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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낭까바우의 전설과 괴담 본문
미낭까바우의 전설과 괴담
미낭까바우는 전통적 관습이 인도네시아의 다른 어느 곳보다 강한 곳이다. 미낭(Minang)이라고 즐겨 줄여 부르는 서부 수마트라 지역 미낭까바우(mingakabau)는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독특한 문화적 특징을 지니고 있어 이런 내용들이 <시티 누르바야>난 <판데르베익호의 침몰>같은 미낭카바우 출신 작가들의 고전소설에서도 많이 엿보인다 .그중 가장 독특한 것은 현재도 한 가문의 정통성이 모계로 이어져 내려간다는 점일 것이다. 그런 독특한 문화가 고착화되어 있고 좀처럼 다른 문화나 트랜드를 받아들이지 않는 고집불통. 그러나 모하마드 하타 초대 부통령 같은 걸출한 인물들도 이 지역에서 많이 나왔다.
미낭까바우 지역의 무속이나 괴담 역시 사뭇 독특하다. 물론 섬들 사이의 장기간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어느 정도 자바 무속의 영향을 받은 흔적을 숨기진 못한다. 하지만 미낭 지역에선 뽀쫑이나 꾼띨아낙은 그리 유명하지 않다. 미낭까바우의 귀신들은 다른 곳에서 만나기 힘든 것들이 대부분이다. 무속 역시 전통문화의 일부인만큼 다른 지역에 비해 미낭까바우의 전설과 괴담을 통해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살짝 엿볼 수 있다.
미낭까바우의 마물들과 귀신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1. 시암빠 (SIAMPA)
시암빠(Si Ampa)는 ‘암빠라는 놈’ 정도의 의미다. 시암빠는 사람이 살지 않는 오래된 건물이나 주변 나무들과 얼기설기 얽힌 거대한 나무에 깃들어 산다. 몸집이 거대하고 두 눈은 타오르는 듯한 붉은 색이다. 이 마물은 자고 있는 사람을 덮쳐 짓누르거나 목을 조른다고 한다. 인상착의는 자바의 건드루어(Genderuwo)와 매우 흡사하고 다짜고짜 폭력적이다.
2. 한뚜 술루아 (HANTU SULUAH)
한뚜 술루아는 언덕이나 대나무숲에 산다. 마치 불덩어리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그 숫자가 많고 마그립을 알리는 아잔 노래소리가 끝나갈 즈음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산뗏 저주술 두꾼이 어떤 목표를 향해 저주를 보낼 때 한뚜 술루아의 불덩어리 형태로 발현되어 날아간다고 한다. 그건 마치 자바의 불귀신 바나스빠티(Banaspati)의 특성과 흡사하다. 하지만 누군가 불꽃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으면 불꽃은 급히 사라진다. 한뚜 술루아는 경우에 따라 희생자를 태워버릴 수도 있다.
3. 이니약 (INYIAK)
원래 이니약(Iniyak)은 각 집안의 최고 어른을 칭하는 호칭이었다. 예전에는 집안의 어른이 가문을 위한 주술을 관장하는 최고 주술사이기도 했으니 주술과 관련된 호칭을 갖는 것은 일견 당연한 일이다.
이니약에 관련된 에피소드는 매우 다양하며 이는 미낭까바우에서는 백마술로 분류되어 가문의 비전으로 후대에 전승된다. 이니약 주술을 시전하는 집안 어른은 주술을 호랑이로 변신시켜 자신과 집안을 보호하는데 이 호랑이는 외부인들에겐 맨눈으로 보이지 않고 오직 그 가문의 사람들에게만 보인다.
하지만 이니약의 특징과 용도는 지역과 가문에 따라 각각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이니약은 원래 호랑이 요괴로 예전엔 도력높은 도사들이 애완용으로 곁에 두곤 했다. 이니약은 늘 주인 곁을 떠나지 않고 악당들로부터 주인의 집과 재산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다가 주인이 죽어도 이니약은 사라지지 않고 수호령으로서 주인의 가문을 지킨다.
마을이나 인근에서 잔치를 베풀 때엔 반드시 이니약의 몫을 떼어 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니약은 잔치음식들이 아무 맛도 나지 않게 만들고 부엌에 나타나 일대 소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4. 빨라식 꾸두앙 (PALASIK KUDUANG)
빨라식은 흑마술을 배운 사람이 변신한 것으로 그 정도 수준이 되려면 해당 흑마술의 상당한 성취를 이루어야 한다. 이 흑마술은 7대에 걸쳐 전승되어 내려가지만 8대째에는 전승이 끊긴다고 한다. ‘7’이란 숫자는 특히 세대를 논할 때엔 인도네시아에서도 꽤 특별한 의미를 가진 듯하다.
