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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나들에게

beautician 2019. 5. 15. 10:00

하이에나들에게



과분함

 


장기복무 군인들이 고위 장교나 상사, 준위 정도 계급장을 달고 사회에 나오면 그 퇴직금 빼먹으려는 사기꾼들이 주변에 스믈스믈 몰려들어 온갖 달콤한 이야기로 현혹하고 해외사업 하겠다고 나온 투자자들을 교민 선수들이 현란한 감언이설로 기가 막히게 등을 쳐, 들고온 투자금을 홀라당 벗겨먹곤 하는 것은 공히 당사자가 물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너무 순진하단 거죠. 물론 퇴역 군인이나 해외 투자자들에게 한정된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새로운 세계에 첫발을 내딛는 이들의 목덜미를 노리는 하이에나들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나 군대, 형무소, 일터처럼 개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가 있어야 하는 곳에서 하이에나들은 일진이나 이기적 상사 같은 모습으로 노골적인 악의를 드러내지만  사회조직이나 교민단체같은 임의적 모임에서는 대개 천사의 옷을 입고 얼굴 가득히 미소를 머금은 채 다가옵니다. 때로는 영광스럽게, 감동적으로, 또는 공교롭게 말입니다.

 

모두 그런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기성 문인으로 대우함'을 최대 상품으로 내놓는 문예지 공모전에 글을 보내는 소설가, 시인 지망생들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원대하고도 순수한 포부는 곧 세상의 추악한 현실과 마주치게 됩니다.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는 통지와 함께 공모전 상금을 줘야 마땅한 주최측에서 오히려 작가회 평생회비, 기금 등등 소위 '수상비' 명목으로 적게는 수십만 원, 많게는 수백만 원을 먼저 입금해야 당선처리가 되고  등단수속도 진행된다는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됩니다.

 

한 매체 보도에 따르면 공모전 당선자에겐 76만원 정도를 요구하고 비당선자라도 180만원 정도를 내면 등단시켜 준다 합니다. 이른바 정찰제가 시행되고 있는 것이죠. 물론 문예지들도 아무에게나 등단비를 요구하는 건 아닌 모양입니다. 나름대로 글 잘 쓰는 이들이 대상이 되는 건 그나마 해당 문예지의 이름값과 자존심 때문입니다. 너무 개차반을 등단시켜 주는 건 문예지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일 테니까죠. 하지만 그들 자존심을 위해 문예 지망생들이 돈을 내는 건 누가 봐도 불합리한 매카니즘입니다. 자기가 똥을 싸놓고 남한테 휴지 달라 닥달하는 격이죠. 180만원의 열배 쯤 내면 제주도 하루방 석상에도 등단증이 나올 지 모릅니다. 그러니 많은 이들의 상식과는 달리 꼭 글 잘 쓰는 사람들만 등단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문단의 구린내 나는 이런 구조를 조금 알게 되면 사회적, 경제적으로 나름대로 성공한 사업가, 은퇴자들이 등단시인, 등단소설가의 타이틀 따는 것이 문예창작과를 나와 치열하게 고민하며 신선한 글을 쓰려는 작가지망생들의 등단보다 놀라울 정도로,  정확히는 실망스러울 정도로 쉽습니다. 수천, 수만명의 지망생들이 열망하고 노력하며 정진하는 그 타이틀이, 돈다발을 꺼내는 사람에게는 식은 죽 먹기일 뿐인 거죠. 이런 지름길이 있다는 사실은 축복일까요? 아니면 재앙일까요?

 

문인이 되려는 재력가 노인들에게도 하이에나들은 예외없이 달려드는 패기를 보입니다. 다이아몬드 원석같은 놀라운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꼭 청소년들이란 법은 없습니다. 노인들, 원로들 중에서도 뒤늦게 재능을 발휘하는 이들을 몇 명씩이나 본 바 있고 최근 천재시인이란 이름으로 자카르타에서 등단한 분도 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도 저 '등단 브로커' 하이에나들은 피해가지 않습니다. 조금만 길을 알았다면 스스로 갈 수 있었던 그 길을 문인세계의 이런 저런 직책과 직함과 함께 떳떳하지 못한 의도를 가진 이들로부터 사실은 불필요한 도움을 받아, 앞서 언급한 등단비의 몇 배 몇십 배를 내고서, 부끄러운 방법으로 등단작가란 타이틀을 따게 되는 겁니다. 자신이 등단한 해당 문예지를 수백 권씩 사도록 강요당하고 그외에도 기여금, 수고비, 기념회비 등을 지불하며 등단의 첫 길목을 돈으로 깔아 도배하는 것이죠.

 

등단한 모든 작가들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그런 등단 개나 주라 하고 싶습니다.

어느날 그런 등단을 포기하자 세상은 매우 편해졌습니다.

물론 그 과정 중  문협에서 제명당하게 되었지만 그런 하이에나들과 싸우다 더럽다 가래침 뱉으며 스스로 물러난 것이 아니라 끝내 다구리를 당해  제명당했다는 것은 차라리 가장 명예입니다. 멧집이 좋아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이제 3회차를 맞은 문학상의 1, 2 대상 수상자들이 환멸에 가득 차 탈퇴를 불사하고, 지난 1 사이 역대 부회장 전원이 쫒겨나거나 자진 탈퇴하는 자카르타의 문예단체를 보면서 아름다운 글을 쓰는 이들의 세계나 그들의 마음이 전혀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기괴한 꽃밭에 아직도 바위나 나무같은 배경이 되고 병풍이 되어 기꺼이 여왕벌을 섬기는 충성스러운 이들에게  이상 안쓰러운 마음도 생기지 않습니다.

 

남아있던 마지막 친구마저 떠난 그곳을 역시 이상 돌아볼 이유가 없게 되었습니다. 내가 돌아와 회장이라도 해버릴까 우려했던 누나도, 이제 이상 블로그를 기웃거리며 이놈이 무슨 글을 쓸까 마음 졸일 필요 없어요.

 

이제 오지 마세요.

 

 

2019. 5.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