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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과 괴담 사이(2)] 안쫄 다리의 유령 시티 아리아를 아시나요? 본문
안쫄 다리의 유령 시티 아리아를 아시나요?
자카르타에 사는 사람이라면 안쫄 지역에 출몰하는 아름다운 처녀귀신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봤을 지 모릅니다. 밤늦게 이 지역을 지나는 남성들을 괴롭힌다고 알려진 이 유령은 그간 여러 차례 목격되었고 그 괴담이 신문에도 실렸습니다. 목격자들의 일관된 증언 중 하나는 이 유령이 매우 아름다운 자태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1973년 <Si Manis Jembatan Ancol (안쫄 다리의 미녀)>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고 2019년에도 리메이크되었습니다.
안쫄 해양공원 내 머큐어 호텔(Mercure Hotel) 자리에 있던 옛 호리손 호텔(Hotel Horison)에는 시티 아리아의 유령을 모시는 객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마치 수카부미 너머 해안도시 뿔라부한 라투(Pelabuhan Ratu)의 사무드라 호텔(Semudera Hotel)에도 자바 남쪽바다 마물들의 여왕 니로로키둘(Nyi Roro Kidul)에게 헌정된 객실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모두가 다 아는 듯하지만 사실 자세히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 괴담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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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아리아는 19세기 바타비아에 살던 아름다운 처녀였습니다. 대저택의 처마 밑 허름한 집에서 그녀는 ‘처마댁’이라 불리는 어머니, 그리고 다섯 살 터울 언니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의탁하고 있던 대저택은 자카르타를 구비구비 관통하는 찔리웅강(Sungai Ciliwung)의 지류, 깔리브사르(Kali Besar) 강변에 지어져 있었습니다. 아리아와 가족들은 백발의 저택 주인 바바 림(Babah Lim)의 농장에 나가 일을 거들며 생계를 꾸렸고 틈 날 때마다 당시 울창하던 인근 숲에서 땔감과 채소는 물론 멧닭 둥지에서 달걀을 구해 오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일하는 중에도 아버지가 생전에 즐겨 부르던 네덜란드 노래를 기억하며 흥얼거렸는데 열여섯 살 소녀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엄마, 제가 저택의 연회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요? 그럼 사람들이 노래솜씨도 칭찬해 주고 수고비도 줄 거에요” 아리아가 어머니에게 그런 얘기를 한 것은 저택에서 수시로 열리는 부자들의 성대한 연회를 담 너머로 자주 보았기 때문입니다. 연회에 참석한 손님들의 웃음소리와 자신이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화려한 파티복에 그녀는 홀리듯 마음을 빼앗기곤 했습니다.
그러나 늘 불만이 많던 언니는 이번에도 심술을 부렸습니다. “아리아, 우린 가난하게 태어났으니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거야. 부자들과 어울리는 건 다 부질없는 소망이라고!” 아리아는 언니의 말에 풀이 죽었습니다.
어머니와 두 딸의 고단한 매일은 변함없이 바쁘게 흘러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막 집에 들어가려던 아리아는 한 귀족이 그를 불러 세우는 모습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는 바바 림의 저택에 자주 드나들던 우이 탐바샤(Oey Tambah Sia)란 20대 후반의 남자였습니다. 그는 선대로부터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았고 당시에도 바타비아 담배판매를 독점하고 있었어요. 그는 아리아에게도 들릴 정도로 나쁜 품행과 여자들과의 추문으로 악명을 떨쳤습니다. 그는 바로 얼마 전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고서도 뻐깔롱안에서 데려온 가믈란 악단의 가수를 첩으로 들인 상태였지만 다른 예쁜 여자가 또 나타나면 여전히 자신을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가 아름다운 아리아를 발견한 것입니다.
아리아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곧바로 집에 들어가 문부터 걸어 잠갔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언니가 트집을 잡습니다. “어디서 여유 부리다가 이제야 돌아오는 거야? 지체 높은 네덜란드 아가씨 흉내라도 내는 거야? 닦아야 할 접시들이 잔뜩 쌓인 게 보이지 않아?” 아리아는 언니에게 다가가 속삭였습니다. “언니, 화내지 마. 예쁜 얼굴이 미워지잖아. 집 앞에 그 악명높은 우이 탐바샤가 와서 날 부르고 있어. 그러니 목소리를 좀 낮춰.” “그게 어때서? 부자의 첩이 되면 더 이상 굶을 걱정 없어지는데 뭐가 문제야?” 언니는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난 엄마랑 언니랑 함께 사는 것만으로 너무 행복해. 난 내 명예를 돈과 바꾸지 않을 거야.” 아리아는 순진하게 웃어 보였지만 그것은 진심이었습니다.
