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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영업직원 활약사

영업직원 활약사 (4)

beautician 2012. 4. 15. 04:04

 

이완(Iwan)은 위키와 마찬가지로 원래 운전수로 뽑았던 친구였어요.

 

 

 

 

빠더망안(Pademangan)의 슬램에 방을 얻어 혼자 살고 있던 30대 초반의 이 친구는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꽤 귀엽고 꽤 유머러스한 부분도 있어 동료들과도 잘 어울렸고 판매영업도 시켜보니 곧잘 해냈습니다. 그래서 나는 메이가 자기 약혼자라고 소개하며 데려와 이제 꽤 오래 함께 일했던 에도와 함께 이완이 현장 영업의 한 축을 담당해 주기를 기대했지요. 어차피 엄청나게 막히는 자카르타 시내를 종횡무진하기에는 오토바이가 가장 효율적인 이동수단

 

이었고 우린 남자직원과 여자직원 한 명씩 두 명을 한 팀으로 묶어 내보냈습니다. 수금한 돈이 적잖은 경우도 많았고 고가의 제품들이 든 가방을 들고 다녀야 했으므로 남자직원은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것뿐 아니라 팀의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이기도 했습니다. 또 그렇게 두 명이 한 팀이 되는 것이 서로 돕기도 하고 금전사고를 미연에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상호 감시하는 기능도 했지요. 북한의 5호 담당제 같은 인상을 풍기는 얘기지만 실제로 위키나 뚜따가 문제를 일으켰던 것도 따지고 보면 혼자 외근 나가는 경우가 잦았고 그래서 유혹에 빠지기도 쉬웠던 측면도 있었을 것입니다.

 

공무원들의 부패방지를 위해 급여를 현실화, 즉 획기적으로 인상한다는 방침이 몇 년 전부터 인도네시아에서도 단계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모양이고 한국에서도 옛날 옛적에 그런 방안이 논의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건 인간 심리를 전혀 감안하지 않은 탁상공론에 불과한 얘기였지요. 그런 것으론 절대 금전사고를 막을 수 없으니까요. 한국이나 인도네시아에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부패한 공무원들이 크고 작은 돈을 파렴치하게 빼돌리게 되는 것은 그들이 가난해서가 아니라 그럴 수 있는 위치에서 그럴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건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대부분의 직원들은 반드시 돈을 빼돌리지요. 물론 절대 그러지 않는 직원도 간혹, 그러나,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부패할 것이냐를 결정짓는 것은 급여수준이나 후생복지수준이 아니라 결국 업무의 성격과 환경이며, 더욱 궁극적으로는 근본적인 인성의 문제라고밖에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성이라는 것은 직접 겪어 보지 않는 한 채용면접에서 얘기 몇 마디 나눠 보는 것만으로는 잘 알 수 없는 부분이었으므로 예방차원에서라도 두 명이 한 팀으로 출발해 서로 돕고 감시하는 것이 몹시 중요했습니다.

 

이완은 1년 반 이상 우리 회사에서 일하면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사고를 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뚜따가 사고를 치고 나가는 과정에서 직원들을 동원해 현황파악을 하면서부터 회사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점점 변해가기 시작했고 특히 이완의 석연치 않은 행동이 두드러지기 시작했어요. 가장 특징적인 변화는 그가 여직원들과 한 팀을 이루어 나가려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완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남자직원들이 메이와 함께 출발하는 것을 꺼렸습니다. 메이는 필드 캡틴이란 명색에 걸맞게 늘 가장 많은 거래선들을 가장 늦은 시간까지 돌면서 영업을 했으므로 하루에 거의 60~100km 정도를 오토바이로 달렸습니다. 보고르도 곧잘 다녀왔는데 왕복 120km가 되는 거리였죠. 대개의 남자직원들은 하루 종일 정신없이 판매와 수금을 하는 메이보다 그 오토바이를 모는 자신이 더 고생을 한다고 생각하는 눈치였고 기본적으로 메이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습니다. 이유가 좀 돼먹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쉴 틈 없이 메이와의 동행을 꺼리는 건 그래서 전혀 이해 못할 일은 아닌 거였죠. 문제는 이완이 다른 여직원들과도 함께 나가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완은 혼자 다녀야 좀 더 빨리 오토바이를 몰면서 더 많은 거래선들을 돌 수 있다는 이유를 대고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럴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종종 생기긴 했지만 그건 우리 근무지침에 크게 위배되는 일이었으므로 그럴 때마다 혼자 오토바이를 몰고 나가는 사람은 가장 오래 함께 일한 에도였습니다. 게다가 뚜따가 사고를 친 이후 2 1팀 제도를 더욱 강고히 시행하던 중 또 짝도 안맞고 행선지도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어 한동안 혼자 나가던 위키가 BSD에서 절도사건에 휘말려 감옥에 갔던 것입니다. 난 이완에게 혼자 내보낼 수는 없고 메이는 그렇게 피하고 싶다니 그렇다면 앞으로 한 팀이 되어 함께 나갈 여직원을 직접 선택해 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한동안 생각한 끝에 띠따(Tita)를 선택했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어요.

