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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영업직원 활약사

영업사원 활약사 (1)

beautician 2012. 3. 22. 01:18

 

 

 

위키(Wiky)는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입니다.

원래 운전수로 채용했지만 마케팅에 재능을 보여 전격적으로 판매영업을 내보낸 지 석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사고가 터졌어요.

 

어릴 때 부모님을 여위었지만 꽤 유복한 생활을 했던 이 친구는 친인척들이 인도네시아를 떠들썩하게 한 대형 횡령사건의 한 축으로 구속되어 가문 전체가 경제적으로 몰락하면서 한동안 채권단들에게 쫓겨 다닌 끝에 자카르타 북부의 빈민촌인 빠더망안(Pademangan)의 한 꼬스(Kost = 자취방)에서 밑바닥 생활을 시작한 지 오래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밝은 성격을 잃지 않고 필드캡틴 메이가 자궁근종수술로 입원했을 때 한국산 배를 사와 위문하는 등 다른 직원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대도시 중심의 수입 도매만 하다가 메이를 만난 후 시작한 소매 직거래 미용실들이 반둥까지 포함해 500개가 넘어가기 시작하던 시점이었고 메단(Medan), 덴빠사르(Denpasar), 마카사르(Makassar) 등 지방도시에도 진출을 도모하고 있었으므로 때마침 위키와 같은 영업력이 뛰어난 친구를 만난 것을 행운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다가 땅거랑(Tangerang)지역 BSD에서 사고가 터진 것입니다.

 

그건 위키의 급한 성격이 한 몫 한 것이기도 합니다.

원래 그는 100킬로그램이 훨씬 넘는 육중한 체구를 하고 있어 성격도 무던하리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스나얀에서 내 차에 나를 태우고 운전하던 위키가 교통경찰에게 걸린 적이 있었어요. 스나얀 씨티(Senayan City)몰에서 물리야 호텔(Hotel Mulia) 쪽으로 진행하다 보면 아틀렛 센츄리팍 호텔 (Hotel Atlet Century Park), FX 몰 방면으로 우회전 할 수 있는 신호등이 있지요. 그곳은 2차선 도로인데 우측차선은 우회전 전용, 좌측차선은 직진전용입니다. 아무런 표시도 없어 그곳에 익숙지 않은 사람은 신호등 가까이 가서야 차선을 잘못 들어섰다는 것을 깨닫고 허둥지둥 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예외 없이 어디선가 나타나는 뚱뚱한 교통경찰이 이리 좀 오시라고 손짓하지요.

 

면허증?”

 

명백한 교통위반이라면 교통경찰이 틍명스럽게 손을 내밀 때 고분고분 면허증을 내주거나 돈 찔러 줄 준비를 하고 사근사근 얘기하는 게 정상이고 좀 억울하거나 석연치 않은 상황일지라도 최대한 공손히 시비를 가려야 하는 것인데 위키는 전혀 예상치 않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아저씨. 난 미트라 뽈리씨에요.”

? 뭐라고?”

미트라 뽈리씨라고! 바쁜데 잡으면 어떡해요? 빨리 보내줘요.”

 

미트라 뽈리씨(Mitra Polisi)는 경찰의 친구, 의역하자면 대략 경찰관 가족 또는 해당 증빙을 얘기하는 거겠죠. 나중에 알게 되지만 위키의 삼촌이 경찰관이었고 위키는 그 삼촌을 든든한 빽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사고가 나거나 사람들과 시비가 붙으면 자기 자신 또는 자기 친지가 경찰이나 군인이라며 상대방을 윽박지르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고 시내를 달리는 수많은 차량들 중 적잖은 수가 아무 의미없는 위협용일 것이 분명한 경찰 마크 스티커를 뒷유리나 번호판에 붙이고 다니거나 시장에서 파는 계급장을 룸미러에 주렁주렁 달아놓고 다니곤 하지요. 그건 다 일반인들 겁주자고 하는 수작들인데 위키는 미트라 뽈리씨라는 신분증을 진짜 경찰에게 들이밀고 있는 중이었고 그건 포커판에서 원 페어 들고서 스트레이트 카드 든 상대를 이겨 보겠다는 무모함과 진배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 미트라 뽈리씨라서 참 좋겠다, 이 새끼야!!”