아리아는 언니가 까칠해진 것이 집안 형편이 너무 가난해 혼담이 들어오지 않아 초조한 탓이라 생각했죠. 그녀는 늘 언니를 위로하며 하나님이 곧 좋은 남자를 보내줄 거라 말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혼담은 언니가 아니라 아리아에게 먼저 들어왔습니다. 그게 하필이면 그들이 의탁하고 있던 바바 림의 청혼이었습니다. 아리아는 그 혼담을 어머니에게 듣고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처음 들었던 감정은 바바 림의 본처 마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과 언니에 대한 걱정이었습니다. 자신이 먼저 결혼한다면 언니는 더 깊은 낙담에 빠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녀는 분명한 거절의사를 보였지만 어머니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아리아야, 우린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돼. 이건 어쩌면 우리가 바바 림에게 그동안 입은 은혜를 갚을 기회인 거야. 우리 가족에게 그토록 큰 도움을 주신 분의 청혼을 너라면 감히 거절할 수 있겠니?”
아리아는 번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누군가의 첩이 되면서 그게 진정한 사랑이라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리아는 자신이 선택한 남자와 결혼하여 세상 끝나는 날까지 서로 사랑하게 될 것이라 굳게 믿어 왔었죠. 다음날 아침 아리아는 다음을 다잡고 평소처럼 땔감과 나물을 해오고 멧닭 둥지에서 계란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전날 밤 아리아의 거절을 곱씹고 있었습니다. 아리아는 어머니의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은인과도 같은 바바 림의 청혼을 어머니가 결코 거절하지 못할 것임을 그녀는 깨닫고 말았습니다. 열여섯 살 아리아의 마음이 거기서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날 오후 농장일을 마친 아리아는 집에 돌아가지 않고 북쪽으로 걸어 숲을 지나 안쫄 해변에 다다랐습니다. 그녀는 온통 뒤죽박죽 되어버린 감정을 추스르고 싶었어요. 해가 어둑어둑 지는 해변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그녀의 마음을 조금 위로하는 듯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검은 옷을 입은 두 명의 남자가 나타나 아리아의 팔을 붙잡았습니다. 놀란 아리아가 온 힘을 다해 반항했지만 그들을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우이 탐바샤가 부리는 삐운(Piun)과 수라(Sura)라는 깡패들이었습니다. “운이 좋은 계집이군. 모든 여자들이 환심을 사려 애쓰는 우이 탐바샤 어른 눈에 단번에 들었으니.” 히지만 그것은 아리아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리아가 격렬하게 저항하며 비명을 지르자 삐운은 그녀의 입과 코를 손으로 틀어막았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리아는 결국 숨이 막히고 목도 꺾이고 말았습니다. 이제 막 아름답게 피어나던 아리아는 안쫄 해변에서 그렇게 처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습니다.
“
“어, 이걸 어쩌지? 우이 나리가 데려오라 했는데 죽어버리면 어쩌냐구?” 아리아의 몸이 축 늘어지자 깜짝 놀란 수라가 잡고 있던 아리아의 팔을 놓으며 소리쳤습니다. “일단 돌아가서 아리아를 만나지 못했다고 하자. 시체는 바다에 던져 버리자구. 들통나면 우린 끝장이야. 곧 총독부 경찰들도 순찰을 돌 텐데 빨리 움직여!” 아리아의 시신을 바다에 던져 넣은 삐운과 수라는 우이 탐바샤에게 혼날 것만 걱정했습니다.
사실 우이 탐바샤는 바바 림의 저택에서 열린 연회에 갔다가 담 너머에서 아리아의 모습을 보고 일찌감치 흑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날 아리아를 직접 유혹하려 했던 것이죠. 하지만 아리아를 특별히 아낀 바바 림은 이를 알고서 자신이 먼저 아리아에게 청혼해 그녀를 우이 탐바샤의 마수에서 구하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리아가 그런 사정을 알 리 없었습니다. 알았더라도 고마워했을 지는 알 수 없는 일이죠.
어머니와 언니가 밤새도록 기다렸지만 아리아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이 되고 다음 달이 되어도 아리아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몇 해가 더 지난 후에야 아리아의 어머니는 그녀가 안쫄 숲에서 야생동물에게 물려간 것이라 결론짓고 비로소 기다림을 접었습니다.
