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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은행 끌라빠가딩 지점

beautician 2011. 11. 30. 02:07

외환은행 끌라빠가딩 지점

 

 

인도네시아에서 달러를 거래하면서 겪게 되는 온갖 코미디들은 인니 땅을 갓 밟은 신참들에게는 머리에 쥐나는 일이 아닐 수 없지만 현지에서 어느 정도 내공이 쌓인 분들에게는 하나도 새삼스러울 게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기가 차고 어처구니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가 언제나 빠닥빠닥하고 빤짝빤짝거리는 신품으로 거래되고 있어서 달러 등 외화에도 같은 정도의 지폐 상태를 요구하는 것이라면 비록 그것이 다른 나라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백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지만 현지 루피아화는 대개의 경우 똥통에 빠졌다 나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지저분하고 닳고 닳은 상태로 유통되면서 유독 달러 등 외화지폐들은 눈을 까뒤집고 봐야 보일 듯 말듯한 손상이나 미세한 오염만 있어도 받으려 들지 않고 급기야 지갑에 넣었다가 접힌 자국도 용납하지 않고 불리한 환율을 적용받아야 하는 것이 인도네시아 환전시장의 현실이지요. 그래서 루피아화는 지갑에 넣고 다니면서도 유독 달러화만은 봉투에 넣어 구겨지지 않도록 신주단지 다루듯 가방 속에 넣고 다니는 것이죠.

 

게다가 미화 100불짜리 지폐면 인니인 대다수의 1개월 월급에 육박하는 100만 루피아 가까이 되는 거금인데 웬만한 현지 은행에서는 100불짜리 이하의 지폐들은 받지도 않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한국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한국계 은행에서조차 100불 이하의 지폐엔 처벌적 불리한 환율을 적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이 인도네시아에서는 엄연한 현실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할지라도 지극히 부당하고 이치에 닿지 않는 일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은행 창구의 직원들이나 환전소 주인에게 설명하고 설득, 이해시킨다 하더라도 돌아오는 대답은 늘 뻔합니다.

 

하지만, 그게 중앙은행 (BI) 규정이라서요….

 

깝깝하지요.

참 희안한 규정들이 많은 나라입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가 모든 규정들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잘 지켜서 부정부패가 하나도 없는 깨끗한 나라라면 이런 환전 규정 때문에 억울할 일도 절대 없을 것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이런 번거로움을 피하려고 보다 우호적이고 보다 원활한 소통이 가능한 한국계 은행을 사용하는 것이 인도네시아에서, 그나마 자카르타나 그 인근에서 사는 한국인들의 최선의 선택이자 혜택인 것이고 그 우호소통이 현지에서 보잘것없는 지점망을 갖춘 한국계 은행들을 내로라하는 여타 현지 은행들로부터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일 것이고 그것은 비단 우리은행과 외환은행뿐 아니라 자카르타 시내에 지점 내지는 출장소를 달랑 한 개씩만 가지고 있는 외국계 은행들 대부분에게도 해당되는 얘기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선택한 한국계 은행에서조차 현지은행과 다를 바 없는, 때로는 그보다 훨씬 못한 경우를 당하게 된다면, 그래서 정말 열받고 억울한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지폐들은 받을 수 없으니 환전소에서 새 돈으로 바꿔 오세요.”

 

이 얘기를 시장통의 가게나 하다못해 백화점 카운터에서 들었다면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이 얘기를 들은 곳은 외환은행 끌라빠가딩 지점의 창구였습니다. 은행직원이 고객에게 환전소에 가서 달러를 빳빳한 새 돈으로 바꿔 오라고 요구하는 것은 한국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 창구 여직원은 너무나 당당하게, 심지어 책망하는 듯한 태도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므로 비록 인도네시아가 그런 나라라는 것을 백번도 넘게 절감했으면도 또 스팀이 끓어 오르고 말았습니다.