 

띠따는 띠따 코말라사리(Tita Komalasari)라는 전형적인 순다 (Sunda) 식 이름을 가진 보고르(Bogor) 출신 여자였습니다. 피자헛과 한 한국계 패밀리 가라오케에서 메이와 함께 일했던 띠따는 내가 채용하기 직전에는 파파론 피자집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박봉에 시달리던 차였고 그래서 메이에게 여러 번 부탁해서 결국 채용면접을 보게 되었던 사람이었죠.  100만 루피아 넘는 월급을 받아 보는 게 평생의 꿈이라며 채용면접 당시 했던 말이 안타까워 임시채용 기간이 지난 후부터 월급을 맞추어 주었고 그 후 2년 넘게 일했지요. 문제는 언젠가부터 띠따가 자신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메이와 사사건건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면서 다른 직원들과도 심각한 불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띠따를 빨리 해고해야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었는데 그러지 못한 책임이 크지요. 당시 10년 넘게 방판시장을 독점하던 경쟁사를 재치고 업계선두로 치고 나간 지 얼마 되지 않는 시점에서 경쟁사가 지독한 네거티브 공세를 해오는 와중에 섣불리 띠따를 해고하다가 악감정이라도 품게 하면 띠따가 우리 거래선 자료 같은 대외비 자료들을 빼돌려 경쟁사로 달려갈 것이 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 생각을 갖게 된 배경엔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이완 얘기를 해야 하는 시점에서 띠따 얘기를 먼저 하게 되네요.

 

띠따가 메이를 비롯한 전직원들과 불화하는 것 역시 내가 원인을 제공한 거였어요.

 

내가 여러가지 면에서 메이에게 크게 의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고 그 충직과 성실을 감안하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지만 회사업무의 비중이 한 사람에게 너무 쏠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건강한 구도가 아니었습니다.

 

메이의 약혼자라는 에도는 동반자 없이 혼자 수금을 내보낼 만큼 신뢰하긴 했지만 뭔가 중요한 일을 맡길 만한 능력이 없었어요. 무엇보다도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종종 잊는 듯 했습니다. 그는 메이가 점점 악화되어 가는 자궁근종으로 인해 길거리에서 졸도를 밥먹듯 하던 어느 날 저녁, 사무실 계단을 내려가다가 졸도했을 때 내가 메이를 차에 싣고 병원 응급실로 데려다 놓고서 프론트에서 수속을 하는 동안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메이의 병상을 마땅히 지키고 있어야 할 에도는 나몰라라 병원 로비에서 다른 직원들과 히히덕거리며 장난을 치고 있었어요.  이런 갑작스런 상황에서 병원비를 내가 내는 것은 당연하다 하더라도 졸도한 애인을 돌보고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건 내가 아니라 약혼자가 해야 할 일이었죠.

 

정말 저 놈이랑 결혼할 거야?”

 

이것도 내가 물어볼 말이 아니었다는 거 인정합니다. 응급실과 프론트를 오락가락 종횡무진하던 중 마침내 정신을 차린 메이에게 다짜고짜 신경질 부리며 물어볼 말이 아니었다는 것도요. 하지만 에도는 너무나 책임감 없는 사람처럼 보였고 내가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고 메이가 내 현지처라도 되는 것처럼 병원에서 오해하는 상황도 억울했습니다.  그런 에도가 회사에서 업무적으로 메이의 대항마가 되어 주기를 기대하는 건 애당초 어려운 얘기였어요. 그 사이 그게 그나마 가능해 보였던 사람은 뚜따와 위키였는데 뚜따는 그렇게 본색을 드러내며 도주해 버렸고 위키는 절도혐의로 감방에 간 상태였습니다. 뚜따와 위키 이후 이 나라 남자들에게 뭔가 중요한 일을 맡겨 보려는 생각을 다시는 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때 띠따를 떠올려 봤던 거였어요.