빨라식은 날아다니는 머리통으로 아기의 피를 빨아먹지 못하면 자기가 죽는다. 빨라식이 인간의 모습을 한 상태로 아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피를 빨아먹을 수 있어 매일 찾아오는데 빨라식의 타겟이 된 아기는 삐쩍 마르고 골골 앓게 된다. 하지만 보다 적나라하게 몸에서 분리된 머리통 귀신으로 변신해 아기에게 달려드는 경우도 많다.
밤하늘을 날아온 빨라식은 아기의 목덜미를 물어뜯어 피를 빨아먹는다. 이런 류의 빨라식을 빨라식 꾸두앙(palasik kuduang)이라 하는데 꾸두앙(Kuduang)이란 미낭까바우 방언으로 ‘싹둑 잘림’이란 의미다. 빨라식 꾸두앙은 다른 류의 빨라식들보다 훨씬 위험하다.
빨라식은 몸은 집에 둔 채 머리통만 분리되어 날아다니며 먹이를 찾는데 주로 아직 산모의 태 속에 있는 태아나 갓난아이를 노린다. 몸통도 머리 없이 따로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몸통은 머리 잘린 시체처럼 무방비상태로 널브러져 있게 되기 때문에 빨라식은 두고 온 몸에 위험이 닥치지 않도록 사전에 조심하고 여러 조치를 준비해 놓는다.
빨라식 예방을 위해서는 외쪽마늘과 가위 또는 바늘같이 날카로운 물체를 아기 가까이에 두어야 한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정향(cengkeh), 심황 (kunyit-노란 생강), 검은 후추콩(merica hitam), 삐낭 시나왈(pinang sinawal-아레카너트), 마늘(bawang putih), 육두구(buah pala)를 넣은 천주머니 같은 것을 목걸이로 만들어 산모가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거나 갓난아이 곁에 놓는다.
인간 상태의 빨라식은 코와 윗입술 사이 인중의 홈이 없거나 매우 희미하다. 왜 그런지, 어디서 유래된 이유인지는 모르나 마물이나 귀신들을 알아보는 방법으로 인중의 홈에 주목하는 경우가 인도네시아엔 꽤 많은 듯하다. 인간과 마물을 구분하려면 (마치 일반인과 사기꾼을 분별하듯) 디테일에 주목하라는 의미겠지만 인중의 홈은 너무나 쉽게 눈에 띄는 곳 아닌가?
빨라식을 죽이려면 머리가 분리되어 먹이를 찾아 날아간 사이 빨라식의 본체인 몸을 찾아 목 부분에 대못을 박아 꿰뚫어 놓으면 나중에 머리가 돌아와 합체하지 못해 죽게 된다고 한다.
빨라식 중에 쩨쩨하게 집집마다 날아다니며 요리한 른당(Rendang – 미낭식 소고기 조림)을 얻어먹는 놈도 있는데 이들은 빠낭가(Panangga)라 부른다.
5. 한뚜 아루아루 (Hantu Aru-aru)
한뚜 아루아루는 빈 집이나 큰 나무에 깃들어 살며 해가 지도록 밖에서 노는 아이들을 숲으로 납치해 간다.
아이가 아루아루를 따라가는 이유는 아이의 눈에 보이는 것들은 실제와 달리 아름답고 즐거운 세계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집으로 돌아갈 길을 알 수 없는 장소에서 높은 나무 꼭대기에 올라앉아 있곤 한다. 그러면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 아이를 찾아 나선다.
사람들은 대나무에 홈을 낸 끈똥안(Kentongan)을 두드리면서 사라진 아이 이름을 부르며 숲속을 수색한다. 그렇게 해서 발견된 아이는 이제 해가 지기 전에 반드시 집에 돌아갈 것이다. 전반적인 특징은 자와의 웨웨곰벨과 흡사하다.
6. 오랑 부니안 (Orang Bunian)
오랑 부니안은 사람과 흡사하지만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전설에 따르면 오래 전 어느 가문에서 큰 연회를 베풀어 손님들을 잔뜩 초대해 음식을 대접했는데 그중엔 고양이 고기로 만든 요리도 끼어 있었다. 초대된 손님들 중엔 카로마 비전을 전승한 도력높은 도인이 있었는데 그는 고양이를 매우 좋아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래서 그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고양이를 불러 음식을 나누어주곤 했다.
