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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비자] 비자 정책이 뭐 변검도 아니고

beautician 2017. 8. 17. 09:00



인도네시아에서 관공서 관련 일들은 늘 상상도 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2014년 조코위 대통령이 선출되던 시기를 전후로 최근 몇년 사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업무 전산화와 맞물려 대관업무나 민원수속 규정이 매년 몇 차례씩 바뀌기 때문이죠. 담당공무원들은 규정을 따르라며 큰 소리 치지만 대개의 경우엔 그렁 규정들과 상관없이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국민들과 외국인들이 그 수많은 규정들의 세세한 변동내역을 모두 숙지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마치 KITAS 비자를 가진 외국인들이 1년짜리 운전면허증을 매년 갱신하듯 전년도에 고생하며 하가등록을 진행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갱신서류를 준비하는 것이 보통이죠. 그러니 잦은 규정 변경은 골치덩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그것이 더욱 간편하고 빠른 방향으로 개선된다면 모든 번거로움을 감수하겠지만 오히려  더욱 복잡하고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 방향으로 변경되는 것은 개선이 아니라 헬게이트가 열리는 수준의 재앙이 됩니다. 단지 시간이 걸리는 문제만이 아닙니다. 대개의 경우 허가서류의 갱신이란 그 시한 내에 마치지 못하면 벌금을 내야 합니다. 결국 돈문제가 되는 것이죠. 예를 들어 KITAS 갱신을 시한 내에 마치지 못한다면, 시간을 댈 수 있었다면 지출하지 않았어도 될 케이블 비용과 수속 수수료, 출입국 비행기표, 현지 대사관 비자 수수료 또는 대행료 등 최소한 500불 전후의 추가비용을 감수하거나 하루 30만 루피아씩 미터기가 올라가는 오버스테이 벌금을 내야 하는 겁니다.


절대 그럴 리 없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더욱 불편하게 개악되는  경우는 실제로 얼마든지 있습니다. 

지금도 대부분의 인니 교민들이 싱가폴 인니대사관에서 비지를 받기 위해 당일치기로 다녀오려면 대사관이나 현장브로커들과 모종의 밀약이 성립된 현지 대행사에 미화 300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개인이 진행할 경우 3 근무일이 걸리는 것과 너무 큰 차이가 납니다. 인니 관공서들은 짤로(calo) 즉 브로커를 사용하지 말고 민원인이 직접 수속하라 강권하며 그런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브로커를 통해야만 시간을 앞당길 수 있는 정책을 공공연한 비밀처럼  시행하면서, 정부정책에 적극 부응해 직접 비자수속 하려는 민원인들, 특히.외국인들을 물먹이는 정책을 십수년째 계속 해오고 있습니다. 그 십수년 전에는 개인이 싱가폴에 가 인도네시아 대사관에서 직접 kitas 비자신청하면 당일 발급되었으니 분명히 개악된 것입니다.

그 비자 관련해 케이블 내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노동부에서 근로허가(IMTA)를 받고 나면 예전같으면 구비서류 갖춰 꾸닝안 법무부 건물 1층의 이민국 사무실 방문해 신청하면 하자가 없는 한 다음날  케이블이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온라인 수속으로 시스템이 바뀌었습니다. 대개의 경우 전산화된다면 더욱 편하고 더욱 빨라지는 게 보통이지만 인도네시아에선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우선 회사등록을 하는 게 2 근무일이 소요되고 그런 후 비자신청에서 발급까지 5 근무일이 걸립니다. 결국 주말과 휴일들을 감안한다면 예전 이틀 걸리던 것이 이젠 거의 10일 가까이 걸리게 된 것입니다. 전산화가 재앙이 된 케이스입니다. 

여기 또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이 수속과정에서 노동허가서(IMTA) 스캔본을 업로드해야 하는데 그 서류 맨 밑의 바코드가 선명하게 나와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현지 관공서의 기본용지 사이즈는 A4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큰 F4입니다. 세로 길이가 3cm 정도 더 길죠. 하지만 HP든 엡슨이든 브라더든 거의 대부분의 복합기 스캐너는 A4를 기준합니다. 그러니 맨 위 노동부 로고가 나오려면 맨 밑 바코드가 잘립니다. 그렇다고 바코드를 포함시키면 노동부 레터헤드가 잘리죠. 결국 해결책은 한번은 위에서부터 또 한번은 밑에서부터, 그렇게 스캔본 두 개를 업로드해야 하는 겁니다. 


