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깔리만탄의 악령과 마물들 본문
깔리만탄의 악령과 마물들
깔리만탄에도 귀신이나 요괴와 관련된 많은 괴담들이 있습니다. 아마 인도네시아 전역에 나름 이름을 알려진 깔리만탄의 마물은 내장을 주렁주렁 달고 날아다니는 머리통 귀신 꾸양일 것입니다. 다른 지역에도 인상착의가 비슷한 귀신들이 있어 비교대상이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미낭까바우의 빨라식, 술라웨시의 뽀뽀, 발리의 레약 등) 그간 꾸양으로 간주되는 물체가 동영상으로 찍힌 경우가 의외로 여럿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꾸양 말고도 현지 주민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로컬 귀신들은 얼마든지 많은데 그중 일부를 잠시 들여다 봅시다.
1. 여성을 반하게 만드는 마리아반의 털
마리아반은 귀신이라기보다는 요괴에 가까운 거대한 동물로 깔리만탄의 깊은 숲 속에 산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마리아반을 무서워하면서도 찾아 나서는 이유는 마리아반의 털이 여성을 홀리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반은 피를 탐하는 식성을 가져 자기 영역 안으로 들어온 인간을 공격해 잡아먹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마리아반의 출현은 예측하기 어려운데 숨어있다가 달려들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의 모습을 흉내내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엄청난 덩치와 빨간 눈을 숨길 수 없어 자세히 보면 마리아반의 변신을 금방 알아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반의 털이나 기름을 가진 사람은 그 효험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그 영향을 받아 성격이 마리아반처럼 포악해져 쉽게 분노를 터트리고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물의를 빚거나 난장판을 벌인 끝에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르기도 합니다. 여기서 마리아반의 기름(minyak Mariaban) 이란 돼지기름 짜듯 마리아반을 잡아 기름을 냈을 리 없으니 잠시 접촉하여 얻을 수 있는 침이나 피 같은 체액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뚜율을 관리할 때 가끔 사용해야 하는 시체기름(minyak mayat) 역시 시체를 쥐어짜 기름을 냈을 리 없으니 시체가 부패하며 나오는을 체액을 뜻하는 것과 같은 의미인 것이죠.
2. 대나무 깔판 모양의 물귀신
인도네시아의 물귀신들은 펼쳐진 채 떠내려 가는 대나무 멍석 같은 모습을 띄는 것들이 많은데 깔리만탄의 물귀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많이 빠져 죽는다고 소문난 강속 깊은 곳에 깃들어 살며 때때로 멍석 모양으로 수면에 모습을 드러낸다. 호기심을 느낀 사람들의 건져 올리려 다가오도록 유도하기 위함이죠. 그러다가 사람을 휘감아 발버둥치는 인간을 물속에서 익사시킵니다. 순다의 루룬시막, 빨렘방의 한뚜 반유, 아쩨의 벌룸빌리 등이 모두 비슷한 특징을 보입니다. 깔리만탄에는 라빙(Rabing)이란 이름의 물귀신이 역시 거의 같은 특성을 갖습니다.
그래서 강이나 호수에서 떠다니는 멍석을 발견하면 가까이 갈 게 아니라 빨리 물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때로는 물귀신을 거북이같은 모양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이건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문화가 밀려들어오면서 일본 물귀신 갓빠(하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
물귀신이 나타나는 곳은 수면은 평온하고 따뜻하지만 물밑에는 한기 가득한 소용돌이가 친다고 하며 수영하는 사람을 공격할 뿐 아니라 오징어 다리 같은 머리칼을 이용해 사람이 탄 작은 배를 전복시키는 위력을 보이기도 합니다
한편 서부 깔리만탄 끄따빵 지역 빠완 강에도 ‘벵껙’이란 물귀신은 사람을 익사시킨 후 뇌를 파먹습니다. 벵껙이 다른 물귀신들과 다른 점은 무엇으로든 모습을 바꾸는 능력이 있어 상대에 따라 늘씬한 미녀로도, 천하의 미남으로도 변해 상대방을 물 속으로 유인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빠완강에서 놀장난을 치며 물가로 이끄는 친구가 사실은 벵껙귀신의 둔갑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일단 물속에 들어가면 벵껙귀신은 몸부림치는 사람을 완강하게 강바닥으로 끌고 들어가 희생자가 아직 살아있는 상태에서 뇌를 파먹기 시작합니다.
