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영업직원 활약사

영업직원 활약사 (5)

beautician 2012. 5. 15. 04:27

인니 영업직원들의 골때리는 활약상 - 다섯번째 라운드

 

 

인도네시아에서 사는 동안 인도네시아인들이 몹시 비겁하다고 느껴지는 경우를 많이 겪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도네시아인들이 무조건 비겁하다고 정의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부정부패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한지 오래인 인도네시아에서도 명예와 목숨마저 걸고 진실과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어딘가엔 분명히 있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언급했던 것처럼 내가 여기서 하고 있는 사업의 성격이란 인도네시아를 구성하는 사회계층에서도 하필이면 저 밑바닥 가까이를 끊임없이 훑어 가야 하는 일이고 그곳에서 느껴지는 생활의 무게는 보편타당한 상식이 통하는 세계와는 정반대인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정글 속으로 사람들을 밀어 붙입니다. 그래서 그 정글 속에서 예기치 않았던 시점에 포식자와 마주치는 순간 한 조각 남은 명예를 지키기 위해 뻔히 질 싸움을 시작하기보다 비록 비굴하지만 일신의 안전을 도모하며 남의 등 뒤로 비겁하게 꽁무니를 빼는 것을 꼭 욕할 수 만은 없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어찌 보면 그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본성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참 잘했다고 칭찬해 줄 일은 분명 아닌 것이지요.

 

가라오케들이 문을 닫는 새벽 2시경 앙꼿이며 오젝들이 아가씨들을 태워가는 주차장에서 그런 비겁함의 증거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가라오케 노나로 일하는 어린 아내를 태워가는 남편들 말입니다. 하루 종일 집에서 빈둥거리고 길가에서 기타 치며 동네 양아치들과 노닥거리던 남편들은 밤이 깊어지면 아내가 몸 팔고 웃음 팔아 사준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아내를 데려 갑니다. 아내가 손님과 함께 호텔에 가면 남편들은 호텔 주차장에서 기다리지요. 그렇게 헌신적으로(?) 아내를 픽업한 남편들 중 태반은 그날 집에 돌아간 아내가 잠들기 전 아내가 그날 몸 팔아 번 돈을 강도처럼 털어 가거나 심지어 일상이 되어버린 손찌검을 되풀이하기도 합니다. 가장이 되어야 할 상황에서 포주가 되어버린 현실에 안주해 버리는 남편들의, 그 마음가짐이 비겁하다는 겁니다.

 

이완(Iwan)의 얘기를 시작하면서 포주 남편들의 생활을 먼저 소개하는 것은 이완 역시 그런 상황과 전혀 관계없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완(Iwan)은 위키와 마찬가지로 원래 운전수로 뽑았던 친구였어요.

이 친구가 이완이라는 이름을 고집하는 이유도 난 잘 알 수 없었습니다. 채용면접 당시 그가 가지고 온 모든 서류에 그의 이름은 리스와나(Riswana)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지인들이 닉네임을 업무용 명함에 사용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입니다. 굳이 멀리서 예를 찾지 않아도 내 직원들 중 메이나 에도도 원래의 본명을 따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물리야디(Mulyadi)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가 있다고 치면 이 사람은 십중팔구 닉네임, 더 정확히 말하자면 흔히 불리는 이름인 나마 빵길란(Nama Panggilan)이거나 야디또는 아디인 것이 일반적이지요. 와띠(Wati)나 야띠(Yati)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여자들도 원래의 이름은 이르마와띠(Irmawati)이거나 누르야띠(Nuryati)등의 이름인 경우가 많아요. 아무튼 본명에서 한 자뚜리를 떼어와 부르는 이름으로 쓰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완의 경우는 그 이름에서 본명 리스와나의 흔적을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본명을 쓸 수 없는 피치 못할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는 것이 인사담당자의 시각이어야 하기도 합니다.

