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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무궁화유통 김우재 회장 박은주 여사의 인도네시아 40년

beautician 2017. 9. 27. 08:00

김우재 회장과 박은주 여사의 인도네시아 40

 

 

지난달 23-24일 양일간 자카르타 중심가 사트리오 거리 (Jl. Prof. Satrio)에 소재한 롯데쇼핑애비뉴에서 한인니 친선 한복패션쇼가 열렸다.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이 후원하고 한국관광공사가 개최한 한국문화의 달행사의 일환이었는데 한국 전통복식이 머나먼 인도네시아에서 일반에 전격적으로 소개되는 것은 매우 의미 깊은 일이라 할 것이다.

 

일찍이 1994 11월 김영삼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했을 때 수하르토 대통령 영부인 띠엔 여사에게 한복을 기증했다고 한다. 그때 그 한복이 당시 수하르토 대통령이 외국정상들에게서 받은 선물들을 진열하고 있는 뿌르나 박티 뻐르띠위 박물관(Museum Purna Bhakti Periwi)에 보관되어 있지만 한복이 인도네시아에 공식적으로 소개된 기원은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올림픽이 있었던 한복패션쇼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이 행사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작성한 이리자 선생 생애에 대한 자료에는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대사관 초청 이리자 한국전통의상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행사에는 함께 방문한 탤런트 이경진씨를 비롯해 교민들도 모델로 나섰는데 이 행사를 주관한 당시 한국부인회 박은주 회장도 무대에 오른 모델 중 한 사람이었다. 한국동포사회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던 그녀는 무궁화유통을 인도네시아 현지의 대표적 한인기업으로 키워낸 김우재 월드옥타 명예회장의 부인이다



박은주 회장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2013년)

 

당시 행사의 수익금 2천만 루피아(약 1천만원 상당)는 반둥 남쪽 따식말라야에 소재한 갈룽궁(Gunung Galunggung) 화산폭발 피해자들의 구호금으로 전달되었다.

 

김우재 회장부부의 한복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앞서 언급한 뿌르마 박티 뻐르띠위 박물관 2층에 전시된 한복이 낡고 떼가 낀 것을 안타깝게 여겨 어렵사리 관련수속을 밟아 1996년 새 한복(관복) 두 벌을 기증해 한복문화를 영구 보존토록 하였고 2004년에도 습기로 손상된 한복을 또 한 차례 새 한복으로 교체했다. 이 전시물에는 기증자인 김회장 부부의 이름이 오롯이 새겨져 있다. 김회장은 자녀들의 세대에도 전시 한복이 또다시 훼손될 경우 교체작업을 지속할 계획임을 밝혔다. 전액 자비를 들여 고가의 한복을 본국 유명 디자이너에게서 새로 제작하고 관련 기관 협의와 로비 등 끝없는 노력을 통해, 내방객들이 많은 현지 주요 박물관의 전시 한복을 주기적으로 교체해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장기적이고도 지속적인 관심을 요하는 일인 만큼 어쩌면 단발로 끝나는 한복패션쇼보다 더욱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김우재-박은주 부부는 조만간 또 한 번의 전시용 한복 교체를 계획하고 있다.

 

박물관에 최초 기증한 한복. 왼쪽부터 김우재 회장, 박물관장, 민형기 대사부인, 박은주 여사 (1996)

 

1977년 처음 인도네시아에 들어와 원목, 건축 등 다양한 방면에서 사업을 시도했던 김우재 회장이 현지 식품유통업계에서 굳건한 뿌리를 내려 인도네시아 동포사회를 넘어 현지 경제계에 분명한 자리매김을 하기까지의 경위나 일화들은 그동안 다양한 신문지면이나 TV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다.