 

거기서 위키는 20만 루피아짜리 위반티켓을 끊으면서 면허증은 물론 미트라 뽈리씨 증명서까지 뺏기고 말았죠. 그게 애당초 되는 싸움이 아니거든요. 그러면서도 끝까지 경찰관에게 대드는 모습을 보며 저 놈이 뭔가 정말 단단히 믿는 구석이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론 상관인 나를 태우고 수행하는 운전사로서 내 입장은 무시하고 자기 체면만 차리겠다고 경찰관에게 핏대를 올리며 절대 이기지 못할 게 뻔한 싸움을 하는 위키의 무모함이 어딘가 위험스러워 보였지요.

 

위키는 그런 친구였어요.

그는 BSD에서 한 시간 전에 들렀던 미용실로부터 전화를 받습니다. 혹시 다른 손님 물건이 섞여 가지 않았냐고요. 꺼내 놓았던 제품들을 주워담다가 남이 물건이 섞여 들어갈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나 성급한 위키는 당장 길길이 소리를 지르며 자길 도둑놈으로 보냐며 화를 냈습니다. 그게 모든 것의 화근이 되었죠. 전화를 건 미용실 직원과 물건 주인이 위키에게 악감정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음 목적지에서 가방을 열어 본 위키는 정말 다른 사람 물건이 담긴 비닐봉지가 자기 가방에 섞여 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목걸이, 팔찌 같은 금붙이들이 들어 있었다는데 그 물건의 주인은 비싼 물건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그렇게 싸구려 검정색 비닐봉지에 아무렇게나 넣어 두었다가 오히려 역효과를 본 것이었죠. 위키는 물건을 돌려 주겠다며 앞전 미용실에 전화를 걸었고 미용실 직원이 요청한 대로 인근 경찰서에 물건을 가져갔다가 자리에서 절도 현행범으로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첫 전화통화 후 경찰서에 신고한 미용사에게 경찰관이 그렇게 지시했다는 것인데 그게 사실이라면 선의를 가지고 물건을 돌려 주려 했던 위키가 미용실과 경찰이 서로 짜고 파놓은 악의적인 함정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사실 이 부분에서 정말 위키가 모르고 물건을 챙긴 것인지, 아니면 잠시 유혹에 눈이 멀어 가방에 넣었다가 나중에 마음을 고쳐 먹고 돌려 주려 한 것인지 위키 본인 말고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지요. 위키를 고소한 물건 주인은 싸가지 없게 굴었던 위키를 감방에 쳐 넣고 희희낙락하며 쾌재를 불렀는지 모르지만 문제가 되었던 금붙이들을 돌려 받으려 하자 경찰서에서 그것들이 증거품이라며 내 주지 않았습니다.  당황한 물건 주인이 이를 돌려 받기 위해 기소를 급히 취하하지만 경찰서에서는 위키가 형사범이므로 피해자의 고소 없이도 자신들이 기소할 수 있다며 끝내 증거품들을 내주지 않았죠.

 

이제 상황이 묘해졌습니다. 없어진 물건도 없고 물건 주인도 기소를 취소했는데 위키는 유치장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여러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억울한 상황이 된 것으로 보이는 위키를 빼내는 일이었지만 또 하나의 문제는 위키가 체포될 때 그의 가방 안에는 그가 그날 수금한 판매 대금 수백만 루피아 외에도 수천만 루피아 어치의 우리 제품들이 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경찰서에서는 그것들도 증거품이라며 내 주지 않아 우리는 결국 위키의 재판이 끝날 때까지 수개월을 하릴없이 마냥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사건을 당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초기에 빨리 매듭을 지어야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정의로운 사람들에게는 타협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고 억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때로는 그나마 그것이 가장 싸고 후환도 없는 일이기 쉽습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내 입이 정말 부끄럽습니다. 옳다고 생각한다면 어떠한 역경도 극복하면서 뜻한 바를 관철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배워왔던 정의라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외국에, 특히 후진국에 사는 우리들로서 시간은 절대로 우리 편이 아니며 상대편이 생각할 시간을 오래 가질수록 더욱 철저히 돈을 뜯어낼 수 있는 더욱 창조적인 온갖 방법들이 떠오른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입으로만 정의를 외치면서도 대체로 크고 작은 모든 문제들이 돈을 찔러 줘야만 어떤 식으로든 해결이 되는 이 나라의 현실이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 부끄럽기만 합니다.

