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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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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직원 활약사

영업직원 활약사 (2)

beautician 2012. 3. 22. 22:16

 

영업직원 활약사 (2)

 

한편 우린 점점 수산의 말을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위키의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 그가 막 검찰에 송치된 직후 우린 증거품으로 압수되어 있던 우리물건 일부를 돌려 받았는데 물건이 반 이상 비었습니다.

 

위키 가방에 있던 건 그것뿐이었어요. 다른 물건이 더 있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 얘기에요.”

 

물건을 건네주며 너스레를 떠는 수산의 말에 메이가 정색을 했습니다.

 

사무실에서 물건들 들고 나갈 때 늘 목록을 만들거든요. 위키가 당일 서명하고 가져간 물건 목록이 이거에요. 만약 없어진 물건이 있다면 그건 위키가 나중에 출소한 후라도 꼭 물어 내야 하는 거라구요. 그렇지 않아도 위키한테 끊임없이 들어가는 돈이 지금도 많은데 물건 값까지 합치면 위키가 복직한 후에도 최소한 2년 이상 월급 없이 일해야 할 거에요.”

 

그제서야 수산은 삼촌에게 알아 보고 전화하겠다고 하더니 다음 날 나머지 물건은 검찰에 증거품으로 잡혀 있다는 연락을 해옵니다. 이 친구 얘기는 항상 석연치 않았어요. 한 덩어리로 증거품이라고 잡혀 있던 물건을 어떻게 일부만 빼올 수 있었느냐 하는 점부터, 검찰이 무슨 근거로 이 가위는 증거품, 저 바리깡은 증거품이 아니고…, 하는 식으로 어떻게 결정을 할 수 있었는지 말이죠. 수산의 설명으로는 삼촌이 계속 검찰과 얘기 중인데 아마도 물건을 빼내려면 돈이 좀 필요할 거라는 거였고 내 입장은 물건 값이 이미 수천만 루피아 어치이니 2~3백만 루피아 정도를 써서 물건을 뺄 수 있다면 수산이 요청하는 데로 빨리 진행하는 거였으므로 메이에게도 그렇게 지시해 놓은 상태였어요. 그러나 이 부분은 위키의 형이 확정된 이후까지도 아무런 진전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내 핸드폰에 위키의 SMS가 날아 들었습니다.

 

내가 빌린 돈 300만 루피아 중 200만 루피아를 메이가 그때 회사에 돌려 줬나요? 그리고 회사 물건은 지금 삼촌이 가지고 있습니다.”

 

200만 루피아는 앞서 언급했던 재판소 서기에게 잘못 보냈다는 100만 루피아를 뺀 나머지 금액입니다. 우리 물건이 삼촌에게 있다는 얘기는 드디어 증거품으로 압류되어 있던 우리 물건을 검찰에서 찾아 왔다는 뜻이었으니 경찰관인 삼촌에게 수고비를 좀 주면 되는 일이었죠. 교도소에서 핸드폰 사용이 자유롭지 않은 위키가 급히 보내려다 보니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이 두 가지 내용을 한 개의 메시지로 묶어 보낸 것이라고 생각하며 거기 특별히 다른 뜻이 함축되어 있으리라고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200만 루피아는 돌려 받았고 물건 내용을 잘 알았다고 회신했지요. 하지만 그렇게 회신하려니 그때까지 위키에게 들어간 돈이 적지 않은데 마치 위키가 그 200만 루피아에 대해 오히려 생색을 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 메이는 생각지도 못한 보고를 해왔습니다. 내가 위키로부터 그 SMS를 받기 직전 이메이는 위키와 전화로 일대 전쟁을 벌였다는 거였어요.

 

위키의 재판이 끝난 지 이미 한 달이 넘어가고 있었으므로 며칠 전부터 나는 직원들에게 검찰청에 가서 우리 물건 상황을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려 놓고 있었습니다. 찾아와야 할 시기가 이미 지났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그 날 실제로 직원 한 명이 검찰청에 갔고요. 그 지시를 실행하는 데 시간이 걸린 이유는 위키가 며칠 전부터 메이에게 먼저 200만 루피아를 보내 달라고 요청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물건을 회수하기 위한 필요한 비용이라면서요. 그러나 그런 상황을 모르고 있던 내가 닦달하자 어쩔 수 없이 직원을 보내면서 위키의 삼촌이 어디까지 진행해 놓았는지 알아 보려고 위키에게 전화를 건 메이에게 위키는 필사적으로 검찰청 행을 막으려 했습니다.

