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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과 백악관

beautician 2017. 10. 2. 09:00

막스하벨라르 번역 - 전설적 그리고 창조적인 번역, 그 단어들


영어나 인도네시아어 때로는 아주 가끔 일본어로 된 매뉴얼이나 기사들을 중심으로 번역하다가 문학작품, 그것도 160년 전 네덜란드 작가의 문학작품을 다루게 되니 책 한권의 거의 막바지에 다가가면서 점점 더 그 무게감에 짓눌리는 느낌이 듭니다. 두 세기 전의 유럽 작가가 얘기하려던 바를 내가 몇 퍼센트 정도 현실에서 한국어로 다시 구현하고 있는지, 당시의 유럽 독자들이 느끼던 바와 아주 똑같은 감상을 던져주진 못하더라도 시대를 관통하는 어떤 메시지를 대체로 훼손하지 않은 채 현대의 한국인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느냐 하는 생각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기 때문이죠. 다행히 번역팀이 꾸려져 있고 네덜란드 원서와 언제든지 도움을 아끼지 않는 전공 후배교수들을 주변에 둔 양승윤 교수님이 뒤를 받치고 계시니 염치없게도 그 고민의 상당부분은 그 분에게 넘겨 놓은 셈입니다.

이 일을 하다 보니 무라카미 하루키가 평소에 번역작업을 많이 한다던 이야기가 번뜩 귀에 들어왔고 다른 사람들의 번역물들도 자연히 관심있게 들여다 보게 됩니다. 막스 하벨라르 소설에 등장하는 지명이나 커피 종류, 19세기의 총독부 직책과 현지인 관련 계급 같은 것들도 일단 흥미를 느끼게 되먼 번역 용도 이상으로 조사하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면서 역시 가장 기발한 번역은 영화자막이라고  새삼 느끼게 됩니다. 등장인물들이 말하는 바와 전혀 다른 번역이 자막에 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그것이 오역이 아니라 정교하게 의도된 것이어서 상황과 내용에 딱 맞아 떨어지곤 하니 말입니다(물론 완전히 틀린 오역도 분명 있습니다. 한 B급 전쟁영화에서 지뢰지대(mine field)에 들어선 미군들이 '여긴 광산지대야!'라고 소리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영화번역자막의 경우엔 맥락의 연결이라는 부분에 가장 큰 가중치가 주어져 있음이 분명하며 당연히 그래야 할 것입니다.

막스 하벨라르의 번역에 있어서도 19세기 초중반 유럽과 동인도제도의 상황에 대한 독자의 쉬운 이해를 도와야 한다는 부분에 좀 더 가중치를 두고 있지만 처음엔 '완역'을 목표로 보다 원본에 충실해야 하려 무리했으므로(양교수님이 챕터별 수정본을 보내주실 때마다 그나마 내가 초창기 번역한 부분에서도 오역이 만발했음을 매번 발견하지만^^) 초반엔 딱딱한 직역이 많다가 후반으로 갈 수록 의역이 늘면서 좀 더 잘 읽히는 문장으로 서서히 변해간 것이 사실입니다. 마감에 밀려 충분히 다듬지 못한 채 번역초안을 양교수님께 보내드려야 할지도 몰라 매우 부담스러운 상황이죠. 욕 안하는 점잖은 분이지만 내 번역초안 보고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번역에 전력하다 보니 전엔 무심히 넘겼던 부분들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만년필' 같은 것입니다.

만년필은 영어의 fountain pen을 오래전 아마도 일본인 누군가가 번역한 것이라 생긱합니다. 사실 원문에 충실하자면 '샘펜' '잉크가 샘솟는 펜' 정도일 텐데 그것을 만년필이란 멋들어진 표현으로 안착시킨 것입니다. 만약 특정 번역단어의 저작권이 있다면 만년필을 처음 번역한 사람은 지금쯤 빌딩 수십 채를 샀을 겁니다.

White house를 '백악관'이라 한 번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사상 처음 그 단어를 접했다면 '미국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하얀색 건물' 또는 직역해서 '백색관청', '흰.집' 정도가 되었겠죠. 그것을 백악관이라 번역한 것은 앞서 든 예들에 비해 단어의 품격을  현격히 높였습니다. 그래서 힌국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라 칭한 것이나  이를 blue house로 번역하는 것은 거의 표절이라 모방의 수준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 예들은 아마도 수도 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번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벌어 먹고 사는 것은 근세기 국내외 번역가들과 언어학자, 문인들이 구축해 놓은 거대한 인프라의 기반 위에서 알게 모르게 엄청난 혜택과 도움을 받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번역은 누군가 이미 만들어 놓은 기존의 원본을 손보는 것이 분명하지만 사실은 거의 재창조하는 프로세스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난 그 인프라 외에도 양승윤 교수님의 능력과 인생을 통해 이룬 학문, 그리고 그 광대한 인맥의 도움을 더욱 톡톡히 받고 있지만 말입니다.

2017.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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