 

띠따는 처음 채용했을 당시엔 전혀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고교 졸업 후 했던 일이라는 것이 피자헛의 계약직 서빙직원, 패밀리 가라오케의 웨이트리스, 파파론 지점 카운터의 판매원이 그녀가 했던 일의 전부였으므로 자카르타 일대를 종횡무진하며 방문판매하는 우리 일이 낯설 수 밖에 없었지만 메이가 자기 매출까지 나누어주며 도와 주자 조금씩 적응해 가는 듯 했지요. 그러나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하면서 무수한 사고를 내기 시작했어요. 그 사고라는 게 대부분 외상 구매자들이 도주하는 것이었는데 띠따는 그런 문제를 전혀 처리하지 못했으므로 대개 나랑 메이가 도망간 놈들을 잡으러 다녔고 이완과 에도도 때때로 동원되었습니다.

 

나이도 제일 어리잖아. 익숙하지 않아서 그러는 거니까 너희들이 좀 이해하고 도와 줘. 불쌍하잖아?”

 

간혹 직원들은 완곡하게 불평을 터뜨렸지만 그때마다 난 이렇게 얘기하면서 무마시키려 했습니다. 나를 만나기 전까지 100만 루피아 월급이 평생의 꿈이라며 전직장에서 한결같이 당시 한화로 4-5만원에 불과했던 40만 루피아 월급을 받아 왔던 띠따가 안쓰러웠기 때문이기도 했고 거래선 직원들과 쉽게 친해지는 메이나 이완 등과는 달리 띠따는 거래선과 얘기하면서도 내내 겉도는 느낌이었으므로 실제로 많은 도움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때로는 띠따의 사기를 올려 주려고 내가 데리고 나가 거래선들에게 직접 소개해 주고 오더를 받아 주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거래선 한국사람들하고 술 한잔 먹게 되었을 때 하루 종일 함께 다녔던 띠따를 그러니 알아서 돌아가라고 시내 길바닥에 내려 주기가 좀 미안해서 그 저녁식사 자리에 데려 갔던 적도 있었어요.  그게 띠따의 첫 번 째 한국식당 경험이었죠 띠따는 그걸 다른 직원들에게 내가 자신에게 특별한 배려를 해 준 것처럼 호들갑 떨며 장황하게 자랑했다는데 그리 특별한 건 아니었지만 배려였던 것은 분명했으므로 굳이 코멘트를 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그날 이후로 자신이 내게 특별한 배려를 받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띠따가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한 데에 있었습니다.

 

사장님, 출근하시기 전에 사무실에서 매일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세요? “ 사장님이 너무 총애하니까 띠따 쟤가 완전히 분수를 모르고 날뛰어요!” 정말 어떻게 안될까요? 전 정말 쟤랑 같이 나가면 미쳐버릴 것 같아요.”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전직원들이 차례로 면담을 요청하면서 띠따에 대한 불만을 토로해 오기 시작했습니다. 메이는 뚱한 표정을 지은 채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앞서도 기술한 바와 같이 이렇게 현직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건 매우 드문 경우였기 때문에 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러나 그간의 일로 직원들이 내가 띠따만 감싸고 돈다는 오해를 했고 어쩌면 그 배후엔 아마도 질투에 눈 먼 메이가 몰래 직원들을 선동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까지 했습니다.

 

너희들 무슨 얘길 하는 거야? 총애하긴 누굴 총애해? 오히려 너희들이 쟬 너무 왕따시키는 거 아니야? 혹시 그렇다면, 정말 실망스럽다. 너희들 남자들이잖아? 여자 한 명 가지고 다들 들고 일어나 공격하는 건 남자답지도 못하잖아?”

 

이렇게 얘기하면서 띠따를 두둔한 것이 당시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나중에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난 후로는 후회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때 실제로 띠따는 분수를 넘어 폭주하고 있었던 것이었거든요.

 

한국인들과의 식사에 초대한 것은 띠따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메이가 그런 자리에 종종 함께 참석하게 되는 단골이었어요. 메이와 띠따의 다른 점은 메이는 그렇게 한국인들을 가깝게 알게 되고 문화의 장벽을 조금 넘어 서 보려 하는 경험을 고맙게 여기면서 웬만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떠버리지 않고 함구해 버리지만 띠따는 그 사실을 적잖은 살을 붙여 동네방네 소문 내려 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러다가 스스로 정말 그렇게 믿어 버린다는 거였죠.  띠따는 내가 자신에게 특별한 마음을 품고 있어 자기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내가 자신을 두둔해 주고 급기야 내가 속한 한국인들 사회에까지 자기를 소개해 주기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동료에게 매일 자랑하며 과장하고 떠버렸던 것이죠. 메이도 처음엔 눈살을 찌푸리는 정도였지만 그런 상황이 도를 넘어 점점 심해지자 결국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직원들은 폭발 직전까지 갔던 것입니다.