이 귀신의 알려진 인상착의는 매우 흉측한 얼굴에 긴 머리칼이 노란색을 띄며 몸은 거대한데 오른 팔이 왼팔보다 훨씬 더 길다고 합니다. 하지만 짧은 왼팔의 힘은 훨씬 세서 사람을 일단 왼팔로 잡으면 더 이상 도망갈 수 없게 되므로 절대 왼팔에 잡혀서는 안됩니다.
3. 사람의 심장을 파먹는 아낙시마(Anak Sima)
혼외정사를 통해 낳은 갓난아이를 부끄럽게 여긴 엄마가 몰래 숲 속에 몰래 버리고 가면 그 울음소리를 듣고 다가온 숲의 주인인 마물 타까우(Takau)가 불쌍히 여겨 키우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부 깔리만탄 사람들에 따르면 타까우는 그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숲 속의 마물로 그 도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합니다. 마물 타까우가 키운 인간의 아이가 나중에 아낙시마가 된다.
마물의 손에 자라나며 아낙시마 역시 자연스럽게 마물의 특성을 띄게 됩니다. 아낙시마는 울음소리만으로 주변 사람들의 동정하고 연민하는 마음을 갖게 만들어 그 울음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나서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찾아낸 사람의 무릎에 앉거나 가슴에 안기면 가슴을 파고들어 심장을 파먹어버리는 거죠. 아무 생각없는 아기로서는 배고픔을 채우는 것일 뿐이지만 일견 선의를 가지고 구원해 주려 나타난 사람에게 자신을 숲 속에 버린 비정한 어머니에 대한 복수를 하는 셈입니다. 물론 귀신과 마물들이 인간세상의 윤리를 따를 리도, 그럴 필요도 없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아낙시마는 자신을 안은 여인의 품 속에서 가슴을 야금약금 파먹다가 급기야 그렇게 난 가슴의 구멍을 통해 심장까지 파먹는데 정작 아낙시마를 안은 여인은 자신이 죽어가는 것조차 깨닫지 못합니다.
4. 염소의 모습을 한 반인반수 깜베(Hantu Kambe)
깜베귀신(Hantu kambe)은 기본적으로 반인반수인데 그 모습이 염소에 가깝습니다. 어떤 이들은 깜베가 사람의 몸을 하고 있지만 머리카락이 길고 다리는 염소의 다리를 하고 있다고 하며(이런 인상착의는 영화나 만화에서 많이 본 듯함, 서양영화의 악마들, 심지어 넷플릭스 ‘스위트홈’의 괴물 중에서도) 또 어떤 이들은 길 갈기를 가진 염소모양이라고 합니다.
작은 체구를 한 이 요괴는 사람을 해치지 않지만 염소들을 괴롭히므로 목장에서 염소들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 깜베귀신이 찾아왔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깜베와 자주 마주치는 곳은 당연히 염소 우리 근처입니다.
5. 삼빠르 (Sampar)
삼빠르는 역병을 퍼트리는 악귀로 다약 스삐리(Dayak Sepiri) 족은 삼빠르를 몰아내기 위한 리추얼을 행해야 합니다. 이 의식은 3~5일 간 채소도 따오지 않고 물고기도 잡지 않은 채 집안에서 줄곧 머무는 행위를 포함합니다. 삼빠르의 위상은 페니실린이 보급되기 전 마마 정도였지 싶습니다.
