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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로로키둘 - (1) 남쪽 바다 여왕의 기원 본문
니로로키둘(Nyai Loro Kidul) – (1)남쪽 바다 여왕의 기원
냐이로로키둘(Nyai Loro Kidul 또는 니로로키둘 Nyi Rorokidul)은 인도네시아 남쪽 바다를 다스리는 여신이자 영계와 마물들의 여왕으로 자바와 순다 신화에 모두 등장한다. 자바인들의 믿음에 따르면 스노빠티 시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마타람과 족자, 수라카르타 술탄과 수수후난들의 영적 부인이다.
니로로키둘은 그 기원을 나타내는 제각각의 서사시와 전설, 신화 또는 민화에 따라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왕가의 여인들을 높여 부르는 냐이(Nyai), 깐젱(Kanjeng), 구스띠(Gusti) 같은 단어들을 존칭어를 붙였는데 예컨데 구스띠 깐젱 라뚜 키둘(Gusti Kanjeng Ratu Kidul)이라 부르고 수라카르타 끄라톤에서는 왕족의 일원으로 간주해 깐젱 라투 아유 끈쪼노 사리(Kanjeng Ratu Ayu Kencono)라는 공식 이름을 헌정했다. 할머니, 또는 선조라는 뜻으로 에양(Eyang)이라 부르기도 한다. 인어의 모습을 했을 때 냐이 블로롱(Nyai Blorong)이라고도 하지만 실제로 니블로롱은 니로로키둘이 거느린 마물들의 군대 사령관으로 간주되므로 별개의 개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어떤 이들은 깐젱 라뚜 키둘과 니로로키둘이 서로 다른 존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니로로키둘은 예로부터 남쪽 바다에 살던 아름다운 여인의 혼령이고 깐젱 라뚜 키둘은 빠자자란 왕국 카디타 공주가 시련을 겪은 끝에 바다의 여왕으로 재탄생한 모습이라는 식이다. 하지만 대부분 니로로키둘과 관련된 민화와 전설을 가진 각 지역에서 남쪽 바다의 여왕이 사실은 자기 지역 출신임을 주장하려 나온 이야기들로 보인다. 따라서 여러 문서나 서적에 등장하는 니로로키둘, 깐젱 라뚜 끼둘, 라뚜 라웃 슬라딴(Ratu Laut Selatan- 남쪽 바다의 여왕) 등은 모두 같은 존재를 지칭하는 셈이다.
자바어에서 로로(Loro)는 2를 뜻하는 단어로 아름다운 여성으로 태어난 영계의 여왕신화에 종종 등장해 결합되었는데 고대 자바어로는 rara, 표기는 rårå, 또는 roro로 쓰기도 하면서 현대 자바어에서 lårå 로 표기하는 lara로 발전했고 ‘가슴아픔’, ‘마음이 무너짐’의 의미를 함께 포괄한다. 인도네시아를 다스리던 네덜란드가 자체 철자법에 따라 lara를 loro로 바꾸었는데 그래서 본의 아니게 아름다운 여인이란 뜻이 ‘아픈 사람’이란 뜻으로 왜곡된 것이다. 그래서 고대와 현대 자바어를 오가면서 Nyai Rara 또는 Nyai Lara 등 다양한 표기와 철자로 등장하고 있다.
니로로키둘은 하반신이 물고기인 인어처럼 그려지기도 한다. 이 신화속의 존재는 원한다면 누구의 영혼이든 빼앗아 올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자바섬 남쪽 해안마을에 널리 퍼져있는 민간신앙에 따르면 그녀는 종종 어부들이나 바다에서 수영하는 방문객들의 목숨을 빼앗는데 주로 잘생긴 젊은 남자를 노린다고 한다.
자바 영적세계에서 차지하는 니로로키둘은 전통민화과 궁정신화에 즐겨 쓰이는 소재가 되었고 순다와 자바 왕국 왕녀들의 아름다움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녀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둔갑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족자 술탄 하멩꾸부워노 9세는 그의 자서전에서 니로로키둘과 영적으로 조우한 경험을 기술하기도 했다. 여왕은 주로 보름달이 뜬 날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으로 즐겨 현신하는데 보름이 아닌 날에는 늙은 여인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니로로키둘은 바다 깊숙한 자신의 궁전에서 인도양의 험한 파도를 관장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녀는 솔로/수라카르타 및 족자 술탄국 역대국왕들의 영적 왕비 또는 아내로 치부된다. 그녀는 솔로 수난국과 족자 술탄국에서 머라피 화산-끄라톤 궁전-자바 남쪽 바다를 잇는 정기(精氣)어린 중심축으로 간주된다.