 

그가 이름도 없는 무아말랏 은행(Bank Muamalat) 구좌의 사용을 고집하는 것도 수상스러웠습니다. 우린 직원들 급여를 더 이상 현금으로 지급하지 않고 은행을 통해 계좌이체 하기로 하고 전 직원들에게 BCA 은행 구좌를 만들도록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퇴출된 은행들이 적지 않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97-98년 외환위기 당시 수백개의 은행들 중 태반이 도산하거나 정부에 의해 강제퇴출 당했고 이 이후에도 변변찮은 은행들이 속속 도산해 넘어가면서 대량예금인출사태나 보호받지 못하는 개인예금 문제가 몇 번씩 대두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중민영은행 중 가장 규모가 큰 BCA은행을 사용하려는 것인데 유독 이완만이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무아말랏 은행을 고집하고 있었어요. 대놓고 물어보진 않았지만 특정 은행을 사용할 수 없는 이유라면 카드 연체나 대출금 미상환 등의 문제로 은행 블랙리스트에 오른 상태일 것이라 미루어 짐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완만은 그 후에도 현금으로 급여를 지급해 줘야 했습니다.

 

그런 짐작을 확인해 주는 사건이 BSD에서 벌어집니다. BSD는 자카르타 서쪽으로 대략 40km 정도 떨어진 위성도시로 2000년을 전후해 주택붐이 불면서 대대적인 개발이 이루어진 곳입니다. 위키가 절도혐의로 유치장에 갇힌 사건도 이곳 BSD에서 벌어진 일이었지요. 어느 날 오토바이 타고 외근 나갔던 이완의 팀이 터벅터벅 걸어 돌아왔습니다. BSD WTC에서 오토바이를 빼앗겼다는 거였어요. 뉴욕의 월드트레이드 센터 WTC 9.11 테러로 무너져 내렸지만 인도네시아에는 몇 개의 WTC가 건재합니다. 물론 그 규모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요. BSD에 위치한 WTC는 인근 수마레콘(Sumarecon) 몰이 대대적인 레노베이션 끝에 화려하고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만 해도 그 지역에서는 가장 큰 몰로서 그 위용을 자랑하던 곳입니다. 그 오토바이 주차장에서 이완은 자기 오토바이를 뺏긴 것입니다.

 

사실 조금 주의를 기울여 보면 대형 몰들의 오토바이 주차장엔 오토바이 번호판을 조사하고 다니는 3-4명씩으로 된 일단의 무리를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주로 암본사람들로 이루어진 이들은 오토바이 리싱 회사들이 고용한 해결사들입니다. 할부로 구매한 오토바이 대금이 완납되기 전에 종적을 감추거나 팔아 치우고 오리발 내미는 인도네시아인들이 부지기수인데 그런 사람들을 잡아 돈을 받아 내거나 오토바이를 회수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지요. 일의 성격상 이 사람들은 무척 거칠고 말도 잘 통하지 않으면서도 육체의 대화를 사뭇 즐깁니다. 이완이 이들에게 걸려 오토바이를 뺏긴 이유는 그가 지난 3년간 할부금을 내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었어요. 정말 재수없게도 그 리싱 회사가 보낸 해결사들이 오토바이 주차장을 조사하고 있을 하필 그 순간에 이완은 오토바이를 거기 주차해 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사 사필귀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완이 오토바이를 그렇게 뺏긴 것은 순리적으로 당연한 일이었고 지난 3년간 공짜로 타고 다닌 것에 대한 아무런 보상도 없이 오토바이를 내주는 것만으로 그 험한 암본 사람들에게서 풀려 난 것은 실로 다행이라 할 수도 있었지만 당장 회사가 곤란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영업직원이나 운전수들은 반드시 오토바이를 가진 사람들을 뽑는 것이 우리 방침이었고 우리가 기름값, 수리비 등 유지비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그 오토바이를 영업에 사용하고 있었던 것인데 이완이 오토바이를 뺏김으로써 이완은 물론 그와 팀을 이루었던 여직원마저 영업활동을 위해 타고 나갈 운송수단이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회사에서 오토바이를 제공하지 않으면 두 사람을 잘라야 할 상황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오토바이를 하나 구매했지요. 그리고 이런 선례를 남겨 이런 식으로 구매한 오토바이들이 나중엔 부지기수가 됩니다. 채용면접 당시엔 자기 것이라며 몰고 왔던 오토바이가 나중에 알고 보니 사실은 가족 또는 이웃에게 일정 기간 빌렸던 것이었거든요. 어떤 이들은 이런 사실을 솔직하게 얘기했지만 어떤 이들은 오토바이가 큰 사고가 나서 완파 됐다거나 도난 당했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 직원을 내보내기보다는 회사 업무용 오토바이를 구매하기로 결정했던 내가 문제였어요.

