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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근대사

자바 전쟁 (3)

beautician 2018. 6. 11. 10:00


자바 전쟁 (3)



여기서 잠시 디포네고로 왕자의 부인들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 할 듯 합니다. 후궁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는 열등감으로 왕위까지 사양했던 그는 의외로 8명의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어떤 문헌에서는 9명까지 헤아리기도 합니다.



뜨갈레죠는 마글랑군의 중앙 부분에 위치합니다.


 

그는 1803 10월 하멩꾸부워노 1세의 정실이었던 증조할머니를 여읜 후 더욱 이슬람에 심취했는데 증조할머니의 죽음이 그 계기가 되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디포네고로 왕자는 뜨갈레죠 일대에 사는 울라마들과 유대관계를 강화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족자 북쪽 슬레만(Sleman) 지역 이슬람 선생의 딸과 소박한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데 신부의 이름은 라덴 아유 렛노 마두브롱토(Raden Ayu Retno Madubrongto) 였습니다. 다다빤의 이슬람 큰 선생의 둘째 딸로 아버지는 뜸뻴(Tempel) 가까이 다다빤 마을의 존경받는 울라마였습니다. 마두브롱토는 디포네고로 왕자의 첫 번째 부인입니다. 라덴 아유 렛노 마두브롱토는 잘 생긴 아들을 낳아 라덴 마스 온또위료라는 디포네고로 왕자의 어린 시절 이름을 붙여주는데 1825 8월 이후엔 디포네고로 2세 왕자, 1830년 이후엔 라덴 만뜨리 무하마드 응아립(Raden Mantri Muhammad Ngarip)이라 불린 인물입니다 그는 훗날 바닷 디파나가라 수리아 알람(Badad Dipanagara Surya Alam)이라는 예언서 성격의 책을 쓰기도 했는데 거기서 아버지의 종교적 의무를 다함에 있어 자신의 어머니가 늘 그 곁을 지켰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807년엔 지빵 빠놀란(Jipang Panolan)의 영주 뚜먼궁 나타위자야 3(Raden Tumenggung Notowijoyo III)의 여식 라덴 아젱 수빠드미와 두 번째 결혼식을 올립니다. 그녀는 화교 혼혈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디포네고로 왕자의 아버지 술탄 하멩꾸부워노 3세가 여러 정치적 이유로 라덴 아젱 수빠드미(Raden Ajeng Supadmi – 이후 라덴 아유 렛노꾸수마(Raden Ayu Retnokusuma)라고 불림)와 보다 호화로운 결혼식을 올리도록 종용하였고 디포네고로 왕자가 마침내 이를 수용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는 수빠드미를 결혼 2개월 전에 처음 만나 얼굴을 익혔지만 그리 탐탁히 여기지 않은 것 같고 그것은 어쩌면 그녀의 화교 혈통과 관련이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디포네고로 왕자는 네덜란드인들뿐 아니라 화교들 역시 이슬람을 훼손하는 이교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대한 결혼식이 1807 2 27일 거행되었는데 그 세부적인 행사내용이 당시 지방총독의 문서에 남아 있습니다. 지방총독이 결혼선물로 길이 1.5미터짜리 문서기록용 가죽을 바쳤습니다. 그들의 결혼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디포네고로 2세 왕자의 기록에 따르면 왕자는 한번도 아내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고 그들 사이의 유일한 아들을 낳은 후 거의 별거에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라덴 아유 렛노꾸수모는 줄곧 족자의 끄라톤 궁전에 살았는데 매우 오만한 성격이었고 디포네고로 왕자의 첫 부인 라덴 아유 마두브롱토를 함부로 대했다고도 전해집니다. 물론 이 이야기를 기록한 디포네고로 2세 왕자는 정실 마두브롱토의 아들로서 두번 째 부인 수빠드미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을 만한 인간적인 이유를 얼마든지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튼 수빠드미가 1808년에 낳은 아들은 디포닝랏 왕자(Pangeran Diponingrat) 1856년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집니다.

