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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소풍 우리 아이들 어릴 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인도네시아에서 별로 놀러 다닌 적이 없어 혹시라도 주말을 끼고 싱가포르에 가게 되면 유명한 유원지들을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그런데 바쁜 아이들 쉴 시간 뺏는 것도 그렇고 유원지 입장료가 인도네시아 물가에 비해서는 잘 상상이 안갈 정도로 비싸 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위 알렉스가 아직 딸 지현이랑 사귀던 당시 나랑 아내에게 엄청 비싼 서커스 표를 사줬던 일도 있습니다. 싱가포르에선 뭔가 하려면 비용이 장난 아닙니다. 아마 서울도 그렇겠죠? 그래서 어쩌면 대리만족인지 몰라도 차차와 마르셀과 함께 틈나는 대로 여가를 즐기고 싶었지만 기본적으로 내 시간을 내기 어려워 그것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몇 년 전까지 자카르타와 반둥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

잠 처음 만났을 때 차차는 좀 이상한 아이처럼 보였습니다. 말라깽이에 수줍음 많은 건 그 또래 다른 여자아이들이 다 그랬지만 차차는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산만했습니다. 때로는 나와 얘기하던 중간에 갑자기 다른 생각을 하는지 멍한 표정이 되곤 했습니다. 대 여섯 살이 되도록 그런 모습이 보여 어딘가 장애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때 엄마인 메이가 자랑스럽게 하던 얘기가 생각났습니다. 차차가 갓난 아기일 때부터 직장에서 늘 밤늦게 돌아오던 자길 새벽까지 안자고 기다린다는 겁니다. 나와 일하기 전, 메이는 ‘이눌비스타’라고 하는 패밀리 노래방에서 서빙을 했는데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 빨라야 새벽 두 시쯤이었다고 합니다. 그 시간까지 자지 않고 기다리는 차차가 그렇게 대견스러웠다는 거에요. 난 고개를..

4월 11일에 태어난 오렌지색 무늬 고양이들도 이제 눈을 뜨고 꼬물꼬물 방바닥을 돌아다면서 3월 18일 태어난 삼촌뻘 까망 고양이들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시장에서 산 꾸르마를 가져다 주려 들렀는데 이 집에 가면 지뢰지대에 들어선 것처럼 바닥에서 꼬물꼬물 쫄래쫄래 돌아다니는 쬐끄만 고양이들을 밟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합니다. 까망이들은 모두 차차가 한달 넘게 우유를 먹여 키운 애들인데 요즘은 오렌지 어미 고양이 젖꼭지에 온통 상처가 나서 오렌지 새끼들도 우유를 먹입니다. 어미 고양이가 젖을 물리면 몸서리를 치며 아픈 소리를 내거든요. 그래도 모성애가 강해 새끼들을 내치지 않으니 오히려 더욱 안쓰럽습니다. 2021. 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