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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점잖은 사람이 악의를 숨길 때

beautician 2018. 1. 1. 11:00


2017년의 12월은 특별히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고 많은 교훈을 얻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시인들이 아름다운 시를 쓰는 것이 꼭 심성이 아름다워서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고, 평소 존경하던 분이 어느 날 자기 자존심이 공격받는다고 느낄 때면 안면을 바꾸어 가장 불행한 사람들을 겁박하는 더욱 악당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다는 존귀한 인물들이 폭죽과 샴페인을 터뜨리며 스스로를 자축할 때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등 뒤에서 그들을 비웃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우리 사회는 각자 처한 입장과 지위와 국적과 이해에 따라 더욱 더 양극화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뼈아프게 느끼는 경험을 했습니다.


12월 29일을 잊을 수 없는 것은 한 저명한 인사가 작은 빌미를 잡아 모든 사람 앞에서 자신보다 까마득한 후배를 짐짓 점잖게 꾸짖는 척 하며 독이 발린 비수를 등 뒤에 숨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비수를 보진 못했지만 등 뒤에 쥐고 있었음은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글의 맥락과는 전혀 관계없는 부분을, 마치 난독증이 있어 짐짓 잘못 읽은 척하며 시비를 걸어, 반발하면 찍어 누를 듯 동조자까지 거느리고 점잖게 압박한 것은 상대방을 선배에게 맞서는 돼먹지 못한 인간으로 만들어 버리거나 아니면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굴복시켜 보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것을 당사자라면 읽지 못할 리 없습니다.


이 사회의 어른들, 혹은 스스로 어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수를 다른 사람들이 절대 읽지 못하리라 생각하는 이상한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건 그걸 읽고도 못읽은 척하는 사람들 탓이기도 합니다. 어른들의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다 속 보여요'라고 한 마디 해주어야 할 시점에서 어른들의 체면을 생각해 입을 닫고 물러서 주는 것이죠. 물론 그건 예의이지만 독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어른들은 그 뻔한 수를 또 다시 들이 미는 것이고요.


하지만 선배에게, 그리고 어른에게, 공개적이든, 비공개적이든, 내가 잘못했든 그렇지 않든, 사과 한 마디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남에게 고개 한 번 숙이는 것은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그 어른들에겐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건 오직 목이 뻣뻣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일입니다.


공개적인 사과를 받은 후 "그래 네가 잘못했지?"라고 말하는 그 승리감을 이해합니다.

젊은 주부들과 학생들을 겁박했던 일때문에 시작된 '한인회,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글로 의도치 않았던 적을 많이 만들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예전 같으면 선배들이니까, 동문들이니까, 날 이해해 주겠지 라는 순진한 생각을 이젠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지난 수십년 간 한번도 그런 일은 벌어진 적이 없고 우리 사회는 힘과 돈만이 작용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니 힘 있는 자는 자기보다 약한 상대의 나머지 가진 것조차 뺏겠다며 겁박하는 것이고, 그래서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용감해지는 것이죠.


잃을 게 없다는 것이 이토록 홀가분한 것인지 예전엔 몰랐습니다.

그게 불편한 것일지언정 사람을 비겁하게 만드는 기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에겐 예의를 지켜 드려야죠. 그래서 공개적으로 공격당한 후 비겁하게 개인 계정으로 들어가 용서를 구하거나 타협하기보다 이야기가 나온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게 좋습니다. 싸우더라도 사과하더라도 공개적으로 시작했으면 공개적으로 마무리 지어야 하는 거죠. 물론 누구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도 이번 기회에 새삼 배웠습니다.


2018년은 누구에게나 유익한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의 다양성이 좀 더 서로에게 인정받아야 할 것이고 상대방의 '다름'을 적개심이 아닌 호기심과 관대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이 모두에게 필요할 것입니다.  저 높은 곳의 선배님들과 어른들에게도 같은 것을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새해엔 함께 정신 차렸으면 좋겠습니다.



2017. 1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