 

그런데 회사 오토바이를 구매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느 날 이완이 때깔 좋은 새 오토바이를 몰고 왔습니다. 새로 샀다는 겁니다. 그럴 거면서 얼마 전 회사가 오토바이를 살 때 아무 말 없었던 이완의 무책임함에 기가 차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저렇게 오토바이를 단번에 사올 능력이, 회사 돈을 횡령한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이며 그게 정말 자기 능력이라면 왜 지난 번 오토바이는 3년씩이나 할부금을 내지 않고 도망쳐 다녔던 것인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기 부인이 사줬대요?”

저게 그럼 위자료야?”

 

이완은 채용면접 당시 자신이 이혼남이라고 애기했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부인이 사준 오토바이라니요?  그 얘기를 한 메이는 당시 적당히 대답을 피했어요. 인사 담당자가 파악하고 있는 직원들의 신상 내용의 실체가 면접서류에 기재된 바와는 완전히 상반된 거짓인 경우는 얼마든지 많습니다. 이완도 그런 경우였고 그런 경우가 그 후에도 몇 번 더 벌어졌지요. 그러나 대개의 경우 직원들끼리는 그 거짓의 이면에 있던 진실의 전부 또는 최소한 일부를 공유하고 있는 게 보통입니다. 메이를 비롯한 다른 직원들은 이완의 실체를 잘 알고 있었던 듯 했고 사실은 이완 스스로 여러 번 떠버렸던 모양이지요. 몇 년 지난 후 뒤늦게 메이에게 듣게 된 실상은 이런 거였습니다.

 

위키가 감옥에 갔을 때 이완이 자기 감옥 경험담을 얘기하며 판사에게 줘야 할 뒷돈 액수를 얘기했었죠. 그가 당시 감옥에 갔던 것은 기본적으로 그의 아내 때문이었답니다. 아내가 마약을 사용했던 사실을 덮어주기 위해 자신이 대신 자백을 하고 옥살이를 했다는 겁니다. 그 자세한 상황에 대한 설명은 듣지 못했으므로 아내의 죄를 자신이 어떤 식으로 스스로 뒤집어 썼는지는 알 길 없지만 일반적으로 증인도 없고 대질신문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인도네시아인들이 하는 이런 류의 얘기들이 함유하는 뻥의 농도 등을 감안하면 정말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이 아내의 잘못만으로 옥살이를 감수했다는 것이 진실인지, 이완 자신은 정말로 마약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는 게 사실이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어쩌면 이완은 자신이 실제로 마약을 했기 때문에 잡혀 갔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좀 더 의심해 보자면 애당초 그가 수감생활을 했다는 것 자체가 새빨간 거짓말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아무튼 마약사범의 중죄를 자진해서 뒤집어써 줄 정도였다면 그만큼 죽도록 사랑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아내와 이완은 그때 같이 살고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완의 아내가 어떤 부자와 바람이 났는데 그 남자를 만난 이완은 정말 자기 아내를 사랑한다면 절대 버리지 말고 끝까지 책임지라며 오히려 자신이 물러났다는 겁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정말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식으로 헤어지는 것인지 몰라도 현실 속의 남녀들은 도저히 그렇게 헤어지지 못해요. 물론 그 현장을 목격하지 않은 입장에서 정말 어떤 원인 때문에 어떤 과정을 거쳐 그리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당시 이미 이완과의 사이에서 딸을 하나 둔 그의 아내는 이완과 헤어져 그 부자가 얻어 준 끄마요란(Kemayoran) 지역의 메디테라니아 아파트에 살고 있었습니다. 함께 살던 딸은 남자가 찾아오는 날마다 친정에 맡겼고요. 그러다가 남자가 다시 자기 본처에게 돌아가면 이완의 딸은 엄마의 아파트로 돌아오곤 했는데 이따금은 이완도 종종 아내의 품으로 돌아갔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아내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는 이완의 말과는 달리 이완의 아내가 자기 한 몸 심하게 던져 남편과 딸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형국이었습니다.