 

위키의 경우에는 그럴 수 있는 초기 대응시기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절도사건이라는 성격상 회사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기에 좀 애매한 부분도 있었지만 위키 역시 회사가 나서는 것을 기피했던 것은 스스로 이 사건을 무척 부끄러워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돈이 들더라도 사람부터 꺼내고 보자며 우리가 변호사를 불러 들이자 이번엔 갑자기 나타난 위키의 삼촌이 우리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그 경찰관 말입니다. 그는 자카르타 경찰청에 근무한다고 했는데 위키가 그렇듯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이었고 계급도 꽤 높은 편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자신감을 보이며 낙관하고 있었으므로 우리도 위키가 변호사 개입 없이도 곧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죠.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인도네시아는 반전드라마의 본고장.

위키 삼촌의 출현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정신 좀 차렸어? 이제 좀 앞가림하면서 살 준비가 됐으면 오늘 밤이라도 꺼내 주겠지만 살인도 아니고 겨우 절도로 잡혀올 정도면 차라리 그 안에서 좀 더 지내 봐!”

 

호탕하게 들렸어야 할 위키 삼촌의 이 말은 오히려 위험스러울 정도로 오만하게 들렸습니다. 자기 관할도 아닌 곳에서 마치 자기가 위키를 당장이라도 꺼내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처럼 말하는 그가 그곳 경찰 지구대장에게는 무척 아니꼬와 보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삼촌이 다녀간 다음 날부터 위키의 유치장 생활은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위키의 유치장 뒷바라지 비용도 만만치 않았지요. 경찰서에서는 하루에 한끼, 그것도 거의 사료수준의 식사를 주었기 때문에 몸무게가 100kg에 육박하는 위키에게는 코끼리 비스켓이었고 그래서 우리가 넣어주는 사식비는 일반 사회에서의 정상적인 음식 가격보다 몇 배가 들었습니다. 그나마 그렇게 사서 넣은 음식이 위키 손에 도달하는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라면 40개 짜리 한 박스를 사주면 위키는 기껏 2~3개를 먹을 수 있는 정도였죠. 담당 경찰관은 물론 심지어 경찰서 청소부까지 음료수, 담뱃값, 핸드폰 요금충전을 요구하며 위키를 인질로 우리와 위키의 가족들에게 돈을 뜯었습니다. 비록 위키의 삼촌이 경찰관 정복을 입고 나타났지만 경찰관끼리라고 모든 게 무료는 아닌 거였죠. 그러나 위키 삼촌은 매번 여전히 계급으로 짓누르려 했으므로 오히려 BSD 경찰서에서는 엿먹으라는 듯 서둘러 위키를 검찰로 송치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위키가 교도소로 옮겨 가면서 위키의 오토바이와 가방, 그 안의 내용물들도 증거품으로 함께 검찰에 옮겨졌다는 얘기와 위키 삼촌이 그것들을 회수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얘기를 위키의 누나인 수산(Susan)을 통해 들었지만 처음 BSD 경찰서에서의 2주를 빼고는 그 후 위키와는 물론 위키의 삼촌과도 좀처럼 전화통화가 되지 않았고 모든 진행상황은 수산을 통해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린 위키를 빼내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하며 돕는다는 것이 우리 기본 입장이었는데 수산은 마치 우리 상관이라도 된 듯 지시하려 들었고 위키의 근황을 알려 올 때마다 이런 저런 명목으로 돈을 요구했습니다. 우리 발목을 잡고 부탁해도 시원치 않을 입장이었을 텐데 수산은 이상스러울 정도로 고압적이었어요. 아마도 그녀 역시 미트라 뽈리씨이기 때문이리라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때 우리 수금액이나 위키 지갑 안의 현금은 물론이고 금방 현금화가 가능한 위키의 핸드폰 등은 이미 회수할 수 있는 희망이 거의 없었습니다. 지구대와 경찰, 검찰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경찰들이 뒤로 빼돌렸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죠. 인도네시아의 경찰이란 조직은 대개의 경우 전국 규모의 비열한 마피아와 별반 다를 바 없으니까요. 그래서 그 시점에 아직 회수할 수 있는 것들이란 위키의 오토바이와 미용실이나 가게에 가서 팔아야 현금화가 가능한 우리 제품들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교도소로 면회간 메이가 보관소에 맡긴 가방에서도 돈과 핸드폰이 없어지는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졌지요. 화물로 붙인 짐이 도착지 컨베이어에 실려 나올 때 자물쇠가 파손되고 돈 되는 내용물이 없어져 있곤 하는 현지 공항에서의 도난사건처럼 누가 저지른 짓인지 불보듯 뻔한 교도소 면회인 사물보관소에서의 도난사건은 매일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모양이지만 대부분 수감자의 가족, 친지인 면회인들은 감옥 안에 있는 사람의 입장이 곤란해질까봐 그런 피해를 입고도 아무 말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았습니다. 메이 역시 악 소리 못하고 200만 루피아짜리 새 핸드폰을 그렇게 뺏기고 말았습니다.