 

그때 아침마다 띠따가 미스터르 책상 걸레질 하고 있었죠?  아침마다 제일 늦게 출근해서 우리들한테 여기 쓸어라 저기 걸레질 해라 하며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러다가 미스터르 차가 요 앞에 주차하면 그때 갑자기 걸레 들고 쪼르륵 미스터르 방에 들어가 책상 청소하는 척 하던 거라구요. 그걸 미스터르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던 거구요.”

 

얼마 전에도 메이는 이런 얘기를 했었습니다. 이 얘기는 당시에도 종종 들려 왔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가증을 떠는 인간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어요. 띠따는 당시 20대 중반의 제일 나이 어린 친구였는데 30대 중반을 지나던 에도며 이완이 그렇게 주제넘은 짓을 하는 띠따를 가만히 둘 리도, 그런 지시를 따를 리도 없다고 생각했던 거에요. 게다가 누구보다도 내 신뢰를 받으며 나와 매일 많은 얘기를 나누던 메이는 왜 그때 가만히 있었던 것일까요? 그런데 인도네시아에선 이런 상상도 못할 일이 실제로, 거짓말처럼 벌어집니다. 그런 위선과 거짓이 뽀록나지도 않고 말이죠. 메이를 비롯한 다른 직원들이 이상하게도 그런 띠따를 혼내지도 들이받지 않았으므로 띠따는 더욱 기고만장 했던 것입니다.

 

그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 그런 띠따를 두둔했던 것이 당시 직원들 눈에 어떻게 보였을까 생각하면서 좀 부끄러워지기까지 했습니다. 어느 날인가 사무실 대청소를 할 때 실제로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있었죠. 잠시 외출에서 돌아왔을 때 메이는 낑낑거리며 혼자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었고 직원들을 사무실이며 계단을 청소하고 또 일부는 창고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띠따 혼자 허리에 손을 얹고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다른 직원들에게 지시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저게 미쳤나 싶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때 이완이 “Iya, nyonya”라며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던 것도 기억합니다. 번역하자면 , 사모님정도의 얘기가 되는데 왜 그런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는지를 시간이 하염없이 흐른 후에야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띠따는 내가 자기가 하는 모든 것을 용인하고 감싸 주리라 믿고서 기고만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한 것이라곤 한국식당에 한 번 데려간 것과 불평을 토로하는 직원들에게 좀 너그럽게 띠따를 대하라고 얘기했던 것뿐인데 말입니다. 웃기는 건 띠따도 장래를 약속한 로만(Roman)이라는 남자가 있었다는 거죠. 지금은 피자헛 아르타가딩점의 주방에서 정식직원으로 일하는 로만은 야근이 없는 날이면 저녁마다 띠따를 데리러 사무실에 왔고 우리 직원들 회신에도 몇 번 참석해 서로 안면을 트고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띠따가 당시 자신이 외국인 사장인 나와 약혼자 로만 사이에서 사랑의 줄다리기를 당하는 미모의 여인으로 코스프레하고서 직원들 앞에서도 그렇게 행동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나중에서야 하게 되면서 정말 더러운 기분이 들었어요. 인생을 러브로망 드라마처럼 살아가고 싶은 여자들이 어디 인도네시아 여자들뿐이겠습니까만 인니 아가씨들이 저마다 주인공이 되어 나름대로 TV 드라마 시네트론을 찍으며 살아가는 것까지는 인정하더라도 출연료도 주지 않으면서 그 천박한 스토리에 나를, 말도 안되는 설정의 등장인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출연시켜 버리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좀 도를 넘는다 싶은 사건들이 그 후에도 내가 알게 모르게 벌어지다가 결정적인 사건이 플라자 스나얀(Plaza Senayan)에서 벌어집니다.  그곳 거래선은 내가 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처음 뚫은 초창기 거래선들 중 하나였으므로 점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직원들과 알고 지냈고 메이가 이 거래선을 담당하기 시작하면서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상태였어요. 그날 메이는 자카르타 서부와 카라와치까지 일정에 넣고 있었으므로 그날 예정된 플라자 스나얀에서의 수금은 띠따에게 맡겼지요. 그날도 짝이 안맞아 띠따를 내가 데리고 나갔습니다. 사실 정말 짝이 안맞는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어요. 모든 남자직원들은 당시 띠따와 함께 나가는 걸 죽기보다 싫어했으므로 띠따가 그날의 자기 행선지 목록을 만들면 남자직원들은 하나 같이 모두 반대방향으로 행선지를 잡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부득이 내가 띠따를 데리고 나가야 하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진 거였고요.