 

아니, 이것도 틀림없는 돈인데 받을 수 없다니? 어떻게 좀 해 봐요! 하다못해 환율을 깎더라도 여기서 해결을 봐야지!? 은행에서 고객을 환전소 보내서 돈 바꿔 오라는 경우가 어디 있어요?”

그럼 달러를 그만큼 새로 사세요. 오늘 환율은요….”

 

달러를 들고 갔는데 그 돈 구겨져서 받을 수 없으니 새로 루피아 내고 은행에서 달러를 또 사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환율이라는 게 장난이 아닙니다. 만약 1천불쯤을 은행이 제시하는 환율대로 산다면 환전소에서 사는 것보다 10만 루피아, 한화로 12천원 정도 손해를 보게 되기 쉽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호텔에서 돈을 바꾸는 인간이 제일 바보고 그 다음 바보는 자카르타 공항 환전소에서 환전하는 사람이지요. 공항 환전소는 환전소라기보다는 인도네시아에 막 도착한 초심자들을 말도 안되는 환율로 등쳐먹는 곳이라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은행 창구에서 얘기하는 환율대로 환전하는 인간도 만만찮은 바보에 속하는 거죠. 대개의 경우 외국계 은행 벽면 전광판에 공시되어 있는 환율은 공항 환전소를 제외한다면 자카르타 제일 후미진 곳에 처박힌 환전소만도 못하니까요.

 

이거 봐요. 내가 할 일이 없어서 이렇게 일불 단위까지 다 환전해서 가져온 줄 알아요? 이걸 다시 환전해서 가져올 만한 현금도 당장 없어요. 좀 어떻게 해 보라니까! 정 안되면 환율이라도 까세요. 그만큼 루피아로 더 지불할 테니까!!”

이 돈 못받는다니까요. 규정이 그래요. 새 걸로 바꿔 오세요.”

 

창구 여직원은 고개를 꼿꼿이 세운 채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고 난 이제 더 열을 받습니다.

 

사실 몇 백불 더 환전할 루피아화는 BCA 은행 ATM에서 찾아 올 수도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아니, 어쩌면 문제는 간단할 지 몰라도 내 생각구조가 그렇게 단순하질 못합니다.

 

내가 인도네시아에서 처음 우리은행에 구좌를 튼 것이 1995년의 일입니다. 당시에는 한일은행 자카르타 지점이었죠. 그게 한빛은행이 되었다가 나중에 우리은행으로 다시 이름을 바꾼 거죠. 우리은행이라고 해서 모든 게 훌륭하고 뛰어나기만 한 것만은 아니고 인도네시아에서 십수년을 붙박이로 살아가는 사람의 시점에서는 쉴새 없이 교체되어 돌아가는 지점장과 예하 직원들의 업무능력이나 성격에 따라 칭찬을 듣기도 하고 욕을 먹기도 하지만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우리은행만 줄곧 거래해 온 이유는 물론 기왕에 사용해 온 구좌를 바꾸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은행의 전반적인 서비스에 별다른 불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내가 우리은행에서 대출이라도 받으려 했다면 지금 다른 얘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나 내가 하는 은행업무란 대부분 창구에서 돈을 넣고 빼고 송금하고 이체하는 정도의 일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굳이 외환은행에 구좌를 새로 튼 이유는 아무리 기다려도 우리은행은 끌라빠가딩에 지점을 낼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그러는 사이 외환은행 지점이 아르타가딩 몰 (Mall Artha Gading) 옆 건물에 들어오고 현지은행을 인수한 하나은행의 지점도 끌라빠가딩 몰 (Mall Kelapa Gading) 건너편에 생겼습니다. 우리은행으로서는 아무래도 대규모 신발공장들이 몰려 있는 땅거랑 지역 카라와치에 지점을 내는 것이 훨씬 유리한 일이었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지만 끌라빠가딩에 있는 내 사무실에서 시내 우리은행을 가려면 도심 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 전후의 시간을 달려 가야 했고 때때로 길이 심하게 막히는 날이면 오후 3시의 마감시간을 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지요. 그래도 외환은행 지점이 끌라빠가딩에 들어온 지 몇 년 동안 줄기차게 시내 우리은행을 고집하며 사용해 오다가 소액 송금할 일이 점점 많아지면서 급기야 외환은행에 구좌를 트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시간을 절약하려고 우리은행에서 외환은행으로 갈아탔던 것이죠.