 

이완은 그런 상황만큼은 직원 동료들에게도 숨기고 싶어했던 것 같았지만 메이에게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였어요. 필드캡틴인 메이는 관리차원에서 각 남자직원들의 거래처들을 순차적으로 함께 방문하곤 했는데 이완이 거래선 중 판매했다고 보고된 장소와는 전혀 다른 곳에서 수금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 다른 곳이라는 게 매번 메디테라니아 아파트였고 이완은 아파트로 올라가면서 메이의 동행을 극구 사양했답니다. 아마도 판매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보이지만 유독 이완이 판매한 제품들은 중간에 캔슬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빈도가 너무 많아 차마 회사에 캔슬보고를 하지 못할 지경에 이를 때마다 이완은 그 제품을 들고 메디테라니아 아파트의 아내를 찾아가 억지로 안겨 버리고 대금을 할부로 받아냈던 것입니다. 그렇게 아파트로 올라간 이완은 대개 한두시간이 지나서야 돌아왔는데 때로는 막 샤워를 마친 듯한 젖은 머리를 하고 내려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곳이 이완의 부인이 사는 곳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 후 메이는 매번 아파트 로비에서 오래 기다려야 했던 진짜 이유를 깨닫고는 몹시 불쾌해 하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그렇게 이완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고 때로는 용돈도 주고 이제 오토바이까지 사주는 이완의 아내의 행동을 보고 들으면서 이완이 옥살이를 아내 대신 해준 것이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해서 이완의 아내는 다른 남자의 숨겨놓은 첩이 된 후에도 몰래, 그러나 헌신적으로 첫 남편을 돕고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그 모습이 아름다워 보인 것도 아니고 그 막장 멜러드라마의 스토리에 매료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비록 당시엔 그런 내역을 속속들이 파악하진 못했지만 설령 알았다 하더라도 아마 난 이완의 개인생활의 부분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채용면접이나 직원관리라는 것이 장관 같은 고위 공직자의 고결한 인품이나 결백한 인생여정을 검증하는 인사청문회는 아니거든요. 나 역시 고결함을 따지기엔 인생역정의 찌든 떼가 남 못지 않은 사람이고요. 회사의 궁극적 목적이 이익창출에 있는 한 이완이 회사에 돈을 벌어준다면 그가 전과자이든 기둥서방이든 지골로이든 문제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띠따를 지목해 띠따와 팀을 이루려는 것은 뭔진 몰라도 분명 문제가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완은 다른 남자직원들과 마찬가지로 띠따를 치를 떨도록 싫어하던 사람이었어요. 사실 누군가 좋아하기엔 띠따는 너무나 주제파악을 못한 채 안하무인의 행동을 해오면서 동료들의 반감을 샀던 것입니다. 그래서 왜 사람좋은 로만이 그녀의 약혼자가 되었는지 의아해 했고 띠따가 임신한 사실과 결혼 날짜가 잡혔다는 얘기를 들은 후 직원들은 로만을 측은하게 여기기까지 했지요. 그런 띠따를 이완이 자기 고정 파트너로 지목한 배경에는 그 사이 내가 알지 못하는 변화가 벌어졌던 것이 분명했습니다.

 

어쩌면 이번에 뚜따 사고를 함께 조사하면서 두 놈이 서로 사랑에 빠졌는지도 몰라.”

 

내 날카로운 예측에 메이는 실소를 흘릴 뿐이었지만 사실 메이 역시 그 이유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드러나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즈음 이완은 결근과 휴가요청이 빈번해졌습니다.

 

시골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사흘만 시간을 주시면 시골에 다녀 올게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사흘만…”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너희 할머닌 얼마 전에 돌아가셨잖아?”