 

 

 

플라자 스나얀에 도착했을 때 띠따는 그날 그곳 거래선에서 수금 외에도 처리해야 할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해 메이와 이미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한 상태였습니다. 당연한 수순이었죠. 모든 거래선들은 정해진 담당자가 있는데 이렇게 일정이 맞지 않아 부득이 다른 담당자의 거래선에 들어가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사전 확인 및 조율을 해야 하는 거지요. 거래선에 혼자 들어간 띠따는 15분쯤 후에 나왔습니다. ‘다 끝났니?’라는 내 질문에 띠따는 라고 짧게 대답했을 뿐입니다. 우린 나머지 행선지들을 마저 돈 후 사무실로 돌아왔어요. 평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습니다. 그러나 외근 나갔던 직원들이 모두 사무실에 모인 늦은 저녁시간에 메이의 고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걸 왜 캔슬해?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사무실 홀에서는 메이와 띠따가 서로 노려보며 언성을 높이는 가운데 남자직원들은 아무 소리도 없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어요. 난 두 여자를 내 방으로 불러 들였습니다.

 

 

미스터르는 도대체 무슨 생각 하시는 거에요? 왜 이걸 캔슬하도록 내버려 둬요?”

 

 

메이는 고가의 제품들을 내 책상 위에 벌려 놓았습니다. 그러나 사용한 흔적이 역력하고 포장도 파손되어 도저히 되팔 수도 없는 상황이었어요. 한 달 전에 판매했던 제품을 판매취소하고 아무런 보상도 없이 회수해 오도록 내가 놔둘 리 없는 일입니다. 난 띠따를 바라 보았습니다. 띠따는 내 눈을 맞추지 못했어요.

 

 

설령 정말 심각한 상황이었다고 해도 플라자 스나얀이라면 나나 메이가 분명히 해결할 수 있었던 일이야. 도움을 청했어야지? 넌 얼마든지 메이에게 전화할 수도 있었잖아?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자리에 나도 있었잖아?”

 

 

띠따는 마치 매우 비통하다는 듯 입술을 깨물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 더욱 울화통을 터졌습니다. 상황이 발생하던 바로 그 자리에서 나한테 곧장 보고했어야 할 매우 심각한 문제였어요. 그런데도 다 끝났니?’라는 질문에 라고만 대답하며 조기대응 할 수 있는 개회를 고의로 날려버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비통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나였어요. 사전협의도 없이, 아니 사전에 모든 주의사항을 충분히 주었음에도 어렵게 일으킨 매출을 제 3자인 띠따에게 강탈당하듯 캔슬 당한 메이가 비통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내 코 앞에서 벌어진 일을 어쩌자고 슬며시 뭉개려고 한 거야? 이게 그냥 넘어갈 일이야?? 왜 그 자리에서 바로 보고하지 않았어? 왜 사무실에 돌아올 때까지 아무 소리 없었던 거야? 띠따! 임마! 정신 차려, 내가 네 운전사야? 이 자식아??!!

 

 

플라자 스나얀에 판매한 제품들 중 하나를 캔슬하겠다는 통보가 실제로 있긴 했지만 그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그곳에 갈 시간엄두가 나지 않던 메이를 불러 들이려는 거래선의 작전이자 악의 없는 장난이었습니다. 그만큼 그들은 메이를 좋아했고 실제로 메이가 나타나면 거래선 직원들 대부분이 모여들어 왁자지껄하게 시끄럽고 유쾌한 시장판을 만들곤 했어요. 그런 상황을 메이는 이미 띠따에게 충분히 얘기했던 것인데 캔슬 얘기가 나오기 무섭게 띠따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제품은 물론 우리가 그 거래선에 판매했던 매출의 반 이상을 캔슬해 회수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그 자리에 나도 있었는데 띠따는 날 눈뜬 장님으로 만들어 버렸고 캔슬했다는 사실, 자기 가방 속에 몰래 넣어온 회수한 물건들을 그날 저녁 사무실에 도착할 때까지 내게 비밀로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상황이 돌이킬 수 없는 기정사실이 되어 버리기를 기다렸던 것처럼요.

 

 

캔슬하려면 네 거래선 걸 캔슬해! 왜 남의 걸 네 맘대로 캔슬해? 그리고 왜 그게 나한텐 비밀이야? 내가 이웃 회사 사장이야? 내가 동네 양아치야? 다른 모든 사람한텐 비밀로 하더라도 나한텐 보고했어야지??!!

