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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로로키둘 – (2)족자 술탄국의 딜레마 본문
니로로키둘(Nyai Loro Kidul) – (2)족자 술탄국의 딜레마
족자 술탄 하멩꾸부워노 10세와 구스띠 깐젱 라뚜 뻠바윤 공주
한편 니로로키둘의 전설을 역사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족자 술탄왕실은 후사에 왕자가 없어 이로 인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사실상 남자 술탄 대가 끊긴 족자 끄라톤의 술탄 하멩꾸부워노 10세(현직 족자 주지사이기도 함)는 2015년 5월 5일 자신의 장녀를 술탄으로 삼겠다고 발표하면서 초유의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만약 그의 말대로 된다면 족자 술탄국은 물론 인도네시아의 모든 술탄국 역사상 첫 여성 술탄이 탄생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술탄은 이미 공주의 이름도 구스띠 깐젱 라뚜 뻠바윤(Gusti Kanjeng Ratu Pembayun)에서 구스띠 깐젱 라뚜 망꾸부미 하메마유 하유닝 바워노 랑겡 잉 마따라(Gusti Kanjeng Ratu Mangkubumi Hamemayu Hayuning Bawono Langgeng ing Mataram)라는 술탄 특유의 긴 이름으로 바꾸며 앞으로 왕좌의 승계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 술탄이 탄생하면 당장 당면하게 되는 문제는 남쪽 바다 여왕 니로로키둘의 남편으로서 거행하는 술탄의 대관식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니로로키둘의 기원은 앞서 언급했던 것들 말고도 무수하다 할 만큼 다양한데 1997년 아시아 민속연구 볼륨 56번인 “어떤 순다 공주: 니로로키둘의 몇 가지 측면”이란 로버트 웨싱(Robert Wessing)의 글에서는 니로로키둘이 원래 갈루 왕국 (Kerajaan Galuh)의 공주였다고 묘사하고 있다. 물론 앞서 기술한 13세기 빠자자란 왕국의 왕녀 카디타라는 버젼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까후리빤(Kahuripan)의 왕 아이르랑가(Airlangga)의 후손 또는 끄디리의 왕 자야바야(Jayabaya)의 후손이라는 버젼도 있다.
갈루 왕국의 라뚜 아유의 이야기는 조금 더 독특하다. 라뚜 아유는 어린 아기였을 때 신기하게도 입을 열어 자신이 자바 땅의 모든 마물들을 다스리는 주인이며 남쪽 해안에서 살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갈루의 신둘라 왕(raja Sndhula)의 혼령도 나타나 자신의 손녀는 성결함을 지키기 위해 결혼하지 않을 것이며 설령 결혼한다 하더라도 자바의 이슬람 왕국 왕들과 결혼하게 될 것이라 말했다. 그리하여 라뚜 아유는 남쪽 바다의 여왕이 되어 그후 200년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마타람 이슬람 왕국을 1585년부터 1601년까지 다스리게 되는 권능왕 스노빠티가 남쪽 해안에 도착해 쁘람바난 빠장 술탄과의 전쟁을 이길 길을 찾기 위해 깊은 명상에 빠지자 그 명상의 위력이 영계를 뒤흔들었고 마침내 키둘여왕이 수면 위로 나와 명상에 잠긴 스노빠티를 만나는 장면으로 스토리가 연결되는 것이다.
이 버젼에 따르면 그녀는 스노빠티를 데리고 바다 밑으로 들어가 사흘 밤낮을 같이 지낸 후 그의 전쟁을 돕기로 했고 스노빠티는 그 후 영물들의 군대를 이끌고 쁘람바난에 쳐들어가 빠장 왕국에게 대승을 거두게 된다. 족자 술탄국이 가진 니로로키둘의 전승은 이 버젼을 따른다.
권능왕 스노빠티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손자 술탄 아궁이 1613년부터 1646년까지 마타람을 다스리면서 자신의 조부와 키둘여왕의 사랑을 담은 브다얀 춤(tarian Bedhaya)을 고안했다. 1755년 마타람 왕국이 쪼개졌을 때 낸시 K 플로리다(Nancy K. Florida)는 1992년 출간한 “브다야 까따왕: 깐쟁 라뚜 키둘 노래의 해석”(The Badhaya Katawang: A Translation of the Song of Kangjeng Ratu Kidul)이라는 책에서 족자 끄라톤이 브다야 스망(Bedhaya semang)을, 그리고 수라카르타 끄라톤이 브다야 끄따왕(Bedhaya Ketawang)을 각각 가져갔다고 말한다. 이 춤은 새로운 왕의 대관식 행사에 반드시 순서가 들어가는 신성한 의식이 되었다.
낸시 K 플로리다는 족자 술탄들과 니로로키둘의 관계는 1988년 술탄 하멩꾸부워노 9세가 임종하면서 느슨해졌지만 술탄 하멩꾸부워노 10세가 즉위하면서 사람들은 니로로키둘의 가호와 특별한 관계가 여전히 유효하다며 법썩을 떤 바 있다고 기술했다. 하지만 이제 술탄 하멩꾸부워노 10세가 딸에게 술탄의 왕위를 넘겨주려는 하므로 니로로키둘과 족자 왕실의 관계는 재정립되어야 할 상황이다. 남쪽 바다 속의 니로로키둘도 이 소식을 접하고 매우 난감해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한편 이 전설에 대해 매우 냉정한
분석을 내리는 이도 있다. 인도네시아의 대문호 쁘라무디야 아난따 뚜르가 1988년 막사이사이 상을 받을 때 수상연설에서 바다의 키둘여왕 이여기는 단지 전설에 불과하다고 말한 것이다. 연설 제목은 ‘문학, 검열 그리고 국가: 독서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라는 것이었다. 그는 술탄 아궁이
바타비아를 공격하고서도 북쪽해안의 통상로를 얻지 못하자 마타람 궁전의 모든 문신들을 동원해 니로로키둘의 전설을 창작해 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대신 자바의 문신들은 바다의 여왕 니로로키둘 이야기를 보상 성격으로 창작해 그래도 남쪽 바다(인도양)은 마타람이 지배하고 있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 전설이 또 다른 전설을 낳으면서 마타람의 역대 왕들이 바다의 여왕을 아내로 삼았다는 식의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라고 기술했다.
쁘람은 당시 푸른색 옷을 입는 것을 금기시하는 전설의 디테일 역시 사실은 대체로 푸른색 계통인 네덜란드군의 군복과 연관을 지으려는 문인들 노력의 산물이라고도 주장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근대의 족자 끄라톤이 매우 반식민주의적, 민족주의적 여신을 탄생시킨 것이다. (끝)
따리 브다야 (브다야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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