 

1808년에 디포네고로 왕자는 라덴 아유 렛노데와티를 세 번째 아내로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아직 뜨갈레죠에 살던 시절, 그러니까 자바 전쟁이 시작되기 전, 마두브롱토와 렛노데와티는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1810년 초 디포네고로 왕자는 다시 길을 떠나 왕국의 동쪽지역을 여행하던 중 라덴 뚜먼궁 롱고 빠르위로슨티코 (Raden Tumenggung Ronggo Parwirosentiko)의 딸 라덴 아유 찌트로와티(Raden Ayu Citrowati)와 네 번째 결혼식을 올리며 어찌된 일인지 동시에 또 한 명의 후궁도 들였는데 그 후궁이 바로 고아 슬라롱 지역까지 디포네고로 왕자를 따라 나선 라덴 아유 랏나닝시(Raden Ayu Ratnaningsih)입니다. 라덴 아유 찌트로와티는 출산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안타깝게도 마디운에서 벌어진 폭동에서 진압군으로 나선 네덜란드군에게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상심한 디포네고로 왕자는 그녀가 낳은 아이를 절친인 끼뗌비(Ki Tembi)라는 사람의 손에 맡겨 키우게 하는데 그 아기에게 라덴 마스 싱론(Raden Mas Singlon)이라는 이름지어 주었습니다. 은둔이란 의미의 그 이름은 당시 디포네고로 왕자의 속마음을 살짝 비추어 줍니다그는 훗날 끼소데워, 또는 라덴 마스 소데워(Raden Mas Sodewo)란 이름으로 아버지 디포네고로 왕자의 유지를 이어 네덜란드에 대한 저항전쟁을 계속합니다.

 

1814 9 28일 에 그는 다섯 번째 부인인 라덴 아유 마두렛노(R.A. Maduretno)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녀는 하멩꾸부워노 2세의 딸 라뚜 마두렛노와 라덴 랑가 쁘라위라디르요 3(Raden Rangga Prawiradirjo III) 사이에 태어난 딸이었으니 그와는 고종사촌 관계였습니다. 그러한 사실이 그녀의 입지를 더욱 굳혀 주었던 것인지 자바 전쟁 중이던1828 2 18일 디포네고로 왕자가 대관식을 올리게 되었을 때 그녀는 깐젱 라뚜 끄다톤(Kanjeng Ratu Kedaton)이라는 칭호로 왕후의 자리에 오릅니다.

 

1828 1, 디포네고로는 디포위요노 2(Dipawiyana II) 라고도 불리던 뻐능아 왕자(Pangeran Penengah)의 여식, 라덴 아유 렛나닝룸(R.A. Retnaningrum)과 여섯 번째 결혼식을 올리고 얼마 후 지빵 끄빠당안(Jipang Kepadhangan)의 영주 라덴 뚜먼궁 수모쁘라위로(Raden Tumenggung Sumoprawiro)의 딸 라덴 아유 렛나닝시(R.A. Retnaningsih)와 일곱 번째 결혼을, 끼아이 구루 까송안(Kyahi Guru Kasongan – 까송안의 이슬람 선생)의 딸 라덴 아우 렛나꾸말라(R.A. Retnakumala)와 여덟 번째 결혼식을 올립니다.

 

이렇게 부인들이 한손으로 셀 수 있는 숫자를 넘어서게 되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좀 정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번도로 라덴 아유 렛나 마두브롱토(B.R.A. Retna Madubrangta)

2. 라덴 아유 수빠드미(R.A. Supadmi) – 나중에 라덴 아유 렛나꾸수마(R.A. Retnakusuma)라는 칭호를 받음.

3. 라덴 아유 렛나데와티 (R.A. Retnadewati)

4. 라덴 아유 찌뜨로와티(R.Ay. Citrawati)와 후궁 라덴 아유 랏나닝시(Raden Ayu Ratnaningsih)

5. 라덴 아유 마두렛노(R.A. Maduretno) – 센똣 쁘라위라디르자(Sentot Prawiradirdja)의 이복누이

6. 라덴 아유 렛나닝시(R.Ay. Ratnaningsih)

7. 라덴 아유 렛나꾸말라(R.A. Retnakumala)

8. 라덴 아유 랏나닝룸(R.Ay. Ratnaningrum)

 

디포네고로 왕자는 최소 12명의 아들과 10명의 딸을 두었고 오늘날 그 후손들이 인도네시아는 물론 호주, 세르비아, 독일, 네덜란드, 사우디 아라비아 등지까지 퍼져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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