 

, 나 감방에서 더 썩게 만들려는 거야? 검찰에 가서 내 사건을 물어 보면 여기서 내 입장이 더 어려워진단 말이야. 삼촌이 처리 중이니까 절대로 검찰에 사람 보내면 안돼!”

이건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야. 미스터르가 변호사를 보낸 거라구. 검찰청에. 너 재판 끝난 지가 언젠데 회사가 언제까지나 우리 물건을 검찰에 맡겨 놓을 수 없는 거잖아? 너희 삼촌도 연락 안돼. 그러니 미스터르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지시할 수 밖에 없잖아?”

 

변호사를 보낸 게 아니었지만 위키의 반응을 이상스러워 한 메이가 한번 뻥을 친 겁니다.

그러자 대뜸 전화를 끊어 버린 위키는 그때부터 나름대로 바빠졌던 모양인데 아마 그때 내게 그SMS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메이는 검찰청에 간 직원에게서 의외의 보고를 받습니다. 위키가 검찰에 송치되던 날 오토바이와 일부 현금만 증거품으로 검찰에 전달되었고 우리 물품들은 애당초 증거품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일 위키 가족이 BSD의 경찰서에서 수령해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제품 일부를 전달받던 날 나머지 물건들도 이미 수산이 모두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 물건들이 이미 검찰로부터 회수된 상태라는 사실을 위키와 수산은 우리에게 필사적으로 숨겼고 그러기 위해 수많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위키가….,  그럴 리 없어…!”

 

하지만 그 설명을 듣고 나니 앞서 그 SMS의 의미가 갑자기 분명해졌습니다. 우리 물건을 자기 삼촌이 가지고 있다는 말은 내가 굳이 경찰청에 사람을 보낼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고 200만 루피아를 물은 것은 자기 삼촌이 우리 제품을 회수하려고 지불한 비용을 잊지 말고 지불해 달라는 것이었죠. 하지만 진실은 수산과 삼촌이 우리 물건을 뒤로 빼돌리고 그 사실을 은폐하는 노력에 위키 역시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 마음 한 구석에서 뭔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반둥에 다이렉트 마케팅을 시작하면서 이번 BSD에서의 사건으로 심리적 상처를 입었을 위키가 감옥에서 나오면 반둥에 집과 사무실을 얻어 지점을 맡기고 치유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줘야 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차였습니다. 그의 몸무게를 복원시키기 위해 부페식당 목록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황은 위키가 수산과 짜고 우리 제품을 빼돌린 것을 감추려고 물건이 검찰에 있다는 허위사실을 날조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빼낸다는 빌미로 200만 루피아를 더 뜯어 내려 했다고 강변하고 있었고요.

 

위키의 전화가 또 날아 듭니다. 9. 교도관이 핸드폰을 대여해 주는 시간입니다.

 

사실은 에도(Edo)가 돈이 필요해서 내 이름으로 200만 루피아 가불해서 에도를 빌려 주려고 한 거에요. 미스터르도 에도랑 메이가 잘 되기를 바라잖아요? 난 그 친구들을 사랑해서 그렇게 한 건데 이렇게 오해를 받고 말았어요. 시간이 없어서 길게 설명은 못해요. 아무튼 다른 뜻은 없었어요. 에도를 도와 주려고 했던 것뿐이에요.”

 

위키가 이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뻔뻔스럽게 하는데 바로 내 앞에서 에도가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에도는 메이 다음으로 오래된 직원이고 입사 당시 메이는 에도를 자기 약혼자로 소개했습니다. 영민한 위키는 에도가 가끔 심하게 멍청하다는 것과 내가 그의 멍청함 때문에 많이 속상해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에도의 영업보고는 구두나 서면보고 모두 도무지 두서도 맥락도 없었으므로 똑같은 인도네시아 말인데 메이가 통역을 해주지 않으면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뜨리삭띠(Trisakti)대학 중퇴라는 그의 학력이 도무지 믿어지지도 않았고 지금은 그것이 십중팔구 거짓말이었다고 확신합니다. 졸업증명서는 있어도 중퇴증명서라는 것은 애당초 없으니 어차피 증명할 수도 없는 학력인 것이죠.