어떤 식으로든 위나 아래가 짤리고



한편 업로드 파일 크기가 400Kb를 초과하진 않아야 한다 하는데 F4 용지의 컬러스캔본 원본 크기는 2Mb 전후입니다. 그 크기나 해상도를 5분의 1 이하로 줄인다면 그 결과물은 절대 선명할 리 없는 겁니다. 그래서 나도 두 번 거절 당했습니다. IMTA 스캔본이 선명하지 않다는 이유였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결국 이민국을 직접 방문해 항의하고 부탁한 끝에 간신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IMTA를 발급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깔끔한 스캔본을 선명하게 업로드할 수 없어 벌금이 걸린 비지수속기간이 기약없이 늘어진다는 게 참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었고 명색이 온라인수속이면서도 그런 문제가 벌어지면 이메일이나 전화로 해결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직접 방문해야 그나마 활로가 보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더욱 한심스러운 부분이죠. 그게 무슨 온라인 수속인가요.

결과적으로 인도네시아 관공서의 시스템 개선 또는 온라인화라는 것은 국민들, 민원인들, 고객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서비스 공급자인 자기들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 모든 개악들이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Kitas 갱신 마지막 단계에서 부딪힌 문제는 관할 이민국에 갱신신청을 들어가면서 마주쳤습니다. 작년엔 없던 온라인 시스템이 적용되고 있었지만 도무지 어떻게 수속해야 할지 각각의 경우에 대한  분명한 절차 설명도 없고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이를 문의하려 이민국을 몇 자례 방문한 결과 결국 예전처럼 매뉴얼로 신청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필요한 구비서류들을 다시 확인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그 구비서류들은 이민국 유인물에도 표시되어 있었지만 늘 그걸듯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다음날 갱신신청을 거절당하고 돌아온 우리 직원이 보고한 부족한 서류들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위임장(이건 작년까지만 해도 요구하지않던 서류입니다. 하지만 준비는 어렵지 않습니다)
- 아파트 임대계약서 사본(이게 있으니 아파트에서 거주증명을 뗄 수 있었던 것인데 그때의 구비서류들을 요구하는 겁니다. 번거롭지만 이 역시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  동사무소로부터의 거주증명서(작년엔 아파트 관리사무실에서 발급받은 거주증명서로 층분했는데 이번엔 관공서 공문을 가져오라는 겁니다. 신규 KITAS 발급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거주증명서로 충분하지만 KITAS가 이미 나온 사람은 동사무소의 거주증명서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답니다. 이게 문제 되는 것은 관리사무소-반장-통장-동사무소를 거치는 수속이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뿐 아니라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선 집주인 동의서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비자 연장하려는 건데 집주인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요?)
- 수속하는 우리 직원의 자카르타에서 발급받은  e-KTP(문제는 우리 직원 중부자바 pati라는 지방의 구식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고 자카르타에서 이 전자.주민등록증을 받으려면 고향에 가서 복잡한 절차를 거쳐 surat pengantaran이란 추천서 비슷한 서류를 받아야야 하는데 그 소요기간은 하세월입니다)

결국 두 개가 문제입니다.  거주증명 동사무소 발급본과 우리 직원의 전자주민등록증(아니면 전자등록증 가진 사람을 채용하거나). 이건 내가 직접 하든 브로커륵 쓰든 똑깉이 겪게 되는 문제입니다.

이제 어떨게 애햐 할까요? 집주인은 미국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는데 그 친구 귀국할 때까지 난 벌금 물면서 kitas 연장을 미루고 있어야 할까요? 그리고 어찌어찌 집주인을 찾아내 필요한 서명을 받고 수속을 진행한다 해도 e-KTP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까요? 명짧은 KITAS가 먼저 죽을 판입니다. 

인도네시아 관공서와 관련된 모험의 세계는 오늘도 끝없이 펼쳐집니다.

2017.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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