른 후 우리가 반둥 시장에 막 입성해 거래선을 넓혀가고 있을 때 뚜따의 소식을 한 번 더 듣게 됩니다. 그건 한 문자메시지를 통해서였습니다.

 

[요즘 왜 연락이 안돼? 너무 그립다. 그리고 그 핸드폰은 언제 돌려 줄 거야? 이 메시지 보면 꼭 회신 줘. 사랑해.]

 

내 아내가 보면 난리가 날 내용입니다. 피싱 메시지라 생각하고 지워 버렸는데 같은 전화번호로 이런 메시지가 며칠 째 계속 들어왔으므로 도대체 어떤 여자인지 아무래도 한번 욕을 좀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뚜따 전화번호 아니에요?”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남성이 그렇게 묻고 있었습니다. 벤쫑이었어요. 그는 내 전화번호를 뚜따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얘기해도 되겠지만 그의 목소리에 좀 소름이 돋기도 하고 보다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듯 하여 메이에게 전화를 넘겨 주었어요. 나중에 메이에게 들은 얘기는 이렇습니다.

 

그는 자신이 뚜따의 빼웡이라고 얘기하고 있었어요.

그는 몇 개월 전까지 뚜따와 사귀었고 때때로 뚜따가 자주 자신의 꼬스(Kost = 현지 자취방)에서 자고 가기도 했다는데 그동안 그는 뚜따에게 밥도 사주고 옷도 사주고 용돈도 주며 지내다가 마지막 만났을 때 뚜따는 돈이 필요한 일이 있다며 제법 큰 돈을 빌리면서 이 벤쫑이 가지고 있던 두 대의 핸드폰 중 당시 6백불을 넘는 최신형이던 핸드폰도 함께 빌려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혹시 자기랑 연락이 잘 닿지 않으면 사용하라며 준 번호가 내 핸드폰 번호였던 거에요. 기가 막혔습니다. 물론 그런 뚜따에게 순정을 바쳤던 그 벤쫑은 메이에게서 뚜따와 내 전화번호의 상관관계를 설명 듣고서 더욱 기가 찼겠죠.

 

뚜따는 그때 지골로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후리는 상대는 여자가 아니라 벤쫑들이었고요. 얼마전 우연히 발견한 뚜따의 페이스북에서 수백명의 친구들을 거느린 그의 프로필 사진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면서 이 뻔뻔스럽기 그지없는 남자가 요즘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그는 위키가 입사하기 훨씬 앞서 우리 곁을 스쳐가면서 내 회사의 한쪽 구석에 그렇게 부패의 토양을 일구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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