 

교도소에서의 뒷바라지 비용은 경찰서 유치장에서보다 더 많이 들었습니다. 위키는 돈을 빌려달라고 메이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교도소 안에서 핸드폰을 사용한다는 것을 한국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겠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그렇게 핸드폰을 빌려주고 턱없이 비싼 사용료를 받는 교도관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위키에게 돈을 보내주면 그 돈을 받는 구좌 주인이(아마도 교도관?) 10%를 수수료로 떼고 수감자를 위해 사용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돈을 만질 길이 없는 위키로서는 그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도, 수수료를 10% 떼는지 100% 떼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 외에도 만만치 않은 비용 리스트가 있었습니다. 교도관이나 다른 수감자들에게 맞지 않으려면 월 30만 루피아, 사식을 하루 세 끼 먹으려면 월 몇백만 루피아, 아파서 병원에 가려면 또 몇백만 루피아…,

 

예전, 한국에서 겨울이 다가오면 일부 노숙자나 부랑자들이 일부러 작은 범죄를 저질러 감방에 들어가 정부로부터 의식주를 무상으로 제공받으려 했다는 것은 인도네시아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메이의 남동생은 몇 년 전 마약사범으로 감옥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발병한 급성 간경화로 병원치료를 받으려 했으나 병원비는커녕 교도소에서 요구하는 막대한 수수료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손도 쓰지 못하고 죽은 일도 있었습니다. 심각한 비만 상태였던 위키는 매일 엄청난 양의 물을 마셔야 했고 정기적으로 약도 먹어야 했지만 그러기 위해 감방에서 지출해야 하는 돈은 사회에서도 상상하기 힘든 큰 금액이었습니다. 정부가 짐짓 모른 척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는 동안 그 막대한 금액을 수감자의 가족들이 모두 부담해야 하는 것이 인도네시아의 범죄교정 시스템인 거고요.

 

“8백만 루피아면 위키를 빼낼 수 있데요. 빨리 이 구좌번호로 돈을 보내 주세요.”

 

어느 날 새벽 6시에 수산이 메이에게 전화해서 이렇게 돈을 요구해 왔습니다. 8백만 루피아라면 한화 100만원 가까이되는 큰 돈입니다. 새벽 6시에 8백만 루피아를 지갑에 넣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6시 반, 다시 전화해 온 수산은 자기가 애써서 가격을 6백만 루피아로 조정했으니 즉시 송금해 줄 것을 다시 요청해 왔습니다. 좀 석연치 않은 냄새가 나는 대목입니다.

 

수산, 당신은 얼마를 낼 건데요?”

우린 돈이 없어요.”