그녀에 대한 민화 중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바다의 푸른색(녹색)은 그녀를 상징하는 색상이므로 자바 남쪽해안에서는 녹색 의상을 입는 것이 금기라는 부분이다. 그녀는 녹색 의복이나 견직 슬렌당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니로로키둘에 대한 전설은 주로 16세기 자바의 마타람 술탄국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좀 더 오래된 문헌들을 들여다보면 순다 빠자자란 왕국의 데위 카디타(Dewi Kadita) 공주의 불행한 운명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하지만 자바와 순다의 인류학자들은 자바 남쪽바다의 여왕에 대한 이야기가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된, 불교나 힌두교의 전래 이전, 고대 애니미즘 시대 남쪽바다 여신의 전설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낸 바도 있다. 자바 남쪽해안으로 밀려드는 인도양의 사나운 파도와 폭풍, 쯔나미가 자바인들의 마음 속에 자연에 대한 거대한 공포과 경외심을 가져다 주었고 그것을 남쪽 바다 속에 사는 신과 악마들의 조화라고 생각했음직하다. 그리고 그 마물들을 다스리는 여왕을 훗날 키둘 여왕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16세기 자바 전설은 남쪽 바다의 여왕은 마타람 술탄국의 수호신으로 묘사된다. 마타람 술탄국 시조 스노빠티(1586~1601)의 손자 술탄 아궁(1613~1645)이 조부가 깐젱 라뚜 키둘을 자신의 아내라 부르는 것을 들었다는 기사가 ‘자바땅의 역사서’(Babad Tanah Jawi)에 기록되어 있다.
자바 전설에 따르면 16세기 권능왕 스노빠티는 어린 시절 영감을 얻어 빠장(Pajang) 왕국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마타람 술탄국을 세우고자 했다. 그는 자기 집이 있는 꼬따거데(Kota Gede) 남족 빠랑구수모(Parang Kumuso) 해변에서 수행을 하곤 했는데 그의 명상이 남쪽 바다 영적 세계에 강력한 영력의 쯔나미를 일으키자 누가 이런 소동을 일으키는지 남쪽 바다의 여왕이 친히 진압하러 나왔다가 젊고 잘생긴 스노빠티를 보고 첫 눈에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녀는 스노빠티에게 명상을 멈춰달라 요구하면서 그 대신 남쪽 바다의 영적세계를 다스리는 마물들의 여왕으로서 권능왕 스노빠티를 도와 새로운 왕국의 건설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왕국의 영적 수호자가 되기 위해 여왕은 자신을 영적 아내로 삼아줄 것을 스노빠티에게 요구했다. 그리하여 키둘 여왕은 스노빠티와 그의 뒤를 잇는 마타람의 역대 왕들의 영적 아내가 되었다. (사진: 권능왕 스노빠티와 니로로키둘의 부부 초상 상상도)
니로로키둘의 기원에 대해 순다 민화에서는 서부 자바 빠자자란 왕국의 아름다운 왕녀 데위 카디타를 가리킨다. 왕궁의 후사가 오직 데위 키디타 공주뿐이었던 부왕이 퇴위를 고민하고 있는 장면에서 이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공주가 여왕이 되어 왕국을 다스리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금기였다. 그래서 왕은 젊은 왕비를 새로 들여 아들을 얻으려 했는데 왕녀를 시기하던 새 왕비는 마침내 임신을 하자 왕에게 자기와 공주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며 기염을 토했다. 왕이 공주를 선택한다면 자신은 왕궁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테니 공주가 왕국의 여왕이 되는 금기를 건드려야 할 것이고 만약 자신을 선택한다면 앞으로 태어날 왕자가 왕좌를 물려받는 대신 공주를 영원히 왕국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조건을 못받았다. 