 

시장 점유율은 80% 정도라고 봤지만 지금은 경쟁이 심해서 65% 정도일 겁니다김우재 회장은 무궁화유통의 현지 한국식품시장 점유율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는 매출자체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해당 시장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신규 경쟁업체들이 선전했기 때문이라 분석했다. “얼마 전까지는 시장을 경쟁적으로만 바라봤지만 이제는 협력할 것은 협력하며 조화롭게 공존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김회장은 신규진출이 앞다퉈 이루어지고 있는 업계에 대한 생각도 이렇게 밝혔다. 예전 고립무원의 현지시장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며 안되는 것을 무조건 되게 하던 김회장의 불도저 같은 이미지는 2012년 제 17대 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회장을 역임하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며 사뭇 부드러워졌다.

 

무궁화유통의 사업적 성공 뒤에 가려진 김우재 회장과 박은주 여사의 현지사회에 대한 기여와 봉사의 사례도 많이 엿볼 수 있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베짝 인력거꾼들이 그 비를 다 맞으며 떨고 있는 걸 보고 마음이 아파 우비 다섯 장을 사다 준 게 그 모든 것의 시작이었어요.” 박은주 여사는 사회봉사활동의 시작을 그렇게 기억했다. 실제로 무궁화유통은 1984년 이후 줄곧 땅거랑 시타날라 나환자병원(RS Khusus Kusta Sitanala)을 후원하고 있으며 1995년 한국부인회가 주최하여 가수 이미자씨를 초청한 공연 수익금으로 인도네시아 심장병 어린이 10명을 수술해 준 지원사업을 물려받아 무궁화재단을 설립하고 현재까지 현지 심장병 어린이 50명의 꺼져가던 생명을 지켜 주었다. 장학사업으로서 나쇼날 대학(UNAS) 한국학과 학생들에 대한 지원은 물론 박은주 회장의 고향인 충주에서 1994년부터 줄곧 중고등학생 300여명에게 전액장학금을 지원하고 불우한 처지의 독거노인, 다문화가정, 농아학교 등에 쌀과 연탄을 나누는 지역봉사활동도 계속해 왔다. 또한 경기도 도청과 제휴해 반둥의 한사모(한국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에게 한국연수의 기회를 제공해 사물놀이, 부채춤 등을 배우게 하는 등, 일본이 오래 전부터 추구했던 동남아의 재패니제이션(Japanization)에 필적하는 코리아나이즈(Koreanize) 작업에도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무궁화유통은 현지 한인사회의 경제적 위상을 제고하는 데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한인포스트의 사랑의 전화 프로그램을 적극 후원하며 동포사회의 그늘에서 경제적 곤궁에 처한 이웃들을 오랫동안 돌보았고 1998년 자카르타 폭동 당시엔 군 인맥을 통해 수배한 군용트럭을 셔틀버스처럼 활용해 무차별 린치가 자행되던 전쟁터 같은 자카르타에서 교민들의 탈출을 도왔으며 위기상황을 맞아 항공권을 구하려고 경황없이 본사 사옥으로 몰려든 교민들을 위해 식품재고를 풀기도 했고 이튿날 위험을 무릅쓰고 교민회에 비상식량을 전달하는 등 초유의 위기상황 극복에도 크게 기여했다.

 

김우재 회장 부부의 재외동포 권익신장과 국가발전을 위한 활동은 국가로부터도 인정받아 박은주 여사는 일찍이 1996년 한국부인회장 재임시절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고 김회장 역시 2013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가슴에 달았다. 부부가 나란히 국민훈장을 수훈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회고록 인도네시아에 핀 무궁화를 출간했고 문인협회 회원이기도 한 김우재 회장은 한국-인도네시아 사이의 문화교류에도 관심을 보이며 특히 최근 중부자바 살라띠가에서 개원한 사산 자바문화연구원(원장 이태복)에 대한 지원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김우재 회장 부부 (2014년)


무궁화유통 김우재 회장 부부의 경제, 사회, 문화, 예술계를 망라하는 그간의 활동은 이제 인도네시아 생활 40년차를 맞아 새로이 재조명 되어야 할 것이라 보이며 노년에 접어든 후에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두 사람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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