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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다 귀신들의 재발견 (1) – 머리통 귀신들

beautician 2021. 1. 24. 11:49

 

순다 귀신들의 재발견 (1) – 머리통 귀신 굴루뚝 승이르

 

 

 

 

 

인도네시아는 1945년 독립선언을 한 이후 줄곧 자바인들이 주도하는 사회를 유지해왔다.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을 위시하여 현직 조코 위도도 대통령까지 자바인들이 대통령직을 독식해 왔다. 국가발전 역시 인도네시아를 구성하는 5대 주요 섬들 중 가장 작은 자바섬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므로 (물론 인구밀도와 인구비중이 가장 높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음) 1950년대에 벌어진 수마트라 PRRI 반란이나 술라웨시 뻐르메스타 반란은 그런 자바 일변도의 인도네시아 중앙정부 정책에 반기를 든 사건들이었다.

 

 

 

그런 자바 편향은 비단 정치나 경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귀신과 마물들마저 꾼띨아낙, 건드루워, 뽀쫑, 웨웨곰벨, 순델볼롱, 뚜율, 바비응예뻿, 니로로키둘 같은 자바 출신들은 전국적 지명도를 갖게 된 반면 다른 지역 귀신들은 출신지역에 한정되어 점차 잊혀지는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같은 자바섬에 있는 순다지역 귀신들마저 같은 취급을 받아 소외되는 것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굳이 귀신들 권익을 위해서까지 뛰어야 할 의리는 없지만 자바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순다인들 문화 저변을 이루는 순다 귀신들을 조명해 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한다.

 

 

 

 

 

첫 타자는 주릭 글루뚝 승이르’(jurik gulutuk sengir)라고 불리는 머리통만 돌아다니는 놈이다. 주릭은 귀신, 굴루뚝(gulutuk)굴러다니다’, 승이르(sengir)비웃음이란 의미이므로 말하자면 굴러다니며 비웃는 귀신정도의 의미가 된다. 이 귀신은 왜 그런 짓을 하는 걸?

 

 

 

순다 지역 대부분에 이 머리통 귀신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는데 수머당(Sumedang)과 마잘렝카 (Majalengka) 지역에 특히 이름이 알려진 것으로 보아 그쪽에 자주 출몰했던 모양이다.

 

 

 

굴루뚝 승이르 귀신은 과거 식민지 시대에 네덜란드 총독부에 의해 투옥되고 목이 잘린 희생자들에게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그렇게 잘린 머리가 몸통과 함께 매장되지 않아 이 귀신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당시 참수형은 주로 정글 속에서 이루어졌으므로 참수당한 이들의 머리통이 제대로 수습되지 않고 숲 속, 주로 울창한 대나무숲 같은 곳에 버려지곤 했단다. 그래서 주릭 굴루뚝 승이르는 주로 대나무숲 근처에서 출몰한다.

 

 

꾼띨아낙이나 뽀쫑과 달리 주릭 굴루뚝 승이르는 주로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박소(Bakso), 온좀(oncom) 등 서민들의 먹거리를 파는 장사꾼들에게 일순간 모습을 보이는 식으로 나타난다. 사람들 앞에서 길을 데굴데굴 굴러 가로지르는 식으로 출현해 순식간에 대나무 숲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하지만 특이한 점은 가끔 사람 앞에 잠시 멈춰 상대방에게 비웃음을 날려준 후 다시 굴러서 숲 속으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 귀신이름이 굴러다니며 비웃는 귀신인 이유다.

 

 

 

혹시라도 이 귀신과 마주치고 싶으면 수머당의 부아두아(Buah Dua) 지역에 가 보기를 권한다. 그곳은 아직 인구도 적고 대나무숲이나 살락나무 숲이 많기 때문이다. 끄머냔 향을 태우면서 가면 이 귀신과 만날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아마도 같은 귀신이라 사료되는 군둘쁘링이스(Gundung Pringis) 귀신은 역시 땅바닥을 구르며 얼굴엔 웃음기를 띄고 있어 인상착의가 일단 일치한다.

 

이놈은 군둘(gundul), 즉 대머리형이어서 군둘쁘링이스라 불리는 건데 머리칼이 있는 놈을 보았다는 증언도 있다. 물론 그게 뭐 중요하냐 싶다.