그 할머니 말고 다른 할머니…”

 

이완의 집안 노인들이 몰살을 당하고 있었어요.

더욱 황당한 것은 집에 불이 났다는 대목이었습니다.

 

집에 불이 나서 급히 퇴근해야겠어요. 죄송해요.”

집이 어딘데? 가족들은 무사하고?”

옆집에서 불이 났는데 아직 옮겨 붙지는 않았대요. 부모님들은 일단 피신하신 모양인데 제가 빨리 가 봐야…”

그래, 빨리 가봐. 나중에 나도 한 번 가 볼게.”

아니, 그러실 필요까진 없어요. 제가 어떻게 해 볼 테니까….:

 

이완은 그러고서 사흘을 내리 결근했고 나로서는 집안에 우환이 겹친 이완을 탓할 수 없었습니다. 위문품이라도 좀 사서 들고 가려 연락할 때마다 이완은 극구 만류했고요. 그러나 이완이 다시 출근하고 며칠 지난 후 메이가 알려온 얘기는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차타고 15분 거리에요.”

뭐가?”

그것도 그 전날 밤에요.”

도대체 뭐가??”

 

그 화재가 났다는 장소는 이완의 옆집이 아니라 차타고 15분 거리, 그러니 못해도 몇 km 떨어진 곳이었고 불이 났다는 시점도 이완이 조퇴한 그 날이 아니라 그 전날 밤이었다는 겁니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이완은 새빨간 거짓말을 치고서 뻔뻔스럽게 그간의 결근을 정당화시켰던 것이고 그래서 내가 한 번 집에 방문하겠다는 것을 극구 만류했던 것이지요. 그의 집을 알고 있던 메이가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해 그의 빠더망안 (Pademangan) 집 근처를 지나며 탐문해 보리라는 것까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완은 언젠가부터 정도를 넘고 있었는데 전반적으로 뚜따가 친 사고들을 조사한 직후부터 그는 그런 식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나 역시 이완과의 인연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이게 어떤 모양으로 끝날 것인지는 아직 예단하지 못하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어느 날 저녁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우리 오토바이들이 우리 사무실이 있는 루꼬단지로 줄줄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평상시보다 빠른 오후 6시가 좀 넘은 시간이어서 난 좀 의아해 했습니다. 우린 보통 사무실에 밤 8시쯤에 모이는 게 보통이었거든요. 그런데 그들은 사무실로 향한 게 아니라 루꼬 뒤쪽 구석에 있는 현지식 포장마차인 와룽(Warung)을 향해 갔습니다. 왜 그들이 사무실로 곧장 가지 않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사무실에 모이기 전에 식사를 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알 수 없었어요. 난 사무실에 직원들이 언제라도 요기할 수 있도록 각종 라면들과 블루스타 가스렌지를 준비해 두었고 냉장고도 항상 채워놓고 있었거든요. 그들이 식사를 하려면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일지라고 굳이 밖에서 사먹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마음에 걸린 것은 그것 뿐이 아니었습니다.

난 그때 그 오토바이들 중에서 띠따의 뒷모습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이완과 함께 출발했던 띠따가 돌아올 때엔 약혼자인 로만이 모는 오토바이의 뒷좌석에 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요…., 나도 종종 봤는데. 맞아요. 띠따가 로만이랑 함께 루꼬로 들어오는 걸 나도 최근에 몇 번 봤어요.”

 

메이는 가장 늦은 시간까지 거래선을 다니다 마지막에 들어오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가지고 나간 물건들이 너무 빨리 매진돼 홀쪽해진 가방을 매고 일찍 들어오는 날도 가끔 있었던 것이고 그때마다 동료들과 루꼬단지 입구에서 마주쳤던 것입니다.

 

나갈 때랑 들어올 때 띠따가 타고 있는 오토바이가 바뀐다…..?”

 

스스로 꽤 똑똑하다고 생각하다가도 가끔은 정말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며칠 후에야 비로서 깨달음이 벼락같이 왔거든요.

 

애당초 이완은 띠따랑 함께 나가지 않았던 거야….!.