 

 

그제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질투에 눈이 먼 건 메이가 아니라 띠따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띠따는 혼자서 우리 전체 매출의 90%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메이를 그토록 질투하고 있었던 것이고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메이의 거래선들을 가로채고 메이의 매출부분이 사고로 뒤덮히기를 기원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메이의 제품가방이 텅텅 비어 그날 제품을 공급받지 못한 거래선들에게 띠따가 다음 날 쪼르륵 달려가 제품을 배달하고 몰래 자기 매출로 잡았던 일이 적지 않음은 나도 익히 아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메이의 매출이 워낙 커서 그렇게 나누어 주는, 아니 실제로는 가로채어지는 부분이 대세를 가를 정도도 아니었고 기본적으로 띠따는 메이가 데려온 친구였으니 난 그런 것들이 사전에 서로 양해가 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내가 한국적 사고방식을 기준으로 마음대로 생각했던 것이었고 실제로는 은인으로 모셨어야 할 메이를 띠따는 기존 매출을 고의로 캔슬해 버릴 정도까지 악의적인 방법으로 공격하고 물을 먹이려 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아마도 그날 그런 상황이 평소처럼 내 귀에까지 들어가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내가 알게 되더라도 언제나처럼 자기 편을 들어주리라 스스로 확신해 마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죠.

 

 

그런 짓 하라고 내가 월급 주는 줄 알아??!! 그딴 식으로 하려면 그만 둬, 임마!! 나가!! 꼴도 보기 싫어!!!”

 

 

이제 알겠어요?

 

입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메이는 그 후로도 며칠 동안 나랑 눈이 마주칠 때마다 그런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띠따가 캔슬했던 제품들은 다음 날 나와 메이가 플라자 스나얀의 거래선을 다시 방문해 거래를 원복시켰던 것도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난 다시는 띠따를 데리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전직원이 들을 정도로 소리를 지른 것이 주효했는지 띠따는 풀이 죽었고 직원들은 노골적으로 띠따를 왕따시켰어요. 좀 안됐지만 난 모른 척 하기로 했습니다. 내가 또 띠따를 감싸고 돈다면 띠따는 분명히 다시 기고만장할 것이었기 때문이었죠. 난 차라리 띠따가 사표 내고 나가기를 기대했고 내가 그 정도까지 말을 했으니 아마도 그만 둘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어요. 그 대신 그날부터 띠따는 콩쥐 코스프레를 시작했습니다. 못된 사장 밑에서 당하는 숱한 고난을 묵묵히 이겨 나가는 착한 콩쥐 말입니다.

 

 

 

그때 띠따는 아마도 다른 방법으로 사표를 내기로 작정했던 것 같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일반적인 관례에 따르자면 자기가 스스로 사표를 내는 것은 퇴직금, 해고수당 등을 스스로 포기한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띠따는 그걸 포기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택한 방법은 임신이었습니다.  그 사건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띠따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어요. 띠따는 또 다른 시네트론의 여주인공이 된 모양이었고 약혼자 로만은 얼이 빠진 듯 날이 갈수록 얼굴이 창백해져 갔습니다.

 

 

 

반면 난 안도의 한숨을 쉬었어요. 띠따가 나가지 않으면 해고도 불사해야 했는데 그건 앞서 언급한 그런 위험성이 있었어요. 띠따가 악심을 품고 우리 대외비를 경쟁사에 팔아 먹을지도 모른다는 부분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 띠따는 곧 출산휴가를 갖게 될 것이고 그때 돈도 많이 필요할 테니 아예 퇴직금도 넉넉히 정산해 주면서 자연스럽게 퇴직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너희들도 이제 작작 좀 해라. 임산부야, 임산부. 그간 왕따 시킬 만큼 시켰고 이제 쟤 출산휴가 갈 날도 멀지 않았으니 있을 때 잘해 줘.”

 

 

그 말에 메이는 또 양미간을 찌푸렸었죠.

 

 

 

내 회사까지 포함해 3개의 직장에서 함께 생활했던 메이와 띠따가 어째서 그렇게까지 서로 못잡아먹어 죽는 사이가 되었는지는 대충 짐작만 할 뿐입니다. 너무 현격한 능력 차이가 불러온 현실적 차이, 즉 메이가 매월 판매커미션으로 가져가는 금액이 띠따의 1년 연봉을 넘기도 한다는 사실이 띠따로 하여금 메이를 무섭게 질투하도록 했던 것이고 메이도 공격을 당하면 조용히 참기만 하는 성격이 아니었던 것이죠. 띠따가 좋은 조건의 직장을 구해준 메이에게 고마워 하기만 해야 하는 입장이라는 관점이 우리의 일반적 한국식 정서인데 말입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띠따가 메이와 반목했던 배경이나 방법이 매우 건전하지 못했다는 것은 또 다른 사건에서도 알 수 있었어요. 메이가 더 이상 길바닥에서 졸도하는 일이 없도록 자궁근종수술을 받도록 했을 때의 일입니다. 잘은 모르지만 자궁에 생기는 근종을 이 나라 말로 끼스타라고 하는 모양이고 그걸 방치하면 생리불순은 물론 저혈압과 맞물려 컨디션이 안좋으면 쉽게 정신을 잃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 폭염과 비바람을 무릅쓰고 오토바이로 자카르타를 종횡무진하는 것인데 메이는 달리는 오토바이 뒷자리에서 정신을 잃기도 해 위험한 상황에 처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어요. 