 

그러나 그렇게 둘러대는 위키는 그가 감방에 간 사이 몇몇 상황에 대한 업데이트된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약혼자 사이였던 에도와 메이의 사이가 메이의 자궁근종수술을 받던 즈음부터 관계가 금 가기 시작하더니 곧 완전히 깨져 버렸고 회사 일에도 막대한 지장을 주었던 그 둘의 서먹서먹한 과도기를 당시 막 지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제 간신히 안정을 되찾은 메이는 일과 아이 양육에만 전념하기 시작했고 에도는 다른 새 애인을 만나고 시작했죠.

 

위키는 분명한 거짓말을 하고 있었고 그 저변에는 내가 메이나 에도와 어떤 진지한 커뮤티케이션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오판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난 몇 개월 동안 우리 제품이 왜 수산 손에 있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아무런 변명도 대지 못했습니다.

 

이게 정말 다에요.”

 

며칠 후, 이제는 뿔루잇 빌리지(Pluit Viilage)로 새단장한 당시 메가몰(Megamall)에서 만난 수산이 내미는 제품 가방 안의 우리 물건들은 여전히 많이 비고 있었습니다. 수산은 그것이 바로 어제 삼촌에게서 받은 제품 전량이라고 설명하고 있었어요. 그녀는 삼촌의 핑계를 대고 있었지만 사실 그동안 수산이 우리 물건을 팔아먹고 있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비는 물건들은 구매자들에게 별도의 설명조차 필요 없는 우리 주력 제품, 그래서 판매하기 가장 손쉬운 제품들이었고 돌려 받은 물건들은 전문지식 없이는 팔기 힘든 물건들이었거든요. 그녀는 자기 능력으로 팔아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미 팔아먹었던 것입니다.

 

상황이 어려우니 돈을 좀 빌려 달라고 솔직히 부탁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메이가 내 앞에서 필사적으로 회사의 이익을 지키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거짓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회사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물건마저 모두 회수되면 내가 더 이상 위키에게 신경을 쓰지 않으리라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위키가 감방에서 나오면 계속 미스터르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거죠?  아니면 다른 직장을 찾아 봐야 하는데….”

 

헤어지기 전 수산이 하던 말이었습니다. 문제가 생겨 도움을 주고받는 처지에 놓이게 되면 각자의 입장에서 제일 필요한 것은 가능한한 도움이 되고자 하는 선의의 배려와 지나친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염치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수산은 자신과 가족만 염두에 두고 애당초 내 입장이 어떻고 내 심정이 어떨 것임은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위키는 희대의 금융사기사건에 연루된 친척 때문에 신원조회가 심하지 않은 작은 회사를 찾았던 것이고 그나마 별로 관심을 끌지 않을 운전수직에 이력서를 내밀었던 것입니다. 나는 전과자를 채용하는 것을 크게 꺼리지 않습니다. 더욱이 그가 억울하게 감방에 가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나는 누구보다도 그런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오히려 그의 출소를 목마르게 기다리는 입장이었지요.

 

그러나 그들이 내 진심을 알 리 없습니다. 내가 위키의 생각을, 수산의 마음을 몰랐던 것처럼요. 위키는 내가 수산을 만나기 전날 밤, 사직서를 SMS로 보내 온 상태였습니다. 감방 안에 있던 그가 보내온 사직서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  그날 밤 또다시 위키와 전쟁을 벌인 메이의 핸드폰에 들어와 있던 위키의 문자 메시지들은 더욱 실망스러웠습니다.

 

[너는 친구를 팔아먹은 아주 나쁜 년이야. 미혼모가 된 게 마땅해. 이 세상에 아직도 너랑 살겠다고 쫒아다니는 남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 불가사의다.]

 

[밤길 조심해. 전에도 사람 시켜서 어떤 놈 하나 골로 보낸 적 있어. 어느 날 밤일지는 몰라도 너혼자 있을 때 네 등 뒤에 내가 보낸 사람이 있을 거야. 네 딸도 경호원이 필요할 거다.]

