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일반 칼럼

원효대사 해골물

beautician 2017. 10. 27. 23:14



지난 수요일이었습니다.

물을 늘 얼려 가지고 다니는데 잘 녹지 않아 마실 수 있는 물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원래 물이 좀 남아 있으면 얼음이 빨리 녹는데 그 물을 남김없이 마셔버렸으니 얼음 녹는 속도가 늦은 거죠.


그런데 마침 차 뒷자리에 1리터짜리 페트병이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원래 Aqua 석수인데 개봉했다가 거기 놔둔지 한달 쯤 된 거였어요. 

나중에 차량 와이퍼 용액으로 쓸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급하다 보니 일단 그걸 아주 약간 얼린 물통에 넣어 얼음을 녹였죠.


그걸 마신 게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날 이미 배가 아파 화장실을 여러번 다녔는데 다음날부터는 고열이 찾아와 마치 몸살이 난 것 같았습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 증세는 그간 흔히 겪은 마숙앙인이나 식중독, 몸살 같은 게 아니라 티푸스 증세 같았습니다.

일단 항생제와 해열제로 버텨 보려 했는데 결국 이틀째 외출은커녕 꼼짝 못하고 앓아 누워야 했습니다.

목요일과 금요일을 그렇게 보내고 토요일은 약속이 세 개나 겹친 바쁜 날이고 아내가 싱가폴에 아이들 보러 가는 날이기도 한데 아무래도 낌새가 주말을 넘겨야 좀 회복이 될동말동한 상황입니다.


아내는 왜 한달 된 물을 마셨냐고 화를 냈습니다.

사실 옛날 상무대 시절 그 더러운 물에서 뛰고 그걸 좀 들이켜도 끄떡 없었는데 이젠 '썩은 물' 한 모금에 완전히 뻗어버리는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원효대사가 생각납니다.

이분도 해골물을 드셨으니 분명 썩은 물이었을텐데 그토록 감미로웠다는 것이고 그 이후 탈도 나지 않았다잖습니까?

난 비록 해골물은 아니지만 한달된 바이러스 투성이 물 한 모금 마셨다고 꼼짝 못하고 앓아 누웠으니 참 깝깝한 일입니다.


이제 얼마남지 않는 최종번역을 시간내에 마치도록 일단 자리 보존하고 있으라는 신의 계시일까요?


오래된 물 절대 마시지 맙시다.





'일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찬송가는 왜 버림받았나?  (0) 2017.11.10
복수하려고 정권 잡았을까?  (0) 2017.11.07
문재인 대통령 인도네시아 순방  (0) 2017.10.25
인도네시아의 한류  (0) 2017.10.19
어느 교회의 성찬식  (0) 2017.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