 

 

빅 보스가 부하직원 목숨이 걸린 일에 돈을 아껴서는 안되지. 그렇지 않아?”

 

 

내가 인도네시아에 온 이래 줄곧 동업을 해온 오랜 친구 릴리를 감언이설로 설득해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던 수술비 반을 부담시키면서 메이의 끼스타 제거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지요. 메이를 수술 후 사흘 동안 병원에 입원시켜 놓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수술자국이 아물려면 적잖은 시간이 필요한데도 메이는 수술 다음 날부터 퇴원하려고 발버둥 쳤기 때문입니다. 현장 복귀를 강력히 원했던 것이었죠.  메이가 둘째 아이를 제왕절개수술로 낳았을 때엔 수술 후 셋째 날 아직도 아물지 않은 수술상처를 싸매고서 나 몰래 기차를 타고 보고르까지 가서 수금하다가 거래선 아주머니에게 산모가 미친 짓을 한다고 눈물이 찔끔 나도록 혼난 적도 있었어요. 내가 가서 체포해 왔지요. 분명 강박관념인 것 같았는데 기본적으로 메이는 회사 돈으로 수술비, 입원비를 내면서 병상에 누운 채 회사에 돈을 벌어주지 못하는 상황을 죽을 만큼 부담스러워하는 성격이었어요.

 

 

 

그런데 그런 메이가 어느 날 오히려 그만 두겠다며 펑펑 울면서 전화를 해왔습니다. 깜짝 놀라 그날 밤 메이의 입원실에 갔더니 메이는 한참 묵비권을 행사한 끝에 띠따로부터 들어온 문자메시지들을 내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아마도 백여통의 SMS를 주고 받았던 것 같았습니다. 너무 많아 다 읽어 보진 않았지만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이런 거였습니다.

 

 

 

내 거래선에 생긴 문제들을 미스터르에게 얘기하면 난 네 비밀들을 미스터르에게 다 불어 버리겠어!

 

 

 

이건 또 무슨 시네트론일까요?

 

띠따는 그 당시 몇몇 거래선들이 도주한 것을 내게 보고하지 않은 채 뭉개면서 메이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중이었습니다. 평소라면 마다하지 않고 즉시 협조했을 메이도 수술 직후 일어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도망간 놈들을 잡으러 다닐 수는 없었으므로 내게 사실대로 보고하고 회사차원의 도움을 청할 것을 제안했지요. 자기가 말을 거들어 주겠다면서요. 사실 그게 정상적인 사고처리 방법이지요. 담당자가 거래선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건 맞지만 그런 사고는 구매력이 일천한 저소득층을 포함한 거래선에 외상/할부판매를 하고 있는 우리 사업 자체가 갖는 리스크이기도 했으므로 충분한 예방조치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사고에 직원에게 무한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상황의 경중에 따라 회사가 전부 또는 일부의 책임을 감면해 줘야 했지요.

 

 

 

사고의 해결도 해결이지만 해당 거래선을 블랙리스트에 등재하고 자료를 공유해 그런 사고의 재발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띠따에게 사고를 치고 도망간 사람이 나중에 에도에게도 또 외상구매한 후 또 다시 도주하는 일이 몇 번 벌어졌어요. 사실대로 보고되어 조치되었다면 절대 생기지 않았을 일이었지요. 그런데 띠따는 이런 사고들을 쉬쉬하며 넘어가려 했습니다. 그러면서 수금하지 못한 돈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장기간에 걸쳐 월급 때마다 일부씩 정산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정말 자기 월급으로 메꾸기보다는 다른 쪽 수금을 빼돌려 돌려막기를 할 개연성이 현실적으로 더 높았고 결과적으로 띠따가 제출해야 할 일일보고서는 순 거짓말들로 점철되어 버릴 판이었습니다. 그런데 띠따는 내게 오픈하라는 메이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말다툼을 시작합니다. 아마도 메이가 내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까발리려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겠죠. 메이가 보여준 띠따의 SMS는 어느 시점부터 욕설과 협박으로 가득차기 시작했습니다.