 

이건 무슨 경우인가요? 수산은 회사가 전적으로 책임질 것을 바라고 있었죠. 하지만 메이는 그런 한마디 요구에 간단히 내게 돈을 달라고 전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위키의 가족이 반을 준비하고 회사가 300만 루피아를 준비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그것도 시간이 좀 지나자 두 번 쯤에 걸쳐 내도 된다는 조정이 되었죠. 새벽부터 돈거래 협상이 가열차게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그날 회사에 출근하자 메이는 쭈뼛거리며 내게 부탁을 해 왔습니다.

 

“300만 루피아 중 우선 100만 루피아를 먼저 보내고 나머지는 상황을 봐서 보내는 걸로 해요. 그럴 수 있으시겠어요?”

 

상황이 어찌 되었든 일단 사람을 살리고 보자는 내 입장을 변함없었고 그건 메이나 다른 직원들에게 이미 여러 차례 얘기한 바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정도라면 생각보다 큰 돈도 아니었기에 나는 흔쾌히 동의했고 그 중 100만 루피아를 먼저 송금했습니다. 그러자 나머지 200만 루피아의 송금을 계속 독촉하던 수산이 그날 정오쯤 메이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왔답니다.

 

그게…, 알고 보니 사기였어요. 돈을 잘못 줬어요. 삼촌 말이 그 돈 받은 사람은 재판에 아무 힘도 쓸 수 없는 사람이래요.”

 

6백만 루피아를 요구했다는 사람은 판사도, 검사 사무장도 아닌, 재판소 서기였다는 얘기입니다. 나는 어이가 없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서기랑 얘기를 하기나 했는지조차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모양은 경찰과 교도소가 위키를 인질로 수산 등 가족들에게 돈을 뜯고 위키의 삼촌과 수산은 역시 자기 친동생인 위키를 인질로 나와 회사로부터 돈을 뜯는 형국이 되어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몇 번 씩이나 반복되면서 두 달, 세 달이 지나갔고 위키의 재판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실제 법규는 어떤지 모르지만 재판 비용을 고발한 사람, 즉 원고가 내는 것이 이 나라의 관행이랍니다. 검찰은 그 금붙이 주인에게 재판비용을 요구했지요. 그러나 고발한 물건 주인은 이미 기소를 취하한지 오래였고 끈질긴 경찰, 검찰의 회유를 피해 전화기를 끄고 아예 지방으로 내려가 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피고인 위키의 가족들이 재판비용을 내라는 요구를 받고 있었습니다.

 

수산은 다시 6백만 루피아를 부택해 왔습니다. 판사에게 줄 돈이라는 겁니다.

난 그 때 2년형을 구형받았어요. 그런데 판사한테 100만 루피아, 검사에게 100만 루피아만 줬지요. 그러고서 6개월형을 받았어요. 6백만 루피아는 말도 안되는 금액이에요.”

 

마약복용 혐의로 감방에 갔다 왔다는 이완(Iwan)이라는 또 다른 직원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 친구 채용할 때는 그런 말 한 마디 없었는데 회사에서 그럭저럭 자리매김을 하고 나니 진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친구 과거를 가지고 왈가왈부할 마음은 없었어요. 꿩 잡는 게 매. 다시 사고를 치지 않는 한 마케팅 전문인 우리 회사로서는 물건 잘 파는 직원이 왕인 것이죠.

 

이완이 감방에 갔던 건 그때에도 이미 몇 년 전의 일이었고 그새 인건비도 많이 올랐으니 그런 비용도 인플레이션 된 것인지도 모르죠. 그러나 메이가 또 열을 내기 시작합니다.

 

미스터르, 내가 수산이랑 얘기 할께요. 위키가 불쌍하지만 돈 주면 감형된다든가 걸어 나온다든가 하는 확신도 없는데 매번 달라는 데로 다 줄 수는 없잖아요?”

 

메이가 어떻게 수산과 얘기했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 후 위키가 1 4개월을 구형 받았다는 얘기가 들리고 수산이 다시 돈을 요구해 왔습니다. 선고가 나기 전에 판사에게 돈을 줘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이번에도 그들은 한 푼도 준비하지 않고 또 우리에게만 모든 짐을 지웠습니다. 결국 위키는 1년형을 선고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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