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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다 귀신들의 재발견 – (2) ‘주릭’이란 존재들

beautician 2021. 1. 25. 11:50

 

순다 귀신들의 재발견 – (2) ‘주릭이란 존재들

 

 

 

 

 

인도네시아어로 귀신, 영혼을 뜻하는 단어가 꽤 많은데 대략 이런 것들이다.

 

 

 

Hantu(한뚜)귀신

 

Setan (세딴)원래 일반적 귀신들을 지칭하지만 발음이 사탄에 가까워 2017CJ ENM이 투자하여 흥행한 <Pengabdi Setan>이란 영화는 <사탄의 숭배자>라고 번역되었다.

 

Dedemit(더더밋), Lelembut(럴름붓)이 두 단어는 주로 잡귀들을 뜻하는 것이라 보이지만 떄로는 꾼띨아낙, 건드루워 같은 메이저 귀신들까지 싸잡아 귀신들의 통칭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딱히 망자의 혼령을 지칭하는 말로는 쓰이지 않는 듯하다.

 

Penunggu(뻐눙구) – ‘기다리는 자라는 의미인데 지박령 또는 물귀신을 지칭한다

 

Roh()영혼. 사람의 영혼, 숲속의 정령, 눈에 보이지 않는 마물 등을 통칭.

 

Arwah(아르와)죽은 사람의 영혼

 

Jin()영어로는 dzinn으로 표기. 수련를 통해 도를 통달하고 영생을 얻은 인간이나 짐승이 신급 위상으로 업그레이드된 상태인데 신선보다는 악마에 가깝다.

 

 

 

대략 이 정도를 기본으로 깔면 심령, 무속관련 인도네시아 원문자료들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에 워낙 많은 부족들이 각자의 언어를 사용하다 보니 위와 같이 귀신을 뜻하는 단어들이 각 방언마다 다 따로 있는 모양이고 그 귀신들의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앞서 포스팅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북부 수마트라 바딱 지역에선 버구’(begu), 남쪽 빨렘방 근처에선 안뚜’(Antu) 등이 귀신을 뜻하는 단어인데 순다인들을 주릭’(Jurig)이라 부른다. 이번엔 순다의 귀신들 중 주릭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것들의 대략을 살펴보았다.

 

 

 

 

 

주릭 자리안(Jurig Jarian)의 전국적 인지도는 낮지만 순다에서는 나름 유명세를 가진 귀신이다. 그 진면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꾼띨아낙이나 노파, 동물 등 어떤 형체로든 현신할 수 있다고 하며 아이들에게 병을 일으키는 전염병 같은 귀신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주릭(Jurig)은 귀신이란 뜻이고 자리안은 쓰레기란 의미다. 그래서 주릭 자리안은 쓰레기 같은 귀신이 아니라 마을 쓰레기장에 사는 귀신을 말한다. 어떤 이들은 주릭 자리안이 민머리 어린아이로 현신한다고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 실체가 무시무시한 여자귀신이라 한다. 기본적으로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아주 일부에게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 시간이 대략 오후에서 해가 넘어가는 마그립 사이다. 그래서 순다인들은 그 시간쯤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것을 가능한한 삼간다.

 

 

 

주릭 자리안은 주로 아이들과 임산부에게만 따라붙는데 아이들에겐 열이 나고 온 몸에 가려운 돌기가 솟게 하는 등 앓아 눕게 하고 임산부에게는 빙의하여 괴롭힌다. 달라붙을 상대를 한정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귀신들에게 일반적인 것이 아니어서 주릭 자리안 귀신의 성격자체가 사뭇 작의적이란 생각이 든다. 이 귀신을 떨쳐내는 방법은 상대적으로 쉽다. 아이들의 경우엔 알꾸란의 아얏 꾸르시(Ayat Kursi)나 수라 야신(Surah Yaasin-야신의 편지 편)을 읽어준 후 소금 한 스푼을 섞은 물을 주면 된다. 그러면 귀신이 빠져나가고 아이는 서서히 회복된다. 임산부에게 빙의되면 쓴 커피나 어린 야자열매 야자수를 달라는 등 온갖 요구를 하는데 그걸 다 들어줘도 간단히 떠나지 않을 것이므로 반드시 축신 의식을 치러야 한다.

 

 

 

물론 이 괴담은 어린이나 임산부가 쓰레기장 같이 비위생적인 곳에 가까이 가지 않도록 만드는 순기능도 있어 지역사회에서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설이 설득력 있다.

 

 

 

 

 

주릭봉에(Jurik Bonge) 또는 주릭 부덕(Jurik Budek)이라 불리는 귀머거리 귀신은 자신이 붙은 사람을 잠시 귀머거리로 만든다. 주릭봉에란 말 자체가 귀머거리 귀신이란 뜻이다.

 

 

 

이 귀신은 인적이 뜸한 으슥한 곳에 사는데 때로는 자바의 기차 철길 주변에 산다고 한다. 주릭 봉에는 그곳을 지나는 사람의 귀를 멀게 하거나 길을 잃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사람이 신경쓰지 못하게 또는 알지 못하게 한다.

