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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안모곳 운전면허 시험장 Ssatpas Metrojaya 19번 창구

beautician 2018. 1. 17. 10:00





매년 운전면허 갱신하러 갈 때마다 새 단장 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다안모곳 운전면허 시험장.


뭔가 공사하느라 어수선했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내부공사를 완전히 마친 다안모곳 운전면허시험장은 산뜻한 모습으로 날 맞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필기시험장 교실들과 실기시험장이었습니다. 이젠 시험 보지 않으면 떨어지는 겁니다.  면허연장 신청서를 보니 운전교습소 졸업장이 있느냐 묻는 항목도 있더군요. 인도네시아 이제 많이 변했습니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운전면허시험장은 인도네시아 경찰의 총체적인 부패를 적나라하게 엿볼 수 있는 견학장소였습니다. 하지만 유도요노 대통령 시절부터 조금씩 변모해 이제는 예전 들끓던 브로커들이 모두 자취를 감추었고 근무 경찰들이 민간인 돈을 뜯기 위해 이런 저런 함정을 만들거나 강요하던 모습도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젠 제법 쾌적한 곳이 된 것입니다


가장 큰 변화는 19번 창구입니다.

이 창구가 있던 곳은 공무원들 책상들이 있는 곳과 면허 민원인들 사이를 벽으로 막아 놓고 있었는데 이제 그 벽이 허물어져 상대방 경찰관을 직접 마주 대하며 서류를 접수하게 되었습니다. 완전히 터져 있으니 옛날 같으면 땡떙이 치던 경찰들이 대부분 자리를 지키고 있어 수속은 매끄럽고 빨랐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게 있습니다.


"미스터르, 마우 리마 따훈?"


5년짜리 운전면허증을 만들어주겠다는 속삭임입니다. 

물론 지난 2-3년 사이 땅거랑이나 찔레곤 지역에 사는 한국인들 중 5년짜리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았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원래 1년짜리 kitas 체류허가를  가지고 일하는 외국인들은 kitas 유효기간인 1년짜리 운전면허를 받는 게 원칙이었는데 말입니다. 찔레곤에서는 5년짜리를 만들어주는 비용으로 160만 루피아를 부르는 브로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안모곳에서 이렇게 말한 사람은 19번 창구의 경찰관입니다.


"리마라뚜스 리부 아자"


50만 루피아, 약 40불을 달라는 것이죠 1년짜리 면허 연장은 10만 5천 루피아, 약 8불 정도인데 말입니다.

찔레곤에 비해 정말 좋은 가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5년짜리 만든다는 게 뭔가 특별한 절차가 필요한 게 아님을 거기서 깨달았습니다. 면허증 내용을 입력하는 19번 창구에서 1년짜리 유효기간을 5년이라고 입력하기만 하면 되는 거였으니까요. 

하지만 난 완곡히 거절하고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불과 50만 루피아로 앞으로 5년간 매년 운전면허를 갱신하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그건 엄밀히 따지자면 경찰관이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것인데 내가 이제 앞으로 5년간 그 운전면허증을 들고 다니는 것은 그 불법행위의 공범이라는 증거물을 소지하고 다니는 것과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신호위반이라도 해서 경찰이 내 차를 세우고 면허증을 요구했을 때 그 면허증이 왜 5년이냐고 물으면 '그렇게 만들어 주던데요' 정도 밖에 대답할 수 없는 입장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50만 루피아를 지불해 5년을 편하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그 5년의 공소시효를 숨어지내는 것 같은 입장이 될 지도 모를 일입니다.


예전에 그런 비슷한 일이 한번 있었죠.

kitas를 가진 외국인들은 인도네시아에서 출국할 떄 Fiskal이라는 인두세 1백만 루피아를 매번 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인두세 시행이 폐기되기 직전 마지막 해에는 3백만 루피아까지 가격이 올랐습니다. 하지만 NPWP라는 납세자 증명을 만들면 해당 비용을 면제받는 시스템이어서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NPWP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인두세 제도는 이듬해 폐지되었지만 그때 만든 NPWP는 오늘날까지 남아 매달 소득세를 내거나 장기 체납자가 되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 5년짜리 면허증은 그런 것과 비슷한 족쇄일지도 모릅니다.



2018.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