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루디 하디수와르노 8

우리동네 천사들 (4)

ep4. 루디 하디수와르노 스테피를 학교에 보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초등학교는 명목상 인도네시아에서도 무상교육이었으므로 티티 아줌마가 가까운 초등학교에 수속을 마쳤고 메이를 통해 필요한 교복이나 가방, 학용품을 사주고 내가 일부 경비를 지출하는 것만으로 스테피는 꿈에도 그리던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테피가 기뻐하는 표정을 보니 저 기쁨을 지켜줘야 할 것 같다는 책임감이 조금 더 커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직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이 두 자매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좀 더 노력해 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스텔라가 스테피와 헤어지지 않고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는 게 중요했습니다. 결국 내 거래선들에게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밖에 ..

우리동네 천사들 (3)

ep3. 모래지옥 외근 길에 일이 있어 메이가 센티옹 부모집을 들른 적이 있는데 함께 갔던 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까위까위(Kawi-Kawi) 골목길에 차를 세우고 기다렸습니다. 어디나 그렇듯 할렘의 동네 아이들이 좁은 골목에서 공도 차고 달리며 몰려다니면서 자꾸 차를 건드려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런데 짖고 까부는 아이들 사이에 확 눈이 띄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다른 취학 전 코흘리개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 정도 더 큰 깡마른 단발머리 여자애였습니다. 팔 다리가 유난히 긴 그 아이는 선명한 이목구비를 하고 있어 앞으로 남자들 마음을 무척이나 흔들 미인으로 자라날 것이 틀림없어 보였는데 그래서 걸치고 있는 넝마 같은 옷가지나 레게 머리를 하려다 만 듯한 떡지고 삐죽삐죽 뻗친 머리칼이 흰 피부와 티없는 ..

바딱족 자매 이야기

일상다반사 스텔라와 스테피라는 자매를 10년 전쯤에 알았다. 수마트라 북부 메단(Medan) 출신 부모를 둔 바딱(Batak)족 아이들인데 부모 모두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엄마 쪽 친척이 운영하는 꼬스(Kost)에 살고 있었다. 꼬스는 자취방 비슷한 곳이다. 아버지가 먼저 죽고 엄마도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 쪽 친척이 양육권을 받아 메단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거기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이들은 그 집을 도망쳐 나와 자카르타까지 그 먼 길을 돌아왔다. 메단에서 학대가 심했던 거라도 짐작할 뿐이다. 돈도 없이 천 킬로미터도 훨씬 넘는 거리를, 그것도 수마트라와 자바 사이의 해협까지 건너온 아이들은 완전히 거지 꼴이 되어 엄마 쪽 친척 꼬스 앞에 도착했지만 문을 열어주지 않아 아이들은 문 밖 길가에서 그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