 

 

 

2008년 서부자바 가도방꽁(Gadobangkong) 마을에서 철길을 지나던 아르고 거데(Argo Gede) 열차에 치어 두 명이 죽은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이 주목을 끈 이유는 사망한 두 사람이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별로 크지도 않은 이 마을의 서로 다른 두 지점에서 각각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우연이기 힘든 일이어서 사람들은 철길에 사는 귀신 소행이라고 수군거렸다. 귀신이 희생자들의 귀를 멀게 해 기차가 다가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두 번째 희생자 청년은 고속으로 다가오던 기차가 멀리서부터 몇 차례씩이나 경적을 울렸지만 듣지 못한 듯 태연히 철길을 건너려 했다는 것이다.

 

 

 

이런 비슷한 얘기를 어린 시절 한국에서도 들은 적 있다. 학교 가던 길에 열차 건널목 철길 위를 보니 까투리 두 마리가 앉아 있는데 사람이 가까이 가도 달아나지 않아 까투리를 잡으려고 쫒아가는데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도 간발의 차이로 놓쳐 계속 따라가다가 열차가 다가오는 것을 까맣게 몰랐다는 괴담이었다. 누군가 급히 팔을 당겨 철길을 벗어나면서 간발의 차이로 사고를 피했는데 아까의 그 까투리들은 온데간데 없었고 주변 사람들은 그 아이가 뭔가에 홀린 듯 맹렬히 달려오는 열차는 아랑곳없이 아무 것도 없는 철길 위에서 소년이 뭔가를 잡으려고 온통 정신이 팔려 있는 모습만을 보았다는 것이다. 주릭봉에의 조화도 대략 그런 것이라 짐작된다.

 

 

 

주릭봉에는 주로 건널목에서 사람들 귀를 막아 사고를 유발한다. 주릭봉에 자신도 사고로 죽은 사람의 혼령이라 한다.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 무조건적 막무가내 복수심으로 다른 사람들을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죽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밥공기 장사의 괴담이 있다. 1942년에 그는 기차역에서 밥공기 등 그릇들을 팔고 있었는데 피곤에 지쳐 잠시 기차 레일을 배고 밥공기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서 잠이 들었다. 밥공기가 얼굴 전부와 귀까지 덮어 장사꾼은 주변상황을 전혀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이때 다가오고 있던 기차가 멀리서부터 그를 보고 경적을 울렸지만 이를 듣지 못한 장사꾼은 결국 기차에 치어 즉사하고 말았다. 그후 그 밥공기 장사꾼의 혼이 철길 주변을 떠돌며 사람들의 귀를 막아 자신과 똑같은 방식의 죽음을 맞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 주릭봉에 괴담은 아직도 자바 여러 곳에서 회자되고 있다.

 

 

 

 

 

주릭들 중에는 주릭공고(Jurik Gonggo)라는 놈도 있다. 공고(gonggo)는 순다어로 작은 다리를 의미하는데 순다 지역에서는 크고 작은 다리마다 괴담이 하나씩은 있다.  주릭공고가 노리는 대상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자전거나 베짝을 타고 지나는 이들에게 주로 나타나는데 속도가 느린 운송수단이 주 대상이라면 차량들이 고속화 된 요즘 세상엔 적응이 힘들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이 귀신을 만나면 자전거나 베짝을 밟는 페달이 몇 배로 무거워져 마치 짐을 잔뜩 싣고 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다리를 지나고 나면 귀신도 떨어지고 그런 무거운 느낌도 사라진다고 한다.

 

 

 

 

 

주릭라욱(Jurik Lauk) 즉 물고기귀신(Hantu Ikan)은 양어장이나 낚시터에 나타난다. 이를 실제로 보았다는 낚시꾼들도 많다. 연못 위를 날아다니는 발광체 모양으로 나타나곤 하는데 이는 오래 묵은 물고기가 죽어 혼이 된 것이라 한다. 또는 낚시를 문 거대한 물고기로 나타나기도 하다고 하는데 낚시꾼과 눈을 맞추고 눈을 껌뻑이면 바로 그게 주릭라욱이라 한다.

 

 

 

주릭은 보통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알꾸란의 수라 야신(야신의 편지)33번 읽으면 귀신을 맨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어쩌면 그래서 귀신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인도네시아인들이 넘쳐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순다의 주릭들은 이외에도 얼마든지 많은데 잘 알려진 자바의 메이저 귀신들과는 확실히 많은 차이점이 보인다. 조금 더 전원적, 원초적, 낭만적이라 해야 할까? ()

 

 

2019. 4. 22

 

 

 

참고자료

 

https://www.tanahnusantara.com/grandong-sosok-makhluk-halus-yang-di-takuti/

 

http://www.infoglobalkita.com/2018/09/inilah-jenis-jenis-hantu-di-tanah-sunda.html

 

https://www.viralkata.com/open-casting-film-horor-jurig-butuh-banyak-model/

 

https://www.adasaja.net/2017/01/kisah-legenda-hantu-jurig-bongebudek.html

 

http://gajahh.com/cerita-mistis-jurig-bonge/

 

https://nasional.kompas.com/read/2008/05/13/06173748/Hiiiy.Ada.Jurig.Bonge.di.Lintasan.Kere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