그러나 그가 고양이를 부르자 그의 도력에 영향을 받은 고양이고기 요리가 고양이로 변해 그에게 대가왔다. 도사도 당황했지만 연회를 베푼 주인은 그 상황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웠다. 그는 부끄러움에 못이겨 자신과 자신의 가문이 사람들 눈에서 사라지도록 해 달라고 도사에게 간절히 부탁했고 도사는 그 요청에 따라 집 주인과 그 가문의 모든 것들이 맨눈에 보이지 않게 해 주었다.
그리하여 숲 속 깊은 곳에 살게 된 오랑 부니안(눈에 보이지 않아 ‘소리만 들리는 사람’들이란 의미)들은 숲에 들어온 사람들이 길을 잃게 만든다. 길을 잃은 사람은 갑자기 자신이 아름다운 저택의 잘 차려진 식탁 앞에 앉아 있어 음식을 집어먹지만 사실 그가 먹는 것은 개미알들이다. 오랑부니안들이 전에는 인간이었는지 몰라도 유령 같은 존재가 된 이후 정말 귀신들이나 하는 짓을 하고 다니는 것이다.
서부 깔리만탄에도 오랑 부니안이란 같은 이름의 보이지 않는 종족이 있는데 이들은 오히려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이들을 도와주고 때로는 영토를 지키려는 전쟁에도 인간을 도와 참전한다.
7. 시준다이 (Sijundai)
시준다이는 머리칼이 길고 온 몸도 긴 털로 뒤덮인 모습으로 큰 나무에 깃들어 살며 긴 머리칼을 마치 반얀나무 뿌리처럼 늘어뜨리고 있다. 그러다가 자신이 사는 곳 아래를 지나는 사람을 붙잡아 죽을 때까지 간지럼을 태우는 장난질을 치기도 한다. 그런데 시준다이는 불이 자기 털을 태울까 두려워하므로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밤에 숲속을 지날 떄 꼭 횃불을 들고 가는 것이다.
유명한 이슬람 성직자이자 정치가이기도 했던 함카(Hamka)의 소설 <판데르베익호의 침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물론 우리 빠레와들의 극복방식은 똑같은 고통을 줘서 복수하는 거고요. 너무 미워한 나머지 저주술을 건 범인을 찾아내 용한 두꾼을 시켜 여자가 남자와 이혼하거나 미쳐버리도록 시준다이(sijundai)나 빠렌당안(parendangan) 같은 흑마술을 걸어버리는 거죠.
이처럼 시준다이는 미낭까바우 사람들에게는 옛날부터 익숙한 귀신이자 주술이다.
8. 찐다꾸 (Cindaku)
찐다꾸는 원래 호랑이를 닮은 마물인데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으로 변한 찐다꾸는 코와 윗입술 사이 인중에 홈이 없어 그걸 보고 사람이 아님을 알아볼 수 있다 (또!!)
사람으로 변신해도 발은 여전히 호랑이 발로 남아 있는 것도 그 증거다. 사람뿐 아니라 교량 같은 물체로도 변신할 수 있다.
9. 한뚜 뻠부루 (Hantu pemburu – 사냥꾼 유령)
한뚜 뻠부루는 인간의 몸에 개의 머리를 달고서 밤에 개처럼 짖으며 마을을 돌아다닌다. 이 귀신이 걸어다닐 때 사슬이 끌리는 소리도 들리는데 이는 다리에 사슬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뚜 란따이, 즉 사슬 유령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외에도 어딘가 한뚜 아루아루와 시준다이를 섞어 놓은 듯한 특성의 한두 블라우(Hantu Blau), 이미 죽은 주술사가 내뿜는 흑마술이 발현되어 여러 형태로 변신하는 한뚜 반자디안(Hantu Panjadian), 대개 대나무나 아름드리나무 밑에서 아기 우는 소리로 나타나는 유산된 아이의 유령, 한뚜 응이엑(Hantu Ngeak), 가죽 벗겨진 물소 형태로 나타나는 한뚜 까바우 바꾸박(Hantu Kabau bakubak), 멧돼지들의 수호신으로 멧돼지 사냥을 하러 숲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수렵허가를 기원하는 시비가우(Si Bigau), 오래된 반얀나무 둥치에 살며 사람들에게 떼로 달려들여 간지럽혀 사람이 기절하거나 옷에 오줌을 싸도록 만드는 아낙로떼(Anak Rote) 등도 있다.
참고자료
http://nagaritabekpatah.blogspot.com/2012/04/sebutan-hantu-di-minangkabau.html
https://www.kompasiana.com/irvon/5ed5f6c4d541df7b9300d384/bermcam-jenis-hantu-di-minangkabau?page=3
https://www.infosumbar.net/berita/berita-sumbar/4-nama-hantu-di-minangkabau/
https://dianalst.wordpress.com/2015/06/21/si-bigau-orang-pendek-di-gunung-singgal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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