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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단 금식 시작한 인도네시아 무슬림 사회
휴일이었던 5월 5일 인도네시아 종교부 장관 루크만 하킴 사이푸딘은 종교부 공무원, 국회의윈, 주요 이슬람 단체장, 천문학자, 수학자 및 이웃 국가 대사들과 대표부가 참여한 대규모 회의를 마친 후 인도네시아 전역에 6일(월)부터 라마단이 시작됨을 공표했다. 앞으로 한 달간 무슬림 금식기간이 시작된 것이다. 현지에서는 일반적으로 ‘뿌아사’라 통칭하기도 한다. 인도네시아는 헌법상 세속국가이지만 2억6천만 전체 인구 중 80% 이상이 이슬람을 믿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 인구를 가진 나라다.
이날 루크만 장관은 달의 높이를 측정한 바 4.5도에서 5.7도 사이의 값을 얻었다고 발표했다. 요컨대 초승달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히즈리아 칼렌다라고도 불리는 이슬람력은 달의 위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인도네시아 무슬림들이 매년 라마단 때마다 종교부의 천문관측 결과를 애타게 기다리는데 때로는 서로 의견일치를 보지 못해 정부와 이슬람사회의 라마단이 하루씩 차이나기도 한다. 나들라툴 울라마와 무함마디야로 대변되는 인도네시아 양대 무슬림조직은 라마단 시작시기에 맞춰 인도네시아 각처에서 천문관측을 실시하고 정부의 종교부도 올해 34개 주에서 102개의 관측소를 운용했다. 민간에서는 종교부 장관의 발표가 나오자 5일 저녁부터 전국 이슬람 사원에서 따라위 기도를 올리며 라마단의 시작을 기념했다. 따라위는 하루 다섯 번 무슬림들의 기도에 더해 라마단 기간에만 행하는 별도의 저녁 기도시간이다.
이슬람력의 1년은 10월로 이루어져 매년 두 번의 윤달이 있고 일년에 보름쯤 태양력보다 빨라진다. 라마단은 아홉 번째 달의 이름이다. 그 한 달 간 태양이 떠 있는 동안 금식하면서 술, 담배는 물론 이 기간을 통틀어 섹스도 삼가고 분노와 상심 같은 감정의 배출마저 자제하며 전방위적인 욕망의 절제를 행한다. 라마단이 시작되면 적잖은 식당들과 술집, 퇴폐업소라 여겨지는 당구장, 노래방, 마사지 스파들이 문을 닫고 낯시간에 영업하는 식당들은 가림막을 설치해 식사하는 모습이 외부에서 보이지 않게 한다. 해뜨기 전 마지막 식사인 새벽 3~4시 사이의 ‘사후르’를 마친 무슬림들이 새벽잠에 들었다가 출근길 지각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마그립 일몰을 알리는 이슬람 사원의 아잔 노래소리와 함께 하루의 금식을 마치는 ‘부까뿌아사’, 또는 ‘이프따르’라고도 하는 금식 후 첫 식사를 가족들과 함께 하는 전통으로 오후 4시 경 퇴근시간을 확보해 주기 위해 많은 기업들이 조기출근과 점심시간 단축을 시행하기도 한다. 그래서 오후 6시면 늘 지옥처럼 막히던 자카르타 시내가 갑자기 거짓말처럼 한산해지는 광경과 식당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일찌감치 시켜놓은 음식을 앞에 놓고 마그립을 기다리는 진풍경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라마단이 끝나고 열 번 째 달인 샤왈에 들어서면 금식기간의 종료를 기념해 ‘르바란’ 또는 ‘이둘피트리’라는 이름의 축제가 시작된다. 이 시기에 도심 대기업들은 3~7일, 일반 공장들과 대단위 사업장들은 2~3주의 긴 휴가를 즐긴다. 르바란 선물이란 뜻의 ’THR’이라 이름붙은 연 100%의 보너스도 휴무 개시 7일 전까지 지불하도록 현지 노동법에 명시되어 있다.
라마단이 성스러운 것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40세 되던 서기 624년(히즈리아 2년) 라마단 달에 누르산 히라 동굴에서 알라의 첫 계시를 받아 인류가 이슬람을 알게 된 사건을 기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마단은 인도네시아에서 사업하는 한국인 사업가들에게 가장 작업능률이 떨어지면서도 지출만 턱없이 큰 고통스러운 기간일 수 있지만 현지 무슬림들에겐 매일 금식이 끝나면 가족, 지인, 공동체와 만나 교류하며 즐겁게 음식을 나누는 소통과 축제의 기간이다. 이 시기에 고아, 과부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부와 자선도 넘쳐나고 기관장들과 정치가들은 연회장이나 호텔을 잡아 동문, 직원,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성대한 부까뿌아사 행사를 열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러니컬하게도 금식기간 동안 인도네시아 전국 식료품 소비는 오히려 30~50% 증가하고 유력한 인사들이 베푼 부까뿌아사 행사를 배경으로 한 로비스트들의 활동과 개인이나 기업에 대한 부패가 획기적으로 늘어난다.
“뿌아사는 알꾸란에서 명시적으로 명령한 무슬림들의 의무입니다. 너무나 가슴 벅찬 의무죠.”
6일 자카르타 시내 라베뉴 건물에서 정오경 주후르 기도를 마친 악바르 뻐르다나 변호사(36세)는 오전 내내 물 한모금 입에 대지 않았지만 라마단의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한국계 건축시행사의 법무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라마단을 맞은 인도네시아는 지난 4월 17일 대선과 국회의원 선거를 동시에 치르며 조코 위도도 현직 대통령과 대인도네시아 운동당(그린드라당) 쁘라보워 수비안토 후보 진영이 서로 격돌한 지 불과 20일이 지났다. 당시 최대 이슬람 계파인 나들라툴 울라마(NU)는 조코 위도도 대통령 지지를 분명히 밝혔지만 두번 째 대형 이슬람 조직인 무함마디아는 중립을 선언하며 현직 대통령 지지를 사실상 거부했고,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자카르타 주지사 시절 파트너이자 후임 주지사였던 바수키 짜하야 뿌르나마(일명 ‘아혹’)를 2년 전 신성모독죄로 투옥시키는 데 앞장섰던 이슬람수호전선(FPI) 등 이슬람 극우는 쁘라보워 후보를 극렬 지지하면서 인도네시아 무슬림 사회는 극단적 분열양상을 보였다. 여러 기관들이 실시한 표본개표 결과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10% 이상 앞서 재선이 유력한 가운데, 2014년 대선결과에 불복한 전력이 있는 쁘라보워 후보는 이번에도 자신의 승리와 상대측 선거부정을 주장하며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이제 화해와 나눔을 표방하는 라마단을 맞아 사회 봉합의 시간을 갖게 된 인도네시아는 당분간 성스러운 라마단을 경건하게 보내겠지만 금식기간 중인 5월 22일로 예정된 대선 개표 최종결과가 발표되면 욕망을 절제하려는 인도네시아 무슬림들의 종교적 노력은 최대의 고비를 맞게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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