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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니 민속과 주술

인드라마유 건설 고사

beautician 2019. 4. 5. 10:00

인드라마유(Indramayu) 건설 고사

 

 

서부자바의 인드라마유는 전통적으로 지금까지도 주술문화가 성행하는 곳이고 특히 상대방의 마음에 강제로 사랑의 감정을 심는 뻴렛주술(Ilmu Pelet)의 시발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이 도시의 건설과 관련된 전설은 원래 엄청나게 긴 내용이지만 위라고라(Wiragora)에 대한 산디와라 예술공연(Seni Pentas Sandiwara)의 각색된 줄거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로 한다.

 



 

위라고라(Wiragora)는 찌마눅 강(sungai Cimanuk) 깊은 곳에 살고 있는 마물(Siluman)의 화신으로 여겨진다. 인드라마유를 세운 위라로드라(Wiralodra)의 대적이기도 하다. 위라로드라가 현명한 위인이자 한 민족의 시조로 그려지는 반면 위라고라는 전혀 그 반대의 이미지를 갖는다. 이 캐릭터가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인드라마유의 건설을 기록한 다른 기록에도 위라고라는 등장하지 않는다. 어쩌면 위라고라는 처음부터 가상의 인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드라마유의 산디와라 예술공연 속에서 그는 생생히 숨쉬고 있다.

 

산디와라 무대 공연에서 위라고라는 대개 부토(Buto - 인드라마유 사람들의 발음으로 부따)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부따는 웃거나 말하는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거인 실루만이다. 실루만이란 인간이나 동물이 오랜 기간 도력을 쌓아 변화된 것인데 이슬람의 영향으로 대부분 그 위상이 악마나 마물로 전락한 신비로운 존재들이다. 마물 위라고라는 자바 전설에 자주 등장하는 부토이조와 외관상 비슷하다고 한다.

 

산디와라 무대공연 초반에 위라고라는 인드라마유를 건설한 위라로드라의 형제로 등장한다. 위라로드라는 정글을 개간하여 도시를 만들고 나중에 인드라마유라고 이름짓는다. 원래는 이 지난한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길게 전개되는데 이는 인근 찌마눅 강엔 뿔로마스 왕국(Kerajaan Pulomas) 등의 이름을 가진 소규모 마물 왕국들이 있어 정글을 개간하는 동안 마물들과 끊임없는 마찰을 빚었기 때문이다. 그 비슷한 상황을 서부 깔리만탄의 뽄띠아낙(Pondianak) 건설 고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건설과정에서 얼마나 귀신들이 괴롭혔으면 도시 이름 자체가 처녀귀신이란 뜻의 뽄띠아낙이 되었을까.

 

아무튼 인드라마유 건설을 마친 위라로드라는 버글렌(Begelen)에 두고 온 부모님을 그리워하여 보좌관 끼띵기(Ki Tinggi)에게 도시를 맡기고 부모님을 보러 떠났다

 

그가 떠난 후 도시를 위임받은 끼띵기 앞에 아름다운 여인이 찾아와 그 도시 주민이 되겠다며 허락을 청했고 끼띵기는 그녀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여인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무술에 능했고 일무 까누라간(ilmu kanuragan) 같은 신비로운 체술을 지니고 있었다. 그 소문은 삽시간에 도시 전체에 파다하게 퍼졌다. 많은 이들이 그녀의 제자가 되길 청했는데 특히 십대 소녀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녀의 이름은 엔당 다르마 아유(Endang Darma Ayu)라고 전해진다.

 


엔당 다르마 아유의 초상

 

엔당 다르마 아유의 합류로 도시는 아연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동시에 이런 저런 사건들이 벌어지며 긴장감도 감돌았는데 심지어 그녀와 겨루기 위해 외부에서 찾아오는 자들도 있었다. 그중엔 빵에란 구루(Pangeran Guru)라는 빨렘방 용사가 있었다. 그는 24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찾아와 엔당에게 대결을 청했다처음엔 두 사람 간의 대결로 시작되었지만 그 결과 대결에서 진 빵에란 구루가 죽자 그 제자들이 달려들었고 엔당 다르마 아유의 제자들도 이에 맞서면서 인드라마유에서는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빨렘방에서 온 24명의 제자들도 모두 목숨을 잃었다. 처음 보는 참사에 사람들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태로 고민이 깊어진 끼띵기는 위라로드라의 지혜를 얻기 위해 급히 버글렌을 찾아갔다.

 

인드라마유 상황을 전해들은 위라로드라는 형제들과 함께 인드라마유로 출발해 직접 상황을 살피려 했다. 그런데 형제 중 위라고라만은 동행을 거절했다.

 

인드라마유에 도착한 위라로드라는 엔당 다르마를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고 모든 이야기를 들은 후 엔당 다르마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정당방위를 한 것으로 인정하고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았다. 재판은 더 이상의 문책없이 그렇게 해산되었다.

 


위라로드라가 나중에 엔당 다르마와 따로 만나는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그는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녀에 대한 마음이 깊어진 위라로드라는 청혼을 결심하는데 문제는 엔당 다르마가 자신을 무술로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의 청혼만을 받아들인다는 조건을 세운 것이었다. 인드라마유 사람들은 또 한 번 피바람이 불까봐 두려워했지만 위라로드라는 그 조건에 따라 대결신청을 강행했다. 사람들이 우려한 바와 달리 위라로드라는 대결에서 줄곧 우위를 점했고 엔당 다르마는 처음으로 패배를 경험했다. 조건을 충족시킨 위라로드라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그녀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림: 라덴 아리야 위라로드라)

 

엔당 다르마의 아름다움과 우아한 자태는 뒤늦게 인드라마유에 합류한 위라고라의 마음도 끌어당겼다. 그녀가 이미 위라로드라의 부인이 된 상태에서 위라고라는 당연히 자제했어야 했음에도 오히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엔당 다르마를 차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엔당 다르마가 잠든 틈을 타 침실에 스며들어 그녀를 겁탈하려 했다.

 

하지만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엔당 다르마는 만만한 여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반항했고 그것은 곧 대결로 번졌다. 위라고라는 압도적인 엔당 다르마에게 얼굴이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얻어맞은 후 길게 뻗어 버리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형제의 아내를 겁탈하려 한 위라고라의 악행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위라고라는 수치를 피해 찌마눅 강으로 들어간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찌마눅 강 유역의 마물들 나라에 들어간 것이다. 그 사건 이후 위라고라는 찌마눅을 다스리는 요물이 되었다고 전하며 부따 위라고라(Buta Wiragora)라고 불리게 되었다. 비록 엔당 다르마에겐 상대도 되지 않았지만 위라고라도 찌마눅 강에서 모든 마물들을 무릎꿇릴 정도로 만만찮은 도력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것이 인드라마유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다. 이것은 물론 산디와라 공연감독 달랑(Dalang)이 인드라마유 고사에 픽션을 덧입힌 것이라 보인다. 하지만 위라고라의 이야기는 인드라마유의 전설의 일부가 되어버렸고 이제 많은 이들이 위라로드라나 엔당 다르마와 마찬가지로 위라고라 역시 실존했던 인물이라 믿고 있다. ()

 


위라로드라 전설의 연극공연 포스터

 

 

참고자료

https://www.historyofcirebon.id/2018/02/wiragora-buto-ijo-dari-indramayu.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