그러니 환전소에 가서 달러를 다시 바꿔 오라는 외환은행 창구직원의 말에 복창이 터지는 것입니다. 환전소 가서 달러 달라고 하면 당장 내 줍니까? 그만큼 루피아를 들고 가서 바꿔야죠. 강도도 아닌데.  , 그럼 외환은행에서 출발해 바로 옆 아르타가딩 몰에 들어가 BCA ATM에서 돈을 뽑아야죠. 그것도 몰이 문을 연 오전 10시가 넘은 시간이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BCA 다른 지점을 찾아 좀 더 차를 달려야 합니다. 그런 다음 환전소를 찾아가 줄을 서야죠. 그렇게 해서 바꾼 돈을 들고 다시 외환은행으로 달려와야 하는 겁니다. 아무리 끌라빠가딩 안에서만 이동하는 거라 해도 최소한 30분 이상 걸리는 일이고 재수가 없이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1시간 정도 걸리기도 합니다. 이게 시간 절약이 되는 겁니까?

 

그게 싫다면 벽면 전광판에 표시된 말도 안되는 환율로 외환은행에서 달러를 사야 하지만 당장 지갑에 현금이 없으니 그 경우에도 BCA ATM에서 돈을 찾아 와야 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환전하시는 돈이 2천불 이상이면 한국인 매니저가 특별 환율을 적용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이 말에 더 열불이 터지죠. 내가 추가로 바꿔야 할 달러는 절대 그 정도까지 될 리 없으니까요.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바꾸고자 하는 금액이 얼마이든 관계없이 창구 담당 한국인 직원에게 요청하면 전광판의 환율과는 전혀 다른 우호적인 환율을 결정 받을 수 있는 우리은행과 더욱 비교되었습니다. 물론 그 우리은행도 최근 몇 년간 내가 주로 방문하던 11-오후 2시 사이엔 그 창구 담당 한국인 직원이 점심식사, 접대 등의 이유로 늘 자리를 비우고 있어 다른 한국인 당직자를 찾아 은행 안의 다른 방, 다른 자리들을 기웃거려야 했지만 언젠가 우리은행의 고객 서비스 문제가 인도웹에 떠 대대적으로 성토된 후부터 이젠 우리은행 창구 근처에서 한국인 직원을 찾는 건 언제라도 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외환은행 창구 직원과 설전을 벌이는 11 21일 오전 11시 당시에는 한국인 매니저가 끌라빠가딩 지점 자체에 와 있지 않았습니다.

 

은행규정을 받아 들일 수 없으면 한국인 매니저랑 얘기하라고 해!”

 

정작 한국인 매니저가 없으니 참 여러 명이 한국인 매니저를 입에 올립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남자 직원은 몇 개월 전 내가 외환은행에 구좌 트는 것을 도와주었던 나이 지긋한 친구인데 당시에도 어쩌다가 얘기가 자원사업 쪽으로 흐르자 갑자기 자신이 깔리만탄에서 니켈 광산 하는 사람을 소개해 줄 수 있다며 넓은 오지랍을 과시했었죠. 창구 앞에서 내 언성이 높아지자 이 친구는 창구 직원에게 그렇게 지시하듯 소리치지만 나 들으라는 소리겠죠.

 

문제 해결해 달라는데 당신들이 해줄 수 있는 게 고작 한국인 매니저한테 내가 직접 전화해서 부가해야 한다는 얘기야??”

한국사람들끼리 얘기해 보라니까.”