 

위키가 미친 모양입니다. 수산과 삼촌이 공모하여 우리 물건들을 빼돌린 일에 자신이 적극적으로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내가 알게 된 일에 대해 위키는 사과하거나 반성하기는커녕 메이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치부하며 메이을 공격해 왔던 것입니다. 어쩌면 그는 교도소에서 교정되기는커녕 그때 범죄자가 되는 학습을 가열차게 받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직원을 채용할 때 늘 하던 말이 있었습니다. 우린 최소 인원으로 움직이는 최고의 마케팅 전문회사다. 그래서 팀웍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그 팀웍을 심각하게 해치는 사람이 있다면 나이가 몇이든, 능력이 있는 없든, 나량 몇 년을 일했든, 가장 신속하게 그 사람을 해고하는 것이 내 의무다…,

 

위키를 정말 마음으로부터 버려야만 하는 순간이 온 것일까요? 아니면 그가 SMS로 사직서를 보내면서 그가 먼저 나와 메이와 우리 회사를 버렸던 것일까요?

 

예전에도 유치장에 갇힌 어떤 사람을 위해 발벗고 뛰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열악한 환경의 인도네시아 감옥에서 극에 달한 부패와 폭력에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노출되어 버린 사람의 사고가 어떻게,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 얼마나 지독한 피해망상에 사로잡힐 수 있는지를 보고 경험한 바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위키의 머리 속에서 어떤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우리의 의도와 진심이 어떻게 삐뚤어지고 왜곡되어 받아들여 질 것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감옥이란 가학적 본능이 지배하는 정글 같은 곳이어서 쥐어짜도 더 이상 줄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조짐들이 자신을 찌르려 다가오는 칼끝처럼 여겨지고 그래서 자기보호본능만이 고슴도치처럼 날카로운 가시를 곤두세우는 것이겠죠.

 

위키를 거기까지 밀어붙인 이 나라의 사법제도와 범죄교정시스템에는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죄도 없이 감옥에 간 위키는 그때 거기서 합법과 범법 사이의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하면서 자칫 범법의 영역으로 떨어지려 하는 중이었고요.

 

 

 

 

위키는 라마단 휴무가 끝난 직후인 20099 28일 우리 사무실을 찾아 왔습니다.  1월 중순에 BSD에서 경찰서에 잡혀 들어간 후 8개월이 조금 지난 후의 일이었지요. 100킬로그램을 넘나들던 그의 몸무게는 88kgs 정도로 줄어 여전히 뚱뚱해 보이긴 했지만 살이 많이 빠졌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광복절 특사와 라마단 특사를 각각 2개월씩 받아 당초 1년형에서 4개월을 감형받고 나온 것입니다. 원래는 라마단 휴무 즉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르바란(Lebaran)이라고 부르는 이슬람 축제가 시작되기 전에 출소해 가족들과 함께 축제를 보내는 것이 정상이었을 텐데 그는 그 축제기간을 형무소에서 보낸 직후에 출감한 것입니다. 그 마지막 며칠 동안 내일 내보내주겠다는 약속을 계속 늦추면서  최후의 순간까지 돈을 뜯어 내었을 교도소장과 간수들의 행동이 눈에 선했습니다.

 

 

위키는 다시 내게 와서 일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마침 우린 계속 늘어나고 있는 사업규모와 며칠 버티지 못하고 나가 버리거나 횡령사고를 내고 달아나는 직원들 때문에 인력보충이 절실한 상황이었으므로 마침 위키의 출소는 시기적절 했습니다.

 

그가 형무소에서 다른 범법자들에게 나쁜 영향만 받지 않았다면, 비록 우리 물건을 가지고 당시 누나 수산과 함께 장난을 쳤다는 정황이 뻔히 드러나 보이긴 했지만 그것은 형무소 안에서 절박한 마음에 저질렀던 실수라고 치부하고 나와 우리 직원들은 진심으로 위키를 환영하며 받아들이려고 했습니다.