젊은 왕비에게 눈이 먼 왕은 공주를 쫓아내는 것에 동의했다. 하지만 왕비는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해 몰래 흑마술사를 불러들여 그녀에게 살이 썪어 들어가는 저주까지 걸었다. 그녀는 카디타 공주가 추방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죽어 없어지길 바랬던 것이다. 추한 물집이 잡히고 고름이 줄줄 흘러나오는 온 몸을 옷과 천으로 휘감고 황급히 궁에서 도망치던 카디타의 귀에 불현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정이 되는 순간 바다물에 몸을 던지면 병이 나을 것이라는 속삭임이었다. 신의 인도였을지, 아니면 악마의 속삭임었을지 모를 그 목소리를 따라, 그녀는 미친 사람처럼 밤길에 말을 달렸고 왕궁의 백성들은 그녀의 모습을 그 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남쪽 바다에 도착했을 때 흑마술의 저주를 뒤집어쓴 그녀의 몸은 역겨운 악취를 풍기며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체념한 카디타는 남쪽 바다의 성난 파도 속으로 몸을 던졌다. 비록 속삭임을 들었다 하나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몸이 회복될 리 없었고 더욱이 험한 바다속에 뛰어들어 살아남을 수 있을 이 없을 터였다. 그런데 기적이 벌어졌다. 그녀의 몸이 바닷물에 닿는 순간 그녀의 병은 감쪽같이 치유되었고 원래의 아름다움도 순신각에 되돌아온 것이었다. 그녀는 바다 속에서 무시무시한 마물들에게 둘러 싸인 자신을 발견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상황이 전혀 무섭지 않았고 그녀는 물속에서 숨을 쉴 수도 있었다. 남쪽 바다의 정령과 악마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녀에게 왕관을 씌워 남쪽 바다의 영적 여왕으로 추대했고 훗날 사람들은 그녀를 니로로키둘, 즉 ‘키둘지방의 아름다운 여인’이라 부르게 되었다.
또 다른 순다 민화에서는 반유 브닝(Banyoe Bening – ‘맑은 물’이란 뜻)이란 여인이 조조꿀론 왕국의 여왕이 되었는데 나병에 걸리는 예기치 않은 불운을 겪고 절망하며 남쪽으로 요양길에 나섰다가 해안 깊숙히 밀려온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바다 속으로 빨려들어갔다는 고사도 전한다. 그녀가 키둘 여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빠자자란 왕국의 꼼방산에 살던 아자르 쯔마라 뚱갈(Adjar Tjemara Toenggal)에 대한 또 다른 자바 민화가 있다. 그는 예언가였는데 사실은 라덴 자카 수수루(raden Jaka Susuruh)의 아름다운 대고모가 남성으로 위장한 것이었다. 그녀는 라덴 자카 수수르에게 자바의 동족으로 가서 마자 나무가 한 개의 열매를 맺고 있는 곳에서 한 왕국을 열게 될 것인데 그 열매는 매우 쓸 것이라고 했다. 맛이 쓰다는 것은 자바어로 빠힛(Pait)이었으니 마자빠힛(Majapahit) 왕국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예언가 쯔마라 뚱갈은 마자빠힛의 시조와 그 첫 후손들과 결혼해 모든 면에 도움을 주었고 그 혼령은 모든 영와 악마, 그리고 어둠의 마물들을 다스리는 남쪽 바다 영계의 여왕에게 옮겨갔다고 한다. 결국 13세기부터 200년간 자바와 인근도서지역을 지배한 마자빠힛 왕국의 건설을 니로로키둘과 관련지으려고 만들어진 이야기로 보인다.
수난 깔리자가(Sunan Kalijaga)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왈리 송오(9명의 이슬람 선교자) 중 한 명이다. 그의 이름에 포함된 깔리(Kali)라는 어근이 물을 의미하는 것처럼 그는 북부 자바 뻐만찡안 해변에서 니로로키둘과 깊은 관련을 맺었다고 한다. 이후 니로로키둘은 스노빠티와 관계를 맺고 마타람 왕실의 특별한 수호자가 되는데 수난 깔리자가와 니로로키둘의 고사는 이슬람과 자바 토착신앙에 대해 마타람 역대 왕조가 가지고 있던 양면적 가치관를 엿볼 수 있다.