 

눈에 불똥이 튀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순간 한국인 직원이 이 지점에 있었다면 창구직원이 저렇게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규정 운운 할 수 있었을지, 이 남자직원이 한국인끼리 얘기하라고 비아냥거릴 수 있었을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금해야 할 적지 않은 거래선들을 향해 점심시간 전에 출발하기 위해 은행 일을 빨리 끝내려고 서둘렀던 것인데 이제 외환은행에서는 더 이상의 진전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우리은행으로 내달려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미 몇 군데 버카시(Bekasi) 등 반대방향의 거래선들은 오늘 방문할 수 없게 되는 것이죠.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는데 거의 폭발 직전까지 열을 받은 나는 창구 직원이 들고 있던 내 통장과 달러지폐들을 낚아 채고 그걸로 창구 앞 나무선반 부분을 내려치면서 소리질렀어요.

 

이게 은행 서비스냐??”

 

그리곤 그냥 나갔어야 하는데 나 때문에 홀 소파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던 한국인 한 분 그리고 몇몇 인니인들에게 인니어로 퉁명스럽게 내뱉고 말았습니다.

 

은행 바꾸세요!”

 

폭풍처럼 홀을 가로질러 나가면서 한마디 더 덧붙였습니다.

 

나라를 바꾸든가!!”

 

….

외환은행 끌라빠가딩 지점에서 나 때문에 11 21일 아침 좋은 하루의 출발을 망친 분들께는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도 없이 길어져 버린 이 이야기는 시내 증권거래소 건물 16층의 우리은행에서 마침내 끝납니다.

그날은 SEA 게임 축구 결승전이 스나얀 경기장에서 있던 날이었죠. 전날부터 매표소에서 밤을 지새운 사람들은 결국 표를 구하지 못하자 매표소에 불을 지르는 소동을 벌였고 경기 몇 시간 전에 인근 자카르타 도로는 극심한 정체를 빚었죠. 난 운좋게도 그런 상황이 벌어지기 직전 우리은행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송금을 마치기까지 불과 5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우리은행도 지폐의 육안검사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외환은행에서 문제 삼았던 달러 지폐들을 우리은행에서는 군소리없이 모두 받아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외환은행을 성토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태생적인 차이는 극복하기 힘든 것이죠. 수십년간 준공무원 조직과도 같았던 외환은행이 민간은행으로 잔뼈가 굵은 우리은행을 어느날 갑자기 고객서비스면에서 추월해 버린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요. 게다가 한국 매니저가 없는 상황에서 현지직원들만 있던 지점에서 겪은 일이니 외환은행 인니지점의 한국인 직원들을 싸잡아 매도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뭔가 좀 달라야 한다는 얘기만은 꼭 하고 싶습니다.

외환은행을 비롯해 인도네시아에 지점을 낸 한국계 은행들이 대책없는 규정들을 들이밀며 고객들 위에 군림하려 하는 현지 은행들과 뭔가 분명히 다른 점이, 분명히 나은 점이 있어야 한다고요. 그것은 최소한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우호소통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인데 내가 11 21일 외환은행 끌라빠가딩 지점에서 겪은 이 에피소드에서 뭐가 우호였고 어느 부분이 소통이었을까요? 눈 씻고 찾아 봐도 없죠.

 

위폐가 아닌 한 달러 지폐에 미세한 흠이 있다고 해서 불리한 환율을 적용하는 것은 분명히 비상식적인 일입니다. 하물며 그런 지폐를 아예 취급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매우 불공정한 일이지요. 그런 몰상식적인고 불공정한 규정이 인도네시아에서의 보편적인 관행이고 인니 중앙은행이 인정하는 것이라 해도 환전소도 아니고 헛바람만 잔뜩 든 현지은행도 아닌 한국계 현지 지점에서조차 앵무새처럼 인도네시아 중앙은행 규정을 운운하며 이런 몰상식을 고객들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부분은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정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환전소 가서 빳빳한 달러로 바꿔 오라고 하기 전에 최소한 은행 창구 옆에 다리미라도 한 대 갖다 놓고 구겨진 달러를 다려서 펴주려는 성의라도 보여줄 수는 없는 것일까요?

 

2011.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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