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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람뿡(Lampung)식 결혼식에서 발견한 미인

beautician 2018. 1. 9. 11:00





"내가 여기 있는 동안 수많은 결혼식에 참석해 봤지만 당신처럼 아름다운 신부는 여지껏 본 적이 없어요.

결혼식에 침석한 한 중년남자가 신랑과 양가 부모들 앞에서 이런 말을 했을 때 당사자나 신랑, 가족들은 듣고 흐뭇했을까요? 아니면 뭔가 모독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까요? 지난 토요일이던 1월 6일 메이의 막내동생 예니의 결혼식에서 내가 신부에게  했던 말입니다. 

이런 생각이 든 것은  불현듯 한국에서 있었던 만화 페스티벌에서 한 원로 만화가가 젊은 여성만화가에게 했다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만화가들 중에 이런 미인이 있을 리 없는데, 아가씨 만화가가 아니라 혹시 방문객 아니오?"

나라면 이런 말 듣고 기뻐했을 텐데 그 여성 만화가는 모욕감을 느꼈다는 것 같습니다. 아니, 그 말을 전해들은 사람이 모욕감을 느꼈던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이 사건을 어떤 이가 트윗으로 전하면서 이 원로 만화가가 크게 잘못한 것이라 성토하며 입에 거품을 물었고 소위 페미니스트라 자부하는 많은 사람들이(실제로 그들이 정말 페미니스트인지, 심지어 여성인지도 확신은 잘 서지 않습니다만) 욕설을 퍼부어댔죠. 그 이유는 이랬어요.

- 이 원로만화가가 성차별의 인지력이 전혀 없는 무례한이다.
- 미인이라 말한 것은 칭찬이 아니라 다른 여자들은 미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차별을 짓는 사고방식이 사고체계 속에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 늙은 노인네가 젊은 여자를 꼬시려고 껄떡거린 것이다.
- 저 노인은 지독한 마초다.

물론 도대체 어떤 지점에서 그렇게 느껴야 하는지 난 알 수도 없었고 이해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미인한테 미인이라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라고 했다가 수많은 자칭 페미니스트들의 욕문자 폭탄을 받고 수십명이 날 블록해 버리는 사태가 벌어졌었습니다. 하지만 이 결혼식장에선,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난 설익은 페미니스트들과는 말을 섞지 않는 것이 인생 편하게 사는 방법이라는 걸 그 당시 절절히 경험했습니다.


아무튼 예니는 평소에도 아름답다 생각했지만 그날은 아마도 생애 최고로 아름다웠던 날이었을 것입니다. 직장에서 만난 람뿡 출신 남편 집안의 요구에 맞춰 람뿡식으로 진행된 이 결혼식에서 신부측 가족으로 받아들여진 나도 유니폼을 갖춰 입었습니다. 옛날 남자 중고생 동복교복같은 상의를 맨 꼭대기 단추와 후크까지 갖추고 헌병 위병처럼 금줄과 메달까지 장식하고서 검정 바지 위에는 송켓(songket)을 찗은 스커트처럼 둘렀습니다. 만약 자바식이었다면 블랑꼰을 뒤집어쓰고 허리에 두른 띠의 등 뒤로 화려한 손잡이 장식을 한 끄리스 단검을 끼워두었겠죠.람뿡 식은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그날 결혼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것은 신부보다도 신부의 조카인 살사빌라였습니다. 이제 막 10대에 들어선 살사는 나이보다 빠르게 아름다운 아가씨로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부나 하객들에게 그런 말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부여야 하니까요.


하지만 군계일학임은 숨겨지지 않습니다.


인도네시아의 결혼식이 흔히 그렇듯 예니의 결혼식도 신랑신부를 거의 혹사시키는 행사였습니다. 동네의 회관을 빌려 결혼식장으로 장식하고 음식을 주문하고 유니폼들도 맞추고 준비한 후 동네 통장 반장과 머스짓 이슬람 선생을 불러와 종교부를 대신해 가족들과 증인들만 모인 자리에서 아침 7시 경부터 이슬람경전을 읽고 본인과 증인들이 도장을 찍으면서 공식적인 결혼식 절차를 시작한 후 밤 9시-10시가 다 되도록 그곳에서 손님을 맞아야 하니 말입니다. 두꺼운 옷을 입은 신랑 신부와 가족들은 쩌죽을 일입니다.









나도 람뿡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신부측 인사 중 중요한 사람 취급을 받았으니까요

물론 어딘가 교황이나 요리사 느낌이 납니다.



에어콘이 나오지 않는 것은 물론 선풍기 바람도 제대로 미치지 않는 곳에서 저 옷을 입고는 10분도 견디지 못할 것 같았지만 옷을 갈아입은 오전 10시부터 무려 다섯 시간을 버틴 끝에 오후 3시에 드디어 탈출을 감행했습니다. 온갖 핑계를 떠올렸지만 마땅한 게 없었으므로 도망가는 거라는 게 너무 티가 났을 겁니다.










회관의 고양이는 자기 분수를 압니다. 충분히 탁자 위로 뛰어 오를 수 있지만 그러면 쫒겨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거죠. 

여기 고양이들은 먹이를 줄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리는 인내심을 가졌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결혼식은 더욱 조촐하게, 집에서 음식을 장만해 결혼식도 집에서 치르지만 예니의 결혼식은 그나마 상당한 지출을 했습니다. 음식, 장식, 신랑신부 복식,  장소임대, 람뿡식 유니폼, 아가씨들  유니폼 등을 모두 포함해 1800만 루피아. 약 160만원 정도가 들었습니다. 300명 손님을 예상해 음식을 준비했는데 음식은 맛있고 양도 넉넉했습니다. 한국식 계산으로 싸다고 생각하겠지만 자카르타 최저임금이 400만 루피아 미만이고 신랑 신부 모두 그 정도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거의 5개월치-반년치 월급이 들어간 것이죠.


메이의 둘째 동생이 무책임한 오젝 기사와 결혼하면서 한바탕 사단이 있었던 것이 벌써 근 8년 전인데 막내는 그나마 정규직장을 가진 건장한 남자와 백년가약을 맞게 되었습니다. 예니와 사귀려는 남자들한테 주먹질하여 쫒아냈던 바딱 출신 깡패같은 놈이 예니를 몇 년 동안 따라다닌 적이 있습니다. 어느날 예니가 교통사고를 당해 골반 근처를 크게 다쳤을 때 그곳을 치료한 남자 의사를 공격하기도 했던 미친 놈이었죠. 예니의 몸을 봤다는 이유였어요. 보지 않고 어떻게 치료하라고요.  예니는 결코 그놈을 좋아하지도 않는 것 같았는데 우격다짐으로 끌려다니는 게 안타까왔죠. 어쨋든 마침내 그놈을 떼어내고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난 것이 여간 다행스럽지 않습니다. 


예쁜 아가씨가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다는 건 참 불행스러운 일입니다.

물론 그런 환경 속에서도 자기 계발을 게을리 하지 않아 의사며 박사가 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여인들이 돈에 떠밀려 누군가의 첩이 되거나 유흥업소로 흘러 들어가게 되곤 하니 말입니다. 스스로를 잘 지켜낸 예니를 비롯한 빈민가의 아가씨들을 마음 속 깊이 응원하며 아름답게 커가는 살사빌라를 위해 내가 뭘 해줄 수 있을지 좀 더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2017.0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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