그러나 몇 년이 더 지난 후에도 아리아의 어머니는 여전히 아리아를 기억하며 애도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 다음 날은 아리아의 언니가 끄라맛 센티옹(Kramat Sentiong)에 사는 한 착한 남자에게 시집가는 날이었습니다. 언니의 결혼을 응원하던 아리아의 얼굴을 떠올리며 어머니는 더욱 슬픔을 가눌 수 없었습니다. 결혼식 손님들을 대접할 음식 재료가 충분치 않다는 현실적인 문제에도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렇게 번민하던 어머니는 잠결에 빠져들어 아름다운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꿈속에 아리아가 나타나 반갑게 손을 잡고서 자신이 왜 집에 돌아가지 못했는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자신이 그날 밤 우이 탐바샤가 보낸 두 명의 깡패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을요. 하지만 그녀는 어머니에게 슬퍼하지 말라 말하며 언니의 결혼식을 자신이 돕겠다고 했습니다.
잠에서 깬 어머니에게 가슴이 메어질 듯한 슬픔이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문 앞이 소란해져 나가보니 집 앞엔 아직도 펄펄 뛰는 수십 마리의 팔뚝만큼 큼직한 생선들과 수십 단이나 되는 나물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언니의 결혼식을 위해 아리아가 보내준 선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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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등장하는 우이 탐바샤는 1827~1856년 사이에 살았던 실존인물로 15세 때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습니다. 훤칠한 용모였지만 방약무인한 성격이었던 그는 지금은 뻐르니아가안 거리(Jl. Perniagaan Raya)가 된 빠떽완 거리(Jalan Pa Tek Wan yang)에서 술과 도박으로 돈을 물쓰듯 하는 방탕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가 잡화상의 아내였던 쿠진양(Khoe Tjin Yang)을 유혹한 이야기는 제법 유명합니다. 쿠진양이 결국 그의 유혹에 넘어가 안쫄 소재 빈땅마스(Bintang Mas)의 우이 탐바샤 저택 근처 별장에 들어가 그의 첩이 되자 아내를 빼앗긴 남편은 분을 이기지 못해 미쳐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현지 화교사회 지도자들이 모여 물의를 빚고 있던 우이 탐바샤의 문제를 진지하게 의논했지만 콩코안(Kongkoan) 의장인 당시 바타비아 시장 탄응고안(Tan Eng Goan)은 우이 탐바샤의 친척이었을 뿐 아니라 그의 선친에게서 경제적 도움을 입기도 했습니다. 그는 당연히 우이 탐바샤에게 우호적이었습니다.
바타비아 시장의 비호 아래 우이 탐바샤의 악행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시 유명한 뻐깔롱안 출신 무용수이자 가믈란 악단의 가수, 마스 아젱 군징(Mas Ajeng Gunjing)을 돈으로 유혹해 자신의 첩으로 삼았습니다. 마스 아젱 군징은 비할 바 없이 아름다운 자태를 하고 있었는데 그녀를 친오빠 수테조가 방문했습니다. 여동생의 미모만큼이나 수테조 역시 수려한 미남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을 본 우이 탐바샤의 마음 속에 밑도끝도 없는 질투의 불꽃이 활활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예의 자신의 수하 깡패인 삐운과 수라를 시켜 수테조를 죽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를 교수대로 이끈 것은 다른 사건입니다. 시장의 사위 림수켕(Lim Soe Keng)이 뻐깔롱안에 살다가 바타비아로 이사왔는데 젊고 잘생긴 그를 경쟁자로 인식한 우이 탐바샤가 림수켕의 하녀를 독살하고 그 죄를 림수켕에게 덮어씌우려 한 것입니다.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절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기어이 넘고 만 것이죠. 림수켕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었고 시장은 오히려 우이 탐바샤가 하녀 독살의 범인이란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우이 탐바샤를 비호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우이 탐바샤는 바타비아 시청인 스타두이스(Stadhuis) 건물 앞 광장 교수대에 서게 됩니다. 현재 자카르타 역사박물관이 되어 있는 곳입니다. 운집한 시민들 앞에서 우이 탐바샤는 숨이 완전히 끊어질 때까지 교수대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안쫄 다리의 유령이라고 여기는 시티 아리아를 우이 탐바샤가 생전에 납치하려다가 살해했다는 에피소드는 어떤 공식문서에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아리아가 실존 인물이었다는 증거 역시 없습니다. 하지만 우이 탐바샤가 저지른 악행을 감안하면 그런 일이 있었을 개연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하지만 우이 탐바샤가 그렇게 목 매달린 후 150년도 넘게 지난 지금 아리아는 어떤 풀리지 않은 원한이 있어 아직도 안쫄 지역을 배회하고 있는 걸까요?
분명한 것은 자신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려 애썼던 아리아가 안쫄 다리의 유령이 되었다면 최소한 지나는 남자들을 막무가내로 괴롭히는 싸구려 귀신일 리 없다는 사실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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