6. 한뚜 방시(Hantu Bangsi)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귀신들 중엔 아마도 꾼띨아낙이 으뜸이지만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곤 합니다. 깔리만탄에도 아기를 안은 여인의 모습으로 현신하는 한뚜 방시(hantu Bangsi)라 부르는 여귀(女鬼)가 있습니다. 한뚜 방시(Hantu Bangsi)야말로 깔리만탄의 대표 꾼띨아낙입니다.
방시는 아름답지 않습니다. 방시귀신은 썪어들어가는 얼굴에 낡은 옷은 무덤의 흙으로 얼룩져 있고 품에 안긴 아기는 아직 끊지 않은 탯줄이 연결된 상태입니다. 혹시 누군가 그렇게 출몰한 방시를 훔쳐보면 방시는 아기를 그 사람에게 던지고 그에게 달라붙은 아기는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피를 빨아먹습니다. 방시는 숲 속에서 혼자 사산한 아기를 낳다가 죽은 여인의 유령입니다. 그래서 방시는 숲 속을 다니며 사람들을 공격해, 생전에 결국 낳지 못한 아기를 배불리 먹이려 합니다.
방시는 깔리만탄 숲 속 깊은 곳의 강이나 개울 근처에 자주 나타난다고 합니다. 숲 속에 신선한 피가 뿌려져 있다면 그건 방시귀신이 가까이 있다는 표시입니다. 그 핏자국이 조금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곳이 방시귀신이 가장 가까이 있는 곳입니다.
방시를 막거나 예방하는 방법은 아직 알려진 것이 없어 해가 지면 숲에 들어가지 않는 것만이 최선의 대책입니다.
7. 다약족 수확을 망치려는 귀신 아못(Amot)
깔리만탄의 다약족도 수많은 귀신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중 아못(Amot)이란 귀신은 농사와 축산을 방해합니다.
위의 사진은 2017년 7월 26일 서부 깔리만탄 주도 뽄띠아낙의 루마 라다깡(Rumah Radakng)에서 열린 국제 다약족 의회 개회식 당시 바땅따랑(Batang Tarang)의 ‘아못의 다섯 현신’이란 탈을 쓴 사람들입니다. 다약족 따바샴(Taba Syam) 부족의 전설 속 존재다. 아못은 다약족의 추수철을 기다리는 악령으므로 녜서르(Nyeser)라는 리추얼을 통해 반드시 쫓아내야 하죠. 이날 이들이 행사에서 춤으로 의식을 행한 것은 다약족의 의견을 모으는 행사는 그동안 노동의 결과물을 추수하는 것과 같으므로 이를 방해하려는 아못을 미리 쫒아낸다는 의미였습니다.
아쉽게도 깔리만탄의 귀신과 마물들은 다약족 일부가 아직도 애니미즘 같은 원시종교를 신봉하는 만큼 수도 없이 많겠지만 일반에는 꾸양을 비롯한 몇몇 귀신들의 자료들만 일정양 이상 확보 가능할 뿐 광대한 관련 무속문화와 에피소드들은 보다 심층적인 조사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일단은 이 정도를 돌아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듯 합니다.
참고자료: 머르데카닷컴, 꿈빠란닷컴, 반자르마신 트리뷴뉴스닷컴
https://kumparan.com/kumparannews/amot-hantu-pengganggu-panen-suku-dayak/full\
https://www.merdeka.com/peristiwa/4-hantu-paling-menakutkan-dari-pulau-kalimantan.html?page=5
https://kumparan.com/dukun-millennial/mitos-hantu-bangsi-kuntilanak-khas-kalimantan-1uVl71uPnbx/full
https://www.indosuggest.com/2020/11/hantu-kalimantan.html
'인니 민속과 주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다 귀신들의 재발견 (1) – 머리통 귀신들 (0) | 2021.01.24 |
---|---|
발리의 신들(2): 고대의 귀신들 (0) | 2021.01.23 |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유령 깐돌레(Kandole) (0) | 2021.01.20 |
술라웨시 귀신들의 세계 (0) | 2021.01.19 |
목잘린 신부님 유령 (0) | 2021.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