 

 

 

띠따가 까발리겠다고 협박하는 메이의 비밀이란 내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일이었으므로 기가 차지 않을 수 없었어요. 메이 역시 보고내용과 실제가 잘 맞지 않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띠따의 허위보고와 전혀 성격이 다른 것이었어요.  어떤 거절하기 어려운 사유로 한 거래선의 결재일정이 늦어질 때 메이는 회사에 입금이 너무 늦어지지 않도록 자기가 먼저 대납을 해 주고 회사엔 결재한 것으로 보고하는 일이 잦았어요. 내 회사경영방침이 내 직원들의 돈을 쥐어짜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이건 엄격히 금지하고 있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메이의 그런 조치가 회사와 거래선 양쪽 입장을 모두 고려한 최선의 선의에서 비롯된 것임엔 이견이 없습니다. 이 방식을 금지한 또 다른 이유는 이 역시 내가 어쨌든 왜곡된 현장상황을 보고받게 된다는 측면도 있었지만 또 한가지는 거래선이 나중에 메이가 이미 대납한 돈을 결재하면 그걸 메이가 챙겨 대납한 자기 돈을 보전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음에도 다른 직원들이 볼 때에는 메이가 수금한 돈을 가로채는 것처럼 보이기 쉬웠기 때문입니다. 띠따는 그런 현장을 몇 번 목격했던 것이고 그걸로 메이를 협박하려 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 당시 메이가 입원해 있는 동안 메이가 대납했던 돈을 띠따가 몇 군데 거래선으로부터 수금해 들고 있었더군요. 띠따는 것을 메이에게 가져다 주지도, 내게 보고하지도 않고 있었는데 어쩌면 메이를 협박할 결정적 무기로 흔들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 내가 그러지 말라고 그랬지?”

 

 

수술한 지 사흘도 안된 애한테 꿀밤을 먹였습니다. 물론 메이의 대납과 마찬가지로 내 꿀밤에도 악의는 없었습니다.

 

 

 

물론 메이의 그런 선의의 허위보고도 직원들에게 나쁜 선례를 남겼습니다. 비록 메이는 선의에서 그렇게 했지만 직원들은 그런 식의 허위보고를 해도 대개의 경우 내가 진위 여부를 판단하지 못한다는 것, 그 진위 확인을 위해 전날 수금처에 일일이 전화하거나 방문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던 것입니다. 그래서 메이는 자기 돈으로 회사 돈을 미리 메꿔 놓으며 허위보고를 했지만 다른 직원들은 회사 돈을 빼돌리면서 허위보고를 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띠따의 배가 불러올 즈음 그녀의 매출은 사고투성이가 되어 있었어요. 난 그녀가 출산휴가를 갈 때까지 더 큰 사고만 나지 않기만을 기도하고 있었고요. 임신 4개월쯤 되어 보고르 고향에 가서 로만과 결혼식을 하고 돌아온 띠따는 갑자기 아줌마 같은 포스를 띄기 시작했고 점점 뚱뚱해지면서 심술궂은 표정으로 변해 갔어요. 수술에서 회복한 메이는 원래 자기가 하던 일 위에 띠따가 쳐 놓은 사고들을 처리하느라 더욱 바쁜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뚜따의 사고도 대충 그 즈음에 발생한 일이었어요.  예전 메이 혼자서 기적적인 매출을 올리고 있을 당시 직원들이 많아지면 매출이 획기적으로 증가될 것이라고 기대했었는데 이제 직원들이 몇 개 팀으로 움직이면서도 매출은 그다지 오르지 않은 상태에서 사고들만 넘쳐났고 마케팅할 시간도 부족한 우리들은 이제 뚜따가 저질러 놓은 사고들을 처리하고 띠따가 꽁꽁 숨겨둔 사고들을 찾아내서 해결하는 일에 치이기 시작했습니다.

 

 

 

뚜따의 사고가 나던 때까지도 남자직원들은 더욱 더 띠따와 함께 나가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띠따의 성격을 견뎌내는 것 위에 임산부 수발까지 들어야 했으니까요. 남자직원들은 넌더리를 냈지만 난 플라자 스나얀 사건 이후 띠따는 절대로 데리고 다니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으므로 누가 되었든 남자직원 한 명이 몸바쳐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대개의 경우엔 이완을 비롯해 손사래를 치며 강력히 거부하는 직원들 대신 그나마 시키면 하는 에도가 데리고 나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에도조차도 얼굴에 싫어하는 눈치가 가득했어요.

 

 

 

그런데 뚜따 사건을 겪은 후, 함께 나갈 여직원을 선택하라는 내 말에 이완은 띠따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어요.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경멸하고 경원하던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석연치 않았습니다. 절대로 벌어질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분명 내가 모르는 어떤 중대한 사건이 그 사이 벌어졌다는 의미인데 난 그게 무엇이었는지 당시로서는 전혀 짐작할 수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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