서부자바의 어촌 쁠라부한 라뚜(Pelabuhan Ratu)는 매년 4월 6일을 니로로키둘을 기려 공휴일로 삼고 기념한다. 현지 주민들의 축일인 이날 주민들은 성대한 풍어제를 지내며 여러 공물을 바쳐 여왕의 자비와 은혜를 구한다. 어부들은 매년 이런 의식을 통해 바치는 공물과 희생물은 채소와 작물들부터 닭, 바띡 천, 화장품을 망라하는데 이들을 바다에 띄워보낸 후 가라앉혀 남쪽바다의 여왕과 친선을 도모하는 것이다. 여왕이 공물을 받아들이면 그 댓가로 화창한 날씨와 풍요로운 만선을 기대할 수 있고 태풍이나 높은 파도를 줄여 준다고 믿는다.
(사진: 쁠라부한 라뚜에서 벌어지는 풍어제)
니로로키둘에 대한 신앙은 비단 뿔라부한 라뚜뿐 아니라 빠랑뜨리띠스 빠랑꾸수모, 빵안다란, 까랑볼롱, 응리옙, 뿌거르, 반유왕이 등 자바 남해안 거의 모든 지역에 널리 퍼져 있다. 이 지역에서는 여왕의 상징인 녹색 옷을 입은 사람은 여왕의 노여움을 불행한 일을 당한다는 금기도 이 모든 지역에서 통한다.
쁠라부한 라뚜에 있는 사무드라 비치호텔 308호실은 온전히 니로로키둘에게 바쳐진 곳으로 온통 녹색 치장이 되어 있다. 이 장소가 니로로키둘에게 바쳐진 일화에는 수카르노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도 등장한다. 유명 화가 바수키 압둘라(Basuki Abdullah)가 그린 니로로키둘의 초상도 이 방에 진열되어 있다.
키둘여왕의 고사에는 족자의 해변들, 특히 빠랑꾸수모와 빠랑뜨리띠스가 등장한다. 빠랑꾸수모(Parangkusumo)는 니로로키둘과 권능왕 스노빠티가 처음 영적 조우를 한 곳으로 유명하다. 솔로/수라카르타의 수수후난들과 족자의 술탄들 모두 그녀를 항상 정중히 대한다. 1988년 10월 3일 스리술탄 하멩꾸부워노 9세가 죽을 때 끄라톤 궁전의 사환이 임종을 맞는 술탄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니로로키둘의 모습을 보았다는 기사가 무려 템포 지에 실리기도 했다. 템포지는 정부비판적 논조를 견지하다가 수하르토 정권에게 폐간당했던 언론이다.
그래서 술탄이나 어느 왕자 또는 정치가, 권력자가 니로로키둘을 만났다는 것은 그냥 귀신 또는 영적존재와 접촉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곤 한다. 그녀를 만났다는 것은 종종 마타람 왕국의 적통이라는 의미로 해석되었고 그래서 디포네고로 왕자를 비롯해 역사상 그녀의 현신을 만났다고 알려진 이들은 백성들의 전폭적 지지를 얻거나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기도 했다. 수카르노 이후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도 니로로키둘을 만났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대통령들 대부분이 전설의 근원지인 중부 자바 출신이기도 하거니와 봉건적 분위기가 남아 있는 자바 농촌사회 다수 인구의 호감을 사기 위해 니로로키둘과의 관계를 시사하는 것은 드러내놓고 강조할 수는 없어도 매우 효과적인 득표수단이기도 하다.
니로로키둘을 남쪽 바다의 여왕으로 묘사하는 전설들은 과거나 현재를 망라하고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던지며 인도네시아 문화를 더욱 비옥하게 만들었다. 자바의 끄또쁘락(Kethoprak)이나 순다의 산디와라(Sandiewara)같은 일부 현지 전통극장들은 이 전설을 공연으로 재구성했고 영화나 TV 연속극에서 니로로키둘의 이야기는 괴담이나 공포물 또는 전설장르로 각색되어 자주 등장한다. 남쪽바다의 여왕은 게임 모바일 레전드(Mobile Legentds)의 카디타(Kadita) 캐릭터의 원형이기도 하다. (사진: 모바일 레전드의 카디타-바다의 여신)
이제 니로로키둘에 자바 문화에서 어떤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어렴풋이 짚어볼 수 있을 듯 하다. 신화 속의 그녀가 인도네시아 현실사회에 오늘도 영향을 끼치는 모습을 다음 편에서 조금 더 살펴 보기로 하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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