 

우린 끌라빠 가딩의 다미식당에 방을 잡아 그동안 먹지 못했을 기름진 음식들을 잔뜩 차려 놓고 그의 출소를 환영했습니다비록 그는 매달 경찰서에 소재지를 신고하는 번거로움을 한동안 감수해야 했지만 일을 시작하기에는 아무런 장애도 없었습니다. 단지 문제는 증거물로 경찰서에 보관되어 있던 그의 오토바이를 찾아 오는 것이었는데 예전 우리 직원들이 BSD 경찰서에 가 보았을 때 그런 식으로 압류되어 있던 수백대의 오토바이들이 대부분 뼈대만 남아 있었다는 얘기를 기억하면서 위키의 오토바이 역시 그것이 경찰에 있든 검찰 압류장에 있든 제대로 된 상태로 회수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했어요. 경찰서에선 그렇게 압류된 오토바이의 부품들을 팔아 먹거나 멋대로 부품을 빼서 자기 오토바이를 고치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합니다. 명색이 증거물이어서 통째로 팔아먹을 수는 없었던 수백대의 오토바이들이, 그래서 스산한 백골이 되어 압류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위키는 며칠간의 말미를 요구한 후 그 다음 주 월요일 첫 출근을 했습니다. 그러나 오토바이를 찾으러 간다며 중간에 조퇴한 그는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로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도 오토바이 뼈다귀라도 가지고 나오려면 돈을 줘야 한데요."

 

위키는 그 사이 메이에게 돈을 요구했었는지 이메이가 그런 보고를 해왔습니다.

이제 경찰에 관한 일이라면 아무리 어이없는 소리를 들어도 별로 놀라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난 사실 위키가 일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회사 오토바이를 한 대 더 사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지 않았습니다. 어찌되었건 그는 회사 일을 하다가 감옥에 가게 된 것이니 그가 현재 겪는 어려움을 될 수 있는 한 경감해 주는 것이 회사로서 할 도리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일주일쯤 더 지난 후 메이가 전해온 위키의 요구에 난 난색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기 명의로 오토바이를 사주면 매월 월급에서 차감해서 정산하겠대요. 하지만 꼭 자기 명의여야 한다는데 아무래도… "

 

그렇습니다.

회사 명의로 오토바이를 사서 그가 회사에 할부금을 내 2년쯤 후에 완불되면 그의 이름 앞으로 명의를 바꾸어 주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없는 정상적인 방법이지요. 그러나 방금 출소해 지난 2주일 동안 단 하루 출근했던 위키는 자기 명의의 오토바이를 갖고 싶어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되지만 그가 혹시라도 오토바이를 갖고 잠적해 버리면 우린 이미 없어진, 게다가 우리 명의도 아닌 오토바이 때문에 앞으로 2년간 계속 할부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 되기 쉬웠습니다. 그의 요구는 자기가 할부금을 장기적으로 정산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회사 일을 하다 감옥에 갔다 왔으니 그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나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어요. 인도적 차원에서 우린 1년 가까이 그의 옥바라지를 한 셈인데 냉정히 따지자면 외근 나가서 하라는 일 대신 절도혐의를 받아 재판 받고 복역하는 과정에서 그의 몇 년치 연봉에 맞먹을 금액을 아무 조건도 없이 지원한 회사에게 이번엔 오토바이를 사 내놓으라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열을 낼 필요도 없었습니다. 위키의 그 요청을 메이가 애당초 이미 거절했기 때문이었죠. 회사 명의로 구매한다는 조건을 절대 바꿀 수 없음을 못박으면서요. 그러자 위키는 메이에게도 더 이상 연락을 해오지 않았습니다. 그가 복역하는 동안에도 끊기지 않았던 연락이 그 오토바이 사건 이후로 완전히 끊기고 만 것입니다. 아니, 적어도 우린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당시 위키는 형무소에서 사귀었던 사람들과 여전히 전화통화를 하며 지냈고 감방에서 만난 한 무기수를 몹시 존경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어요. 그는 8개월간의 감방생활을 하면서 이제 우리들의 말보다 형무소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그런 식으로 오토바이 구매를 요청한 것 역시 어쩌면 형무소에서 알게 된 사람들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겠지요. 그는 어쩌면 지난 8개월의 감옥생활을 하면서 결국 범법과 합법 사이의 외줄타기를 포기하고 범죄의 바다로 몸을 던진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의 남다른 영업능력을 생각하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지요.

 

하지만 위키가 출소하여 처음 우리를 만났던 그 날로부터 모종의 은밀한 계획이 물밑에서 시작되는 중이었고 그래서 그날 위키와의 재회가 그로부터 나와 내 회사가 겪게 될 모든 사건들의 시작점이 되리라는 것을 그때 난 꿈에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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