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차차 19

6만 루피아(약 5천원)의 행복

7월 셋째 주는 마르셀, 차차와 두 번씩 데이트를 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차차와 중학교에 들어가는 마르셀의 방학 마지막 주였기 때문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코로나가 잦아들면서(사실 재확산이 일어나 방역이 다시 강화되는 분위기이지만) 교육부가 전국 학교에 새 학기엔 오프라인 수업을 명령했기 때문에 차차와 마르셀도 2년 반 만에 정상 등교를 하게 됩니다. 나도 그간 걸려 있던 여러가지 일들이 있어 이 친구들이랑 놀아주지 못했지만 마침 7월 10일부터 조금 여유가 생겨 마지막 주에 한 명씩 데리고 나가 그간 하고 싶어했던 일들을 함께 했습니다. 마르셀은 두 번 다 부페에 가고 싶다고 해서 한국식당에 데리고 가 부페에 간 것 이상으로 배불리 먹여 주었고 좀 더 미묘하고 섬세한 차차는 첫날은 JGC 이온..

매일의 삶 2022.08.06

랩톱에 담긴 진심

랩톱에 담긴 진심 이 글의 장르는 수필에 가까우니 동화와는 거리가 멀지만 어딘가 좀 동화 같을지도 모릅니다. 인도네시아에 27년 살면서 오랫동안 살갑게 지냈던 사람이 둘 있습니다. 한 명은 직원으로 채용했다가 동업자가 되어 사업 하나를 함께 대차게 말아먹었던 친구이고 또 다른 한 명 역시 엉겁결에 직원으로 떠안았다가 이제 내 품을 떠난 지 벌써 6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지근거리에서 지지고 볶으며 살고 있는 친구입니다. 얘도 내 마지막 사업을 말아먹는 데에 크게 기여했으므로 나를 작가의 길로 등 떠미는 결정적인 공을 세운 셈입니다. 둘 다 여자입니다. 내 와이프가 이 친구들을 엄청나게 싫어할 것임은 다들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첫 번째 친구는 내 사업 말아먹은 여장부답게 지금 술라웨시 꼬나웨 우따..

매일의 삶 2022.04.12

이 아이들의 미래

5년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났더니 문자들이 잔뜩 와 있었는데 그중 메이가 보낸 내용에 눈길이 갔습니다. 전날 밤 차차가 잠을 못자며 고민하길래 물어보니 내가 아픈 것 같다며 걱정하더랍니다. 이번 주엔 매일 시내일정이 있었는데 어제는 마침 다시 시내 나가는 길에 오래 보지 못했던 차차와 마르셀을 보러 잠깐 들렀습니다. 최근 조금 일에 치이다 보니 아이들 들여다보는 게 조금 뜸해졌는데 그럴 수록 보고싶은 마음이 커지더군요. 아이들도 그럴 것이라 내 마음대로 생각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아이들 잡에 도착한 게 오전 10시 반. 아직 온라인수업 중이서 잠깐 한 번씩 안아주고 갈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싱거운 느낌이라 원래는 월초에 주는 용돈을 미리 주고 5분도 안돼 바로 시내 약속장소로 출발했습니다. 그..

아이폰 사진 퀄리티

소풍 우리 아이들 어릴 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인도네시아에서 별로 놀러 다닌 적이 없어 혹시라도 주말을 끼고 싱가포르에 가게 되면 유명한 유원지들을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그런데 바쁜 아이들 쉴 시간 뺏는 것도 그렇고 유원지 입장료가 인도네시아 물가에 비해서는 잘 상상이 안갈 정도로 비싸 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위 알렉스가 아직 딸 지현이랑 사귀던 당시 나랑 아내에게 엄청 비싼 서커스 표를 사줬던 일도 있습니다. 싱가포르에선 뭔가 하려면 비용이 장난 아닙니다. 아마 서울도 그렇겠죠? 그래서 어쩌면 대리만족인지 몰라도 차차와 마르셀과 함께 틈나는 대로 여가를 즐기고 싶었지만 기본적으로 내 시간을 내기 어려워 그것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몇 년 전까지 자카르타와 반둥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

잠자는 차차

잠 처음 만났을 때 차차는 좀 이상한 아이처럼 보였습니다. 말라깽이에 수줍음 많은 건 그 또래 다른 여자아이들이 다 그랬지만 차차는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산만했습니다. 때로는 나와 얘기하던 중간에 갑자기 다른 생각을 하는지 멍한 표정이 되곤 했습니다. 대 여섯 살이 되도록 그런 모습이 보여 어딘가 장애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때 엄마인 메이가 자랑스럽게 하던 얘기가 생각났습니다. 차차가 갓난 아기일 때부터 직장에서 늘 밤늦게 돌아오던 자길 새벽까지 안자고 기다린다는 겁니다. 나와 일하기 전, 메이는 ‘이눌비스타’라고 하는 패밀리 노래방에서 서빙을 했는데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 빨라야 새벽 두 시쯤이었다고 합니다. 그 시간까지 자지 않고 기다리는 차차가 그렇게 대견스러웠다는 거에요. 난 고개를..

차차네 고양이 목장

4월 11일에 태어난 오렌지색 무늬 고양이들도 이제 눈을 뜨고 꼬물꼬물 방바닥을 돌아다면서 3월 18일 태어난 삼촌뻘 까망 고양이들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시장에서 산 꾸르마를 가져다 주려 들렀는데 이 집에 가면 지뢰지대에 들어선 것처럼 바닥에서 꼬물꼬물 쫄래쫄래 돌아다니는 쬐끄만 고양이들을 밟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합니다. 까망이들은 모두 차차가 한달 넘게 우유를 먹여 키운 애들인데 요즘은 오렌지 어미 고양이 젖꼭지에 온통 상처가 나서 오렌지 새끼들도 우유를 먹입니다. 어미 고양이가 젖을 물리면 몸서리를 치며 아픈 소리를 내거든요. 그래도 모성애가 강해 새끼들을 내치지 않으니 오히려 더욱 안쓰럽습니다. 2021. 5. 5.

매일의 삶 2021.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