 

그렇습니다.

뚜따가 사고를 친 것은 띠따가 임신하고 입덧을 막 시작하던 때였어요. 당시 사고 파악과 수습이 급선무였으므로 남자직원들이 띠따와 함께 나가기 싫어한다는 것은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완이 울며 겨자먹기로 띠따와 함께 출발해야 했던 날이 몇 번 있었지요. 그게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는지 몰라도 당시 어느 날부터인가 입덧을 하던 띠따는 그렇게 사무실에서 출발하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퇴근해 버렸던 것입니다. 이완은 목줄 풀린 들개처럼 혼자 싸돌아 다녔던 거구요. 나는 그가 땡땡이를 친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서 두 사람의 이해관계가 맞아 들어간 거에요. 띠따는 나 몰래 낮시간에 퇴근해 쉬고 싶었고 이완은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은 채 돌아다니다가 내키면 땡땡이도 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날이 저물면 띠따는 로만을 불러 오토바이를 얻어타고 사무실 뒷편 와룽에서 이완을 만나 그날 보고할 내용에 대해 서로 입을 맞추고 마치 아침부터 하루 종일 같이 다녔던 것처럼 손잡고 사무실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두 명이 한팀이 되어 움직이는 것이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었는데 아침에 사무실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띠따는 퇴근해 버리고 이완은 할당받은 업무와 목적지를 무시하고 자기 일을 봤던 것이죠. 그리고는 그날 밤 이완과 띠따는 뻔뻔스럽게도 내 방에 들어와 서로 입을 맞춘 대로 그날의 수금과 판매상황을 보고했던 것이고 그래서 내가 뭔가 질문을 할 때마다 그날 사실은 집에서 편히 쉬며 태교에만 전념했을 띠따는 버벅거리며 대답했던 것입니다.

 

그런 상황이 이미 몇 주, 몇 개월 동안 방치되었던 것인데 그 사실을 내가 몰랐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사실은 그 수십, 수백배의 내가 모르는 사실들이 띠따와 이완의 등 뒤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단지, 그게 무엇인지 모를 뿐이었지요. 띠따는 집에서 퍼져 놀았다 치더라도 그렇다면 이완은 하루 종일 혼자서 어디에 가서 누굴 만나 어떤 일을 했던 것일까요? 그들이 내 지시와 회사의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런 과정을 통해 벌어진 내가 모르는 일이 무엇인지 빨리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혼자 나가 메디테라니아 아파트의 아내 품으로 달려간 것이라면 오히려 그건 내가 걱정할 일을 더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완은 거래선들에게 달려 갔던 것이 분명했습니다. 문제는 그가 실제로 방문한 업체들과 거기서 했던 일들은 그가 내민 보고서와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점이었고요.

 

또 하나의 벼락 같은 깨달음은 그가 너무나 열심히, 더 많은 시간을 내서 자기 스케줄에 따라 거래선들을 방문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몰살시키고 집에 불을 내면서까지 조퇴를 하고 결근을 해가며 회사나 동료들 몰래 자기 혼자 거래선들을 찾아갈 시간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목덜미에 싸한 한기가 들었습니다.

 

뭔가 중요한 것들이 모래처럼 내 손가락 사이로 흘러 내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탐정영화의 끝부분에서 모든 비밀들이 밝혀지듯 이 띠따와 이완의 사건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템포로 파국을 향해 치닫는데 내가 미처 이 두 사람이 꽁꽁 숨겨 놓은 비밀들을 풀어내기도 전에 파국은 전혀 다른 사안과 함께 도래합니다.

 

 

 

들어 보셨나요? 커미션 마인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인도네시아 직원들을 춤추게 하는 것은 바로 커미션이지요.

이 사건의 파국은 커미션 문제와 함께 쇄도했습니다.

'영업직원 활약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업직원 활약사 (7)  (0) 2012.07.16
영업직원 활약사 (6)  (0) 2012.06.11
영업직원 활약사 (4)  (0) 2012.04.15
영업직원 활약사 (3)  (0) 2012.03.31
영업직원 활약사 (2)  (0) 2012.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