 

 

 

또 다른 버전에서는 군둘쁘링이스가 단지 머리통만이 아니라 내장도 딸려 있다고 하는데 이건 꾸양이나 빨라식, 레약 같은 날아다니는 머리통 귀신을 어설프게 본뜬 것 같다.  주릭 굴루뚝 승이르, 또는 군뚱쁘링이스 귀신의 특이점은 동남아 머리통 귀신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내장을 줄줄 달고 날아다니는 대신 깔끔하게 머리통만 굴러다닌다는 부분이니 말이다. 게다가 꾸양 등은 기본적으로 흑마술을 익혀 악마와 계약한 사람이 낮에는 온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있다가 해가 떨어진 후 머리와 몸이 분리되면서 내장을 주렁주렁 달고 날아다니며 피를 빨아먹을 인간들 또는 아기들의 무덤을 파헤치려 드는 것이지만 굴루둑 승이르나 군둘쁘링이스는 낮이나 밤이나 초지일관 머리통 귀신 상태로 존재한다. 왜 순다의 머리통 귀신은 자바나 동남아의 유사한 귀신들과 그런 차별점을 가지게 되었을까?

 

 

 

아무튼….

 

군둘쁘링이스는 대개 웃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때로는 화난 표정을 짓기도 한다. 주로 촌이나 도시 외곽 한적한 곳이나 공터,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플랜테이션이나 수목원 등에서 주로 출몰한다. 그런데 한번 씩 웃어주고 대나무숲으로 들어가버리는 주릭 굴루뚝 승이르의 설명과 달리 군둘쁘링이스는 깔깔거리며 쫒아와 급기야 도망치던 사람이 사고를 당하게 하곤 한다는 해설이 따라붙는다. 같은 종류라도 성격은 조금씩 다른 모양이다.

 

 

 

또 군둘쁘링이스는 어두운 곳에서는 땅에 떨어진 야자열매처럼 보인다. 그래서 큰 소리를 내며 나무에서 떨어지면 근처를 지나던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어둠 속을 더듬거리다가 마침내 땅에 떨어진 야자열매를 들어 올리는데 자세히 보니 그게 사실은 군둘쁘링이스의 머리였다는 식의 스토리가 전개되는 것이다. 해질녘엔 닭장으로 돌아가는 닭처럼 위장하다가 정체를 들키면 사람을 뒤쫓는다고도 하니 사람을 놀래키려 작심을 한 녀석인 듯하다.

 

 

 

 

 

 

세면대에서 접시를 닦을 때 발목근처에서 누군가의 숨결이 느껴지거나 뭔가 닿아 스치는 느낌이 있다면 그게 군둘쁘링이스일 수도 있다. 하루 일과에 지쳐 방에 몸을 누이면 저족 천장 한쪽 구석에 민대머리 머리통이 붙어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가 거기서 바닥에 떨어져 삽시간에 장롱 밑이나 침대 밑으로 숨어버린다. 손발도 없는데 기동력이 대단하다.

 

 

 

군둘쁘링이스가 가까이 있으면 사람의 체온이 올라가고 귀가 울린다고 한다. 어둠 속에서 이 귀신을 만나면 그 두 눈이 불처럼 타오르는 것을 보고 군둘쁘링이스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 친구가 그렇게 깔깔거리며 쫓아와 사람을 잡아먹거나 그를 만난 이들이 앓아 눕는다는 식의 얘기는 전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뭔가 구체적인 해악을 끼치거나 재앙을 몰고 오는 존재가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심장건장에 도움이 안되는 친구임도 분명하다.

 

 

 

순다 지역엔 쓰레기장의 주릭 자리안(Jurig Jarian), 한적한 철길의 주릭 봉에(Jurik Bonge), 작은 다리들마다 도사리고 있는 주릭 공고(Jurik Gonggo) 등 독특한 귀신들이 여럿 있지만 자바 귀신들과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이는 순다 머리통 귀신 주릭 굴루뚝 승이르/군둘쁘링이스를 먼저 소개해 보았다. ()

 

 

2019. 4. 19

 

 

 

 

 

 

 

 

 

참고자료

 

 

 

https://www.boombastis.com/hantu-gundul-pringis/85136

 

http://www.infoglobalkita.com/2018/09/inilah-jenis-jenis-hantu-di-tanah-sunda.html

 

http://spotmisteri.blogspot.com/2011/03/hantu-kepala-jurig-gulutuk-sengir.html

 

http://demitnarsis.blogspot.com/2013/02/hantu-jurig-gulutuk-sengir.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